7월 02, 2025
글 심은록(SIM Eunlog, AI영화감독, 미술비평가)
피에르 위그, ASI(초지능) 시대의 미술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필자는 주저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이유는 분명하다. 현대미술계에서 그의 작업은 보기 드문 미적 밀도를 지녀서다. ‘시각적 통찰’, ‘시적 리듬’, ‘비판적 사유’와 ‘생태적 연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예술은 그리 흔치 않다. 미술 애호가라면 이 네 가지 중 단 하나를 실현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 <리미널 Liminal>(2025. 2. 27~7.6)에는 여기에 하나가 더해졌다. 바로 ‘AI에서 비롯된 감응적 체험’이다. 이 전시는 곧 막을 내리지만 ‘생각지 못한 뭔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한다는 전시 제목처럼 자연과 문화, 기술을 둘러싼 ‘열린 가능성’을 폭넓고도 심도 있게 사유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계기를 남겼다.
필자는 2015년께부터 AI가 예술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관심 있게 추적해왔다. AI 기술만 드러내는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프랑스 현대미술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처럼 기술을 예술에 녹여낸 작가는 드물었다. 그는 또한 다가올 AGI(일반 인공지능)과 ASI(초지능)의 시대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인식하며, 그 문턱에서 ‘예술의 본질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 ‘그 경우 예술가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집요하게 묻는다. 위그의 작품에서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기능’이 아닌 ‘존재’로 등장하며, 생각하며 말하고, 반응하고, 생성을 잉태하고, 무엇보다 느낀다. 이는 지난달 초 보테가 베네타의 후원으로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도로테아 폰 한텔만 교수의 강연에서 다뤘듯 인류세(Anthropocene)와 우주론(Cosmology) 속 인간, 기계, 존재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2016년 작품인 ‘암세포 변환기(Cancer Variator)’에서 위그는 살아 있는 암세포의 분열을 시각화하며, AI를 통해 생명이라는 비가시적 질서를 가시화했다. 2018년 ‘U움벨트-안리(UUmwelt – Annlee)’에서는 관람자의 뇌파가 이미지가 되고, AI는 이를 실시간으로 조합하고 재구성했다. 같은 해 발표된 ‘오프스프링(Offspring)’에서는 에리크 사티의 음악을 AI가 학습하고, 공간의 공기, 빛, 안개가 관람자의 존재에 따라 호흡하듯 반응했다. 2024년 작 ‘이디엄(Idiom)’에서는 인간 언어 이전의 원초적 소리가 AI를 통해 탄생했고, ‘카마타(Camata)’에서는 AI가 사막에서 수집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재편집하며 죽음 이후를 서사화했다. 그리고 이번 <리미널> 전시에서 선보인 동명의 작품 ‘리미널’에 이르러, AI는 얼굴 없는 존재로서 공기, 먼지, 온도, 몸짓 등에 반응하며 자기 자신을 조합해나간다. 이렇게 작품은 인간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람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위그는 창조자의 자리를 AI에 내주었고, 자신은 그저 ‘조건을 설정하는 자(condition setter)’로 남는다. 그는 더 이상 서사를 구축하거나 형식을 완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들이 충돌하고 공진할 수 있는 생태적 환경을 설계한다. 인간, 기계, 식물, 데이터, 곤충, 미생물, 바람, 빛, 시간…. 그 모두가 작품의 구성 요소이자 주체로 기능한다. 전시장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반응하고 진화한다. 이러한 작업은 인류세, 우주론이 요구하는 새로운 예술적 존재론에 대한 위그의 응답이자 예술적 실험이다. 그는 인간 중심의 미학을 해체하고, 세계를 공진적 행위자들(co-resonating agents)의 장으로 재구성한다.
이번 <리미널>전에는 AI 기술의 과시도 없고, 설명의 강요도 없다. 대신 그것은 배경의 리듬처럼 은밀하게, 그러나 결정적인 방식으로 작품 내부에 침투해 있다. AI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면서도, 작품의 주체로 작동할 만큼 깊이 관여되어 있다. 그는 기술이 예술을 압도하지 않도록 조율하면서도, 예술이 기술을 방관하거나 낭만화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공상적 미래상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든 AI 시대의 감각을 해부하고, 그 미세한 징후를 예감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처럼 정교하게 결합된 AI와 예술이 관람자에게도 같은 깊이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작품은 겉으로 보기엔 신비롭고 난해한 이미지와 소리로 가득하지만, 그 이면의 기술적·개념적 작동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리미널’에서는 영상 속 얼굴 없는 존재가 관람자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응하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감상한다면 단지 괴기스러운 몽환적 이미지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어두운 공간 안에서 관객의 위치에 따라 영상이 즉각 반응하는 장면을 육안으로 포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카마타’의 영상도, 그것이 실시간 데이터에 따라 편집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그저 하나의 종말론적 영상 서사처럼 다가올 수 있다. ‘이디엄’의 금빛 가면을 쓴 인물 역시 관객과 직접 교감하지만, 그의 말이 AI가 생성한 새로운 언어라는 점은 설명 없이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결국 이 전시에서 ‘AI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무엇인가를 느끼긴 하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러 평론에서도 ‘작품에 기술과 개념이 내포되어 있지만, 그 심오함은 설명 없이는 다가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심지어 각 작품이 엄청난 의미를 담은 듯하지만, 결국에는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관객의 체험과 해석의 층위에 안착되지 못할 때, 특히 기술의 진화가 인식의 속도를 앞지를 경우 드러나는 인지적 간극의 한계이기도 하다.
이번 <리미널>전에는 AI 기술의 과시도 없고, 설명의 강요도 없다. 대신 그것은 배경의 리듬처럼 은밀하게, 그러나 결정적인 방식으로 작품 내부에 침투해 있다. AI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면서도, 작품의 주체로 작동할 만큼 깊이 관여되어 있다. 그는 기술이 예술을 압도하지 않도록 조율하면서도, 예술이 기술을 방관하거나 낭만화하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공상적 미래상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든 AI 시대의 감각을 해부하고, 그 미세한 징후를 예감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처럼 정교하게 결합된 AI와 예술이 관람자에게도 같은 깊이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작품은 겉으로 보기엔 신비롭고 난해한 이미지와 소리로 가득하지만, 그 이면의 기술적·개념적 작동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예컨대 ‘리미널’에서는 영상 속 얼굴 없는 존재가 관람자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응하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감상한다면 단지 괴기스러운 몽환적 이미지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어두운 공간 안에서 관객의 위치에 따라 영상이 즉각 반응하는 장면을 육안으로 포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카마타’의 영상도, 그것이 실시간 데이터에 따라 편집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면 그저 하나의 종말론적 영상 서사처럼 다가올 수 있다. ‘이디엄’의 금빛 가면을 쓴 인물 역시 관객과 직접 교감하지만, 그의 말이 AI가 생성한 새로운 언어라는 점은 설명 없이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결국 이 전시에서 ‘AI 존재’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무엇인가를 느끼긴 하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러 평론에서도 ‘작품에 기술과 개념이 내포되어 있지만, 그 심오함은 설명 없이는 다가가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심지어 각 작품이 엄청난 의미를 담은 듯하지만, 결국에는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관객의 체험과 해석의 층위에 안착되지 못할 때, 특히 기술의 진화가 인식의 속도를 앞지를 경우 드러나는 인지적 간극의 한계이기도 하다.
1 4개월 넘는 리움미술관에서의 <리미널> 전시 여정에서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 피에르 위그. 베니스에 있는 푼타 델라 도가나(피노 컬렉션)와 협력한 전시다. Photo by Ola Rindal 이미지 제공_리움미술관
2 센서가 달린 금빛 LED 마스크를 통해 알 수 없는 생성형 언어를 말하는 ‘이디엄(Idiom)’과 멕시코의 수중 동굴을 리모델링해 눈이 먼 테트라 물고기와 시력을 지닌 테트라가 공존하는 수족관 풍경을 보여주는 ‘주기적 딜레마(엘 디아 델 로호)’. Photo by 고성연
3 <리미널>, 2025, 전시 모습, 리움미술관 제공, 사진 레스(LESS).
4 ‘리미널(Liminal)’, 2024~진행 중, 실시간 시뮬레이션, 사운드, 센서, 스틸 이미지.
5 ‘카마타(Camata)’, 2024~진행 중, 기계 학습으로 구동되는 로보틱스, 자기 생성 영상, 실시간 인공지능 편집, 사운드, 센서, 스틸 이미지.
※ 4, 5 작가, 갤러리 샹탈 크루젤, 메리언 굿먼 갤러리, 하우저 & 워스, 에스더 쉬퍼, 타로 나수 제공
2 센서가 달린 금빛 LED 마스크를 통해 알 수 없는 생성형 언어를 말하는 ‘이디엄(Idiom)’과 멕시코의 수중 동굴을 리모델링해 눈이 먼 테트라 물고기와 시력을 지닌 테트라가 공존하는 수족관 풍경을 보여주는 ‘주기적 딜레마(엘 디아 델 로호)’. Photo by 고성연
3 <리미널>, 2025, 전시 모습, 리움미술관 제공, 사진 레스(LESS).
4 ‘리미널(Liminal)’, 2024~진행 중, 실시간 시뮬레이션, 사운드, 센서, 스틸 이미지.
5 ‘카마타(Camata)’, 2024~진행 중, 기계 학습으로 구동되는 로보틱스, 자기 생성 영상, 실시간 인공지능 편집, 사운드, 센서, 스틸 이미지.
※ 4, 5 작가, 갤러리 샹탈 크루젤, 메리언 굿먼 갤러리, 하우저 & 워스, 에스더 쉬퍼, 타로 나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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