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언어로 시대를 조각하는 M/M(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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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2, 2025

글 김민서

〈사랑/마법 ♥/MABEOB M/MAGIE〉_F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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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파리, 미카엘 암잘라그(Michaël Amzalag)와 마티아스 오귀스티니아크(Mathias Augustyniak)가 M/M(Paris)를 창립했을 때만 해도 그래픽디자인은 예술의 하위 범주 또는 클라이언트를 위한 상업적 서비스라는 인식이 짙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부산 망미동의 복합 문화 공간 F1963에서 진행 중인 M/M(Paris)의 전시 〈사랑/마법 ♥/MABEOB M/MAGIE〉은 그동안 디자인의 위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그들 자신이 어떻게 한 시대의 문화 지형도를 바꾼 창조자로 자리매김했는지 보여준다. 2017년 겨울에 열린 서울 전시 이후 7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이들의 첫 부산 전시다. 오는 9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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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Paris)의 작업은 어떻게 한 시대의 문화를 담아낼까.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가 그 답을 제시하는 듯하다. 부산 F1963의 석천홀 전시장에 놓인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는 단순한 작품의 나열이 아닌, 이들이 그동안 구축해온 방대한 시각언어의 세계로 안내하는 표지판처럼 다가온다. 그 여정은 30여 년 전 파리의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에서 시작되었다. 학창 시절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스스로를 ‘작가’라 칭하며, 디자인을 용역이 아닌, 예술과 같은 창작 활동으로 대하는 태도를 일찌감치 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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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언어, 무수한 세계
M/M(Paris)의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는 끊임없는 소통에 있다. 클라이언트의 내면에 파고들어 세상에 없던 고유의 시각언어를 창조하는 것. 이들의 협업은 단순한 디자인 제안을 넘어, 브랜드와 아티스트, 관객이 함께 의미를 만들어가는 지적인 과정으로 거듭난다. 대표적으로 아이슬란드의 싱어송라이터 비외르크(Björk)와의 전설적인 협업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단순한 앨범 커버 디자인을 넘어, 수개월에 걸쳐 비외르크와 대화를 나누며 아티스트의 내면과 음악적 실험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했다. 그 결과, 백조의 형상을 섬세하게 그려낸 앨범 의 아트워크가 탄생했음은 물론이고, 그로부터 10년 뒤 세계 최초의 ‘앱 앨범’으로 불린 멀티미디어 프로젝트 ‘Biophilia’(2011)에 이르러서는 음악과 자연, 기술을 융합하는 복잡한 시각 체계를 구축하며 비외르크의 세계관을 함께 빚어냈다. 음악 앨범이라는 개념을 순수 미술, 디지털 기술, 퍼포먼스의 영역까지 확장시킨, 경계 없는 M/M(Paris)의 작업 성향을 잘 보여준 사례다.
패션계에서의 영향력은 더욱 압도적이다. 이 듀오는 2000년대 초, 당시 패션계에 호평을 받은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ère) 시절의 발렌시아가, 그리고 서로의 팬을 자처했던 로에베의 조나단 앤더슨과 함께하며 옷에 구체적인 서사를 불어넣었다. 특히 조나단 앤더슨이 부임한 직후인 2014년, 로에베의 로고타입과 아나그램에서 곡선을 최대한 덜어내고, 단순하고 날렵한 형태로 재구성한 작업은 다소 올드한 전통 가죽 하우스였던 브랜드의 이미지를 지적인 장인 정신을 갖춘 럭셔리 브랜드로 단숨에 바꾸어놓았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물리적인 런웨이가 불가능했던 2020~21년, 로에베와 함께 선보인 ‘쇼-인-어-박스(Show-in-a-Box)’는 창의성의 절정이었다. 이들은 패션쇼를 온라인 영상으로 대체하는 대신, 쇼의 모든 영감과 소재, 사운드까지 담아낸 아카이브 박스를 관객에게 보냈다. 이러한 시도는 실물 크기의 모델 포스터와 벽지용 브러시, 가위 등을 보내 관객이 자신의 공간을 직접 전시장으로 만들게 한 ‘쇼 온 어 월(Show on a Wall)’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이는 패션쇼를 경험하는 방식을 재정의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들의 활동 영역이 패션에만 머문 건 아니다. 2010년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Byredo)와는 ‘먹(ink)’을 테마로 한 제품 ‘M/MINK’를 선보이며 후각과 시각의 경계를 허물었고, 퐁피두 센터 같은 미술 기관과도 협업하며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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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완성되는 마법
이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M/M(Paris)의 힘은 무엇일까. 이번 전시를 통해 그들은 스스로를 ‘전지전능한 창작자’가 아닌, 기존의 기호와 의미를 엮고 편집하는 ‘열린 구조의 창작자’라고 정의한다. M/M(Paris)의 힘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만의 알파벳을 만들고, 이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며(고려제강의 심벌 ‘코끼리’와 M/M(Paris)의 상징적 캐릭터 ‘The Agent’가 합쳐져 ‘ElephAgent’가 되듯) 하나의 거대한 기호 생태계를 구축한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마법(MAGIE)’을 ‘IMAGE’, ‘MAGI’, ‘NATION’으로 해체해 ‘IMAGINATION’과 연결하는 유쾌한 언어유희가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마법’이란 이미지를 통해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게 하는 새로운 인식을 창조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해석의 여지가 있는 질문의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관객을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능동적인 참여자로 초대한다.
이렇듯 M/M(Paris)의 작업 세계를 깊이 여행하고 나면, 부산 전시 공간에 놓인 단서들은 더 이상 낯선 기호가 아닌 풍부한 맥락을 품은 상징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술가로서 한 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았다는 78장의 거대한 타로 카드 작업이 그 중심에 있는데, 이들은 운명을 점치는 도구로서의 타로가 아닌,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기호와 상징의 체계가 지닌 한계를 시험하는 시선으로 접근했다. 미카엘 암잘라그의 말처럼, 이들의 작업은 완결된 결과물이라기보다 오히려 ‘악보’처럼 작동한다. 우리 앞에 놓인 이 수많은 기호들은 M/M(Paris)가 작곡한 악보가 되어 새로운 상상력을 연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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