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02, 2025
글 고성연(로테르담 현지 취재)
페닉스(Fenix) 미술관 in 로테르담(Rotterdam)
널리 알려진 대로 이름 자체가 ‘낮은 땅’을 뜻하는 네덜란드는 유난히 평평한 땅이 물보다 낮게 자리한 나라다. 당연히 사방에 물이 흐르다 보니, 이 나라 사람들은 강에 둑(dam)을 쌓고 그 위에 자신들이 살아갈 거주지를 만들었다. 원래는 라인강, 마스강, 스헬더강의 퇴적물이 빚어낸 갯벌이던 서부 지역에 암스테르담, 스파른담, 에담 등 이름이 담(-dam)’으로 끝나는 도시가 많은 이유다. 그중 하나인 로테르담은 13세기 작은 어촌으로 출발했지만 대항해 시대를 거쳐 이 나라 제2의 도시이자 유럽 최대의 무역항으로 거듭났다. 특히 산업혁명 여파로 19세기는 항만 시설과 인프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유럽으로 가는 관문’ 혹은 ‘세계로 이르는 길’ 같은 별칭이 따라붙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 확장의 중심에 있던 건물이 ‘샌프란시스코 웨어하우스’라고 불리던, 1923년 완공된 세계 최대 규모의 창고였다. 길이 360m가 넘는 이 커다란 창고는 당시 미국과 유럽을 잇는 선박 라인인 HAL(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로테르담의 대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무참히 파괴되었고, 이를 계기로 도시 전반에 혁신적인 건축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됐으며, 그 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무역의 수도’이자 ‘건축의 수도’는 로테르담이라고 여겨지는 배경이다. UN 스튜디오가 설계한 에라스무스 다리, 기우뚱한 자태가 인상적인 렌초 피아노의 KPN 빌딩, 렘 콜하스(OMA)의 개성 만점 복합 공간 ‘데 로테르담’, 주상 복합 마르크탈(Markthal)과 보이만스 판 뵈닝언 미술관의 개방형 수장고인 더 데포(The Depot) 같은 로테르담에 기반을 둔 건축 스튜디오 MVRDV의 재기 넘치는 작업…. 그야말로 현대 건축의 작은 메카와도 같다. 다시 20세기 중반으로 돌아가자면, 전쟁이 가한 폭격과 화재로 망가진 샌프란시스코 창고도 재건을 거쳐 ‘페닉스(Fenix)’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페닉스 I과 페닉스 II라는 두 채의 별도 건물로 나뉘었다). 그중 페닉스 II는 중국 베이징 출신의 건축가 마얀송(Ma Yansong)이 이끄는 MAD 아키텍츠의 설계로 ‘이주(migration)’를 큰 맥락의 주제로 삼는 아름다운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비 예보까지 피해가며 환한 햇살의 축복이 쏟아진 지난 5월 중순, 페닉스 미술관 오프닝 주간에 다녀왔다.
정중동, 동중정의 미학
‘이주’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미술관으로 거듭난 오랜 창고
“하나, 둘, 셋!” 해맑은 미소와 함께 눈을 동그랗고 뜨고 합창하는 아이들, 세련되고 경쾌한 안무로 관중의 힘찬 박수를 이끌어내는 댄서들의 공연이 잇따라 이어지고 난 뒤,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울려 퍼졌다. 시종일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던 네덜란드 막시마 왕비가 커다란 북의 정중앙을 겨냥해 “탕” 하고 봉을 내려치자, 일제히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 미술관 안으로 거의 뛰다시피 쏟아져 들어갔다. 로테르담의 젖줄인 마스강이 유유하게 흐르는 남쪽 강둑에 새롭게 등장한 페닉스(Fenix)의 개막식 풍경은 시민들의 작은 축제 현장 같았다. 아담한 규모의 행사에 참석한 초청객들은 물론이고 근처에 여러 겹 똬리를 틀고 서서 지켜보는 이들, 강둑 저편부터 미술관을 잇는 다리 위에 이르기까지 길게 늘어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애정 어린 관심도를 말해준다. 그도 그럴 것이 한적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카텐드레흐트(Katendrecht) 지역에 또 하나의 인상적인 건축물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강둑을 따라 기다랗게(360m) 펼쳐진 옛 창고 건물 위에 하늘을 향해 용솟음치듯 나선형으로 이어진 원형 구조물의 실체를 다들 궁금해했을 터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 고요함
누군가는 “미술관이라 그런가. 건물 위에 조각을 얹어놓았네”라고 농담 삼아 얘기하는 이 ‘덩어리’의 정체는 ‘토네이도(tornado)’라 불리는 건축적 요소이자 루프톱에 속한 공간의 일부이기도 한 구조물이다. “‘움직임(movement)’을 상징하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이주’ 역시 일종의 움직임이죠.” 모두의 시선을 잡아끄는 토네이도를 설계한 마얀송은 이렇게 설명하면서 “처음부터 ‘토네이도’라는 이름을 지은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다들 그렇게 부르더군요”라고 덧붙였다. 겉만 보면 화려할 듯도 싶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전체적으로 밝은 기운이 깃든 차분함이 느껴진다. 물론 ‘토네이도’의 분신 같은 나선형 계단이 중앙에서 역동성을 가미하며 중심을 잡아주지만, 전혀 과하지 않다. 계단으로 올라가거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토네이도’를 품은 루프톱으로 향할 수 있는데,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전망을 선사한다. 마침 그날은 반짝이는 관람객들의 형상을 담아내는 토네이도의 은빛 패널 사이로 미풍이 살랑인 덕분일까. 의외로 토네이도가 수호신 역할이라도 하듯 외려 쾌적하면서도 고요한 정취가 느껴졌다.
1 로테르담의 역동적인 젖줄이 되어온 항구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을 응축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방문자 센터이자 전시 공간인 포틀란티스(Portlantis). 이 도시를 멋드러진 건축으로 수놓아온 로테르담 기반의 건축 스튜디오 MVRDV가 설계한 건물은 5개의 박스를 엇각으로 쌓아놓은 듯한 층층의 미학이 이색적이다.
2 미국과 유럽을 잇는 선박 라인을 주관하는 HAL(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의 사무실이었던 호텔 뉴욕이 멀리 보인다.
3 주변 환경을 반사하는 그릇 모양의 외관이 독특한 더 데포(The Depot of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4 ‘물의 도시’ 로테르담은 수상 택시를 타고 도시를 한 바퀴 빙 돌면 ‘건축의 도시’임을 절로 느끼게 되는데, 페닉스(Fenix)가 그 매력적인 스펙트럼에 새롭게 합류했다.
5 페닉스를 배경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La Victoire’를 연상시키는 작품인 개빈 터크(Gavin Turk)의 작품 ‘L’Âge d’Or’가 미술관 근처의 유서 깊은 항구 레인하벤(Rijnhaven) 지역에 놓여 있다. Photo Ⓒ Iris van den Broek 이미지 제공_Fenix Rotterdam
6 페닉스 내부에 유연하고도 무게감 있게 자리한 나선형 계단.
7 페닉스 설계를 맡은 MAD 아키텍츠를 이끄는 건축가 마얀송(Ma Yansong).
8 역사적인 창고였던 페닉스는 강둑을 따라 펼쳐진 파사드 길이가 360m나 된다.
※1~4, 6~8 Photo by 고성연
2 미국과 유럽을 잇는 선박 라인을 주관하는 HAL(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의 사무실이었던 호텔 뉴욕이 멀리 보인다.
3 주변 환경을 반사하는 그릇 모양의 외관이 독특한 더 데포(The Depot of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4 ‘물의 도시’ 로테르담은 수상 택시를 타고 도시를 한 바퀴 빙 돌면 ‘건축의 도시’임을 절로 느끼게 되는데, 페닉스(Fenix)가 그 매력적인 스펙트럼에 새롭게 합류했다.
5 페닉스를 배경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La Victoire’를 연상시키는 작품인 개빈 터크(Gavin Turk)의 작품 ‘L’Âge d’Or’가 미술관 근처의 유서 깊은 항구 레인하벤(Rijnhaven) 지역에 놓여 있다. Photo Ⓒ Iris van den Broek 이미지 제공_Fenix Rotterdam
6 페닉스 내부에 유연하고도 무게감 있게 자리한 나선형 계단.
7 페닉스 설계를 맡은 MAD 아키텍츠를 이끄는 건축가 마얀송(Ma Yansong).
8 역사적인 창고였던 페닉스는 강둑을 따라 펼쳐진 파사드 길이가 360m나 된다.
※1~4, 6~8 Photo by 고성연
모든 ‘노매드’에 보내는 인사와 위로!
현대미술의 렌즈로 바라보는 이주자들의 삶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일찍이 21세기를 가리켜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받지 않는 이동과 이주의 시대라고 했다. 인류의 과거사를 돌아보면 기술의 제약으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을 때도 이주는 늘 진행되고 있었으나, 참으로 많은 사연이 따라붙었다. 1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주의 플랫폼으로 유명했던 로테르담의 항구 풍경은 어땠을까? 전체 면적이 16,000m²(약 4천8백40평)나 되는 페닉스 미술관에는 크게 세 가지 전시 공간이 있는데, 이와는 별도로 1층의 로비 공간 한쪽에 화물과 여객의 운송을 맡았던 HAL이 운항했던 커다란 배 모형이 놓여 있고, 가까이 있는 벽에서는 20세기 초·중반 해운 회사들의 활동을 볼 수 있는 영상이 흘러나온다. 이 영상에도 나오는 로테르담의 항구와 부두는 항공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수백만 명의 이민자, 무역상이 오가는 이주의 플랫폼이었다. “전체 공간이 모두 ‘이주’라는 주제로 꾸려집니다. 여기에서는 예술의 렌즈를 통해 이주의 풍경을 경험하게 되죠. 지금 여기에는 다양한 작가들이 1백50점 넘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경험, 이주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관점, 연구 결과물 등을 나눕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페닉스 초대 관장이 된 아너 크레머러스(Anne Kremers)의 설명이다.
이윽고 그녀의 ‘주 전시장 투어’는 실물 크기의 ‘버스’부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멜팅 폿’이라는 별명을 지닌 미국 뉴욕의 다문화·다인종 사회를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이 연출돼 있다. 레드 그룸스(Red Grooms)의 ‘더 버스(The Bus)’라는 1995년 작품. 직업 군인이던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했다는 김수자 작가의 유명한 ‘보따리’ 시리즈,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는 모국 이집트의 문화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하나 엘-사기니(Hana El-Sagini)의 작품 ‘빅 블루 슬리퍼스(The Big Blue Slippers)’(2022), 로테르담 태생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20세기 추상표현주의 거장 빌럼 더 쿠닝(Willem de Kooning)의 회화 ‘Man in Wainscott’ (1969), 차 주전자와 램프 등을 넣은 그물망을 봇짐처럼 진 ‘노매딕 우주인’이라는 콘셉트가 재기 발랄한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의 작업도 보인다. 그러다가 문득 “쿵” 하는 소리에 다들 시선을 돌리니, 가만히 있던 ‘철창 문’이 벽에 부딪히면서 파르르 떨리는 광경이 펼쳐진다. 30분마다 작동하는 실파 굽타(Shilpa Gupta)의 ‘무제(Gate)’(2009)라는 작품으로 소외된 이들에게는 ‘경계’라는 철창이 무자비한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이윽고 그녀의 ‘주 전시장 투어’는 실물 크기의 ‘버스’부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멜팅 폿’이라는 별명을 지닌 미국 뉴욕의 다문화·다인종 사회를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이 연출돼 있다. 레드 그룸스(Red Grooms)의 ‘더 버스(The Bus)’라는 1995년 작품. 직업 군인이던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했다는 김수자 작가의 유명한 ‘보따리’ 시리즈,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는 모국 이집트의 문화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하나 엘-사기니(Hana El-Sagini)의 작품 ‘빅 블루 슬리퍼스(The Big Blue Slippers)’(2022), 로테르담 태생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20세기 추상표현주의 거장 빌럼 더 쿠닝(Willem de Kooning)의 회화 ‘Man in Wainscott’ (1969), 차 주전자와 램프 등을 넣은 그물망을 봇짐처럼 진 ‘노매딕 우주인’이라는 콘셉트가 재기 발랄한 영국 작가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의 작업도 보인다. 그러다가 문득 “쿵” 하는 소리에 다들 시선을 돌리니, 가만히 있던 ‘철창 문’이 벽에 부딪히면서 파르르 떨리는 광경이 펼쳐진다. 30분마다 작동하는 실파 굽타(Shilpa Gupta)의 ‘무제(Gate)’(2009)라는 작품으로 소외된 이들에게는 ‘경계’라는 철창이 무자비한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메세나의 좋은 사례가 될까?
열정적인 예술 후원가와 글로벌 시민이 만들어가는 문화 도시 풍경
주로 현대미술 작품을 선보인 주 전시장 말고도 페닉스 1층에는 이주의 역사를 사진 예술로 훑어보는 기획전 〈The Family of Migrants〉 ,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이민자, 이주자가 기증한 2천여 개의 수트케이스를 모아놓은 〈The Suitcase Labyrinth〉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전반적으로 별도의 칸막이가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은데도 복잡하거나 어지러운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더불어 개성 있는 건축을 입힌 상업 시설이 밀집한 강 건너편의 거리 풍경 덕분일 것이다. 나선형 계단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2층 주 전시장에서 바로 이 도시에서 ‘SS 로테르담’이라는 배에 몸을 싣고 뉴욕으로 떠났다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초상을 보다가 문득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고풍스러운 ‘호텔 뉴욕(Hotel New York)’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넘실댄다. 과거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HAL)의 사무실이었다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는 이민자들의 임시 숙소 역할을 했고, 시 정부의 지원으로 1993년 이름처럼 진짜배기 호텔로 변모한 전설적인 장소다. 오늘날에는 로테르담이 1백70개 여 개의 국적을 지닌 다양한 글로벌 시민이 거주하고 ‘문화적 혼종’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세련된 국제도시로 서서히 거듭날 수 있게 한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해왔다. 페닉스가 둥지를 튼 곳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과 가깝다.
이쯤이면 대다수는 페닉스를 공공 미술관으로 여길 법도 하지만, 사실 문화 예술에 초점을 맞춘 드룸 엔 다트(Droom en Daad) 재단에서 전적으로 공을 들인 곳이다. HAL을 소유한 사업가 집안인 판 데르 보름(Van der Vorm) 가문에서 후원하는 재단인데, 이 집안 사람들은 대외적으로 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 레이크스 뮤지엄 관장 출신인 빔 페이버스(Wim Pijbes)가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재단에서 올가을 문을 여는 국립사진미술관의 이전과 재개관 프로젝트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현재 MAD 아키텍츠가 또다시 설계를 맡은 ‘단하위스(Danhuis)’라는 공연 센터도 열 예정이다. 페닉스 건물 내에는 시민들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인 ‘플레인(Plein)’이 있는데, 여기서 휴식을 취하다 찾은 젤라테리아에서 우연히 빔 페이버스 디렉터를 만났다. 그는 수많은 아티스트를 발굴했듯 마얀송이라는 건축가를 학회에서 만난 뒤 곧바로 로테르담으로 초대하며 이 프로젝트를 함께 전개해나갔다. 역동적인 항구도시에 어울리는 유기적인 스타일이 좋았다고 강조한 그는 차이나타운에 어린 장소성의 인연이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훌륭한 ‘덤’이 되는 요소였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로테르담에 건네는 선물이자,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라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그는 ‘꿈의 실현’이라고 말하며 싱긋 웃었다. 물론 긴 여정에서 아직 첫 출항을 했을 뿐이지만, 새로운 건축과 문화 콘텐츠의 화음이 궁금해서라도 아무래도 다시 찾을 듯싶은 도시다.
이쯤이면 대다수는 페닉스를 공공 미술관으로 여길 법도 하지만, 사실 문화 예술에 초점을 맞춘 드룸 엔 다트(Droom en Daad) 재단에서 전적으로 공을 들인 곳이다. HAL을 소유한 사업가 집안인 판 데르 보름(Van der Vorm) 가문에서 후원하는 재단인데, 이 집안 사람들은 대외적으로 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 레이크스 뮤지엄 관장 출신인 빔 페이버스(Wim Pijbes)가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재단에서 올가을 문을 여는 국립사진미술관의 이전과 재개관 프로젝트도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현재 MAD 아키텍츠가 또다시 설계를 맡은 ‘단하위스(Danhuis)’라는 공연 센터도 열 예정이다. 페닉스 건물 내에는 시민들이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인 ‘플레인(Plein)’이 있는데, 여기서 휴식을 취하다 찾은 젤라테리아에서 우연히 빔 페이버스 디렉터를 만났다. 그는 수많은 아티스트를 발굴했듯 마얀송이라는 건축가를 학회에서 만난 뒤 곧바로 로테르담으로 초대하며 이 프로젝트를 함께 전개해나갔다. 역동적인 항구도시에 어울리는 유기적인 스타일이 좋았다고 강조한 그는 차이나타운에 어린 장소성의 인연이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훌륭한 ‘덤’이 되는 요소였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로테르담에 건네는 선물이자,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라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그는 ‘꿈의 실현’이라고 말하며 싱긋 웃었다. 물론 긴 여정에서 아직 첫 출항을 했을 뿐이지만, 새로운 건축과 문화 콘텐츠의 화음이 궁금해서라도 아무래도 다시 찾을 듯싶은 도시다.
1 페닉스 미술관 2층에는 계단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주 전시장이 펼쳐져 있다. 네덜란드가 속한 유럽연합(EU) 회원국 공항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장 입구. Overview All Directions – Ⓒ TITIA HAHNE
2 30분마다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움직이며 벽을 치는 실파 굽타(Shilpa Gupta)의 ‘무제(Gate)’(2009).
3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는 모국 이집트의 문화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하나 엘-사기니(Hana El-Sagini)의 작품 ‘빅 블루 슬리퍼스(The Big Blue Slippers)’(2022).
4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했다는 김수자 작가의 유명한 ‘보따리’ 시리즈 중 하나. Kimsooja, ‘Bottari Truck Migrateurs’, 2007, Collection Fenix. Ⓒ TITIA HAHNE
5 다인종 사회인 뉴욕의 사회문화적 풍경을 담아낸 레드 그룸스(Red Grooms)의 1995년 작품 ‘더 버스(The Bus)’. Ⓒ TITIA HAHNE
6 ‘더 버스’를 배경으로 빔 페이버스(Wim Pijbes) 디렉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7 페닉스 미술관 1층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 〈The Family of Migrants〉 설치 모습.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큐레이터로 참여한 전설적인 사진전에 영감을 받은 기획전이다.
8 세계적인 사진가 그룹 매그넘 소속의 아시아 작가인 치엔치창(Chien-Chi Chang)의 작품. ‘A man who recently emigrated to New York eats noodles on a fire escape’(1998). Ⓒ Chien-Chi Chang/Magnum Photos
9 로테르담 무역사에서 주요한 플랫폼 역할을 했던 호텔 뉴욕.
10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주자, 이민자가 2천여 개의 수트케이스를 페닉스 1층의 별도 전시 공간에 모아놓은 〈The Suitcase Labyrinth〉 전시.
※ 2, 3, 6, 7, 9, 10 Photo by 고성연
2 30분마다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움직이며 벽을 치는 실파 굽타(Shilpa Gupta)의 ‘무제(Gate)’(2009).
3 실내에서 슬리퍼를 신는 모국 이집트의 문화를 향한 그리움을 담아낸 하나 엘-사기니(Hana El-Sagini)의 작품 ‘빅 블루 슬리퍼스(The Big Blue Slippers)’(2022).
4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했다는 김수자 작가의 유명한 ‘보따리’ 시리즈 중 하나. Kimsooja, ‘Bottari Truck Migrateurs’, 2007, Collection Fenix. Ⓒ TITIA HAHNE
5 다인종 사회인 뉴욕의 사회문화적 풍경을 담아낸 레드 그룸스(Red Grooms)의 1995년 작품 ‘더 버스(The Bus)’. Ⓒ TITIA HAHNE
6 ‘더 버스’를 배경으로 빔 페이버스(Wim Pijbes) 디렉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7 페닉스 미술관 1층에서 진행 중인 사진전 〈The Family of Migrants〉 설치 모습.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이 큐레이터로 참여한 전설적인 사진전에 영감을 받은 기획전이다.
8 세계적인 사진가 그룹 매그넘 소속의 아시아 작가인 치엔치창(Chien-Chi Chang)의 작품. ‘A man who recently emigrated to New York eats noodles on a fire escape’(1998). Ⓒ Chien-Chi Chang/Magnum Photos
9 로테르담 무역사에서 주요한 플랫폼 역할을 했던 호텔 뉴욕.
10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주자, 이민자가 2천여 개의 수트케이스를 페닉스 1층의 별도 전시 공간에 모아놓은 〈The Suitcase Labyrinth〉 전시.
※ 2, 3, 6, 7, 9, 10 Photo by 고성연
Art+Culture ’25 Summer Special
01. 페닉스(Fenix) 미술관 in 로테르담_오랜 항구도시의 새 랜드마크, 이주와 자유를 말하다 보러 가기
02. 국경 지대에 자리한 미식과 쇼핑의 소도시_하룻밤으로는 모자란 루르몬트의 매력 보러 가기
03. Art + Culture 보러 가기
04. Interview with 앤서니 맥콜 Anthony McCall in 뉴욕_느릿한 ‘현재(現在)’를 호흡하는 빛의 공간 보러 가기
05.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Expo 2025 Osaka Kansai_‘인류의 축제’에 남겨질 질문들 보러 가기
06. 살아 있는 로커의 아이콘_숲과 바람의 리마로 돌아온 패티 스미스 보러 가기
07. Artist in Focus 1_지언무언(至言無言), 말이 다다를 수 없는 이강소의 세계 보러 가기
08. Artist in Focus 2_이동하고 거주하는 제임스 터렐표 빛의 공간 보러 가기
09. 아만조에(Amanzoe) in 그리스_올리브나무 벗 삼아, 깊고 푸른 에게해를 바라보다 보러 가기
10. 피에르 위그, ASI(초지능) 시대의 미술_당신은 아직도 예술이 인간만의 이야기라고 믿는가? 보러 가기
11. 서울시립 사진미술관_창동에서 시작하는 한국 사진 예술 기행 보러 가기
12. 미국 현대미술 작가 캐서린 번하드_겁내지 않고, 멈추지 않는 ‘행동’으로서의 예술 보러 가기
13. 〈사랑/마법♥/MABEOB M/MAGIE〉_F1963_시각 언어로 시대를 조각하는 M/M(Paris) 보러 가기
14. EXHIBITION IN FOCUS 보러 가기
15. REMEMBER THE EXHIBITION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