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바람의 리마로 돌아온 패티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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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2, 2025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살아 있는 로커의 아이콘인 패티 스미스(Patti Smith, 1946~)를 보면 ‘대체 몇 가지 재능을 지닌 걸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몰입과 열정이 그녀를 이토록 혁명적으로 보이게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1975년부터 음악, 시, 산문의 경계 없이 글로 비탄하고 울부짖은 패티 스미스는 2005년 프랑스 문화부에서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예술문학훈장을 받았고, 2007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2011년 시사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백 명’에 꼽히기도 했다. 여전히 부지런히 예술을 행하며 개척자로 살고 있는 그녀가 서울 남산의 복합 문화 공간 피크닉(Piknic)에서 펼쳐지는 <끝나지 않을 대화(Soundwalk Collective & Patti Smith: CORRESPONDENCES)>라는 전시(7월 20일까지)로 서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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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록의 대모, 싱어송라이터, 그래서 ‘포에틱 펑크의 여왕’이라 불리는 패티 스미스(Patti Smith)는 남성용 와이셔츠 같은 화이트 셔츠를 즐겨 입고 화장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1970년대 예술이 소용돌이치던 뉴욕을 활보하며 시 낭독회를 열고 노래를 불렀다. 당시 패티 스미스는 뉴욕의 첼시 호텔에서 자신의 평생 솔 메이트가 된 동갑내기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와 사랑과 우정을 나눴고, 재니스 조플린, 앨런 긴스버그, 지미 헨드릭스 같은 예술가들과 끊임없이 시와 로큰롤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게 흐른 2025년, 그녀는 환경·인권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여전히 음악과 미술을 결합한 공연과 전시를 진행하고, 끊임없이 시를 쓰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순간을 노래한다.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1975년 데뷔 앨범 <호시스(Horses)> 커버 속 중성적인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패티 스미스에게는 늙음에 딸려 오는 슬픔도, 외로움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작은 여행 가방을 챙기고 카메라를 배낭에 넣고 길을 떠나는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펜과 공책을 자주 꺼내 글을 끄적거린다. “기차에서도 열에 달뜬 글쓰기를 이어간다. 기억의 바다에서 부활한 사람 같다. 알랭이 보던 책에서 눈길을 슬며시 들어 차장 밖을 바라본다. 시간이 수축된다. 별안간 우리가 파리에 곧 도착할 예정이란다. 아우렐리앵은 잠들어 있다. 젊은이는 잠을 잘 때 아름답고 나 같은 늙은이는 죽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자신의 저서 <몰입>(마음산책)에서 이런 풀 죽은 듯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검은색 새틴 바지에 워커를 신고 전시장을 누비는 그녀는 여전히 혁명을 이끄는 전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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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 키즈’, 예술가로 살아가는 무게와 아름다움
1970년대 패션 스타일을 지금까지 그대로 고수하는 패티 스미스는(기자 간담회 때는 전시 공간 ‘피크닉’ 로고 티셔츠를 커팅해 입고 왔다) 스스로를 인도주의자라고 했다. “우리는 연합을 통해 이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되돌릴 수 있어요. 탐욕적인 극소수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가 거리로 나가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습니다”고 말한다. 국제 정권에 저항하고 싶어 록 음악의 세계로 들어왔고 랭보의 시를 좋아했다던 그녀는 여든이 된 지금도 순수한 열의에 차 있는 듯했다.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패티 스미스의 회고록 <저스트 키즈(Just Kids)>(아트북스)는 이런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풀어낸 책이다. 막 사랑에 빠진 커플의 자화상만이 아니라 예술적 감성과 혁명적 기운이 팽배했던 뉴욕을 배경으로 당대를 풍미한 아티스트들의 행보가 담겨 있다. “우리 얘기를 책으로 써줄래?” “내가 그러길 바라?” “그래줘야 해.” 패티 스미스는 죽어가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와 ‘안녕’이란 인사 대신 이 같은 대화를 나눴고, 2010년 <저스트 키즈>를 출간하며 그 약속을 지켰다.
“저의 책 <저스트 키즈>에서 그랬듯 이번 전시에서 아티스트로서 산다는 것의 무게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뉴욕, 메데인, 상파울루 등을 거쳐 아시아 첫 순회전으로 열리는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Soundwalk Collective)의 협업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Soundwalk Collective & Patti Smith: CORRESPONDENCES)> 기자 간담회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서울에 정말 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뮤지션 입장에서 한국어를 들으면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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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룩


피크닉 전시는 패티 스미스와 사운드워크 컬렉티브가 10여 년간 주고받은 서신을 바탕으로 완성한 시와 소리에 대한 프로젝트의 결실이다(일본 도쿄의 미술관 MoT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패티 스미스의 전시가 열렸다). 사운드워크 컬렉티브의 음향 예술가 스테판 크라스닌스키(Stéphan Crasneanscki)와 프로듀서 시몬 메를리(Simone Merli)가 세계를 탐험하며 현장의 소리를 녹음한 필드 리코딩에 패티 스미스가 영감을 받아 시를 쓰고 목소리를 덧입혔다. 전시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대형 산불, 동식물의 대량 멸종 등을 이야기하며 기후변화, 인류 역사 속 예술과 혁명 등을 주제로 삼는다. 모두 8편의 비디오를 선보였는데,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세대의 삶을 기록한 <체르노빌의 아이들>이나 <길 잃은 자들의 절규>와 <무정부 상태의 군주>, <산불 1946-2024>와 <대멸종 1946-2024> 등 슬픈 역사나 심각한 문제를 겪는 곳들을 다룬다. 패티와 스테판은 도시를 함께 거닐면서 세계의 아름다움과 취약함,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격자로서 느끼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가 들판에서 모은 나뭇잎을 내려놓으면 그녀는 연필로 글을 쓰고, 그가 멕시코 동굴에서 들리는 특별한 바람 소리를 들려주면 그녀가 즉흥적으로 시를 쓴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과 연결되어 있었고 꽃과 동물은 무엇이나 영혼이 있었으며 물속에는 정령들이 깃들어 있었다. 의례의 춤, 북소리, 몽환의 치유제들. 그때 그 시절, 지구는 순조롭게 돌았고 검고 통통한 사슴 무리와 거위 떼로 가득했다. 우리는 내리는 눈에 기뻐하고 우리가 거둔 양식을 축하했다.’19세기 러시아의 아나키스트이자 지리학자였던 표트르 크로폿킨에게 영감받은 작품 <무정부 상태의 군주>에서는 늑대의 울음, 빙하 녹는 소리와 함께 패티 스미스의 아름다운 글이 겹치고 <대멸종>에서는 패티 스미스가 기후변화로 사라져간 수많은 생물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멸종된 종을 위한 애가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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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룩
폭력과 파괴, 끝나지 않을 대화
“인간은 자신이 강력하고 뭐든 할 수 있다고 여기지요. 핵무기와 기술을 손에 쥐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돌아옵니다. 저는 작업을 통해 자연이 경계도 모르고, 전쟁도 벌이지 않으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장 높은 이상을 품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매일 살아 있음에 가슴이 설레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가슴이 아프다는 패티 스미스는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 아이들의 미래와 환경을 걱정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네가 숲을 사랑했으니, 네가 비를 사랑했으니 바람의 리마(Rima, 소설 <녹색의 장원>에 나오는 숲의 소녀), 너의 영은 날아 올랐니?” 사운드워크 컬렉티브가 전 세계의 역사적 장소를 답사하며 수집한 소리 위에 얹힌 패티 스미스의 낭송과 아름다운 시구를 듣다 보면, 그녀가 그려온 예술 세계의 궤적을 알 것 같다. 약한 이들에 대한 애정이 있고, 거짓에 분노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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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파괴, 지구의 파괴가 한쪽에 있다면 다른 한쪽엔 끊임없이 베풀고 창조하는 예술가와 수도자가 있다는 말을 잔잔하지만 울림 있게 전하는 그녀는 여전히 맑은 청춘인 채 진실의 힘을 믿는다고 말한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패티 스미스도 들었기를…. 폭력과 파괴, 거짓에 넌덜머리가 나는 요즘, 우리도 패티 스미스처럼 진실로 무장한 사람과 해변을 걸으며 ‘끝나지 않을 대화’라도 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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