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동에서 시작하는 한국 사진 예술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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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2, 2025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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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미술관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사진을 위한 플랫폼이 아쉬워하던 차에 곡선형 외관이 마치 거대한 카메라 조리개처럼 보이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이 도봉구 창동에 개관했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믈라덴 야드리치(야드릭 아키텍투어)와 한국 건축가 윤근주(일구구공도시건축)의 협업으로 완성한 이 미술관은 빛과 시간을 포착하는 사진의 본질을 아름다운 건축물에 담았다. 10m 높이의 로비부터 포토라이브러리, 교육실, 암실, 포토북카페까지 갖춘 내부는 사진 프레임의 조형미를 품고 있다. 새로운 건축 투어와 사진 여행을 하고 싶다면, 서울아레나와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 오픈과 함께 새로운 예술 기지로 주목받는 창동에 있는 사진미술관을 기억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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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집은 자유로운 그의 영혼이 담긴 것 같아 살 수밖에 없고, 토드 셀비의 사진집은 그가 만난 힙한 사람들이 궁금해서 사야 하고, 낸 골딘의 사진집은 그녀의 저항과 투쟁 정신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서 또 사고 싶어진다. 사진은 가장 유연하고 대중적인 매체지만 왠지 작은 현대 예술품을 소장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사진을 멋스럽게 찍는 요즘, 사진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오갈 수 있는 사진 미술관의 부재는 더 크게 느껴진다. 특히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정립할 공간이 없음을 번번이 느낀다. 지난 1백여 년의 사진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한국에서 사진은 언제부터 예술로 분류되었을까? 이러한 아쉬움을 느꼈던 만큼 사진 예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서울 도봉구 창동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등장이 반갑게 와닿는다. 2015년 건립 준비를 시작해 10년 만에 문을 연 이곳은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으로 국내 최초 공립 사진 특화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수익성과 무관하게 한국 사진 예술의 아카이빙과 보존, 연구, 교육, 전시를 이어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한정희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장은 공립이기에 가져갈 수 있는 공공성과 지속성이 강점이라 말하며 ‘오직 사진을 위한’ 미술관을 구현하겠다고 했다. 특히 1백40년이 넘는 한국 사진사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을 좀 더 긴 호흡으로 지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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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예술로 끌어올린 선구자들의 풍경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은 1920~90년대에 제작된 한국 사진의 걸작을 비롯해 관련 자료 2만여 건을 수집하고 26명의 사진가 컬렉션을 만들었다. 그중 한국 예술 사진사에서 중요한 계기를 만든 정해창, 임석제, 이형록, 조현두, 박영숙 작가의 작품을 조명하는 전시 <광채光彩: 시작의 순간들>(10월 12일까지)을 개관 특별전으로 선보이고 있다(전시 작품 1백57점 중 3점을 빼고 전부 미술관 소장품). 한정희 관장은 “기존 사진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형태를 소개하고 싶었다”고 전했는데, 그녀의 말처럼 이들의 작업은 각각 다른 시대와 정치, 사회를 위트 있게 촬영해 사진을 예술로 끌어올린 선구자인 셈이다. 한국전쟁 전후의 풍경과 삶을 담아낸 이형록의 리얼리즘 사진, 1960년대 초기부터 여성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당시 여성주의적 시각을 사진에 담은 박영숙 작가의 사진은 마치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옛 영화의 한 장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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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개관 특별전 <스토리지 스토리>(10월 12일까지) 전시명은 미술관이 위치한 창동의 지명에서 출발했는데, 전통적으로 곡식을 저장하던 ‘창(창고)’의 의미를 살려 미술관의 수장고로 개념을 확장했다는 뜻을 담았다. 창동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역사를 되살린 주용성 작가의 작품들은 ‘창동’을 더 흥미롭게 느끼게 한다. “조선시대 녹천 대감이 마을에 은덕을 많이 베풀어 제를 지내기 시작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야. 녹천 대감 치성제는 꼭 소고기로 지내. 제사가 끝나면 마을 종을 쳐서 국과 고기를 각자 가져온 냄비에 담아주었어. 위에 녹천 대감 가묘가 있는데, 그 가묘를 덮는 새끼 꼬는 걸 ‘영 엮는다’고 해. 새끼는 꼭 외로 꼬아야 해. 지금은 마을 떠난 사람들이지만, 때가 되면 두 사람이 와서 영을 엮어. 이제 다들 나이가 많아져서,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지금은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창동 녹천마을 주민들이 전하는 이야기와 풍경을 촬영한 사진은 창동을 신화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길 어디에서나 북한산과 도봉산을 바라볼 수 있고 여전히 낭만이 골목 곳곳에 숨어 있는 창동은 1천 년 넘은 은행나무, 성곽길, 아름다운 한옥 도서관 등 문화 예술적으로 돌아볼 곳도 많은 동네다.
<스토리지 스토리>는 재료, 기록, 정보를 뛰어넘는 사진의 예술적, 미래적 역할에도 주목한다. 지난 3년간 사진미술관 건립 과정을 촬영해 3D로 재구성한 정지현 작가의 작업, 수장고 속 사진을 복사 촬영하고 다시 디지털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쳐 사진을 경쾌한 색감의 회화처럼 보여주는 정멜멜 작가의 작업, 건립 과정에서 수집한 소장품 이미지를 AI가 데이터로 학습한 뒤 복원한 오주영 작가의 작업은 ‘AI 시대에 사진 이미지를 어떻게 감상할까?’라는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기도 한다. 대신 AI가 사진에 대한 이미지를 아주 서정적으로 답변해주는 데 놀라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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