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내지 않고, 멈추지 않는 ‘행동’으로서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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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2, 2025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미국 현대미술 작가 캐서린 번하드(Katherine Bernhardt,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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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고,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일상이라는 미국 현대미술 작가 캐서린 번하드(Katherine Bernhardt, 1975~)의 국내 첫 대규모 전시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9월 28일까지). 초기작 ‘슈퍼모델 시리즈’부터 대형 신작까지 총 1백40점이 걸려 있고,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번하드의 작업실까지 실물로 재현한 전시다. 오는 10월부터는 강릉 시립 솔올미술관에서 전시가 펼쳐지고(6m 높이의 ‘쿠키 몬스터’ 신작을 선보인다) 내년에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현대미술관인 할레 퓌어 쿤스트 슈타이에르마르크(HALLE FÜR KUNST Steiermark)에서 전시가 예정돼 있는 등 ‘러브콜’이 많은 작가다. 글로벌 아트 신에서 돋보이지만 여전히 언더그라운드 신예 같은 면모가 있는 캐서린 번하드를 만나 예술의 즐거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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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가리켜 ‘논문 같은 것’이라고 하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예술계의 이슈를 익히 알고 전시를 즐겨 보거나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언뜻 보면 낙서를 해놓은 것 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이 트웜블리의 작품을 쉬이 해석하기 힘든 것처럼. 미국 현대미술가 캐서린 번하드는 한 인터뷰에서 “최고의 화가는 예술을 지성화하지 않는다. 단지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할 만큼 그림을 무겁게 보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한다. “저는 회화를 ‘만든다(making)’라고 말해요. 그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에요. 붓을 드는 손, 색을 고르는 눈, 캔버스 위를 달리는 몸. 지성화라는 건 종종 예술을 멀어지게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손이 먼저, 해석은 나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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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츄, 이티(E. T) 같은 캐릭터부터 나이키, 크록스, 스와치까지. 캐서린 번하드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브랜드를 자유롭게 그린다. 특히 1980~90년대 대중문화 아이콘을 대형 캔버스에 화려한 색채로 강렬하게 담아낸다. 이 시기의 대중문화는 자신의 DNA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당시의 컬러 팔레트, 기묘하게 반복되는 패턴, 그리고 아이콘(핑크 팬더, 심슨, 쿠키 몬스터 같은 캐릭터)이 저에겐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쓸 수 있는 재료’가 된 거예요. 제 그림은 어쩌면 그 시절의 기억이 계속 재생산되는 방식일지도 몰라요.” 그중 이티는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콘이다. 어린 시절 를 영화관에서 스무 번 정도나 봤을 정도로 좋아했다고. “이티는 제 어린 시절의 동반자 같은 존재였어요. 소외되고 다른 세계에 떨어져 혼자 있는 존재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잖아요. 여러 캐릭터를 캔버스에 담지만 이티만큼 좋아하는 캐릭터는 없어요.” 요즘에는 ‘쿠키 몬스터’를 자주 그리는데, 그 이유는 먹고 싶으면 먹고, 모든 게 너무 솔직한 캐릭터여서란다. 담배 역시 단골 소재다. 그녀에게 담배는 ‘이미지’로서의 상징이다. 누군가의 입가에 매달린 담배는 시대의 분위기, 저항, 스타일, 때로는 허무까지 담고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녀의 수식어로 늘 따라붙을 만큼 자주 등장하는 ‘핑크 팬더’다. “핑크 팬더는 저의 분신 같은 존재예요. 유쾌하고, 시니컬하고, 모호하고,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 느낌. 계속 그려도 질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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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려도 괜찮아, 다양한 색과 형태를 보는 것에서 오는 사유
다양한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수집광이었던 모친의 영향이다. 물건을 모으는 데 ‘진심’이었던 어머니 덕에 집 안이 온갖 종류의 물건으로 가득했다고. “신문, 아이스크림 틀, 오래된 골동품까지 있었어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나서 다양한 형태와 색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보는 감각 자체가 어떤 사유를 만들어내는 것. 그녀의 작품은 다양한 색과 형태를 감상하는 데서 오는 본질적인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무겁게 보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 즐거움과 웃음 속에서 ‘그런데 왜 이걸 그리고 있지?’라는 질문이 스며든다면, 거기서부터 진짜 대화가 시작돼요. 사람들이 제 그림을 통해 자기만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내길 바라요. 그게 사유예요. 각자가 자기 방식으로 느끼는 것.”
캐서린 번하드의 시작점은 항상 ‘그냥 좋아서’다. 색이 맘에 들어서, 형태가 맘에 들어서, 어떤 사물이 좋아서…. 그래서 그녀는 예술을 ‘의미’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본능으로 남겨두는 것이 예술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새로운 예술은 기술이나 형식의 문제라기보다 그 예술이 얼마나 솔직하냐는 데 있다고 믿는다.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회화, 인터랙티브 설치 같은 것은 모두 흥미롭지만, 결국 거기서 진짜 ‘이건 나다’라는 게 느껴져야 해요.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버려진 광고지에 그린 낙서 한 줄이 회화보다 더 강렬할 수도 있죠. 새로운 예술은 겁내지 않는 예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에너지 그 자체예요. 그 에너지로 ‘멈추지 않는 것’이요.” 세상의 시선이 어떻든 간에 ‘이렇게 자유롭게 그려도 괜찮아’라고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술가로서 그녀가 지닌 사명감이다. 스스로도 자신이 어디로 튈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캐서린 번하드는 그렇게 그림 소재를 부단히 찾고, 계속 그려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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