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n Gogh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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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2, 2019

에디터 고성연

빈번하게 등장할 뿐만 아니라 반응도나 호감 등을 따져볼 때 성공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은 아트 콘텐츠를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일찍이 한 사회학자가 지구촌을 휩쓴 ‘문화 아이콘’이자 ‘문화 현상’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반 고흐’라는 브랜드는 강력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
1세기도 더 전에 태어나 10년 정도에 불과한 작가 커리어를 쌓은 그이지만, 지금도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고흐 전시는 어떤 방식으로든 열리고 있고, 수준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이름만으로도 관심을 끄는 데 유리하다. 그가 짧게나마 거쳐간 도시나 마을은 ‘고흐 자취를 따라가보기’ 같은 여정을 꾸린다. 끝나지 않는 고흐 신드롬은 21세기 와서는 어떤 형식과 결을 띤 채 이어져나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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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카페에서 나만의 전시를 열 수 있는 방도를 찾을 거라고 믿어.”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애틋한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가 아닐까 싶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1890년, 길지 않은 생을 마무리한 라부 여관에 가면 그가 실제로 묵었던 작고 허름한 방의 벽에 적혀 있는 문구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반 고흐의 소박하기 짝이 없는 소망이었다. 그로부터 1세기가 훌쩍 지나버린 오늘날 ‘반 고흐 신드롬’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글로벌 스타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소탈하다. 고흐 자체가 대단한 야심가도 아니었지만,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소박함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반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작품만 판매했을 정도로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의 인정을 받지는 못한 인물이었다. 뉘마 크로앵이라는 노인에게 돈을 빌린 반 고흐가 손수레 하나를 빌려 자신의 그림을 가득 담아 달려가 ‘사정상 돈을 갚을 수 없지만 대신 이 그림들을 가져도 좋다. 언젠가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건넸지만 ‘그냥 돈을 받았다 치겠다’는 답을 들었는데, 나중에 이 노인의 아내가 “당신도 참, 수레만이라도 받아놓지 그랬어”라며 통탄해마지않았다는, 풍문과 문헌 사이에서 떠도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카페 정도의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내로라하는 미술관이나 문화 예술 공간에서 반 고흐 전시가 늘 열리고 있고, 그의 그림값은 경매에서 수백억원대에 낙찰됐다는 소식이 가끔 들릴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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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팬덤을 일으킨 고흐 효과

게다가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글로벌 팬덤’이 있다. 그의 모국인 네덜란드는 물론이고 이제는 관광 명소가 된 라부 여관을 비롯해 우애가 좋았던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혀 있는 묘지가 자리한 파리 근교의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Auvers-Sur-Oise), 혹은 그가 이 마을에 오기 전에 수년간 머무르면서 많은 명작을 남긴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들에 가보더라도 ‘고흐의 발자취’를 느끼려고 전 세계에서 찾아온 이들을 늘 마주치게 된다. 사교성이 별로 없고 직선적인 성격으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던 반 고흐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프랑스 등 4개국에 걸쳐 스무 군데가 넘는 지역에서 살았다. 고흐의 팬들은 이 ‘외로운 영혼’이 머물렀던 곳들을 일부러 구석구석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빈센트 반 고흐를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설명하는 나탈리 에니히(Nathalie Heinich)라는 사회학자는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한 불운한 천재’라는 인물상으로 예술가를 숭배하는 문화 현상은 반 고흐 이후에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정은커녕 거의 혹평 내지는 무관심을 받으면서 소외됐던 그가 사망한 1890년에 처음 찬사를 담은 비평가의 글이 나왔고, 사후 30년여에 걸쳐서도 여전히 대중에게는 이해받지 못했으며, 1990년에 이르러 천재성과 광기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요소를 지닌 ‘인간 반고흐’에 대한 폭발적인 애정이 표명됐는데, 오히려 이 같은 극적인 전개와 더불어 잔다르크나 나폴레옹처럼 대중성을 동반한 예술계 최초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됐다는 논리다. 1890년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나던 해 ‘격정, 강렬함, 햇살로 충만한 빈센트의 놀라운 그림들이 여기 있다’는 내용의 긍정적 비평이 최초로 나왔고, 1891년에는 이 흥미로운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했는데, 전문가들이 점차 관심을 드러낸 게 그 시초였다. 동생 테오가 머지않아 형의 뒤를 따라갔고, 고갱이나 에밀 베르나르 등 그를 아는 이들의 입에서 전해진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광기, 비범성이 결합되면서 반 고흐는 ‘차별된 존재’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딱히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필자도 우연히 비슷한 ‘고흐 따라가기’ 여정을 밟은적이 있다. 취재차 암스테르담에 갔다가 반 고흐 미술관을 다시 찾았는데, 반추해보니 학창시절 배낭여행을 하다가 이곳에서 샀던 ‘아이리스’ 프린트 한 점이 생애 최초의 아트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런던, 프랑스 파리에서 고흐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풍경과 전시를 두루 경험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로방스에서 길거리 성당과 카페, 하늘을 수놓은 별,‘미스트랄’이라 불리는 강한 바람과 올리브 나무 등 곳곳에서 고흐의 흔적이 짙게 느껴지는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고흐 숭배자들을 맞닥뜨렸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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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실제로 작업을 했던 마을에 가도 고흐는 없다?

그러나 고흐의 동선을 따라가더라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이나 런던, 뉴욕, 파리 같은 주요 대도시의 미술관을 제외하면 그의 오리지널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쉽지 않다(특히 고흐의 명작이 많이 나온 지역인 프랑스 남부에서 그렇다). 사실 자신의 예술에 대해 몹시 열정적이었지만, 실제 화가로서 커리어를 쌓은 세월은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남짓한 기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는 2천여 점의 꽤 많은 작품을 남겼다(그렇게 짧은 경력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서른일곱의 나이로 죽지 않고 좀 더 살아 있었더라면 소규모 전문가 집단에서만큼은 충분히 인정을 받지 않았겠냐는 의견도 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50~60대가 되기전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화가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고흐는 평생에 걸쳐 작가로서 인기를 누린 적이 없었던지라 그가 스쳐 지나간 작은 마을들에 해당 지역의 풍경이나 인물을 연상시키는 작품이 안타까울 정도로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작가 생전에 작품구매는 차치하고서라도 기증이나 교환 같은 방식으로라도 지역 미술관이나 컬렉터의 소장품이 됐다든지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일 터다. 그래서 ‘해바라기’, ‘별 헤는 밤’, ‘노란 집’, ‘밤의카페’ 같은 명작을 탄생시킨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아를(Arles), 생레미 드 프로방스(Saint-Remy de Provence)에 가보면 그가 작품의 영감을 받았거나 소재로 삼았던 장소마다 복제본이 걸려 있을 따름이다(기획전을 여는 미술관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빈번하지는 않다). 글 머리에 언급한 라부 여관의 경우에는 ‘카페 전시’를 꿈꾸던 반 고흐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작품 ‘한 점’이 그가 거주했던 방에 걸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물론 반 고흐가 영감을 받았던 자연 풍경이나 카페, 집 등을 배경으로 ‘고흐 따라잡기’를 하는 재미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생전 한 점의 작품만을 저렴한 가격에 팔았는데 1세기도 넘게 지난 지금, 그의 추억이 진하게 묻어 있는 장소에서도 그림 한 점을 구하기 어렵다니, 참으로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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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고흐를 ‘소환’하고 ‘흡수’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

‘요절한 천재’를 둘러싸고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일단 불이 붙었을 때 파급효과도 더 컸고, 작품 가격도 더 치솟게 된 것이라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어차피 반 고흐가 다시 살아날 수도 없는 데다 그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에서 한정된 수의 귀하디귀한 컬렉션을 인심 좋게 자주 대여할 리도 없으므로, 대중 입장에서는 작품을 보러 몸소 여행을 떠나거나 성심성의껏 꾸린 기획전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반 고흐가 파랑과 녹색의 자연 때문에 사랑했던 프랑스 남부 아를은 그런 점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문화 예술 후원에 발 벗고 나선 재력가의 도움으로 반 고흐 재단 미술관(Fondation Vincent van Gogh Arles)에서는 몇 년 전부터 늘 고흐의 작품이 포함된 전시를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고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력 미술관 등과 협업해 고흐의 드로잉 전시라든가 고흐와 현대미술가들의 그룹전이라든가, 다양한 기획을 선보인다.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방식으로 참신하게 확장된 콘텐츠를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차선책이 아닐까 싶다. 아니, ‘원화’를 능가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창조성이 풍부하고 즐거운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례가 요즘 들어 눈에 띈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고안해낸 대안으로, 방대한 컬렉션을 바탕으로 생동감 넘치는 미디어
아트와 높은 수준의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전시 콘텐츠다. 특히 릴리포그래피라는 특허기술 등을 활용해 작품의 실물 크기는 물론 물감의 결, 두께 등을 그대로 살린 ‘뮤지엄 에디션’은 테크놀로지를 콘텐츠로 잘 적용한 사례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라는 ‘체험형 전시’로 소개된 바 있다. 영화 세트장 같은 구성으로 그의 삶을 돌아보게 함으로써 흥미를 북돋우고 원화 전시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작품 터치’를 통해 고흐의 붓 터치나 질감을 느껴볼 수도 있어 호응도가 높았다. 반 고흐 미술관의 악셀 뤼거 디렉터는 많은 소장품이 손상의 우려, 운송의 제약 등으로 외부로 나가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반 고흐를 소개할 새로운 방법을 고민해왔다며 최신 오디오 비주얼 기술 덕분에 작가의 삶과 예술적 발전등을 조명하는 여행에 많은 이들을 초대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음악이 강력한 매혹으로 작용하는 미디어 아트 전시도 있다. 공간의 벽과 천장, 바닥에 이미지가 투사되는데, 작품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마치 춤을 추듯 계속 바뀌면서 ‘몰입 체험’의 묘를 보여주는 전시로, 프랑스 문화 예술 기업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s)가 운영한다. 현재 프랑스 남부의레보드프로방스와 파리에서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Van Gogh_Starry Night)>전이 열리고 있는데, 특히 레보드프로방스의 경우에는 폐쇄된 채석장의 커다란 석회암을 캔버스삼아 펼쳐지는 환상적인 멀티미디어 쇼가 일품이다. 이 역시 3D 음향 등에서 차원이 다른아미엑스(AMIEX) 기술 덕분에 가능한 21세기형 콘텐츠다. 한국에서도 프랑스 컬처스페이스와의 제휴를 토대로 지난해 말 제주도 성산에 이 같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빛의벙커’가 들어섰다.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빛의 벙커: 클림트>전이 오는 10월 27일까지 계속되는데, 오는 12월에는 반 고흐를 폴 고갱과 더불어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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