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lendid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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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01, 2014

글 정희경(타임포럼 대표. 스위스 파르미지아니 본사 현지 취재)

기계식 시계를 부품까지 모두 제조하는 곳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역사는 짧지만 시계 복원, 100% 자사 제조와 타사 공급, 그리고 독창적인 시계 제작이라는 세 가지 영역에서 탄탄한 성장을 이어오고 있는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의 매뉴팩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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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자사 제조를 실현하는 브랜드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부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800km의 대장정,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왔다. 1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지만 관광지화한 최근에는 그 길 주위로 난 현대적인 아스팔트 길을 따라 자전거, 버스와 택시, 자동차 중 선택해서 갈 수도 있는 순례길이 되면서 100% 걸어서 완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적인 힘을 간직한 길에서 진정성을 얻으려면 발자국을 내며 걷는 것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당연할 테지만 말이다. 오늘날 시계업계를 살펴보자. 기계식 시계를 만드는 제조사 가운데에는 자사 제조를 내세우는 회사가 많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산티아고 순례길과 마찬가지로 현재는 우회로를 선택하는 회사가 많다. 전문 회사들에 부품을 의뢰하거나 기존 부품을 받아서 자사 디자인과 제조 부품과 결합해 제조하는 회사가 대부분이다. 헤어스프링이나 이스케이프먼트 등 가장 고난도에 속하는 부품을 제조하는 기술이 부족하거나 이를 갖추기 위해 파생되는 고비용이나 실용성을 이유로 그러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시계 제조에 필요한 기술을 모두 갖춘다면 대부분의 시계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 자명하니 그걸 꼭 부정적인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다. 다만 그렇게 알게 모르게 서로 협력 관계에 놓여 있음에도 자사 제조를 내세우는 브랜드와 회사가 많은 이유는 그것을 높이 사는 고객의 신뢰도가 브랜드의 존재 의미에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계업계에서 100% 자사 제조를 실현하는 곳은 단 몇 개 회사뿐이다. 그중에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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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책임지는 장인 정신
시계사에서 보면 비교적 역사가 짧은데도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가 진정한 시계 제조사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시계 제작자인 창립자 미셸 파르미지아니의 독특한 이력 덕분이다. 1970년대에 시계학과 마이크로 기계공학을 수학한 그는 시계 제조를 넘어 5백여 년간 내려온 기계식 시계 역사 탐구를 통해 시계 복원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기계식 시계 시장이 전자식 시계에 위협받기 시작한 1975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파르미지아니 메저 에 아르 뒤 탕(Parmigiani Mesure et Art du Temps)’을 설립, 파리 장식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국립·시립 박물관이 소유한 옛 시계를 복원하고 부호들의 특별 주문을 받아 시계를 제작했다. 1995년 시계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인간과 시계협회(Institut l’Homme et le Temps)’에서 가이아(GAIA)상을 수상했다. 1996년에는 소장품을 수리하면서 맺은 인연으로 스위스의 제약, 부동산, 레저, 미술, 음악 사업 재단을 운영하는 산도즈 재단(Sandoz Family Foundation)의 후원을 받으며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란 브랜드를 본격 설립하고 1997년부터 고급 시계 박람회인 SIHH에 참여하게 된다. 산도즈 재단의 안정적인 재원은 짧은 기간 파르미지아니를 매우 탄탄한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것은 100% 스위스산, 자사 제조가 가능한 기반을 구축한 덕분이다. 우선 기계식 무브먼트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인 이스케이프먼트, 밸런스 휠, 헤어스프링 제조와 케이스 커팅, 터닝이 가능한 아토칼파(Atokalpa), 소재와 디자인 개발, 케이스 마무리 과정을 진행하는 레장티장 부아티에(Les Artisans Boitiers), 무브먼트 터닝 컨트롤을 담당하는 엘윈(Elwin), 브리지와 팔렛, 케이스 장식과 무브먼트 제조 공장 보셰(Vaucher), 최고 수준의 다이얼을 생산하는 콰드런스(Quadrance) 등 2003년까지 각각 전문적인 공장을 인수하고 구축해 100% 자사 제작이 가능한 독자적인 시계 생산 방식을 완성한 것이다. 그것이 창립자인 미셸 파르미지아니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결합해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자산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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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창성
파르미지아니의 사업 영역은 크게 세 가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첫째는 복원 작업이다. 40여 년 전 브랜드를 창립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시계 복원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이는 과거의 시계를 통해 현재의 시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그야말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해법이다. 피보나치 수열을 바탕으로 한 회중시계, 태음력을 담은 헤리지언 캘린더 탁상시계 등의 유니크 피스들은 이러한 과거의 유산을 복원하면서 받은 영감과 이를 현대화하는 연구를 통해 탄생한 결과물이다. 두 번째는 유명한 시계 회사와 브랜드에 부품과 무브먼트를 공급하는 상호 협조 정신이다. 산도즈 재단 산하 부품 회사들은 비단 파르미지아니의 제품뿐만 아니라 코룸, 리차드 밀, 드 그리소고노, 해리 윈스턴, MB&F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한 시계 브랜드에 부품을 공급하거나 그들과 협업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부상조(相扶相助)는 산하 회사들의 품질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과 이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된다. 마지막으로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통한 파르미지아니 플러리에만의 독자적인 시계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파르미지아니는 20여 개 이상의 자사 무브먼트와 칼파, 톤다, 부가티, 펄싱, 트랜스포마, 그리고 올해 소개한 톤다 메트로 등 각기 개성 있는 컬렉션과 탁상시계, 오트 오흘로제리 등 독창적인 하이 컴플리케이션 시계 컬렉션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피보나치 수열에서 착안한 케이스 측면 러그 부분의 칼파 프로파일, 다른 브랜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컬러의 다이얼, 수제로 가공, 부착하는 핸즈와 자체적으로 조립, 제작하는 무브먼트 등 파르미지아니만이 지닌 고유한 코드는 단기간에 하이엔드 시계업계에서 독창적인 입지를 구축하도록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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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후원 활동과 후학 양성
여느 시계 회사처럼 파르미지아니도 다양한 후원 활동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특정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스포츠나 행사가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대중적인 행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부터 참여해 2007년 공식 스폰서로 활약한 샤토데의 벌룬 페스티벌, 세계조정연맹(FISA : Fe′de′ration Internationale des Socie′te′ d?Aviron)과 브라질축구협회(CBF : Confederac¸a?o Brasileira de Futebol) 등에 대한 후원은 시계 제조사로서 모험, 탐구, 정교한 기술에 대한 정신을 함께 나누는 과정이다. 다른 활동은 문화 후원을 통한 후학 양성이다. 2007년부터 시작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로카르노 필름 페스티벌 등 문화적인 활동 후원도 함께 하는데,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경우 젊은 음악가를 후원하는 상을 재정해 수여하고 있다. 2014년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엘리제 사진박물관(Muse′e de l? E′lyse′e)과 파트너십을 맺은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엘리제 사진박물관은 1985년 창립한 이래 10만여 점 이상의 사진 컬렉션을 보유하고 사진 자료의 소장과 보관, 그리고 복원 작업을 하는 동시에 젊은 사진작가를 발굴하는 건설적인 작업을 하는데, 여기에 파르미지아니가 동참하고 있다. 플러리에에 위치한 파르미지아니 본사 내 복원 아틀리에를 방문하면 의외로 젊은 시계 제작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비단 과거의 유산을 복원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야 말로 중요한 의무이자 책임임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긴 역사를 자랑하며 유산을 되살리는 데 더 치중하는 오래된 브랜드와 달리 역사는 짧아도 복원가로서의 명성은 위대한 전통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해법에 접목해 미래에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이러한 복합적인 활동을 통해 파르미지아니는 브랜드의 가치와 역사를 재정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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