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그라피(KYOTOGRAPHIE) 2025_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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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4, 2025

글 고성연

우리네 삶의 얼굴을 응시하는 ‘생각’의 렌즈

‘우리 모두가 예술가’라든지 ‘일상의 예술’ 같은 주제를 끄집어낼 때 사진은 참으로 유용한 매체다. 자그마한 휴대폰 하나로 어디서든 ‘찰나’를 나만의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이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진의 예술성’이라는 해묵은 이슈는 차치하고,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클릭이 ‘용량 초과의 삶’을 초래하는 스트레스를 동반할 수 있는 호모 포토쿠스의 일상을 보노라면 정말로 온전히 집중하고 누려야 할 중요한 순간을 흘려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무수한 사진작가들도 지난한 작업 여정을 거친 깊은 고민 속에 그저 몇 컷만 건져 올린 결과물을 우리 앞에 내놓을 테지만, 그 선별된 ‘순간의 예술’로 인해 오롯이 대상과 주제에 온 마음과 생각을 할애하는 ‘응시의 미학’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된다. 지난봄 일본의 천 년 고도 교토에서 한 달 동안 열린 사진 축제 교토그라피(KYOTOGRAPHIE)는 바로 그런 현장이었다. 사진에 대한 많은 글을 남겼던 존 버거가 애용했던 D. H. 로런스의 ‘생각’에 대한 문장처럼, ‘삶의 얼굴을 응시하고‘, ‘온 힘을 다해 집중하는’ 예술가들의 생각 어린 시선을 느끼고, 직접 만나 배경 스토리까지 접하기도 하면서, 교토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시 공간을 다니느라 바쁜 걸음 속에서도 ‘존재’에 대한 단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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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삶의 얼굴을 응시하고, 거기 보이는 것을 읽는 일.생각은 경험에 대해 숙고하고, 결론에 이르는 일.생각은 속임수나 연습, 이어지는 회피가 아니라,온 힘을 다해 집중하는 한 인간. _D. H. 로런스


2013년 시작된 이래 매년 꾸준히 인지도를 키워가며 올봄 13회 행사를 치른 국제적인 사진 축제 교토그라피(KYOTOGRAPHIE)의 첫인상은 ‘벚꽃’이었다. 4월 초, 마침 교토의 벚꽃 주간이 한창이던 시점이어서라기보다 이번 여정의 개인적 시작이 이 도시로 몰려든 다국적 여객기들로 인한 하늘길의 교통 체증 때문에 예정보다 늦게 숙소로 가는 길에 만난 ‘밤 벚꽃’ 덕분이었다. 마침 밤하늘 아래 살짝 비를 맞아 더 청신한 느낌이 드는 벚꽃의 자태는 낮의 화사한 분위기와는 또 달랐고, 교토의 운치 있는 팔색조 면모를 잘 드러내는 듯했다. ‘봄은 꽃, 어서 보러 오세요, 히가시야마, 색향을 다투는 밤 벚꽃…’이라는 노랫말처럼, 심지어 숙소도 히가시야마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밤 벚꽃이 뇌리에 각인될 수밖에. 당연히 프랑스 작가 JR이 축제의 출발을 알린 교토역을 비롯해 미술관, 사찰, 시장 등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교토그라피 전시에도 벚꽃이 함께했다. 특히 하양과 분홍이 상큼한 조화를 이루는 작은 벚꽃 잎들이 실개천에 떠 가는 모습, 일본 사람들이 ‘꽃배’라 표현하는 시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타임스(TIME’S) 건물의 전시는 때마침 햇살의 세레나데가 퍼져 더욱 운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벚꽃보다는 ‘humanity’를 올해 주제로 내세운 교토그라피를 수놓은 작가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스토리텔링이 더 오감을 잡아끌었다. 위성 행사인 KG+까지 합하면 3백 명도 넘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참가했지만, 이 글에서는 교토에서 만난 국적, 연령대, 개성이 다른 2명의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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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ty’를 올해 주제로 내세운 교토그라피를 수놓은 작가들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스토리텔링이 더 오감을 잡아끌었다”
삶을 함축하는 ‘시각적 증거’들의 힘
교토그라피의 매력을 꼽으라면 전시 공간마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콘텐츠와 잘 어우러지는 세련된 무대 미술(scenography)을 1순위에 올릴 것 같다. 그중 교토시미술관 별관에서 열린 80대 멕시코 작가 그라시엘라 이투르비데(Graciela Iturbide)의 전시는 제일 처음 감탄사를 내뱉게 했다. 중남미 지역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을 카메라로 포착해온 거장의 회고전은 천과 나무 같은 자연 소재의 패널을 활용한 전시 공간 디자인이 우아하면서도 차분한 매력을 십분 발휘했는데, 건축가인 그녀의 아들 마우리시오 로샤 이투르비데(Mauricio Rocha Iturbide)가 참여했고 종이 등을 다루는 일본 장인들도 협업에 동참했다. “내게 있어 컬러는 판타지다. 흑과 백의 렌즈로 현실을 바라본다”라는 말을 남긴 그녀의 반세기 넘는 창조적 여정을 볼 수 있는 회고전이다. 자신의 뿌리가 얽혀 있는 중남미 지역에서 세리(Seri), 자포텍(Zapotec) 같은 현지 부족들과 함께 체류하면서 담담하게 자신의 렌즈에 담은 흑백사진들은 특별한 과장이나 윤색 없이 흥미로운 인생의 단면을 보여준다. 강렬한 타투가 인상적인 사막에 사는 부족 여인들의 패셔너블한 모습, 제3의 성을 지닌 커뮤니티 일원들의 일상, 멕시코의 우상 같은 존재인 예술가 프리다 칼로의 흔적, 그리고 이구아나를 모자처럼 쓴 여인의 초상 등 분명 다른 세계지만 우리네 다양한 모습과 닮은 구석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시간 여행’ 같은 전시 여정 속에서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어쩌면 우리는 ‘부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근거 없는 편견이나 그릇된 환상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새삼 일깨운다. 인류학자로서 열대우림의 부족 사회를 관찰하면서 미개한 영역으로 간주됐던 오지 원주민 사회와 민속 문화에 대해 새 지평을 열었던,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했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책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뭔가 굴절이 덜한 듯한 이투르비데의 직선적이면서도 시적인 렌즈는 그 자체로 천진하고 해맑은 오라를 뿜어낸다. “늘 새로운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해왔다”며 자분자분 얘기하는 그녀의 여전히 반짝이는 눈빛은 작은 체구를 단단하고 크게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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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노장과 20대 신예의 돋보이는 개성

‘작은 거인’ 이투르비데와 얼핏 대조적으로 보이는 젊은 신예 래티티아 키(Laetitia Ky)의 존재는 아마도 올해 교토그라피에서, 특히 디지털 세상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의 20대 인플루언서 출신으로 사진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누군가의 시선으로는 ‘어느 날 셀럽이 된 신레렐라’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온갖 도형으로 장식한 듯한 커다랗고 개성 넘치는 헤어스타일과 늘씬한 몸매를 담은 자신의 사진들이 작품 포트폴리오의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의 유명세는 그렇게 찾아오기는 했다.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이자 서아프리카 여성으로서 세상의 편견에 대한 고민이 불거졌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머리를 땋고 놀던 기억을 되살려 다채로운 헤어스타일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유롭게 내보이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어 있었다고. “저는 운 좋게도 열린 마인드를 지닌 부모님을 두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었던 거죠.” 그녀는 처음엔 열띤 반응을 대개의 젊은이들처럼 즐겼고, 차츰 생각보다 자신의 예술적인 ‘헤어 사진’이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고는 스스로의 길을 과감히 개척하기로 했다. “사실 아이보리공화국에서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이란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저의 헤어를 활용해 여러 다른 주제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죠.” 래티티아 키는 지난해 교토그라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치기도 하면서 올해 행사에서 여러 장소에서 각기 다른 개성의 전시를 하는 기회도 가졌다. 데마치 마스가타(Demachi Masugata) 쇼핑 아케이드와 그 안에 자리한 교토그라피의 영구 전시장이자 앙증맞은 카페이기도 한 델타 교토그라피에 그녀의 교토 체류기를 카메라에 담은 전시를 선보인 동시에 사회적, 문화적 메시지를 버무린 여러 작업을 망라한 또 다른 전시를 기온 지역의 아스포델(ASPHODEL) 전시장에서 3층 공간을 채우는 제법 큰 규모로 열었다.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신의 약점이 될 수도, 장점이 될 수도 있는 개성을 살리고 디지털 시대의 힘을 활용해 더 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포용하자는 메시지를 당차게 던지는 래티티아는 인플루언서 출신이라는 편견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독학으로 사진을 배우며 성장해나가고 있다. 예컨대 헤어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비롯한 인권을 거론하고 성적 대상화되는 가슴을 스스로 노출한 사진 작업도 사회적 금기와 편견을 얘기한다. 얼마 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이주(migration)’를 대주제로 연 화제의 미술관 페닉스(Fenix) 개관전에서 그녀의 작품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절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존 버거는 삶에 대한 시각적 증거로서의 사진을 말하면서 어떤 차원에서 그 삶의 증거는 사회적 발언이지만, 또 다른 차원에서, 그런 증거는 다른 이들이 살아온 삶의 총체성을 시각적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삶에서는 우리 자신도 그저 하나의 광경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타자를 진심으로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의 광경 속에서 주인공도 되고, 친구도 되고, 티없는 관찰자가 되기도 하면서 한데 어우리지는 게 아닐까. 누군가에 오롯이, 경건하게 집중하는 카메라 렌즈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평범한 동작 가운데 때때로 아주 소중하고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01. 천 년 고도의 봄을 ‘사진 예술’로 물들이는 플랫폼의 미학_교토그라피(KYOTOGRAPHIE) 2025_1편 보러 가기
02. 우리네 삶의 얼굴을 응시하는 ‘생각’의 렌즈_교토그라피(KYOTOGRAPHIE) 2025_2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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