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ic W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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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 2015

에디터 권유진 (바젤 현지 취재)

바젤월드는 세상의 모든 시계를 모아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규모의 워치 박람회다. 하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첫눈에 반하게 되는 시계는 복잡한 시계도, 완벽한 시계도 아닌 장인이 빚어낸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계다. 이처럼 궁극의 아름다움과 시계로서의 가치를 모두 겸비한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컬렉션’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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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예술의 끝을 보다

손톱만 한 시계 다이얼을 캔버스 삼아 그 위에 사람 머리카락 한 올 두께의 얇디얇은 붓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넣거나, 손으로 잡기도 어려운 얇은 금속을 망치로 두드리고 조각칼로 깎아 불상이나 풍속도를 구현하기도 하는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컬렉션. 기술을 뛰어넘는 예술이라는 의미를 지닌 메티에 다르는 단어의 뜻 그대로 차가운 기계에 시계 예술이라는 마법의 터치를 더해 아름다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국보급 장인들의 예술혼과 숭고한 정신을 그대로 담은 이 아티스틱 워치는 이번 바젤 페어에서 소개된 그 어떠한 시계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매년 많은 워치 브랜드들이 시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보다 진보된 무브먼트로 시계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데, 기술력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하는 메티에 다르 역시 시계 브랜드의 자부심과 시계 예술을 보존하기 위한 브랜드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컬렉션이다. 실제 몇몇 브랜드에서는 박람회장 부스에 장인을 초청해 직접 아트 과정을 시현하기도 했다. 35m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다이얼 위에 현미경으로 보아야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 정교한 그림과 금속공예를 더하는 장인의 작업을 보고 있노라면 시계 예술에 대한 경이로움을 직접 느끼게 된다. 전자시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70년대, ‘쿼츠 파동’이라 불리며 많은 기계식 시계 브랜드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전 세계적인 불황까지 겹치면서 에나멜러를 포함한 수많은 시계 장인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블랑팡, 파텍 필립, 지라드 페리고 등 몇몇 시계 브랜드들은 벼랑 끝에 몰린 매뉴팩처와 장인을 보존하는 데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현재 우리가 이 아름다운 타임피스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계 역사와 함께해온 메티에 다르 컬렉션은 매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에나멜 작업부터 자기공예, 상감기법을 사용한 금속공예, 실제 나비 날개의 가루를 사용하거나 거위 털을 부착한 워치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장인 정신과 숙련된 전통을 이어나간 고집과 시계 예술에 대한 집념을 엿볼 수 있는 메티에 다르 컬렉션의 진수는 다음에 소개하는 워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실과 패브릭으로 우아하게 풀어낸 아트 피스, 샤넬 화인 주얼리

바젤월드에서 샤넬 화인 주얼리만큼 화려한 브랜드를 찾을 수 있을까. 특히 올해는 화려함의 극치라는 표현이 절로 나올 만큼 가장 우아한 샤넬의 아름다운 테마를 시계에 그대로 옮겼다. 샤넬에 있어 우아한 빛이 감도는 패브릭과 실은 그들을 가장 잘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언어다. 이번 바젤월드에서 샤넬 화인 주얼리는 역사 깊은 패션 브랜드의 근본을 담아 이를 시계에도 유연하게 풀어내 감탄을 자아냈다. 대표적으로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만들 듯 실크 다이얼에 다이아몬드를 자수 기법으로 세팅한 ‘마드모아젤 프리베’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샤넬 하우스에서 인수한 유서 깊은 자수 공방인 프랑스 르사주 공방에서 정교한 수작업으로 완성한 것으로, 37.55mm의 작은 다이얼 표면에 카멜리아와 코메트 모티브를 작은 바늘로 한 땀 한 땀 수놓았다. 금을 흩뿌려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드는 이 완성품은 샤넬의 모든 노하우가 결집된 아트 피스다. 이와 함께 새로운 메티에 다르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마드모아젤 프리베 꼬르망델’도 주목할 만하다. 아주 가볍고 얇은 금속을 나뭇가지 형태로 커팅해 셰이핑과 인그레이빙 작업을 통해 나무껍질의 느낌을 리얼하게 살려냈는데, 실제로 보면 그 사실적인 디테일에 놀라게 된다. ‘역시 샤넬’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운 화법은 바젤에서도 여지없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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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품은 러프 다이아몬드, 부쉐론

부쉐론의 부스에 들어가기에 앞서 드는 기대감은 ‘이번에는 어떤 아름다운 하이 주얼리 워치를 선보일까’라는 것이다. 부쉐론은 올해에도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할 만큼 놀라운 타임피스를 선보였다. 부쉐론의 공방이 위치한 방돔 광장의 상징적인 자갈길을 다이얼에 재현하고, 그 위에 세 줄기의 아이비를 꽃피운 것. ‘리에르 드 루미에르’의 다이얼을 들여다보면 과연 이 자갈길은 무엇으로 만든 것일까 궁금증을 유발시키는데, 이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가공하지 않은 다이아몬드를 모자이크하듯 자갈 모양으로 세팅한 것이다. 더불어 이 아름다운 다이얼 위에 플라잉 투르비용을 배치했다는 점은 1백50년의 역사를 지닌 주얼리·워치 공방을 보유한 브랜드이기에 구현 가능한 기술적 기량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현대적인 매력을 담은 예술품, 루이 비통

루이 비통이 처음 시계를 선보였을 때 과연 어떤 진보를 이룰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었지만 ‘에스칼 타임 존’은 모든 시계 전문가들이 인정할 만큼 컬러의 향연을 보여주는 그래픽적인 시계의 상징이 되었다. 여행을 주요 테마로 하는 루이 비통의 철학과 미학적 코드를 그대로 고수해 여행용 트렁크를 맞춤 제작할 때 사용했던 기하학적인 모티브를 아낌없이 적용한 점이 돋보인다. 실리콘 코팅한 고무 스탬프를 이용해 비어 있는 다이얼에 컬러 페인트를 하나하나 정교한 수작업으로 채워 넣은 것이 특징. 로컬 타임을 보여주는 중앙의 작은 세모 창과 다이얼 가장자리에 위치한 도시의 이니셜이 이 시계의 상징이다. 이는 여행을 테마로 하는 브랜드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현대적인 매력을 담은 예술품이라 정의할 수 있다.

무브먼트 자체를 예술로 승화, 지라드 페리고

지라드 페리고의 빈티지 워치는 시계 마니아라면 감탄할 수밖에 없다. 2백 년이 넘는 브랜드 전통을 가장 잘 표현한 아주 입체적인 무브먼트, 그리고 그 무브먼트 자체를 예술로 승화하는 것은 ‘빈티지 1945 쓰리 골드 브리지 투르비옹’이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3개의 브리지가 다이얼에 아름답게 피어난 디자인으로, 이는 브랜드의 상징 그 자체다. 여기에 아르데코 스타일 장식을 더해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시계 역사에서 ‘쓰리 골드 브리지 투르비옹’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상징적인 워치메이킹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는 기계적으로 뛰어난 것은 두말할 것 없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원하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아티스틱 워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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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가의 붓 놀림으로 완성한 자기 다이얼, 에르메스

자기공예의 대가이자 일본의 무형문화재로 손꼽히는 장인 부잔 후쿠시마가 바젤월드를 사로잡았다. 에르메스는 이번 바젤 페어에서 시계 역사상 최초로 프랑스 자기와 일본 아카에 기법을 결합한 ‘슬림 데르메스 고마쿠라베’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바로 부잔 후쿠시마가 탄생시킨 진귀한 예술 작품이다. 언제나 동양에 대한 테마, 특히 일본에서 영감을 받아 다채로운 아시아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에르메스에서 일본의 대가를 바젤에 직접 초대한다는 소식은 많은 언론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만큼 큰 이슈였다. 그가 탄생시킨 고마쿠라베 컬렉션은 1천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일본의 전통 말타기 경주 축제인 고마쿠라베의 정경을 다이얼에 아름답게 재현한 것으로, 이는 각기 다른 정취를 담은 12종류의 자기 다이얼로 선보인다. <스타일 조선일보> 팀은 운이 좋게도 부스 한편에서 그의 작업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이날 처음 접한 아카에(赤繪,적회) 기법은 아주 가는 붓을 이용해 붉은 선으로만 채색하는 일본의 전통 자기공예 방식. 프랑스 세브르 공방에서 완성한 아주 작고 매끈한 자기 다이얼 위에 일필휘지로 거침없이 슥슥 터치하는 장인의 붓 놀림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와 더불어 대표적인 메티에 다르 기법으로 꼽히는 인그레이빙과 에나멜링 기법을 적용한 ‘케이프 코드 지브라 페가수스’ 역시 장인들의 정교한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인그레이빙과 에나멜의 조화가 이끌어낸 색과 빛의 풍부함, 그리고 가마 공정을 한 차례씩 거칠 때마다 더더욱 깊고 진해지는 생동감은 기계식 시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처럼 장인의 뛰어난 재능을 예술로 승화하는 것은 바로 브랜드의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에르메스라는 조력자가 없었다면 장인들 역시 이 멋진 아트피스를 완성할 계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자본력을 갖춘 브랜드와 장인의 만남은 시계와 예술의 발전, 나아가 인류 문화의 발전까지 아우르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금속공예로 부활한 전설적인 힌두 신, 블랑팡

이미 강렬한 디자인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하는 블랑팡의 ‘사쿠도 컬렉션’은 일반적인 시계 브랜드에서는 쉽게 시도하지 않는 금속공예를 적용해 신선함을 더했다. 특히 서양에서는 볼 수 없는 무속 신앙의 기운과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힌두 신, 가네시를 모티브로 선택했다는 것이 단연 돋보인다. 코끼리 머리 형상을 한 가네시는 힌두교에서 장애물을 극복하고 부활을 뜻하는 신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질 뻔하다 회생한 블랑팡의 역사와 오버랩되며 그 의미를 한층 극대화한다. 중앙에 놓인 골드 소재의 왕좌를 손으로 일일이 인그레이빙하는 방식으로 형상화했으며, 섬세하게 디테일을 살린 이 장식적인 요소들은 상감기법을 통해 정교하게 완성되었다. 짙은 청록색을 띠는 다이얼에는 일본이 원산지인, 구리와 금을 합금한 사쿠도를 사용했는데, 구리아세틸리드 성분으로 이루어진 로쿠쇼 용액에 담그는 횟수에 따라 검은 빛깔이 점차 더 깊고 강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일본에서 전해져오는 고대 방식을 적용하며 금속공예 기술에 대한 매뉴팩처의 전문성을 보여준 블랑팡의 타임피스는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만큼 각기 다른 컬러, 인그레이빙 스타일을 담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유니크한 아트 피스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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