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SPECIAL] Hullo, Hu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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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6, 2021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 | Edited by 고성연 | 이미지 제공 유엔씨, 초이앤라거 갤러리

Interview with_Rose Wylie


76세에 최고령 신진 작가로 주목받고, 87세에는 글로벌 스타로 활약하는 작가가 있다.
예술적 룰에 반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여전히 반항아처럼 대답하는 로즈 와일리(Rose Wylie).
그녀의 대규모 회고전 展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지고 있다(3월 28일까지). 유화, 드로잉, 설치미술, 조각 등 작품 1백5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는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VIP룸(Tate Members Room)에 있는 작품부터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 선수를 그린 작품도 최초로 공개됐다. 서면 인터뷰로나마 그녀를 만나봤다.


‘누가 영국에서 가장 핫한 신인 작가일까(Who is Britain’s hottest new artist)?’ 2010년 여름,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이 같은 제목의 기사에서 76세의 로즈 와일리(Rose Wylie)를 꼽았다. 그녀는 21세에 결혼해 가정주부로 살다가 50이 다 되어서야 전격 작가로 나서 70대에 접어들어 고령의 신진 작가로 주목받게 되었다. 2018년에는 영국 문화계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이제 그녀는 글로벌 무대에서도 꽤 유명해졌고 작품 가격이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호가한다. 새해가 밝았으니 한국 나이로 치면 87세가 된 로즈 와일리. 하지만 그녀는 나이 따위를 의식할 생각도, 여력도 없다. “몇 년 전 남편과 사별하며 죽음과 직접 대면했지만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도 없어요. 제 머릿속은 그저 다음 작품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고, 그래서 현실에만 집중하려고 해요.” ‘죽음’에 대한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할 정도로 그녀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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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계속되고 나의 일상도 여전하다
“요즘엔 주로 밤 늦게까지 작업하고 늦게 일어나요. 주목받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의욕은 이제 인정받는다는 입지 덕분에 변하긴 했지만, 작가로서의 책임감이 주는 자극이 있어요. 사실 항상 느끼던 책임감이지만 전에는 주로 에고(ego)와 미술사를 대상으로 한 감정이었죠.” 멀리 서울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릴 정도로 ‘스타 작가’가 됐지만 로즈 와일리는 그저 자신의 일상을 보낼 뿐이다. 신문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인터넷을 뒤지며 새로운 이미지를 탐구한다. 영화에서도 많은 힌트를 얻는데, 그렇게 모은 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중이라고. “중간중간 순무를 삶아 먹거나 생선을 요리하기도 하고 암울한 뉴스를 보기도 해요. 그러다 정원에 나가 나무들을 바라보죠.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들 아닌가요. 제가 좋아하는 가장 사소한 작업은 손톱에 어두운 색 매니큐어를 칠하는 거예요. 광택이 있는 약간 의외의 색을 좋아해요.”
로즈 와일리는 매니큐어 칠만큼이나 단발머리에 미니스커트 차림도 즐긴다. 패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제2의 성격’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그녀의 작품 중 ‘왕실 시리즈’가 있는데, 왕족이 상징하는 부와 권력에 흥미를 느껴서가 아니라 당시 패션과 미적 기준에 대한 관심에서 그린 것이다. 그녀가 화폭에 담은 수많은 여성도 그런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1950년대 학창 시절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흥미로운 옷을 입고 다녔어요. 치마 하나만 봐도 주름치마, 나팔치마, 딱 붙는 치마도 있고, 길이도 짧거나 길거나 그 중간쯤 되는 치마 등 바지보다 훨씬 많은 연출이 가능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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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미술, 원시 예술에서 비롯된 ‘사소함’의 진실
그녀의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답변에는 아마도 훨씬 오래 인생을 경험하고 난 뒤에야 가능한, 단순한 명료함이 느껴진다. 언뜻 직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수많은 이야기가 은유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담겨 있는 듯하다. 마치 그녀의 작품 세계처럼. 로즈 와일리는 자신의 작품을 말할 때 “고대 미술, 고대 벽화, 원시 예술, 전기 르네상스 등과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라고 강조한다. “예술의 법칙이나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작품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고대 미술, 어린아이의 그림, 만화, 초현실주의 작품 등은 상당히 직접적이잖아요. 가끔 제 드로잉을 만화 같다고도 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만화는 반짝임, 열기, 속도 등을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각적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그녀는 장 미셸 바스키아와 필립 거스턴을 무척 좋아한다. 필립 거스턴의 작품에 내재된 강인함, 세부적인 디테일과 물질적인 동시에 형이상학적인 이미지의 구성을 좋아하고, 당시 뉴욕 미술계 트렌드를 거스르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 배짱이 마음에 든다고. 그녀의 작품에서도 그런 대담함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대형 작품을 주로 그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고대 벽화 특유의 웅장함을 좋아해요. 늘어나지 않는 캔버스로 작업하다 보면 크기에 구애받지 않고 즉흥적으로 그림을 점점 키워가게 되는데, 이렇게 진행한 작업이 완성되면 좀 더 안정된 구성의 작품이 나와요. 사이즈가 큰 작품은 공공장소나 미술관 등에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엔 코로나 사태로 어시스턴트가 오지 못해 애를 먹고 있죠.”
크기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즉흥적으로 그리는 로즈 와일리의 모습은 어쩐지 연약하지만 자유로웠던 바스키아가 작업하는 모습과 겹치기도 한다. 게다가 그녀는 바스키아가 그랬듯 고상한 건 질색이라고 했다. 꾸미지 않은 일상의 ‘진실된 사소함’이 좋다고. 그래서 그녀가 아는 사람들, 지나가다 언뜻 본 사람들, 정원에서 본 잎사귀, 새, 예쁜 접시에 놓인 잘 만든 오믈렛 등 주변 모든 것들과 그것을 본 기억이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일 터다. “제가 키우는 고양이 피트를 그린 최근 작품도 있는데, 피트가 멀리 떨어져 있는 새를 탐내며 노려보는 모습을 담았어요. 그림 속 고양이와 함께 갇혀버린 새의 모습은 꼭 코로나발 ‘록다운’ 탓에 피트와 집에 갇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당분간 서울에 올 수는 없지만 상황이 된다면 그녀는 한국의 고구려 벽화를 직접 찾아다니고 싶다고 전했다. 그리고 전 세계 벽화 앞에 서고 싶다고. 여전히 그녀가 계획하는 일은 다양하다.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미술관,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 뉴욕의 모마(MoMA),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말이다. 예술가에게는 육체가 유한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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