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SPECIAL] 회복의 시간 너머, 일상 속 조우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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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6, 2021

글 황다나 | Edited by 고성연 | 이미지 제공 페이스 갤러리(©Tim Eitel / Courtesy Pace Gallery) 에르메스 재단, 부산시립미술관

날로 사무치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른바 ‘코로나 블루’를 겪는 현대인들.
백신이나 치료제가 우리에게 도달하기 전에 면역력이 바닥날 지경이다. 때마침 기약 없이 반복되는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자아낸 문화적 갈증을 덜어주고 자신과 더욱 긴밀해지는 사색의 시간을 제안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 눈길이 간다. 인간과 자아에 대한 성찰로 이끄는 3인3색 전시.

#사색의 회화에 비추어 자아를 고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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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아이텔(Tim Eitel)의 회화에는 정면을 응시하는 이보다는 인물의 옆모습, 혹은 뒷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관람객이 보내는 시선에 결코 시선으로 응답해주지 않은 채 스스로의 현재에 몰두한 모습은 무심코 존재하는 일상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동료 작가들이 ‘개념’에 천착할 때도 그는 회화라는 전통적 묘사에 예술적 관점을 부여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10월 막을 내린 대구미술관 개인전 한편에서 선보였던, 흡사 습자지처럼 꾸준히 촬영하고 남겨온 사진 속 일상과 우연의 연속을 재료 삼아, 기억을 다듬고 시야의 폭을 넓혀갔다. 아득히 방치된 공간 구석구석에도 예리한 눈길을 건네온 그는 그 안의 시공간을 채우며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는 데도 신중하다. 색채와 형태에 대한 그만의 깊은 조예를 앞세워, 별다르지 않은 사람을 남다른 측면에서 오브제가 아닌 하나의 주체로 바라보고, 새롭게 구성해 캔버스에 아로새긴다.
그의 그림 속 인물은 주로 혼자이거나 타인의 존재에 대부분 무심하다. 마치 시간이 부재한 듯 추상에 가까운 표면의 평면성, 흐릿함과 모호함에서 나아가 신비함마저 자아내는 고아한 색채는 인간의 편재된 고독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지극히 보통의 정경과 그 속에 흐르는 특유의 정서, 자칫 스쳐버렸을 법한 순간을 포착해 소외감과 이질감으로 삶에 지친 이들을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위안하고 어루만진다. 더 이상 제거할 것이 없다고 느낄 때까지 디테일을 축소하고 서술의 가능성을 버무려, 한 작품에 몇 달을 소요하기도 한다는 작가가 완성해낸 그림 속 ‘텅 빈’ 공간감은 대상과 응시 행위 자체에 오롯이 집중하도록 만든다. 그렇게 그는 전시장에 ‘고립된’ 방문객에게 고요한 사유를 권하고, 작금의 현실 세계에 대한 나름의 해석에 이르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전시명 <Tim Eitel: Untitled(Interior)>
전시 장소 페이스갤러리 서울 전시 기간 2021년 1월 16일까지





#폐허 속 회복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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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했던 2020년의 상황만큼이나 치명적인 시각적 강박을 선사하는 단편 영상이 관람객을 맞이하며 전시는 시작된다. 자연과 인류가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폐허 풍경과 소멸의 시간을 담아온 시프리앙 가이야르(Cyprien Gaillard)의 1분 39초짜리 ‘호수 아치(The Lake Arches)’(2007)는 파리 외곽 한 주거 단지 내 인공 호수의 수심이 얕은 줄 모르고 다이빙한 남성이 피를 흘린 실제 사건을 다뤘다. 인간의 개발 욕망이 낳은 비극에 대한 폭로는 반대편 스크린에 전시된 ‘황금과 거울의 도시’(2009)에서도 이어진다. 멕시코 유명 휴양지 칸쿤을 배경으로 뿌리 깊은 역사 속 식민주의 서사가 되풀이되는 현장을 추적하는 이 작품은 거대 자본의 투입과 관광 단지의 조성으로 달라진 풍경과 무질서하게 유흥에 탐닉하는 서구의 관광객, 식물이 점령한 폐쇄된 호텔 등을 관찰한다. 물리적, 정신적으로 현대식 폐허로 변모 중인 도시의 모습과 여전히 숭고함을 간직한 고대의 폐허인 유적을 나란히 배치해 파괴적인 실수를 거듭하는 인류의 단상을 중립적이면서도 다분히 양가적인 시선으로 그려낸다. 1980년생인 작가가 20대 후반에 내놓은 짧지만 강렬한 두 영상은 그가 향후 전개할 작품 세계에 대한 단서를 제시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폴라로이드 사진 24점 등 신작도 볼 수 있다. 2020년 코로나 대유행으로 봉쇄되기 직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방문한 시프리앙 가이야르는 도시 도처에 자리한 ‘주류 상점’을 신작의 소재로 삼았다. 그중 전시장 한쪽 벽을 길게 채우는 ‘Everything but Spirits’(2020)라는 작품은 인적이 뜸해진 도시 전역에 범람한 식물의 형태에 겹쳐 이중 노출 폴라이드 형식으로 보여준다. ‘Spirits’라는 단어가 ‘정신’ 이외에 ‘독주’라는 뜻도 품고 있음은 작가의 숨은 의도였을까.

전시명 <시프리앙 가이야르> 개인전
전시 장소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 기간 2021년 1월 17일까지





#영상 미학 너머 ‘조우’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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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이 야심 차게 꾸린 ‘이우환과 그 친구들’ 기획전의 두 번째 주인공인 빌 비올라(Bill Viola)는 삶과 죽음, 인간의 무의식과 감정 등을 주제로 지난 40여 년간 묵묵히 영상 작품을 제작해온 비디오아트의 거장이다.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국내에서는 제대로 접할 기회가 드물었던 편이라, 1970년대 초기작부터 기술의 변화와 더불어 파격적으로 진화한 2000년대 대규모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이번 전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독창적인 영상 언어와 미지의 공간에서 구축해온 느림의 미학을 온 감각으로 느끼면서 존재론적 성찰을 유도하는 빌 비올라의 세계. 한껏 느리게 돌아가는 시간 속 때로는 비탄에 잠긴, 때로는 고뇌하는 인물의 움직임을 번갈아 바라보다 보면 어느덧 그 슬픔과 놀라움이 전이되어 함께 차오르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단 위의 초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밝히는 여성과 어두운 밤을 헤치고 다가오는 남성의 사랑에 관한 신화적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딴 ‘밤의 기도’는 침묵 속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기원하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여정에 동참해 지친 마음에 치유를 선사하고 싶어진다. 인간의 자연적인 순환 과정을 서사적으로 풀어낸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2002) 시리즈를 보노라면 제각기 바쁜 걸음으로 길을 오가는 군중을 마주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한 일상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인사’는 2명의 여성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 새로운 여성이 등장하는 45초의 사건이 10분에 걸쳐 느리고 정교한 안무처럼 펼쳐지는 작품이다. 슬로모션 속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우리 역시 다시금 포옹하며 조우할 미래의 그날을 염원해본다.

전시명 <빌 비올라, 조우> 전시 장소 부산시립미술관
전시 장소 2021년 4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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