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계 산업의 성장 동력, 바젤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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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 2015

에디터 배미진 (바젤 현지 취재)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손목시계’라는 품목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계 산업의 중심에는 스위스 시계 비즈니스의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바젤월드(Baselworld)’라는 시계 박람회가 있다. <스타일 조선일보>는 매년 이 박람회를 취재해왔는데, 올해는 특별히 바젤월드 현장을 취재한, 총 56페이지에 달하는 스페셜 에디션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바젤월드의 현장 분위기와 시계 산업의 동향을 담은 리포트 기사로 <스타일 조선 바젤월드 스페셜 에디션 2015>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No Time to Rest, 바젤월드

세계적인 건축가 헤르조그(Herzog)와 드 뫼론(De Meuron)이 디자인한,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미래 지향적인 건축미가 돋보이는 바젤월드 박람회장. 총 1천여 개의 전시 부스로 가득한 메세바젤(Messebasel)을 중심으로 바젤 시내는 시계 광고로 도배된 트램과 버스가 거리를 누비고, 곳곳에서 바젤월드 깃발이 펄럭인다. 바젤은 매년 3월, 도시 전체가 축제의 현장이다. 바젤 시내에 위치한 호텔은 1년 전부터 예약이 꽉 찰 뿐만 아니라 스탠더드 룸의 가격이 하루에 1백만원을 호가할 만큼 바젤 시내의 물가가 폭등하는 기이한 현상도 빚어진다. 페어 기간 동안에는 대부분의 레스랑에서 ‘바젤 메뉴’라는 특별한 메뉴를 맛볼 수 있으며 이곳들 역시 족히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할 정도로 전 세계 시계 바이어들과 프레스, 시계 브랜드 관계자, 시계 마니아들이 바로 이곳 스위스 바젤에 집결한다. 거대한 우주선 같은 박람회장 안에는 스와치 그룹의 워치 브랜드를 중심으로 수백 개에 달하는 시계 브랜드의 부스가 자리 잡고 있다. 부스들은 각 브랜드만의 아이덴티티와 콘셉트를 담은 매장 형식으로 꾸며져 있어 부스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자아낸다. 매년 1월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SIHH가 초대받은 인원만 입장 가능한, 백화점과 유사한 부티크 형식의 박람회라면 바젤월드는 ‘월드’라는 이름답게 10개의 홀, 160,000m² 면적의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바젤월드와 SIHH는 시계 박람회의 양대 산맥인데, 고급 시계 박람회인 SIHH가 턱시도와 드레스 차림으로 참석해야 하는 프라이빗한 파티 같은 성향을 띤다면 바젤은 캐주얼한 차림으로도 참석할 수 있는 보다 대중적인 박람회다. 바젤월드 첫날인 3월 19일 아침 8시, 박람회장에 입장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선 올해는 과연 어떤 시계가 나올 것인가 하는 기대감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의 분주한 발소리는 바젤월드에 울려 퍼지는 빠른 비트의 음악과 어우러져 분위기에 활기를 더한다.

시계 산업을 위한 완벽한 플랫폼, 바젤월드

그렇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 바젤월드에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젤월드는 시계 산업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국제적 트렌드 행사이며 보석, 다이아몬드, 원석, 진주, 기계를 포함한 시계에 관련된 모든 부문의 산업을 한데 모이게 해주는 유일한 행사다. 올해는 혁신성과 창조성을 갖춘 1천5백여 개 브랜드가 제품을 선보였고, 무려 1백여 개국의 전시 회사 대표, 바이어, 기자, 기타 방문객을 포함한 약 15만 명의 참관객이 방문했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7.5% 늘어난 약 70개국의 4천3백 명 이상의 프레스 대표가 박람회에 참여해 바젤월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바젤월드 기획자인 실비 리터(Sylvie Ritter)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활기찬 박람회의 모습이 바젤월드가 발전하는 데 원동력이 됩니다. 소비자와 미디어의 끊임없는 관심은 언제나 중요하지요. 앞으로 편의성과 영향력을 증진시켜 선망의 대상이되는 바젤월드의 국제적인 위상을 지켜낼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위기를 넘어서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시기

스위스 시계산업협회 회장 장-다니엘 파슈(Jean-Daniel Pasche)는 2015년 바젤월드의 시작을 알리며 “2014년 시계 수출량이 2백20억 스위스프랑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기록을 경신해 스위스 시계 산업에는 긍정적인 한 해였지만 올해는 조금 힘들고 불확실한 기운이 맴도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몇몇 중요한 시장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그에 따라 성과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불어 스위스프랑 환율 상승 쇼크는 시계 산업에 심각하게 타격을 주었죠. 이는 저희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이자 새롭게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의 4세기 가까이 지속해온 스위스 시계 산업이 이 어려움을 지혜롭게 극복해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올해 바젤월드의 명암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사실 올해 초 바젤월드는 이전과는 매우 다른 그림을 보여주었다. 스위스 시계산업협회는 2015년 초반에 좋은 출발을 한 것처럼 느꼈지만, 전체적으로 시계 산업의 성장 속도가 이전보다 더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스위스 박람회위원회 회장 프랑수아 티에보(Francois Thiebaud) 역시 바젤월드 오프닝 컨퍼런스에서 스위스 시계 산업이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그럼에도 시계 산업은 높은 수준으로 성장하리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과거 시계 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홍콩과 중국의 시계 수요가 감소한 것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라는 평이 일반적이다. 이미 2014년부터 스위스 시계에 대한 홍콩과 중국의 수요가 3.1%나 감소했다. 전년도에 미국의 수요가 6.2% 증가했지만, 이것만으로 홍콩과 중국의 수요가 감소한 것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기에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신호도 엿보이는데, 2백 스위스프랑 이하(수출 가격 기준)의 시계 판매는 2014년보다 6.2% 증가했고, 2백 스위스프랑 이상의 시계는 수출량이 4%나 감소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엔트리 워치 시장이 더 넓어졌다는 의미이며 앞으로 시계 시장 전체가 보다 대중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증거인 것. 올해 태그호이어, 크로노스위스, 브라이틀링 등 비교적 높은 가격대의 기계식 시계를 다루는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합리적인 가격의 엔트리 레벨 제품을 대거 선보인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이 어려운 시기에도 스와치 그룹은 90억 프랑의 매출량을 달성했다는 좋은 소식을 알렸다. 어려웠던 환율 영향에도 2014년 대비 4.6% 증가한 90억 프랑의 벽을 깼고, 순매출액은 3%대의 성장률을 기록해 박수를 받았다. 지난해만 2천1백 개의 직업을 창출했을 정도로 스와치 그룹의 시계 비즈니스가 건강한 경제성장에 큰 몫을 했기에 더욱 의미 깊다. 혁신, 기계, 유통, 직원, 스위스 제조 활동에 투자를 하며 장기적인 전략을 펼친 것이 올해 매출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마트 워치의 신호탄, 스위스 워치 시장의 미래를 뒤흔들다

올해 바젤월드를 뒤흔든 또 하나의 테마는 스마트 워치, 몸과 하나되는 기술을 강조한 웨어러블 테크다. 다소 트렌디하게 느껴지는 스마트 워치가 어떻게 정통 시계 박람회에 들어서게 되었을까? 바젤월드 2015의 홀을 걷다 보면 이전의 바젤월드는 보통 클래식한 시계가 주를 이루었지만, 처음으로 ‘웨어러블 테크놀로지’라는 개념을 적용한 시계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계 브랜드의 프리미어 리그라고 불리는 홀 1로 들어서면 입구에 거대하게 자리한 태그호이어 부스 앞에 인텔과 구글의 로고가 새겨진 현수막이 보였다. 2개의 거대한 기술 회사가 태그호이어와 손잡고 홀 1에 그 이름을 드러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클래식 시계 산업은 1980년대의 디지털 붐을 잘 인지하고 있기에 스마트 워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불어닥치면서 카시오(Casio)로 대표되는 디지털 워치 브랜드에 시장점유율을 빼앗겼던 ‘쿼츠 쇼크’의 악몽 때문에 태그 호이어의 아시아 퍼시픽 마케팅 매니저는 태그호이어가 스마트 워치 시장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LVMH에 편입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불가리는 ‘임파서블’ 이라는 미션을 콘셉트로 한 ‘디아고노 e-마그네슘’을 선보였는데, 가상 보안 금고와 비슷한 ‘불가리 볼트(금고)’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사용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개인 정보를 보호하고 손목시계에 저장할 수 있게 제작했다. 또 프레드릭 콘스탄트, 브라이틀링과 같은 클래식 시계 브랜드들도 본격적이지는 않지만 웨어러블 워치나, 커넥티드 워치를 만들 예정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LVMH 그룹의 시계 부문 회장 장-클로드 비버는 <스타일 조선일보>와 나눈 인터뷰에서 스마트 워치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는데 “스마트 워치는 확고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어 미래가 있습니다. 스마트 워치는 전통적인 워치메이킹 아트를 대신할 수는 없으나 일반적인 쿼츠 시계는 대체할 수 있겠지요. 저는 심지어 같은 고객이 스마트 워치와 일반 시계를 동시에 구매하고 착용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며 시계업계의 오랜 리더로서 명확한 의견을 피력했다.
올해 스마트 워치가 등장하며 스위스 기계식 시계 산업이 과거 쿼츠 파동에 비교될 만큼 민감한 시기를 보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성과 정교한 기계의 아름다움이 결합되어 독특한 마력을 지닌 흥미로운 기계식 시계의 매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스위스 시계 제조의 정확성, 기술적인 독창성, 진화하는 미학적인 요소는 바젤월드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촉매제다. 현실적으로 5만 명 이상의 생계를 책임지는 스위스 비즈니스의 중심축이라는 것 역시 바젤월드가 갖는 사회적인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지상 최대의 시계·주얼리 박람회로 작은 보석 회사부터 최고의 시계 그룹까지 한데 모아 브랜드의 개성을 지킬 수 있도록 정교하게 구성되었기에 세계 시계 비즈니스는 바젤월드라는 툴을 발판 삼아 더욱 발전할 것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스위스 박람회위원회 회장인 프랑수아 티에보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여러분 모두를 바젤월드에서 만나 뵙게 돼서 기쁘고 영광입니다. 바젤월드는 박람회의 풍부한 역사와 진화를 상기시켜왔습니다. 또 박람회 산업의 장점을 반영하고 발전시켜가고 있는 유일한 행사이며, 브랜드 각각 좋은 성과를 발휘할 수 있게 단단한 기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집중적으로 주요한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며 글로벌한 네크워크를 갖춘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이기도 하지요. 스위스 시계 산업 종사자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 마술과 같은 훌륭한 시계와 보석을 재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몇 세기에 걸쳐 전통 기술을 지켜나가는 수호자들이기도 하죠. 전통과 혁신을 조화롭게 만드는 그들의 뛰어난 능력은 스위스 시계의 훌륭함을 세계에 널리 알렸습니다. 올해 바젤월드에서 명예로운 스위스의 유산, 기계식 시계 산업의 매력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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