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01, 2026
글 김민서
퐁피두센터 한화_‘KOREA FOCUS’
미술사에서 큐비즘은 늘 ‘혁명’, ‘혁신’의 이름으로 설명된다.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바라보며 원근법을 해체하고, ‘자연을 재현한다’는 예술의 정의를 뒤집은 사건. 그것을 현대미술의 출발점이라고 배워왔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을 둘러보며 마음 한구석에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파리에서 현대미술의 문을 연 그 찬란한 순간, 과연 한국의 예술가들은 같은 근대를 살아가고 있었을까. 세계 미술계를 뒤흔든 모더니즘의 열풍은 어떤 모습으로 이 땅에 당도했을까. 파리와 경성, 두 도시의 시차는 제2전시실 ‘KOREA FOCUS’ 섹션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파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모더니즘 물결이 한국의 예술가들과 어떻게 조우했는지 살피는 이 공간이야말로, 이번 개관전의 의미를 더욱 또렷하게 해준다.
1900년대 초 ‘빛의 도시’ 파리는 미래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었고, 만국박람회를 통해 파리는 프랑스의 기술과 문화를 전 세계에 과시하며 많은 이들이 선망하고 모여드는 국제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그 풍요와 역동의 한복판에서 예술가들은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담을 것인가 고민했고, 큐비즘은 바로 그 질문 한가운데서 태어났다. 반면, 같은 20세기 초 조선의 현실은 어땠을까. 대한제국의 몰락과 일제의 식민 지배, 그리고 훗날 닥쳐올 전쟁과 분단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유럽 예술가들이 회화의 혁신을 논할 때, 한국 예술가들은 국가의 존립을 고민했다. 같은 시기였지만 그들이 마주한 현실과 한국 예술가들이 처한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해방과 전쟁 중 재탄생한 한국의 큐비즘
1920~30년대 경성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파리는 거대한 이상향이었다. 그들은 회화, 문학, 무용, 건축을 넘나들며 파리를 동경하고 상상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도 없던 시절, 그들이 마주한 파리는 일본어로 번역된 정보와 흑백사진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큐비즘’이라는 동일한 주제 아래 전시된 당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피카소의 급진적 형태 해체와는 어쩐지 결이 달랐다. 1940년 작인 김환기의 ‘창’이나 유영국의 ‘10-7’ 같은 작품을 보면 식민 지배라는 현실에서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이들의 큐비즘은 기하학적 추상에 가까워 보인다.
한국에서 큐비즘은 1950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해방 이후 서구의 다양한 미술 사조가 밀려 들어왔지만, 작가들은 전쟁과 분단, 정치적 이념이 대립하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형태를 단순화해 재구성하는 큐비즘의 방식을 선택했다. 피카소와 브라크에게 큐비즘이 전통 회화를 해체하는 급진적 실험이었다면, 한국 작가들에게는 추상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한국에서 큐비즘은 1950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해방 이후 서구의 다양한 미술 사조가 밀려 들어왔지만, 작가들은 전쟁과 분단, 정치적 이념이 대립하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형태를 단순화해 재구성하는 큐비즘의 방식을 선택했다. 피카소와 브라크에게 큐비즘이 전통 회화를 해체하는 급진적 실험이었다면, 한국 작가들에게는 추상으로 향하는 통로였다.
더불어 그 안에 담긴 정서도 가족과 고향, 자연과 기억 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것이었다. 큐비즘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 있었지만 현실이 달랐고, 작품의 방향도 달랐다. 그래서 제2전시실에 놓인 작품들은 한국의 모더니즘이 일방적으로 전파된 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리에서 시작된 혁명은 경성과 서울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다른 얼굴로 새롭게 태어났다.
수많은 번역과 변형을 거치고, 때로는 오해와 오역까지 창조의 일부가 되었던 셈이다. 1백 년이 흐른 지금, 서울 한복판에 파리의 퐁피두센터가 들어섰다. 한때는 잡지 속 흑백사진을 통해서만 파리를 상상해야 했던 서울이, 이제는 세계 미술사를 직접 불러들이고 우리만의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장소가 되었다. 서울은 더 이상 누군가의 ‘현대’를 뒤쫓는 도시가 아니다. 이제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제안한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이번 큐비즘 전시는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파리의 모더니즘을 소개하는 전시인 동시에, 한국 근대미술이 어떻게 자신만의 모더니즘을 만들어냈는지 묻는 전시다. 이번 개관전은 1전시실과 2전시실을 함께 활용하고 있지만, 앞으로 2전시실에서는 한화문화재단의 자체 기획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는 개관식에서 밝힌 비전처럼, 퐁피두센터의 소장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미술을 새롭게 조명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술로 한국과 세계를 잇는 문화 거점’이라는 구호가 단순한 수사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세계 미술사를 들여오는 일만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만의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
1 퐁피두센터 한화에서 진행 중인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설치 모습. 제2전시실 3층에서 선보이는 ‘KOREA FOCUS’ 섹션으로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이수억, 함대정 등 한국 근현대 작가 11인의 작품 21점을 선보이고 있다. 오는 10월 4일까지.
2 박래현, ‘노점’, 1956, 종이에 먹, 색, 267×21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3 이수억, ‘6.25 동란’, 1954, 캔버스에 유채, 96×160cm, 가나문화재단 소장.
4 함대정, ‘악사’, 195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81×65cm, 가나문화재단 소장 포스터.
※ 1~4 이미지 제공_퐁피두센터 한화
2 박래현, ‘노점’, 1956, 종이에 먹, 색, 267×21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3 이수억, ‘6.25 동란’, 1954, 캔버스에 유채, 96×160cm, 가나문화재단 소장.
4 함대정, ‘악사’, 1950년대 후반, 캔버스에 유채, 81×65cm, 가나문화재단 소장 포스터.
※ 1~4 이미지 제공_퐁피두센터 한화
Centre Pompidou Hanwha
01. 서울의 새 랜드마크, 퐁피두센터 한화_미술관의 외피로 작동하는 문화 플랫폼, 무엇을 남기는가 보러 가기
02. 퐁피두센터 한화_’KOREA FOCUS’_다른 시공간 속 모더니즘 보러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