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21-22 Winter SPECIAL] ‘권력화’된 미디어의 약속, 그 ‘이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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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5, 2022

글 천수림(미술 비평·아트 스페이스 ‘언주라운드’ 부관장)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 작가展

백남준은 관객, 그러니까 뭇 사람들의 ‘참여’를 통한 지구촌 실현의 꿈을 꿨고, 그 도구로 비디오를 꺼내 들었다. 그러한 실험 정신을 계승하는 인도 뭄바이 기반의 협업 스튜디오 그룹 캠프(CAMP)는 오늘날 모두가 미디어의 텃밭을 노니는 듯한 네트워크 시대가 펼쳐지고 있지만, 사실은 거대한 미디어 인프라가 우리 삶과 가치 체계를 빈틈없이 포착하고 장악하고 있다는 ‘진실’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CCTV 카메라로 새로운 예술 매체의 가능성을 꾸준히 실험해온 캠프는 기술을 직접 몸으로 부딪혀 다루면서 개입하고 전복하며 자율적으로 시스템을 만들어나간다. 매체 기술이 약속했던 허탈한 전망에 맞서 그 ‘이후’를 제안하는 캠프의 전시는 우리 지구촌 시민들의 다양한 힘을 모아 미디어의 문턱을 낮춰 진정한 ‘공유’를 꾀하자고 말한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오는 2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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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백남준은 아무런 영상도 나오지 않고 1시간 내내 하얀 화면만 등장하는 영화 을 발표했다. 음악에 소리가 아닌 침묵을 포함시킨 존 케이지의 ‘4분 33초’(1952)처럼 공허함으로 이미지를 채운 이 작품은 ‘反영화’라고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스크린에 빛을 투사해 생성된 이미지는 먼지, 긁힘 등의 누적된 결과물에 의해 변화하지만, 결국 비어 있는 화면은 동일하다. 이렇게 채워진 시간은 곧 충만함으로 가득해진다. 소리와 영상을 수동적으로 수용해왔던 인간에게 스스로 내면의 이미지를 불러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백남준이 1960년대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을 예술 매체로 작업한 지 6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와 비디오, 인터넷, 교통과 교역에 이르기까지 다변화되었다. ‘관객’의 참여와 창조를 중요시했던 그의 철학은 다른 작가들을 통해 어디까지 확장되어왔을까?

백남준의 ‘참여’를 넘어, 캠프의 ‘공유’ 개념으로

백남준이 예술 매체로 개척한 CCTV 카메라로 새로운 영화 만들기를 실험하는 캠프(CAMP)는 그의 계보를 잇는 강력한 아티스트 그룹 중 하나일 것이다. 2020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 작가인 캠프는 인도 뭄바이에 기반을 둔 협업 스튜디오로 샤이나 아난드(Shaina Anand)와 아쇼크 수쿠마란(Ashok Sukumaran), 산제이 반가르(Sanjey Bhangar)가 주축이 되어 2007년 결성되었다. 근거지인 뭄바이 추임 마을에서는 15년 동안 옥상 극장을 운영해왔다(studio.camp).
“사람보다 카메라가 더 많은 이 시대에 영화란 과연 무엇일까?”, “도시는 거대하고, 이미지는(여전히) 자그마하다.” 캠프는 이 같은 질문을 품은 채 CCTV 카메라로 뭄바이, 맨체스터, 예루살렘, 카불, 샤르자 등 세계 곳곳의 도시를 다니며 새로운 영화 만들기의 가능성을 탐험해왔다. 단순한 참여를 넘어 다양한 시민, 기술자 등과 개방적으로 협업하며, 참여적 작업을 지향한다. 이들은 백남준의 ‘참여’ 개념을 넘어 ‘공공’, ‘공동’, ‘공유’의 개념을 재설계하며 확장해가는 중이다. 이번 전시회 제목인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CAMP After Media Promises)>는 2007년 첫 웹사이트에서 컴퓨터 스크립트로 제작된 ‘CAMP’의 10만 개 이상 되는 조합 중 하나다. 4개의 알파벳(c, a, m, p)을 추출해 시작하는 단어를 코딩으로 추출해 조합하는 것이기에 ‘진영(camp)’이라는 보통명사의 뜻도, ‘컴퓨터 예술 혹은 윤리적 정치(Computer Art or Moral Politics)’ 같은 뜻도 가능하다. 캠프의 미디어 작업은 거대한 자본주의 구조에서 권력과 노동의 문제를 추적하며 재정의하고 있다. 2004년 시장 안 TV 방송국에서 2021년 뭄바이의 CCTV로 촬영된 새 영화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다양한 개입을 탐구하고 있다.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 전시가 던진 질문

캠프에게 ‘미디어’는 우리를 둘러싸고 유지하는 환경이다. 케이블 TV 이후, 전화 이후, 인터넷 이후, CCTV 이후 우리가 처한 세상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캠프는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관찰자, 주제,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이미지·시퀀스의 범주를 재배치하고 재정의해나가는 중이다.
이번 전시에서 캠프가 선보인 대작 ‘<무빙 파노라마>’는 대형 8채널 스크린을 통해 단연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비디오 에세이다. 뭄바이, 맨체스터, 예루살렘, 카불, 샤르자, 소말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작업한 주요 작품들을 5막의 구성으로 담았다. 3백60도 뷰를 제공하는 19세기 원형의 움직이는 캔버스인 ‘파노라마’를 연상시키는 형식을 통해 작품의 내부와 외부를 함께 걸어봄으로써 오늘날의 ‘전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작품이다.
서울에서 CCTV 카메라로 촬영하는 신작의 라이브 스트리밍인 ‘카메라의 라이브 안무’는 구도심과 도시 재생이 공존하는 을지로를 탐색하고 있다. 잘 비춰지지 않았던 도시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이 영상은 1시간마다 움직임의 범위가 설정되어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달라진다. 서울익스프레스, 최태윤 작가와 협업으로 진행하는 이 라이브 스트리밍은 CCTV.camp에서도 볼 수 있다. 이외에 백남준아트센터만이 소유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카이브를 활용한 파일럿 프로젝트도 흥미롭다. 비디오 아카이브에 대한 캠프의 제안은 베를린 0x2620의 얀 게르버와 함께 개발한 미디어 아카이브 시스템으로 백남준아트센터 아카이브에 소장된 비디오를 가공·분석한 것이다. 0x2620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와 웹 애플리케이션은 시간 기반 주석 달기, 타임라인 뷰, 에디팅과 코멘터리 기능 등을 제공한다. 캠프는 이 시스템을 활용해 마치 논문에 주석을 달듯 영상의 특정 시점도 자유롭게 인용하고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비디오가 토론과 교류, 연구의 매체로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를 쌍방향 매체로 인식한 백남준과 캠프, 이들이 일군 ‘디지털 공유지’에서 또 어떤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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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CULTURE ’21-22 Winter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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