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18 SUMMER SPECIAL] 국경 넘어 나래 펼치는 한국 미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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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4, 2018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월드컵 16강, 8강 얘기가 나오면 기가 죽겠지만 미술 애호가라면 뿌듯해할 만한 희소식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다. 한국의 동시대 미술 작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그것도 현대미술의 중심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어서다. 주요 작가들의 작품 가격도 상승세다. 시장 거래가가 반드시 진정한 작품 가치를 뜻하지는 않더라도 분명 많은 이해관계자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제는 글로벌하게 콘텐츠를 담아내고 부각할 수 있는 우리만의 시스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그저 듣지만 말고 적극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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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Bul exhibition at Hayward Gallery, London. Photo by Linda Nylind. 26/5/2018.

Lee Bul exhibition at Hayward Gallery, London.
Photo by Linda Nylind. 26/5/2018.

지난 5월, 김환기(1913~1974) 작품이 우리나라 경매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홍콩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 1972년 작 붉은색 전면 점화(3-II-72 #220)가 한화로 85억원대에 낙찰된 것이다. 그 이전의 경매 최고가 작품은 2017년에 판매된 김환기의 ‘고요(5-Ⅳ-73 #310)’로, 당시 낙찰가는 65억5천만원이었다. 불과 1년 만에 20억원이나 솟아오르며 기록을 경신했으니 이제 한국 미술계도 곧 1백억원대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로 다가오게 됐다. 한국 미술 작품의 가격이 상승한 배경에는 단연 ‘국제화’라는 맥락이 있다. 내수 시장에서만 거래되는 작가였다면 이 정도의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급상승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해외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오로지 백남준과 이우환이던 시대가 불과 10여 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괄목할 만한 성장이 아닐 수 없다. 해외 유명 미술 잡지에 전시 광고 한 페이지를 실은 것만으로도 뿌듯해하고, 사립 미술학교에 단기 연수를 다녀온 정도의 이력을 해외 유학과 글로벌 활동으로 포장하던 시절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작가를 향한 세계 미술계의 ‘러브콜’
특히 지금 런던에서는 한국 미술 작가들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먼저 개관 50주년을 맞이하는 헤이워드 갤러리에서는 이불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6월 1일~8월 19일).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업한 1백여 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은 현재 영국에 거주 중인 서도호 작가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관에 참여했다(5월 26일~11월 25일). 재개발로 곧 사라질 공공 임대 건축물을 기념하기 위해 그 집에 20년 넘게 살던 한 가족의 삶을 영상으로 다룬 작품으로 응용미술 파빌리온에서 가장 크게 주목받았다. 때를 같이해 영국의 빅토리아 미로 갤러리는 베니스 지점에서 서도호의 개인전을 진행 중이다(5월 30일~7월 7일).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는 이우환의 야외 조각을 볼 수 있다.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을 비롯해 자국인 영국의 yBa(young British artists) 작가들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 열심이었던 화이트 큐브 갤러리는 시내 메이페어 지점에서 이승택(1932∼) 작가의 개인전을 열었다(5월 25일~6월 30일). 196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을 펼치다 한동안 재야에 묻혀 있었으나 한국 미술사에 대한 재조명과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 전시와 프리즈 아트 페어 등 뒤늦게 국제 미술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작가다. 화이트 큐브는 최근 박서보를 전속 작가로 영입하는 데도 성공했다. 또 다른 낭보는 지난 6월 중순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된 세계적인 아트 페어, 아트 바젤에서 강서경 작가가 주목할 만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스테이트먼트’ 섹터에 참여한 10여 명의 작가 중 2명에게만 주어지는 발루아즈 미술상(Ba^loise Art Prize)을 수상했다는 소식이다. 과거 양혜규도 이 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국내 화랑인 원앤제이 갤러리를 통해 출품해 수상했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의 국제 시장 진출이라는 또 다른 쾌거로 인정받고 있다. 이 밖에 ‘숯의 작가’ 이배는 최근 프랑스의 페로탱 갤러리와 마그 재단 미술관에서 성공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했다.
갈수록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컬렉터층
한국 컬렉터들의 관심도 만만치 않다. 네덜란드 테파프 아트 페어(Tefaf Art Fair)가 해마다 발표하는 공신력 있는 미술 시장 리포트에 의하면 한국은 무서운 속도로 미술 시장이 커지고 있는 아시아 주요 국가 중 하나다. 리움 미술관 외에도 미술을 후원하는 기업 컬렉션을 중심으로 중소 규모의 사립 미술관도 속속 세워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주요 컬렉터를 확보하고, 뿐만 아니라 국제 미술 시장에 소개할 작가를 찾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해외의 주요 갤러리도 한국에 입점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아트 페어인 키아프(KIAF)가 해마다 해외의 주요 컬렉터를 초청해 한국 미술의 국제 진출을 공동으로 프로모션하는 프로그램도 자리를 잡아 나름의 성과를 보이고 있고, 광주 비엔날레를 거쳐 간 디렉터가 베니스 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자리 잡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한국 작가들의 비엔날레 입성도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일일이 다 나열하기도 버거운 이 같은 쾌거의 물결이 의미하는 건 뭘까?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듯 드디어 한국 미술이 세계 진출에 성공했다고 감격하는 애국심? 아니다. 도리어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고해야 할 때임을 말해주는 게 아닐는지? 한국 작가가 진출한 게 아니라 ‘이 괜찮은 작가는 한국 출신’이라고 설명하면 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자국의 작가를 국제 무대로 띄우려는 민간 합동의 치열한 후원 덕분에 얻게 된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성공한 이후 도리어 국적이 지워지는 숙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성숙한 상황에 접어든 것이다. 대신 그 대가로 마치 맑은 공기와도 같이,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모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자리하게 되지는 않을지?
지난겨울 스위스에서 한국을 찾아온 컬렉터 그룹이 있었다. 취리히 미술관의 후원자이자 컬렉터로, 이미 한국의 미술 작품을 꽤나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점차 떠오르는 한국 미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직접 그 나라를 찾아 미술관도 방문하고 작가들도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꾸린 자발적인 여행이었다. 아시아 소사이어티에 속한 경우도 아니고, 인근에 여행 온 김에 한국을 들른 것도 아니고, 그저 순수하게 한국 현대미술에 관심이 있어 왔다고 하니, 한국 미술의 저력이 좀 더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발휘되는 시대가 열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이 그룹의 국내 아트 투어를 진행하면서, 이들이 얼마나 준비된 한국 미술 컬렉터들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미래의 과실을 먼저 맛보는 듯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오는 가을에는 KIAF는 물론이고 광주와 부산에서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린다. 이런 시기를 세계 미술계가 주목할 날이 머지않아 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한국 미술계가 그 같은 러브콜을 무리없이 담아낼 그릇과 시스템을 갖출 수 있기를, 그래서 콘텐츠만이 아니라 하드웨어적으로도 충분한 글로벌 경쟁력을 지닐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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