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ison & Objet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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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 2011

글 고성연 기자 = 파리(프랑스)

파리,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품다
파리에서 매해 1월과 9월에 열리는 인테리어 박람회 메종 오브제(Maison & Objet). 상상 가능한 모든 오브제가 매력을 뽐내는 이 행사는 도도하지만 사랑스러운 도시 파리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특히 이번 박람회 기간엔 처음으로 파리 디자인 위크(Paris Design Week)가 함께 열려 시내 곳곳에서도 디자인 축제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주의 인테리어의 향내가 유난히 물씬했던 9월 초로 돌아가보자.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파리에는 특유의 고혹적인 색감과 스타일이 있다. 길을 걷는 파리지엔의 차림새만 보더라도, 크게 튀지는 않지만 왠지 현대적인 고상함이 묻어나는 가운데 깜찍하고 발랄한 파격의 양념을 한 줌 보탠 듯한 패션 센스는 절로 곁눈질을 하게 만든다. 이는 까다롭고 도도하지만 사랑스러운 파리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뿐인가. 그냥 ‘블랙’이라 칭하기엔 저마다 묘하게 다른 색조를 뿜어내는 갖가지 검은색의 파노라마, 잿빛 하늘을 닮은 청회색, 강아지풀을 연상케 하는 흐린 녹색 등 은은하고 차분하면서도 은근히 매혹적인 색상의 ‘믹스 앤드 매치(mix & match)’는 그야말로 발군의 조합이다.
이 도시가 지닌 우아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인테리어 디자인과의 찰떡궁합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을 것같다. 지난 9월 9일부터 13일까지, 파리 북동쪽에 위치한 노르 빌팽트 전시관에서 닷새 동안 열린 세계적인 인테리어 박람회 메종 오브제 2011(Maison & Objet 2011). 13만5000㎡의 넓은 공간에 자리한 8개 관을 3천여 개 참가 업체가 채우며 늦여름을 근사하게 장식한 이 행사에서는 시끄럽고 불안한 현대의 시름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하고 싶은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내추럴리즘’이 엿보였다. 물론 수없이 많은 작품을 단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유독 대자연의 정기를 품은 색감과 소재, 수공예 제품이 눈길을 끌었다.
이와 별도로 메종 오브제에서 선정한 업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제시하는 향후 주목할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도 흥미롭다. 이번 전시회 주제는 ‘독자성’을 뜻하는 ‘싱귤라리테(singularite).’ 강력한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으로 획일화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처한 현대인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찾고 실현하려는 열망을 더욱더 키우게 된다는 맥락에서 나온 트렌드 키워드다. 정원의 그물 침대부터 식탁의 촛대, 책상에 놓는 메모지꽂이까지 홈 인테리어에 관한 모든 것을 섭렵할 수 있는 파리의 디자인 잔치를 즐겨보자.

자연을 닮은 순수하고 평화로운 색감

“세상이 온통 하얀 것 같아요. 아니면 부드럽거나. 어찌 보면 좀 지루할 정도로…”. 돌, 콘크리트 등 미네랄 성분을 이용한 독특한 느낌의 핸드메이드 가구를 만드는 스페인의 신생 브랜드 칠 아트(Chill Art)의 세일즈 담당의 말이다. “우리는 원래 화이트 계열을 애용하지만 올해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하죠.” 벨기에 가구 브랜드 뤼즈(Luz)의 미디어 담당 레지스 프루돔므 씨도 설명했다. 그만큼 곳곳에서 ‘화이트’ 색상이 눈에 띄었다. 올봄 밀라노 가구박람회를 수놓은 색상도 화이트 계열이었지만 파리에서는 그런 성향이 더 두드러졌다.
이와 함께 회색이 가미된 분위기 있는 흐릿한 청색이나 청록색, 푸크시아 꽃을 연상케 하는 소프트 핑크, 연녹색 등 자연을 닮은 순수한 색감이 잔잔한 흰색의 물결 속에 떠다니는 꽃송이나 나뭇잎처럼 심심함을 덜어주는 듯했다. 자연스러운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원목 침대, 새하얀 소파에 청회색 침대보와 쿠션의 조화를 생각하면 될 듯하다. 침구, 쿠션, 식기 등을 아우르는 홈 인테리어 컬렉션 브랜드인 벨기에의 포막스(Pomax)는 “이번 시즌의 핵심 색상은 그린-블루(greenblue)”라며 “그냥 평범한 청색이 아니라 물 빠진 청색·회색·녹색 등이 감도는, 여러 가지 농담을 머금은 색조”라고 설명했다. 

원목과 수공예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향연

당연한 흐름의 귀결이겠지만 소재에서는 나무가 유달리 강세였다. 이미 돌과 흙, 나무 등 천연 소재와 부드러운 느낌의 패브릭이 각광을 받고 있긴 했지만 자연 그대로의 온기와 편안한 느낌을 세련되거나 독특하게 살린 원목 가구, 장인 정신에 입각한 수공예로 빚은 정감 어린 나무 소재의 소품들이 확실히 시선을 사로잡았다. 블뢰 나튀르, 레퓨지메제브, 라 피불, 마르탱 비알라 등 프랑스 브랜드에서 선보인 나뭇결을 아름답게 살린 제품들은 예술 작품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무의 인기가 돌아왔죠. 수공예에 대한 관심도 더 늘어났고요.” 호주 출신의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개빈 버프턴은 프랑스의 원목 가구 업체 히스트아레 다브레와 협업을 모색하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수공예 제품은 대개 주문 생산이라 낭비도 적고 사용하는 이의 취향에도 맞출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나만의 것’을 갈구하는 고객의 개성을 살려준다는 ‘핸드메이드 주문 생산’의 취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독자성과도 맥이 닿는다. 친환경적인 면모도 있다. 나뭇결 무늬 모양의 독일 케이크 바움쿠헨을 연상케 하는 너도밤나무 소재의 전등과 접시 등을 선보인 일본의 부나코(Bunaco)의 마케팅 담당 마리아 오와다 씨는 “나무를 돌돌 감는 우리 회사의 제작 기법은 상대적으로 원목을 덜 소모하기 때문에 낭비가 훨씬 적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맹활약

이번 전시회에서 필자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 곳은 아웃도어(Outdoor)관이었다. 올 초 밀라노에서부터 집중 조명을 받은 케네스 코본푸의 태양광 대나무 자동차를 위시해 소재와 아이디어 면에서 단연 최고의 흥미진진함을 선사했다. 자연주의가 위세를 떨친 아웃도어 제품의 인기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지만 혁신의 다양성과 참신함은 충분히 주목할 만했다. 게다가 선브렐라(Sunbrella)와 같은 아웃도어 전문 업체에서 생산하는 내구성 좋고 충격에 강한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실내에서 사용하는 가구, 소품의 품격과 아름다움을 실외에서도 누릴 수 있게 하는 컨버전스의 장점은 큰 매력이다. 햇빛 차양막 겸 조명 캔버스 역할을 하는 일명 ‘모빌솔’을 개발해 화제를 일으킨 벨기에 업체 엄브로사(Umbrosa)는 커다란 우산처럼 생긴 차양막을 벽이나 식탁 위에 유연하게 설치할 수 있는 커다란 우산처럼 생긴 차양막 ‘스펙트라(Spectra)’ 등 흥미로운 제품군을 다수 선보였다. 암스테르담에 자리 잡은 플럭스 체어스(Flux Chairs)는 폴리프로필렌 소재의 접이식 의자 ‘플럭스’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착착 접어 포갠 다음 최대 6개의 의자를 한꺼번에 벽에 장착할 수 있도록 고안된 이 제품은 무게가 4kg밖에 되지 않지만 최대 160kg까지 견딜 수 있다. 어린이용 ‘플럭스 주니어’도 있다. 공기로 부풀리는 가구라는 개념을 선보인 푸구(Fugu)라는 신생 업체의 가구 시리즈도 눈길을 끌었다. 공기를 집어넣으면 쿠션 모양의 흔들의자와 소파, 형광물질이 담긴 아크릴 판을 올려놓으면 탁자가 되는 제품군으로, 불활성 물질의 냄새가 잘 배지 않는 천으로 만들었다. 프랑스 브랜드 에고 파리(Ego Paris)의 ‘퍼즐(Puzzle)’은 아예 한 세트의 가구를 활용해 의자, 탁자, 침대로 변신시킬 수 있는 다용도 제품이다. 하나하나 풀어놓으면 다양한 조합의 가구로 쓸 수 있지만 조각을 모아 겹쳐놓으면 하나의 사각형이 되는 발상이 재미나다. 

여전한 스칸디나비아의 아성과 벨기에의 도약

언제나 그랬지만 북유럽 디자인은 참으로 뛰어나다. 흔히 일컬어지듯 실용성만 뛰어난 게 아니라 디자인 자체의 아름다움도, 주변과의 조화로움도, 끊임없이 선보이는 아이디어도 모두 최고다. 이번 메종 오브제에서도 노만 코펜하겐과 같은 북유럽 브랜드들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이 중 떠오르는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디자이너들을 내세운 무토(Muuto)라는 새로운 브랜드가 특히 괄목할 만했다. 일례로 ‘언더 더 벨(Under the Bell)’이라는 전등갓은 마치 단순히 따뜻한 펠트 소재를 사용한 듯 보이지만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제품으로, 최근 트렌드인 업사이클링(upcycling, 재활용의 차원을 넘어 버려진 재료를 새로운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디자인 트렌드)을 제대로 반영하면서도 미적, 기능적 가치까지 지녔다. 둥그런 종 모양의 전등갓 밑에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공간을 별도로 제공하는 듯한 효과를 낼 뿐 아니라 소음까지 일부 흡수하는 기능을 지녔다고.
이와 함께 국가 차원에서는 벨기에의 약진이 놀라웠다. 앞에서도 이미 다수 언급했지만 유난히 벨기에 브랜드가 많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의 100% 디자인 전시회처럼 국가관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항해에 필요한 편안하면서도 탄탄한 질긴 보트용 의자를 디자인하는 네덜란드 업체 레이지 잭(Lazy Jack)의 대표 바네사 반 켐펜은 “벨기에 업체들이 언젠가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다가 이젠 도처에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놀라운 발전”이라 평했다. 또 서울시의 지원으로 참가한 ‘서울 디자이너스 파빌리온’도 “신선하고 영리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라는 호평을 받았다(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파리 시내의 거리도 축제를 즐기는 모습

올해 파리에서는 메종 오브제 전시회와 더불어 ‘파리 디자인 위크(Paris Design Week)’가 처음으로 열렸다. 9월 12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이 행사 기간에는 각종 디자인, 패션, 레스토랑 등 각종 관련 업체가 저마다 상점 앞에 디자인 위크를 상징하는 깃발을 꽂고 특별한 인테리어를 해놓은 채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장 누벨과 같은 스타 디자이너의 스튜디오에서는 파티가 벌어졌고 리네 로제, 시나, 콜레트, 메르시, 바카라와 같은 유명 브랜드 매장들도 근사하게 단장을 했다. 아무래도 1회인지라 아직은 좀 어색한 면모도 보이지만 밀라노와 런던의 디자인 축제와 닮은 면도 있다. 그 특유의 세련되고 사랑스러운 색감과 스타일이 빚어내는 앙상블을 등에 업고 파리는 갈수록 디자인 도시로서의 성숙함을 더해가고 있다. 다소 보수적인 분위기 탓인지 한때는 이탈리아나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타 디자이너 시스템이 뒤졌지만 지금은 부훌렉 형제를 비롯해 신성들이 앞다퉈 쏟아져 나오고 있다. 메종 오브제 전시회의 한 컨퍼런스에 참가석했던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줄리오 카펠리니와 피에로 리소니가 강조했듯이 “단지 가구에만, 조명에만, 소품에만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그 모든 세세한 요소가 모여 빛을 발하는 다채로운 조합이 돋보인다”는 게 바로 파리가 지닌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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