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o F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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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3, 2019

글 고성연

The Women Who Inspire Us_ interview 08

Cao Fei

동시대 예술가를 접하고 만나는 데 따른 장점은 아마도 우리가 비슷하게 처해 있을지도 모르는 현실을 바라보고 담아내는 시각과 감성에 공감할 여지가 더 많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다른 국적과 나이대의 인물일지라도 반드시 공명의 정도가 덜하지는 않다. 또 아티스트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싶다. 우연한 스튜디오 탐방을 계기로 알게 된 중국 현대미술 작가 차오페이(Cao Fei)의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성장 가도는 그 같은 행운을 느끼게 해주는 여정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태어난 세대 중 가장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인 그녀의 작품 세계는 뉴욕 모마(MoMA) PS1, 뒤셀도르프 K21, 홍콩 타이퀀 센터 등 글로벌 플랫폼에서 ‘개인전’으로 선보였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데이터가 권력’인 시대에 현대인의 불안감을 여러 작가를 통해 조명한 기획전
<불온한 데이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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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중국 소설가 위화의 글에는 모든 문학 서적을 ‘독초’로 규정하고 ‘금서’라는 낙인을 찍은 문화대혁명(1966~1976)의 상흔이 묻어나곤 한다. 1960년생인 그는 10대 시절에 문화대혁명을 견뎌냈다. 이 고통스러운 폭풍이 잠잠해진 뒤 1980년대에 접어들자 중국은 다시 기지개를 켠다. 가파른 경제 성장 속에서 문화적으로도 변화의 물결이 일렁거리기 시작했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졌다. 위화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라는 책에서 그 변화를 이렇게 반추했다. “우리는 멀리뛰기 경기라도 하듯 물질이 극단적으로 결핍된 시대에서 낭비가 넘치는 시대로, 정치 지상의 시대에서 금전 게임의 시대로, 본능이 억압된 시대에서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로 건너뛰었다. 이 30년이란 세월이 몸을 한번 웅크렸다가 도약하는 시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1978년생 차오페이(Cao Fei)도 그 역동적인 시기에 자라난‘신세대’였다. 특히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강력히 추진된 정부 주도의 ‘도시화’가 중국 주요 지역을 뒤덮으면서 그 영향권에 있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 ‘글로벌’ 문화, 디지털 등의 흐름에 휩싸였다. 덩샤오핑의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1980년대 ‘외동’으로 태어난 소위 ‘바링허우’ 세대보다 아주 살짝 앞선 ‘경계선’에 걸쳐 있는 차오페이는 중국 남부 지역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인 광저우에서 자라면서 급변하는 시대 양상을 목도했고, 그 변화의 물살을 몸소 겪었다. 필자가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도 ‘격동과 변화의 시대를 산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을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를 통해서였다. 2016년 프랑스 파리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대대적으로 열린 중국 현대미술 전시로, 역사적 격동기를 겪은 12명의 작가를 묶은 <본토(本土)>라는 기획전과 미술관 소장품을 소개한 <컬렉션>전, 이렇게 크게 2개의 전시로 나뉘었다. 전시가 열리기에 앞서 2015년 말, 일부 참여 작가들의 현지 스튜디오를 탐방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졌는데, 차오페이도 바로 그중 하나였다. 인물이 주는 느낌이나 작업실의 분위기로 볼 때 인상에 뚜렷이 남았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든 작가이기도 했다.


중국 문화 예술의 본산 베이징에서 만난
미디어 아트계의 글로벌 신성
베이징 북쪽 차오양 구(Chao Yang District)에 자리 잡은 차오페이의 스튜디오로 가는 길은 출발부터 상쾌했다. 현지 사람들이 말하기를 ‘1년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게 축복받은’ 날씨 덕분이었다. 먼지 한 톨 없는 듯 깨끗한 대기 속에서 ‘쨍한’ 느낌의 햇살이 쌀쌀한 기운을 달래준 데다, 파랗고 맑은 하늘까지…. 이제 미세 먼지 가득한 우리네 현실에서도 종종 그리워하게 된 어느 예쁜 날, 귀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 짧은 기장의 갈색 단발을 한 차오페이가 살짝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방문단’을 맞이했다. 언뜻 보기에도 호기심이 절로 솟구치는 독특한 면모의 널찍한 공간이 펼쳐졌다. 1층은 아래로 반쯤 연녹색으로 칠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중간쯤 커다랗고 고풍스러운 거울이 걸려 있고, 그 옆에 있는 육중한 고동색 문에는 동그란 금속성 징이 무늬를 그리며 박혀 있었다. 복도 끝자락에는 빨간 칠을 한 철제 문도 자리하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아날로그 시대의 극장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극장으로 쓰인 낡은 건물을 1980년대 스타일로 다시 꾸민 거예요.” 아주 능숙하지는 않아도 영어로 또박또박 말하는 차오페이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리저리 살펴보노라니 샛노랗고 화려한 샹들리에, 옷 여러 벌을 걸 수 있도록 문어발처럼 쫙 폈다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다시 일자로 접을 수 있는 빈티지 옷걸이 등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공간의 구성 요소들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러던 중 짧은 사다리형 계단을 몇 걸음 올라가면 나오는, 콘트리트 벽으로 된 ‘오픈 다락방’ 같은 작은 공간도 눈에 띄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그녀의 커리어를 말해주는 도록과 책자, 신문 등 각종 자료가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아이 엄마이기도 하지만, 30대 후반으로 보기에는 꽤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가 상당히 풍부한 창조적 여정을 걸어왔음을 짐작케 하는 ‘서가(書架)’였다. 당시에도 중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새롭게 수놓고 있는 ‘차세대 글로벌 스타’라는 수식어를 누리던 차오페이는 실제로 2001년 미술학교를 졸업한 이래 국내외에서 열린 다양한 전시에 활발하게 참가하면서 열정적으로 달려왔다.


변화의 급물살에 휩쓸린 중국의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영상에 담아내다
아마도 지하 공간이었던 듯하다. 이날 우리는 한쪽 벽에 큰 스크린이 설치된 어두운 방에서 차오페이의 미디어 작품 몇 편을 작가의 짤막한 설명과 함께 감상하는 기회도 가졌다. 물론 새로운 작품 세계를 대한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렇게 기대가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당시만 해도 멀티미디어 작품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영화는 웬만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섭렵하는 ‘잡식성’인데도 미디어 아트에는 다분히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그런데 차오페이의 영상 작품은 시선을 고정시키고 궁금증을 일깨우는, 묘하게 참신한 매력이 있었다. 예컨대 2006년 작품인 ‘힙합(Hip Hop)’은 일단 신나는 리듬으로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고향 광저우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공사판의 인부, 트레이닝복을 입은 귀여운 꼬마, 완장을 두른 할머니, 제복을 입은 성인 남성 등 다양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몸짓으로 힙합 춤을 추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미소를 유발한다. 사실 차오페이의 작품 중 이처럼 마냥 경쾌한 경우는 별로 없다.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정체성을 찾기 힘들어하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종종 흐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예를 들어 풍요로운 도시의 빈곤한 노동계급 가정에서 만화나 게임 캐릭터로 변신을 거듭하는 ‘코스프레’에 빠진 젊은이들을 비춘 ‘코즈플레이어(Cosplayers)’라는 2004년 작품(중국 현대미술계가 차오페이를 처음 주목하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인터뷰와 퍼포먼스를 곁들인 사회 참여적 프로젝트 ‘누구의 유토피아인가?’(2006), e유토피아를 배경으로 아바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기반의 ‘RBM 시티’(2007) 작품(뉴욕 구겐하임에 소장되는 영예를 안겨줬다) 등이 있다. 그런데 진중한 메시지와 비극적인 분위기, 혹은 풍자를 담은 작품이더라도 차오페이의 영상 언어는 지독한 절망이나 우수로 치닫지는 않는다. 웃음 유발 요소가 전혀 없는 경우에도 뭔지 모를 잔잔한 희망이 어린 위트 같은 게 느껴진달까. 현시대 중국의 청년 세대에 대한 남다른 이해가 없어도 공감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작품을 보면 예술이 ‘보편적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작품에 맞게 집중도를 높이는 배경음악을 출중하게 쓸 줄 아는 것도 장점이다.


세계적인 문화 예술 플랫폼에서
잇따라 ‘개인전’ 개최, 흐뭇한 성장은 ‘진행 중’
차오페이의 베이징 스튜디오를 방문했던 2015년 겨울의 그날은 확실히 ‘길일’이었던 것 같다. 당대의 빼어난 아티스트들에게 주어지는 BMW 아트카 프로젝트에 선정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1975년 이후 꾸준히 진행해온 BWW 아트카 프로젝트의 명단에는 알렉산더 칼더, 앤디 워홀, 제프 쿤스 등 쟁쟁한 이름들이 포함돼 있다. 그 대열에 합류한 차오페이의 순서는 ‘#18’. 나름 인연이 닿았던지, 필자는 차오페이의 BMW 프로젝트 결과물을 선보인 행사에 참가해 다시 그녀를 접하게 됐다. 지난해 3월,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in Hong Kong)이 열린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였다. 2017년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 공개된 데 이어 아시아 최초로 선보이는 자리였는데, 다수의 관계자와 관람객의 관심을 끌었다. 기술 활용이 일취월장하는 현대미술 생태계에서도 흔치 않은 증강현실(AR)을 접목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아트카’라고 하면 차체에 감각적인 ‘아트’를 입히는 시각적 효과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본 블랙 색상의 BMW M6 GT3는 그저 무광의 검은색 차로만 보인다. 그런데 스마트폰이나 스마트 패드에 별도로 제작한 AR 전용 앱을 설치한 다음 자동차를 촬영하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형형색색으로 그려지는 ‘빛의 궤적’이 차량 위를 장식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온 ‘영적 지혜’를 주제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영적 수행자’의 움직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BMW 행사장에서 만난 차오페이는 “이번 작품으로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솔직히 정말 힘들기도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브랜드와의 조율부터 AR를 원하는 방식대로 구현해줄 기술 파트너를 찾는 과정, 앱 개발 등 모든 게 만만치 않은 새로운 시도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적어도 당분간은 AR 작업을 하지 않을 것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웃음 짓는 차오페이.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아온 그녀는 그새 뉴욕, 파리, 뒤셀도르프 등 글로벌 문화 예술 도시의 내로라하는 미술관에서 ‘러브콜’을 보내 개인전을 여는 작가로 성장해 있었다. 지난해 말에는 홍콩의 ‘핫’한 복합 문화 공간인 타이퀀 센터 포 헤리티지 앤드 아트(Tai Kwun, Centre for Heritage & Arts)의 현대미술 전시장인 JC 컨템퍼러리에서 대규모 전시를 가지기도 했는데, 공간과 어우러지도록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이라든지, 작품의 소재와 메시지가 참신하고 매력적이었다. 어두운 밀실이 아니라 공간을 감싸는 커다란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2층의 ‘열린’ 공간에 PC와 스크린을 곳곳에 놓고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도록 했다. 하지만 주요 작품 중에는 아예 음습한 감옥을 떠올리게 하는 전시 장소를 택한 사례도 있다. 타이퀀 센터는 중앙경찰서, 빅토리아 감옥 등 옛 정부 건물들을 개조해 조성한 문화 공간인데, 이 같은 배경을 살려 ‘감옥’을 소재로 한 작품 ‘프리즌 아키텍트(Prison Architect)’. 관람객 스스로가 감옥에 갇힌 것처럼 어두컴컴한 방에 놓인 철체 침대에 누워 영상 작품을 보는 풍경이 흥미로웠다.
여전히 젊은 아티스트지만 파릇파릇한 ‘신세대 작가’로 불리기에는 어색하게 차오페이도 어느새 40대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창조적 도전을 꾀하는 그녀의 당찬 행보는 여전히 거침없는 듯하다. 올여름 파리의 명소 퐁피두 센터에서도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는 그녀의 성장을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은 이유다. 글 고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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