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SPECIAL] 포스트모던 광대 vs 소소한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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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6, 2021

글 심은록(미술 기획·비평가) Edited by 고성연 | 이미지 제공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Cindy Sherman vs Sarah Sze


프랑스 파리에는 현대미술을 적극 수호하는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다. 불로뉴 숲에 자리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과 몽파르나스 지구에 위치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최근 이 두 미술관에서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미국 여류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해 눈길을 끌었다.
전자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 회고전(2020년 9월 23일~2021년 1월 3일), 그리고 후자는 사라 제(Sarah Sze)의 <밤에서 낮으로>(2020년 10월 24일~2021년 3월 7일). 브랜드 각각의 메세나 철학과 미술관의 창조적 가치가 담긴 전시에 파리지앵은 그저 행복하다.일단 미술관 자체가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의 작품이다. 겨울바람에 빵빵해진 돛이 금방이라도 항해를 떠날 듯한 범선 모양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프랭크 게리의 걸작이고, 전시 때마다 팔색조로 변화무쌍한 매력을 뽐내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장 누벨의 대표작 중 하나다. 시간에 무뎌지지 않고, 여전히 톡톡 쏘는 맛의 전시를 유지하고 있기에 더욱 반갑다.
두 재단의 독특한 성격 덕분일까? 루이 비통 재단 전시에서는 제3국 작가의 토속적인 작업도 ‘루이 비통화’되어 왠지 모르게 고상하고 고급화되는 느낌이고,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미술관은 전시 때마다 건물 외벽, 하물며 화장실 문과 복도까지 세심하게 큐레이팅되기에 미술관 자체가 새로운 작품으로 변신한다.

CINDY SH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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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행동주의자’ 신디 셔먼을 회고하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은 이미 세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사진작가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은 ‘회고전’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1975년부터 2020년 최근 신작까지, 연작을 포함해 셔먼의 작품 1백70점(3백 점 이상의 이미지)을 선보였다. 그녀는 권위 있는 미국 미술 평론가들이 언급하기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셔먼의 작업이 셀프 포트레이트 기법을 꾸준히 사용하면서도, 다양하고 첨예한 문제점을 명쾌하게 지적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소재가 같다는 점에서 비교가 용이하고, 대부분의 남성 작가들이 놓치는 페미니즘 예술과 젠더 정체성까지 포괄한 포스트모던 주체를 다루고 있다.
신디 셔먼의 ‘무제 – 필름 스틸’을 보면, 대다수의 사진 속 여성들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괴상한 소리나 낯선 호출(부름)에 놀라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존 버거는 “남성은 여성을 바라보고, 여성은 보여지는 스스로를 본다”(<어떻게 볼 것인가> p.55)고 말했는데, 이러한 수동적 시각을 지닌 여성의 모습을 응시의 대상으로 재현했다. 더욱이 소리를 내며 바라보게 하는 능동적 시각의 주체는 늘 화면 밖에 있기에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본다면, 남성의 응시에 지배당하는 여성의 모습일 수도 있으며, 좀 더 포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동안 인류를 지배해온 ‘로고스’, ‘절대자’, ‘무의식’의 호출일 수도 있다. 셔먼은 1970년대 이후 2세대 페미니스트 작업인 ‘여성’과 ‘몸’을 재현하면서, 위대한 여성이 아닌 평범한 여성의 자아를 일깨웠다. 1990년대부터는 포스트모던 주체가 등장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SNS 등의 미디어를 사용하며 제3세대 페미니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신디 셔먼의 ‘무제 #216’은 고전 명작인 장 푸케의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1450)를 패러디했다. 그녀는 “푸케가 여성의 가슴을 자몽처럼 그려 해부학에 무지함을 확고히 드러냈다”며, 여성성을 ‘이상화’한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규정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셔먼은 ‘무제 #216’에서 보는 것처럼 공 형태의 가슴을 고의적으로 어색하고 눈에 띄게 만들어 부착했다. 푸케의 그림은 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배경에 붉거나 파란 천사로 가득 채웠다면, 셔먼의 천사는 레이스로 짜인 커튼의 문양일 뿐이다. 푸케의 그림에는 아기 예수가 있는 반면, 셔먼의 그림에서는 성모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있는 포즈는 취하기는 했지만 아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머리 부분에 ‘오라’인 듯한 붉은 원의 일부가 보일 듯 말 듯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영, 이상, 초자연적인 것(神)은 셔먼의 작품에서 이처럼 깨끗이 제거됐다. 그녀는 ‘연출된 사진(staged photography)’을 제작하고, 디지털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970년대 말부터 사진을 이미지 기록용이나 예술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기고 ‘찍는 시대’에서 회화처럼 작가의 창의성과 비판성이 개입되는 ‘창조하는 시대’로 이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셔먼은 현대 사진술의 발전을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신디 셔먼은 ‘광대’ 연작을 하면서,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티셔츠, 파자마, 천 조각 같은 여러 종류의 옷, 다양한 색의 가발 등 다양한 일상품을 동원했고, 이러한 것들이 합쳐져 광대가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광대는 슬프나 추하고, 웃으면서도 비애감을 남기고, 히스테리한 다중적, 혼합적 감성의 인물이다. 다원주의 시대를 살아야 하기에, 비록 다양한 관점을 소화하는 능력이 없을지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그래서 정신분열증을 앓는 현대인의 적나라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신디 셔먼은 페미니스트 작가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작가들이 놓친 페미니즘적 요소까지 포함하는 더 포괄적인 포스트모던 시대의 주체를 시각화하고 있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는 신디 셔먼의 회고전 외에도, 그녀가 직접 큐레이팅한 전시 <교차된 시선: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소장품 컬렉션>을 같은 기간에 개최했다. 이 가운데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1972~)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디 셔먼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작가. 셀프 포트레이트 기법, 연출된 사진, 지배적인 관점에 저항하는 작업을 한다는 공통점을 품고 있다. 신디 셔먼보다 훨씬 어리지만, 1세대 페미니스트처럼 ‘나만의 방(버지니아 울프)’을 요구하는 그녀에게 예술은 ‘쇼나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닌 정치적인 것’이다.
여기서 페미니스트를 1, 2, 3세대로 구분하는 것은 작품성의 발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작가가 처한 사회· 정치적 상황에 의해 조건 지어진다. 무홀리는 ‘언제나 심문받고, 침해받고, 폄하되는 흑인의 몸이 당해야 하는 부당함’을 재현하기 위해 3백65일 동안 자화상을 찍었는데, ‘검은 암사자 만세’라는 연작이다. 페미니즘, 인종차별, LGBTI 공동체 문제까지 다루기에 폭행의 표적이 되지만, 폭력에 굽히지 않는 그녀는 자신을 ‘비주얼 아티스트가 아니라, 비주얼 행동주의자’라고 지칭한다(가디언(The Guardian), 2017년 7월 14자 인터넷 신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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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S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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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밤낮을 수놓은 사라 제의 플라네타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내외벽 모두 유리로 이루어진, 외부와 내부가 소통하는 열린 구조이기에, 이번 사라 제(Sarah Sze, 1969~)의 전시 <밤에서 낮으로>를 위한 최상, 최적의 공간이 되었다. 사라 제는 석사과정을 마친 뒤 꾸준히 회화, 사진, 설치, 조각, 미디어 아트 등 가능한 한 모든 예술의 경계를 해체하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건축가 장 누벨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건축물은 경계를 허문다. 무엇이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지, 어디에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러한 건축적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며, 사라 제의 작업은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유리벽을 넘어 한없이 팽창한다.
사라 제의 현재 작업은 그 근원을 ‘휴대용 플라네타륨(planetarium)이라는 아이디어’에 두고 있다. 단순한 데생에서 시작해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작은 플라네타륨으로 태어났고, 규모 큰 미술관도 부족한 듯 작품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의 벽, 즉 미술관 공간 너머로 간다. 플라네타륨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단지 별들이 모여 있는 천구가 아니라, 주변의 소소하고 연약하며 부질없어 보이는 것들의 집합체다. 해변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한 컷을 담은 사진, 스튜디오 앞에서 문득 바라본 석양, 곧 사라져버릴 한 조각의 구름, 바람에도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등을 시각적으로 재현한 기억의 플라네타륨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소하고 연약한 것들이 모이고 커져 빅뱅처럼 점점 더 확장되고 별처럼 빛난다. 프로젝터에 비친 관람객의 그림자가 작품에 드리우며 함께 움직이고 리듬을 타고, 마침내 관람객 자신도 작품이 된다.
전시장 밖으로 나와도 전시는 계속된다. 전시장 안의 작업과 전시장 밖의 가로등 불빛, 차량, 나무 그림자 등이 섞이면서 작품은 팽창을 계속한다. 11월 24일부터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 증강현실을 사용한 제2의 달도 뜬다.
사라 제는 이미지를 직접 그리거나 사진을 프린트해 설치 구조물에 배치하고 프로젝터를 쏜다. 이 이미지들은 칼과 자를 사용해 네모반듯하게 자르지 않고, 손으로 대충 찢은 듯 가장자리가 어느 하나도 고르지 않다. 그래서 ‘완벽’이란 허물을 벗고, 시간에 의해 마모되고 풍화로 부서진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플라네타륨에는 주변 환경의 소소한 것들, 연약한 것, 쉽게 잊힐 수 있는 것들이 모였다. 그녀는 지난봄 프랑스에 1차 이동 봉쇄령이 내려졌을 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전시를 준비했다. 작은 바이러스에도 쉽게 무너지는 삶과 일상,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더 안타깝고, 아름다우며, 소중히 가꿔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더욱더 외부와의 소통도 귀하고 신비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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