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ssandro Mend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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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 2013

에디터 고성연

펜대를 잡았을 땐 날카로운 지성이, 스케치를 할 때는 천진무구한 동심이 느껴지는 이탈리아의 거성 알레산드로 멘디니. 건축·디자인계를 쥐락펴락하는 ‘글쟁이’로 활약하다가 뒤늦게 조형에 임하는 크리에이터로 나서 큰 족적을 남긴 이 노장은 ‘문무의 덕’을 지녔다고 할 만하다. 요즈음 그는 자신의 다채로운 창조 여정을 ‘세상에 없었던 빛’이라 자부하는 조명 브랜드 ‘라문’으로 환하게 밝히고 있다. 화려한 듯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절묘한 색채와 소재의 배합, 단순한 듯하지만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감성이 스며들어 있는 ‘멘디니표’ 창조 세계에 첨단 기술이 녹아든 작품. 어찌 눈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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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독일 바이에른 주(州)에 자리 잡은 중세풍의 아름다운 도시 뉘른베르크의 신 박물관(Neues Museum Nu˙ ˙rnberg)에서는 80세 생일을 맞이한 이탈리아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창조 여정’을 기리기 위한 회고전이 열렸다. 전시회 제목은 <Alessandro Mendini: Wunderkammer Design>.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 ‘경이의 방(wonder-room)’ 정도로 풀어낼 수 있는 ‘분데르캄머(wunderkammer)’라는 독일어 표현은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 사이에 유행한 ‘지적 욕구를 동반한 수집열’에서 유래된 것으로, 놀라울 정도로 진귀하고 매혹적인 사물들로 가득 찬 공간을 뜻한다. 미학적 경이와 지적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창조 아카이브’를 지닌 멘디니의 다면적인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응축하는 수식어가 아닐 수 없다.
건축, 가구와 제품 디자인, 설치, 전시 기획 등 경계 없는 활약을 펼쳐온 ‘팔방미인’이지만 그에게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상징적인 작품이 두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두 팔 벌린 여성의 형상을 색채와 비례의 미학이 돋보이는 단순한 디자인으로 버무려낸 ‘안나 G’라는 와인 병따개. 이탈리아 주방용품 브랜드의 자존심으로 통하는 알레시(Alessi)의 막강한 스테디셀러로 국내에서도 ‘멘디니’라는 이름은 잘 모를지언정, 이 귀여운 코르크 스크루를 보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친숙하게 느낄 것이다. 1994년 선보인 안나 G가 당시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서 영감을 받은 창작물이었기에, 그는 거의 10년 뒤인 2003년 일종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짝꿍 버전’인 ‘알레산드로 M’도 내놓았다.
‘이유 있는 저항’으로 디자인 업계의 판도를 바꾼, 살아 있는 아이콘
“둘 중 누가 더 마음에 드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당연히 G가 더 좋다”며 웃음 짓는 82세의 멘디니. 이따금 ‘매의 눈’이 번뜩이는 걸 제외하면 아이 같은 연약함과 천진함을 풍기는 그를 서울 하늘 아래 마주하고 앉으니 한때 기능주의의 ‘대세’에 반기를 들며 1970~80년대 ‘안티 디자인’ 세력의 대표 주자였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사색의 필터’에 충분히 여과된 듯한 신중한 답을 건네는 편인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큰 망설임 없이 ‘프루스트 체어(Proust Chair)’를 꼽자 퍼뜩 현실감이 밀려들었다. 소위 ‘포스트모던 디자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걸작으로 평가되는 멘디니의 진정한 대표작인 프루스트 체어. 지금은 온갖 ‘응용 버전’들이 나와 있지만, 1978년 처음 선보인 이 위풍당당한 안락의자의 오리지널 버전은 18세기의 고풍스러운 맵시와 폴 시냐크의 점묘법을 연상케 하는 회화적 무늬가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그러나 단지 바로크풍의 고아한 자태와 알록달록한 점들이 흩뿌려진 무늬 덕분에 디자인사에 한 획을 그었을 리는 만무하다. 프루스트 체어는 대량생산 열풍을 등에 업고 군더더기 없는 형태와 목적성을 강조한 기능주의와 소비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의식에서, 사람과 사물을 ‘소통’하게 하는 다채로운 감성을 불어넣으려는 실험 정신의 소산이었다. 멘디니가 주축으로 활동했던 그룹 ‘스튜디오 알키미아’가 주도한 <리디자인(Redesign)> 전시회에서 발표했는데, 이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 ‘완전히 독창적인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 아래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였다. 프루스트도 사실은 앤티크 의자 하나를 사다가 색점들을 찍어놓은 것에 불과했다(물론 여기엔 저항 정신만이 아니라 그가 경외했던 프랑스의 문호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얻은 시적인 영감을 디자인으로 풀어낸 창조성도 녹아 있다). 멘디니는 이처럼 일상적 소재를 활용하고 기존의 디자인에 약간의 ‘양념’을 얹는 식으로 ‘리디자인 개념’을 투영한 일련의 작품들을 내놓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게리 리트펠트의 ‘지그재그 체어’와 같은 전설적인 명작의 등받이에 가로 면을 더해 마치 십자가처럼 보이도록 만든다든지, 조 콜롬보의 플라스틱 의자를 대리석 질감의 묵직한 의자로 바꿔놓는다든지 하는 ‘재치 있는 파격’을 덧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만 해도 멘디니는 정식으로 디자이너나 건축가로 데뷔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자신이 창간한 디자인·건축 잡지 <모도>와 건축 잡지 <도무스>의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기였다. 앞서 <카사벨라>에서의 잡지 경력까지 합치면 그의 ‘편집인 이력’은 무려 15년여이다(젊은 시절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근무한 그는 종종 건축에 대한 글을 쓰다 출판의 세계에 들어섰다). “세 잡지를 각각 5년 정도씩 맡았는데, 늘 처음 2년은 궁금해서, 그다음엔 정말 재미있어서 하다가 마지막 1년에는 좀 지루해했던 것 같아요.” 그는 싱긋 웃었다.
50대의 지성, 펜으로 글을 쓰는 대신 스케치를 하기 시작하다
범지구적으로 인재를 발굴하는 한편 날카로운 비평을 쓰는 데 활용했던 펜대의 방향을 스케치로 돌린 ‘커리어의 전환’은 생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건축가가 평론가, 기자, 디자이너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이탈리아 디자인계의 대부로 <도무스>를 창간한 조 폰티(Gio Ponti) 역시 그러한 궤적을 그린 인물이다. 게다가 멘디니는 자신이 온전히 한 가지 일만 한 적은 평생 별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설계 사무소 시절엔 글을 많이 썼고, 잡지에 몸담았을 땐 ‘알키미아’ 활동도 했으며, 편집장 시기에는 틈틈이 의뢰받은 컨설팅 일도 섭렵했다는 것이다. 비록 ‘조형’에 대한 열망으로 노선을 바꾸긴 했지만 멘디니는 ‘글’을 진정 사랑했다. 그래서 정신적 멘토로 삼은 폰티가 자신을 ‘후계자’로 선택했을 때의 감격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그가 저를 자택에 초대해 와인을 잔에 따르며 말했지요. ‘네게 <도무스>를 맡긴다’고. 정말이지 기뻤어요.” 여러모로 ‘준비된 크리에이터’였다고 하더라도 ‘전환의 연령대’만큼은 여전히 놀랍다. 멘디니가 자신의 동생 프란체스코 멘니디와 함께 ‘아틀리에 멘디니’를 열면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정식 명함을 내민 건 1989년. 이미 50대에 접어들어 나이의 무게가 적지 않았을 시점이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이혼이라는 상처까지 겪은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전업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다. 특히 눈에 띄는 노란색 타워와 옥상에 삐죽 솟은 2개의 뿔이 인상적인 흐로닝언 뮤지엄(1989~94)은 당시 드물었던 ‘명랑한 개성’을 지닌 미술관이라는 맥락에서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마냥 화려한 게 아니라 정교한 미학적 계산과 동심 어린 감각이 반영돼 있기에 편안한 느낌을 자아내는 ‘색채 배합의 마술사’로서의 잠재력이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이었다. 스와치, 알레시 등 쟁쟁한 브랜드들과 일하면서 산업 디자이너로서의 명성도 착착 쌓아갔다. 멘디니는 단지 예쁘장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 가치를 격상시킬 수 있는 출중한 아트 디렉터 역할을 해냈다. 대담하고 매력적인 장식으로 시계를 친근한 패션 액세서리로 자리매김시킨 스와치의 ‘오롤로지오’ 시리즈, 디자인 언어가 사뭇 다른 알레시와 필립스의 협력 프로젝트에서 기능성과 감각적인 스타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게 한 주방 가전 시리즈는 그가 얼마나 ‘변신’과 ‘협업’에 탁월한지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한샘, 롯데카드 등 한국 기업들과도 연을 맺어온 그는 최근 포스코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더샵’의 외관 디자인과 각종 사인물 디자인을 맡았다.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분위기의 하노버 버스 정류장과 주변부에 있는 낡은 건물의 고색창연한 운치를 살리면서 출입구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아트 벽’으로 즐거움을 꾀한 나폴리 지하철역 등 공공 디자인에서도 빼어난 솜씨를 발휘해온 그의 손길이 닿은 더샵의 변신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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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껍질처럼 다면적인 창조 세계, 이제는 첨단 LED 조명으로 승부!
이렇듯 창조적 진화를 부단히 꾀해왔음에도 그는 좀처럼 자족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의 조합을 재해석하고 제품을 다시 디자인하는 작업을 되풀이한다”고 한 말처럼 워낙 사색적이고 자성(自省)적인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남들과 다르게, 뭐든지 늦게 무르익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 정말이지 살아오면서 제대로 이해를 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니까요.” 차분히 말하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빼놓지 않는 ‘겸손한 멘디니 씨’는 아마도 이처럼 ‘늦된 성향’ 때문에 자신의 작품에는 거의 똑같은 스타일이 없는 것 같다는 재미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매번 실수하고, 다시 도전해보고,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수용하다 보니 조금씩은 다른 개성을 담게 된다는 것이다. 영어로 ‘수리하다(mend)’는 뜻을 지닌 어원의 단어에서 딴 ‘Mendini’라는 성을 갖게 된 게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의 회고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산속에서 버섯을 찾으러 가는데, 낮이 아니라 밤에 가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저한테는 ‘아물레또’가 빛을 비춰주니까 다행이에요.”
은근슬쩍 화제를 돌리며 자랑하는 ‘아물레또(Amuleto)’라는 이름의 탁상용 LED 조명은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그의 최신 야심작이다. 행운과 건강을 상징한다는 고대 이집트의 심벌을 멘디니가 ‘리디자인’한 로고 디자인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조명 브랜드 라문(RAMUN)의 대표작이다. ‘아물레또’는 이탈리아어로 ‘수호물’을 뜻한다고 한다. 단순미가 돋보이는 뻥 뚫린 링(ring) 모양의 램프 모듈이 마치 천사의 머리 위를 감싸는 원광(圓光)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에 걸맞은 제품명이다. 멘디니가 자신의 손자를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이 램프는 ‘지성인의 벗’을 자처하는 LED 조명답게 떨림이 없고 광량이 일정해 눈의 피로를 줄여줄 뿐 아니라 아무리 오랫동안 켜놓아도 전혀 뜨거워지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연결 막대를 움직이면 원하는 대로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관절 구조는 특허까지 받았다고. 원형 받침대에는 동공을 연상케 하는 버튼을 둘러싼 눈금이 칸칸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살짝 눌러주면 ‘11단계’로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 소비 전력이 10W 아래로 절전 효과도 빼어나다 하니 이만하면 ‘물건’이다.
‘지성인의 벗’을 표방하는 ‘아물레또’를 내세운 조명 브랜드
“사실 조명은 첨단 LED 기술이 이미 개발된 상황에서도, 전통적인 형태를 못 벗어난 품목이지요. 동그란 수술대 조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물레또는 눈을 보호하기에 적합하다는 ‘링’ 디자인의 이점을 여러모로 잘 살린, 시대를 잘 만나 탄생한 녀석이에요.” 첨단의 장점을 두루 지니고 있지만 생산과정에서는 섬세한 ‘수제작’ 공정이 필요하다는 아물레또의 부품들은 장인 정신과 기술의 어우러짐을 뽐내듯 서울 대치동의 라문 플래그십 매장 천장에 잘 보이도록 전시돼 있다. 4년에 걸쳐 공을 들였다는 라문 프로젝트를 위해 멘디니는 매장의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고객 카드와 가격표, 심지어 상품 구매가 가능한 웹사이트(www.ramun.com)의 디자인에까지도 세세히 관여했다고 한다. 아물레또의 뒤를 이을 후속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전자 종과 전자 촛불의 기능을 합친 듯한 앙증맞은 소품 조명 ‘깜빠넬로(Campanello, 모자처럼 생긴 윗부분에 손을 대면 종소리가 울리며 불이 켜지는 LED 조명)’, 그리고 베니스 유리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베니니(Venini)와 합작해 우아한 색감과 조형미를 지닌 장식 조명 ‘오팔레(Opale)’가 곧 세상에 선보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러고 보니 ‘색감’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멘디니 특유의 색채 감각이 라문 제품 전반에 걸쳐 유감없이 발휘돼 있기 때문이다. “색상을 결정하는 데는 소재도 굉장히 중요하죠. 아물레또에는 투명과 불투명이 있는데, 둘 다 잘 어울릴 수 있는 강한 원색 계열을 골랐어요. 그런데 플라스틱 소재라서 예쁜 것이랍니다.” 특히 3개의 원형에 각각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을 적용한 아물레또의 ‘트리니티(Trinity)’ 버전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준 신조형주의나 미래파 작가들의 작품을 떠오르게도 한다. 어릴 때부터 순수 미술의 애호가로 살아온 그는 이 대목에서, 몬드리안보다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칸딘스키의 느낌이 녹아 있다고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비록 ‘저항의 도구’로 쓰긴 했지만 멘디니는 ‘칸딘스키 의자’를 만들 정도로 그의 열혈 팬이다). 그로서는 ‘차가운 추상’의 작가인 몬드리안이 아니라 ‘뜨거운 추상’으로 통하는 칸딘스키에게 필연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펜대를 휘두르던 이론가 출신답게 마인드 자체는 냉철한 이성의 논리를 추구하지만, 만약 다른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할 만큼 이탈리아인 특유의 자유로운 감성과 풍부한 열정을 지녔으니 말이다.
‘로맨스 소설’이라…. 대학에 들어갈 때는 멋모르고 엔지니어링을 택했다가 ‘건축 설계’로 선회하고, 세상의 틀을 바꾸고자 하는 도전적인 ‘글쟁이’로 살다가 또다시 변신을 감행, 칸딘스키와 프루스트를 자신만의 창조 혼으로 녹여내며 ‘호기심의 방’이라는 수식어를 꿰찰 정도로 다채롭게 진화하는 예술 세계를 구축해온 크리에이터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이제부터 쓰셔도 되지 않을까요?”라는 진심 어린 격려(?)에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눈에 미소를 담뿍 머금었다. “맞아요. 안 될 이유가 없겠지요?” 그렇긴 한데, 자신은 두꺼운 소설이 아니라 얇은 단편 로맨스를 쓰고 싶다고 누차 강조하는 거장을 보노라니 어째서 그를 가리켜 ‘로맨틱한 반항아(romantic rebel)’라 하는지 새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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