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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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 2013

글 이소영 ('사진미술에 중독되다' , '서울, 그 카페 좋더라'의 저자)

한옥 건축가들은 죽기 전에 꼭 한번 한옥에 살아보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양옥보다 수명이 긴 한옥이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스타일리시하게 변신하고 있다. 한옥 갤러리, 한옥 호텔이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국내외 관광객들은 한옥을 방문하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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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의 매력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가 서도호의 대표작은 한옥에서 탄생되었다. 폴리에스테르 패브릭(Polyester Fabric)으로 만든 거대한 조형물은 바람이 불면 산들산들거리며 관람객의 마음까지 흔들어놓는다. 작가가 어린 시절 살았던 한옥은 어떤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그의 작품으로 발현되었을까? 작가는 알려졌다시피 부친(父親) 서세옥 화백이 직접 지은 성북동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70~80년대는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기에 한옥보다는 양옥을 선호했다. 그래서 창덕궁 연경당 사랑채를 본떠 지은 한옥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작가는 우리와는 다소 다른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게 되었고, 이는 작가가 세계적인 미술가로 발돋움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옥에는 도대체 어떤 장점이 있을까? 한옥 건축가로 유명한 조정구 대표(구가도시건축)가 한옥에 살고 있는 경험자로서 한옥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한옥은 전문가로서 평가할 때 건축학적 요소를 제대로 갖춘 집입니다. 평범한 한옥일지라도 공간 구성과 건축 요소가 유명 건축가가 지은 현대 건축물보다 우수합니다. 하늘이 보이고 땅을 밞을 수 있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집이라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지요.” 한옥은 창과 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으며 한지로 마감한 창과 문은 집 안과 밖의 구분을 개방적으로 확장시킨다. 돌과 나무, 종이로 이루어진 집 안에서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양옥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여 안과 밖의 구분이 분명해 자연과 단절되고 폐쇄적 사고를 유도한다. 그래서인지 한옥에서 영감을 받은 미술가 서도호의 천으로 만든 집은 한옥이든, 뉴욕의 집이든 간에 방 안에서 밖이 보이고 밖에서도 안이 들여다보인다. 한옥에서 보낸 행복했던 경험이 작품을 통해 재현된 것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옥이 출품된 이유

우리 가옥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옥은 레미콘이 시멘트를 쏟아부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수리해야 하는, 정성을 담은 건축물이기에 더욱 정감이 간다. “우리 가족은 서대문 근처의 한옥에서 살고 있지요. 1958년에 지은 ㄷ자 모양의 한옥은 듬직한 2칸 대청에 방이 크고 햇살이 잘 듭니다. 마당에는 장독대와 감나무 한 그루가 있어 가을이면 어른 주먹만 한 감들이 주렁주렁 열리지요.” 건축가 조정구는 4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인 마당을 아랫목에서 바라본다. 조정구 대표는 편안하지만 아름다운 한옥의 무덤덤함 속에서 건축가로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그가 한옥을 건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은 ‘마당’이다. 크고 작은 마당을 어떻게 정하고, 부엌과 방과 대청이 어떻게 소통하게 하느냐가 설계의 기본이 된다. 그런 점에서 한옥의 마당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빨래를 널고, 시래기를 말리고, 잔치를 벌이며, 햇빛과 바람이 통하는 공간인 셈이다. 2000년부터 북촌의 한옥을 시작으로 한옥 건축가로서 많은 작품을 선보인 조정구 대표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서대문 한옥을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선보이며 외국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옥이 이렇게 매력적임에도 보편화되지 않는 것은 한옥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한옥은 화재에 취약하며, 치안에 약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옥은 구조가 견고해 화재가 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나무에 불이 붙으면 자체적으로 지연 효과를 내다가 한참 후에야 불에 타기 시작한다. 또 도시 한옥은 처마가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도둑이 담을 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한옥은 양옥보다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서울에 남아 있는 한옥은 40~80년 전에 지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여전히 거뜬하다. 오히려 아파트와 같은 현대 건축물들은 20년만 지나면 재건축을 고려해야 하지만, 한옥은 1백50년은 버틸 수 있다. 부분부분 수리해준다면 2백 년 이상도 거뜬히 버틸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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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옥에 살고 싶다

점차 입소문이 나다 보니 한옥에 살고 싶어 서촌이나 북촌으로 이사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이사하기 어려운 이들이라면 한옥을 개조한 병원이나 동사무소, 레스토랑을 이용하면서 특유의 운치를 느껴보아도 충분하다. 한옥의 다채로운 공간은 각기 매력적이지만, 한옥의 장점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갤러리가 아닐까 싶다. 소격동의 학고재 갤러리, 가회동의 가회동 60 갤러리, 안국동의 아트 링크 갤러리, 서촌의 류가헌 등은 볕이 잘 들고 오픈된 구조로 관람객의 동선이 자유로운 한옥의 매력이 잘 드러난 매혹적인 건축물이다. 덕분에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최근엔 한옥을 주제로 한 전시도 이어졌다. 가회동 178번지 한씨 가옥에서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과 일본 미술가 미야지마 다쓰오의 전시가 열렸으며,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열린 컨템포러리 한옥 전시는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씨 가옥에서 열린 <한옥을 찾아 떠나는 시간 여행>이 특별했던 것은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은 개인 소유의 오래된 한옥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두 달 동안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일본 나오시마에서 미야지마 다쓰오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마음 깊이 감동한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은 그의 작품을 서울에서 전시하기로 결심했다. 북촌 한옥마을 가는 길에 위치한 한씨 가옥은 평상시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닫혀 있다. 서울시 민속자료 제14호이기도 한 이곳은 조선 정조 때 병조판서 최주보의 첩이 아들과 함께 눈물로 밤을 지새던 비운의 고택으로 알려져 있다. 한옥의 매력은 바로 이런 역사성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살지는 않지만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여전히 아름다운 이 고택에서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한복을 입고 미야지마 다쓰오의 첨단 LED를 소재로 한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한 재미를 제공했다. 밤에 더욱 아름다운 LED 소재인 만큼 전시는 오후부터 시작되었는데, 한씨 가옥의 정원은 낮에 보아도 아름답다. 작약과 창포가 형형색색 아름다운 정원은 과연 조선 시대 세도가의 집답다. 미야지마 다쓰오의 작품으로 고택의 현판을 대신했는데, 작가는 거울 같은 현판에 관람객의 얼굴이 비치는 순간을 시간과 작품과 공간이 모두 투영되는 시간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고택의 숨겨진 이야기들
바로 근처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잠시 거주했던 곳으로 유명한 부티크 호텔 ‘취운정’이 있다. 원래의 취운정은 일제강점기에 헐렸고, 취운정이 있던 일대가 취운정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 취운정은 명문 세가들이 교류했던 곳이며, 19세기에는 김옥균, 홍영식 등 우국지사들이 구국 활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앞에서 잠시 이야기했던 병조판서 최주보가 취운정에서 동성애 논란에 휩싸인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첩에게도, 정실 부인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던 최주보는 아름다운 남자, 가무별감 이색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질투하던 정실 부인이 이색을 유혹했고, 결국 모두가 파멸에 이르렀다. 현재의 부티크 호텔 ‘취운정’이 그 정기를 이어받았으니 그곳에 가면 조선 시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자꾸만 떠오를 것 같다. 취운정은 한옥 호텔이지만 간간이 전시도 연다. 지난해 열린 <봄 한옥에서의 오수>는 취운정에 전시된 이정섭 목수가 만든 탁자와 의자를 구경한 후 1시간 30분 정도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체험 전시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렇듯 북촌의 취운정, 락고재 등 한옥 호텔이 주목받고 있으며, 한옥은 더 이상 불편한 건축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널리 인식된 것 같아 반갑다. 특히 경주의 한옥 호텔 라궁은 드라마 <꽃보다 남자>, <식객>, <선덕여왕> 등에 등장해 더욱 인기가 높아졌는데, 현대적으로 지은 한옥 건축물이어도 운치는 여전하다. 각 객실마다 설치한 노천탕에서 스파를 즐기는 것은 21세기적인 즐거움이지만, 노천탕에서 올려다보이는 처마와 파란 하늘은 한옥의 또 다른 낭만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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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옥은 진화한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열린 은 현대의 생활 방식에 따라 진화한 도시 한옥을 대표 건축가 4인의 프로젝트를 통해 살펴보는 전시이기에 한옥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였다. 한옥 건축가로 유명한 김용미, 김종헌, 조정구, 황두진 등 4명의 작품을 실사 혹은 모형으로 전시했고, 한옥에서 영감을 받은 백승호와 윤준환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의 최정은 관장은 옛 건축물로서 한옥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한옥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려는 것이 전시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한옥은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은 더 이상 집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 전시는 한옥은 옛것이 아니라, 현대 생활에 적응하고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더욱 진화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현대적 한옥은 전통 한옥을 계승하는 데 더 이상 목적을 두지 않는다. 한옥과 양옥의 장점을 결합한 대표적인 건물로는 김용미 건축가의 서울남산국악당을 꼽을 수 있겠다. 외관을 보면 영락없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으리으리한 집이다. 하지만 그 내관은 현대적인 콘서트 홀이라 놀랍다. 김용미 건축가는 지하의 현대식 문화 시설과 지상의 전통 한옥의 구조를 결합한 이 작품으로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목재 수축에 의한 하자 발생을 차단하고, 대규모 공간 건립을 가능하게 하는 공학 목재를 사용합니다.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기계치목과 조립 방식을 채택했고, 고단열 고기밀 벽체, 유리와 한식 창호를 결합한 고기밀 창호를 사용해 저에너지 공학 한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건축가의 고민으로 이렇게 한옥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한국건축가협회가 선정한 2011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포함된 조정구 건축가의 롯데부여리조트 백상원은 현대적 리조트에 한옥 회랑을 결합한 특별한 작품. 서양식 건축물인 리조트 건물에는 서도호 작가의 작품처럼 한옥 한 채가 뾰족이 튀어나와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다. 21세기 건축물에 18세기 한옥이 타임머신을 타고 충돌한 것 같다. 과거의 것을 똑같이 계승한다고 해서 찬사받는 시대는 지났다. 조정구 건축가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대 한옥이 우리에게 새로움을 선사한다는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한옥에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한옥에서 체험하는 즐거움이 신선하지 않다면 굳이 그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옥의 지속 가능한 매력과 한옥을 다시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옥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건축가들에게는 도전 의식을 고취시킨다. 겉으로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안에 앉으면 상상하지 못한 다른 풍경이 보이는 것, 그것이 한옥의 매력이자 우리 문화의 장점인 것이다.

한옥의 재발견”에 대한 1개의 생각

  1. 죽기전 꼭 한번 한옥에 살아봐야 한다..인상적인 기사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한옥의 아름다움에 빠져 가끔 북촌과 서촌을 걷고는 합니다. 따쓰한 봄날 한옥 처마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새들과 풍경소리도 보고 듣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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