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의 매혹, 일상의 작은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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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3, 2014

에디터 고성연

달콤한 디저트 자체가 럭셔리였던 로마시대에는 얇게 구운 과자가 있었는데, ‘즐기기(placenda est)’라는 어원을 딴 ‘플라켄타’라고 불렸다고 한다. 물론 즐거움에는 ‘절제’가 따라야 하는 법이지만 균형만 잘 맞춘다면 디저트는 일상에 행복을 보태줄 수 있는 작은 사치가 된다. 커피나 각종 차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요즘 한국에서도 수제 과자나 케이크 같은 페이스트리류의 프리미엄 디저트의 인기가 눈에 띌 정도로 높다. 흔히 페이스트리는 정확한 양과 공정을 따라야 하는 ‘과학’이라고들 하는데, 21세기의 디저트 세계는 거기에 현대적인 창의성을 한 줌 보태 다채롭게 진화하는 듯하다.








<삼총사>, <몬테 크리스토 백작>처럼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는 소설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5백여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 마지막 작품은 요리에 대한 책이었다. 전형적인 요리책이라기보다는 서양의 요리와 제과에 대해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곁들여 설명한 <뒤마 요리 사전>에서 식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굶주림에서 비롯돼 허겁지겁 음식에 달려들게 만드는 배고픔, 두 번째는 굶주리진 않았지만 먹을수록 입맛이 생겨 식사를 지속하는 식욕, 그리고 마지막은 맛난 요리를 즐긴 뒤 또 자극을 받는 유혹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 마지막 식욕은 “디저트를 위한 배는 따로 있다”라는 말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을 듯하다. 요리를 즐겨 했다는 뒤마는 이 책에서 꽤 많은 페이지를 디저트에 할애했다. 그는 19세기 사람이었으므로 프랑스에서 전반적인 요리는 물론 디저트 문화가 무척 발달한 시대를 산 행운아(?)이기도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사실 요즘은 당연하게 여기는 달콤한 디저트라는 존재도 예전에는 그 문화가 꽃을 피운 유럽에서조차 럭셔리의 증표였다. 달달함의 원천인 설탕이 귀했기 때문이다. 설탕의 주원료 중 하나로 ‘꿀이 나오는 풀’이라 불리던 사탕수수는 스페인, 시칠리아 등에서 재배됐고, 아랍인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중세에는 설탕 공급이 거의 정체되었는데, 16세기쯤에는 그마나 숨통이 트였다. 꽤 비싼 기호품이긴 했지만 설탕을 사용한 요리나 과자가 많이 나오면서 식문화는 큰 변화를 겪었다. 베네치아에서는 소화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설탕 과자를 침실에까지 가져가 자기 전에 먹었다고 한다. 1572년 지리학자 오르텔스는 <세계 무대의 축도>라는 책에서 “약국에서 아픈 사람을 위해 팔던 설탕을 이제는 식욕을 돋우려고 먹는다. 이제 식품이 됐다”라고 쓰기도 했다.


◀ 콘래드 서울에서 내년 2월 말까지 선보이는 디저트 드링크 ‘시그니처 핫초콜릿’. 뜨거운 우유를 부으면 프랑스 수제 초콜릿 볼이 녹아내린다.







카페 문화와 더불어 꽃피는 디저트 문화

과자 혁명이 16세기 싹텄다면 18세기에는 르네상스를 누렸다. 서인도제도, 카나리아제도, 마데이라제도 등지에 사탕수수를 짓이겨 설탕 원료인 ‘시럽’을 정제하는 공장이 생기고, 설탕이 과잉 생산되면서 공급이 원활해졌다.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18세기에 번성한 카페 문화 때문에 커피와 초콜릿이 유행하자 설탕 소비가 늘어나고 기호 식품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이란 책을 보면 커피는 18세기 사람들에게 정신을 맑게 해주고 피를 정화해주는 만병통치약이라는 믿음을 줬으며 설탕은 영혼마저 녹일 듯한,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고양시키는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설탕을 듬뿍 넣어 만든 케이크나 과자 같은 디저트가 식단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고, 프랑스는 진정한 미식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서울을 보노라면 마치 18세기의 파리 풍경을 닮은 듯한 면모가 종종 눈에 띈다. ‘커피 공화국’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카페가 많아지고, TWG, 살롱 드 테 같은 티 살롱도 속속 들어서면서 이런 기호 음료들의 ‘영혼의 파트너’라고 할 만한 디저트 문화 역시 활짝 피어나는 모양새다. 일례로 마카롱만 해도 전통의 강호 라듀레가 한참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쌍두마차 격이지만 ‘보다 모던하다’는 평을 듣는 유명 브랜드 피에르 에르메도 현대백화점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스테디셀러인 치즈 케이크는 또 어떤가? 지난해 갤러리아백화점의 식품관 고메이494에 문을 연 치즈 케이크 팩토리가 승승장구하고 있고, 신세계와 롯데는 각각 뉴욕의 알아주는 치즈 케이크 브랜드인 레이디M과 주니어스를 들여왔다. 제과와 제빵은 ‘신선함’이 생명이기에 거리의 카페들은 ‘손수 굽는’ 각종 과자와 케이크로 승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코코브루니(Coco Bruni)처럼 디저트를 강점으로 내세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카페는 ‘나만의 맛’을 낼 수 있도록 공장까지 운영한다. 물론 설탕의 유혹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란 걸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식사의 마무리를 맛깔 나게 장식한다든지, 커피나 티의 달콤 쌉사래한 동반자 역할을 하게 한다든지, 아니면 고된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정신적인 자양분으로서 디저트를 ‘소량’으로 ‘만끽’하는 건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즐거움이란 사실 역시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체질적으로 단 걸 거부하는 운 좋은(?) 부류라면 예외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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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에 대한 치명적인 이끌림, 뷔페로 한껏 달랜다

18세기 프랑스 사람들이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매일같이 ‘탐’했던 방식은 지양해야겠지만 특별한 날을 정해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하나의 ‘디저트 문화’가 아닐까 싶다. 요즘 디저트 뷔페가 자주 눈에 띄는데, 하루 정도는 칼로리 부담을 내려놓고 양질의 디저트를 요모저모 경험하고픈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파크 하얏트 서울에서 12월 4일부터 28일까지 제공하는 ‘페스티브 애프터눈 티 뷔페’는 혀가 호강할 정도로 맛나면서도 세련된 디저트를 푸짐하게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오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24층에 자리 잡은 ‘더 라운지’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며 맛볼 수 있는 이 명성 자자한 뷔페에서는 에디아르(Hediard) 티와 함께 상큼한 라즈베리잼을 넣은 이탤리언 도넛 봄볼론치니, 화이트 초콜릿 라임 무스 위에 층층이 쌓아 올린 라즈베리 젤리, 독일 크리스마스 케이크인 마치판 슈톨렌 등 독특하고 다채로운 디저트를 무제한으로 ‘섭렵’할 수 있다. 달달함을 중화하려면 무화과를 올린 시리얼 브레드나 에그 샐러드를 짬짬이 맛보면 된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이 주말에 운영하는 하이티 뷔페도 매력적이다. 이미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 뷔페에는 딸기를 풍성하게 얹은 생크림 케이크, 초콜릿 얼그레이 케이크나 부드럽게 녹아드는 초콜릿 리에주아 같은 달달한 디저트도 일품이지만 고소한 치즈를 채워 넣은 따뜻한 슈나 각종 샌드위치(특히 탐스러운 에클레르에 버섯 같은 달지 않은 식재료를 넣은 샌드위치는 ‘최고’다)는 얼마든지 ‘식사’로도 삼을 수 있다. 이 호텔에 합류한 프랑스 출신 페이스트리 셰프인 세바스찬 코커리는 “한국인들은 유럽인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달기만 한 디저트를 원치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당도를 낮추고,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했다”라고 설명했다.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로 팬을 꽤 확보하고 있는 JW메리어트 동대문의 올다이닝 뷔페 타볼로 24(Tavolo 24)에 가면 디저트 뷔페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디저트 뷔페만 따로 즐길 수도 있다). 티라미수, 머랭, 유자 에클레르 등 다양한 디저트가 마련돼 있으며 새콤달콤한 젤라토도 눈과 혀를 즐겁게 한다. 특히 이 호텔 뷔페의 자랑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특제 컵케이크 코너인데, 혹시 포식을 하고 아쉽게 맛을 보지 못했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배가 잔뜩 부를 확률이 높은 뷔페 고객을 위한 배려인지, 나갈 때 컵케이크가 담긴 작은 상자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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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눈 티의 우아하고 나른한 매혹

프리미엄 홍차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보다 한가하고 나른하게 오후를 보내고 싶다면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세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요즘 웬만한 5성급 호텔은 물론이고 티 살롱의 애프터눈 티 세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애프터눈 티 세트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3단 트레이’다. 홍차와 함께 딸기잼, 그리고 정통 클로티드 크림을 곁들인 따끈따끈한 스콘과 맛깔스러운 샌드위치, 그리고 오색 찬란한 디저트로 구성된 오후의 스낵이 담긴 3단 트레이는 맵시 그 자체로도 운치와 풍미를 보탠다. 특급 호텔이나 백화점 프리미엄 코너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브랜드 TWG는 청담동을 비롯해 세 군데 티 살롱을 운영하고 있는데, 화기애애한 수다를 곁들인 ‘우아한 티타임’을 갈구하는 여성들의 입맛과 발길을 동시에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브런치 메뉴도 인기인 데다가 오후 3시에서 6시까지는 티타임을 다양한 메뉴 구성으로 즐길 수 있는데, 여기에는 TWG 티를 우려내 맛을 냈다는 인기 만점 마카롱을 기본으로 곁들인다. 예컨대 그랜드 웨딩 티를 가미한 TWG 티를 넣은 마카롱은 색상도 예쁘지만 쫀쫀한 식감이 독특하면서도 훌륭하다. TWG의 시그너처 1837 블랙 티를 가미한 블랙 티 & 블랙 커런트, 남성들이 더 좋아한다는 나폴레옹 & 캐러멜, 그랜드 웨딩 마카롱 등 8종류가 있다. 서울 장충동 신라 호텔의 애프터눈 티 세트는 이미 디저트와 티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은 인기 상품이다. 1층에 자리한 ‘더 라이브러리’에서 즐길 수 있는 이 티 세트는 최근 포숑(Fauchon) 브랜드의 티 14종을 추가해 더욱 윤택한 오라를 갖추었다. 영국 정통 스타일의 3단 트레이에 기념일을 맞이한 고객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셀러브레이션 케이크’까지 덤으로 제공하며, 하프와 현악 4중주의 즉석 축하 라이브 공연도 곁들인다. 여의도의 콘래드 호텔 37층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 37 그릴 앤 바(37 Grill & Bar)에서는 ‘전망이 있는’ 애프터눈 티 세트를 제공한다. 탁 트인 창으로 한강을 바라보면서 앙증맞은 프티 디저트 컬렉션을 맛볼 수 있다. 또 신라 호텔과 콘래드 서울의 애프터눈 티 세트는 공통적으로 프리미엄 샴페인도 택할 수 있다. 파크 하얏트 서울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JW 메리어트 동대문에서도 황홀한 디저트의 정수를 골고루 담은 애프터눈 티 세트가 은근한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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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유행 vs 스테디셀러, 우리 입맛에 맞는 장수 디저트의 비결은?

고대와 중세에 희귀했던 단맛을 본 부유층은 도저히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설탕이 부의 상징이자 기호품이었지만 오늘날엔 흔하디흔한 게 디저트다. 중독성이 강한 건 여전하지만 디저트의 구도만 보자면 은근히 품목끼리의 경쟁도 심하고, 소비자도 꽤나 까다롭고 변덕스럽다. 특히 단맛이 덜한 과자류나 과일을 선호해온 한민족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한국 신라 호텔 정흥도 셰프는 “마카롱이 자리를 잡는 데도 아마 15년은 걸렸을 것”이라며 “반짝 유행을 탈 수는 있겠지만 달콤한 디저트로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에는 정통성과 함께 문화적인 맥락을 감안한 현지화가 조화를 이룬 데다 적절한 스토리텔링을 녹인 영리한 마케팅 효과까지 더해져야 ‘대박’이든 ‘스테디셀러’든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페이스트리 부티크를 연 신라 호텔은 이러한 요소들을 감안한 프로젝트인 ‘프렌치 에볼루션(French Evolution)’을 올 초부터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 정통 디저트를 ‘재해석’한다는 의도를 품은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올봄에 선보였던 에클레르. 커스터드와 휘핑크림으로 속을 채운 뒤 초콜릿을 씌운 디저트의 대명사 에클레르를 신맛과 단맛의 균형을 맞춘 9종으로 내놓았고, 이 중 2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가을부터는 요즘 인기가 심상치 않은 다쿠아즈(dacquois)를 다채로운 버전으로 내놓고 있다. 머랭 반죽에 아몬드 가루를 넣은 과자인 다쿠아즈는 프랑스 남서부의 지방색이 스며든 디저트인지라 파리에서도 흔하게 볼 수는 없다(오히려 프랑스 디저트를 더욱 창의적으로 개발하는 혁신 사례가 많은 일본에서 자주 눈에 띈다). 겉은 과하지 않게 바삭하고 속은 푹신하며 고소한 견과류와 부드러운 헤이즐넛 파우더의 향미와 맛난 크림까지 곁들여 식감이 상당히 빼어나다. 신라 호텔의 다쿠아즈 프로젝트에서는 얼그레이, 캐러멜, 마카다미아, 코코넛, 호두 등 여섯 가지 버전을 선보였는데, 한국인의 입맛에도 상당히 잘 맞는다는 반응이다.

차세대 주자는 누굴까?

신라가 내년을 겨냥하는 차기 프로젝트는 ‘여왕의 디저트’라 불리는 생토노레(Saint-Honore′)와 모양새가 닮았다는 이유로 ‘수녀’라는 뜻을 지닌 슈 과자인 ‘를리지우즈(Religieuse)’다. 크림과 과자의 조화가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운 생토노레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진 브랜드 달로와요의 셰프였던 시부스트가 만든 커스터드 크림에 머랭을 합친 과자를 기원으로 한다. 영국 왕실이 즐겼던 한정판 디저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디저트 카페 코코브루니에서도 스토리텔링을 가미하면서도 한국인 입맛에도 어울릴 만한 디저트 시리즈를 내놓는 데 열심이다. 올해는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에 실제로 쓰인 ‘초콜릿 비스킷 케이크’, 여성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오렌지 마멀레이드 파운드케이크, 그리고 아이들의 사랑을 담뿍 받는 피스타치오 & 초콜릿 머랭 등으로 호응을 얻었고, 내년에도 야심작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시그니처 핫초콜릿’ 드링크로 디저트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콘래드 서울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프랑스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 발로나의 수제 초콜릿 볼에 따뜻한 우유를 부으면 유리잔 안에 들어있는 마시멜로와 함께 보글보글 녹으며 근사한 핫초콜릿 드링크가 탄생하는데, 12월부터 내년 2월 말까지 선보인다. 이와 같이 나오는 부드러운 미니 초콜릿 케이크 볼도 의외로 달다는 느낌을 많이 주지 않는 데다 맛도 일품이다. 이러한 고급 초콜릿 드링크는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아침 식사로 마실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파리의 부르주아들은 ‘다방 커피’처럼 외상 장부를 달아두고 초콜릿 드링크를 배달시켰고, 심지어 따뜻한 초콜릿을 담는 서양배 모양의 특제 은 주전자까지 존재했다니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디저트의 세계 역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무궁무진한 매력과 스토리가 담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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