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나무 벗 삼아, 깊고 푸른 에게해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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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2, 2025

글 고성연(그리스 현지 취재)

아만조에(Amanzoe) in 그리스

아만(Aman)이라는 리조트를 온전히 누리는 경험은 자연스럽게 문화적 지평을 넓히는 연결 고리가 되기도 한다. 숨겨진 천혜의 자연 속 은신처를 짓듯 유독 외딴 곳에 자리 잡는 아만 특유의 남다른 ‘위치 선정’으로 일단 지리적인 호기심부터 자아낸다. 이제는 뉴욕, 일본, 방콕 같은 글로벌 주요 도시에서도 아만을 접할 수 있지만, 원래는 1988년 태국 푸껫에 처음 문을 연 이래 마치 지구촌을 아우르는 탐험에 나서듯 낯선 지명에, 인적도 드문 땅만을 무대로 삼아 이색적인 파라다이스를 만들어온 독보적인 브랜드가 아니던가. 그리스 남동쪽 펠로폰네소스반도의 해안 도시 포르토 헬리(Porto Heli)에 드넓게 자리한 아만조에(Amanzoe)는 이 같은 아만의 고유한 정수를 잘 담아낸 유럽의 터줏대감 같은 존재다. 짙푸른 심연이 지긋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요새에서 평화의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우아한 그리스 여신 같은 자태를 뽐내는데, 운이 닿으면 이곳의 청정한 하늘을 빛의 조화로 담아내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몰입형 작품을 오롯이 체험하는 기회를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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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니코스 카잔차키스
‘언덕의 정신’을 잠시나마 벗하러 가는 여정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 30분 남짓 소요되는 아만조에(Amanzoe)로의 여정. 장거리 비행을 한 직후라면 아마도 그 자체로 다소 부담스러운 이동일 수도 있다. 헬리콥터로는 넉넉하게 30분 정도면 가뿐히 오간다고 하는데(실제로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사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초행자라면 자동차 여행도 꽤 괜찮다. 필자의 경우에는 아예 공항 근처에서 1박을 한 터라 기진맥진한 상태가 아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곱디고운 입자로 황홀하게 부서지는 햇살 속 빛나는 올리브나무의 세레나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차창 밖 고마운 풍경 덕분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떠나 중간에 유적지를 쉬엄쉬엄 들러 가는 드라이브를 선호하는 이들도 많다. 펠로폰네소스 지역으로 가는 길 곳곳에 그리스 문명의 찬란한 잔재가 숨 쉬고 있으니 그저 눈으로만 지나칠 이유가 없다. 청록에 사파이어를 뿌려놓은 듯한 색상만으로도 시선을 매혹하는 코린토스 운하라든지 그리스의 첫 수도인 아담한 항구도시 나플리오 등을 기억해둘 법하다.
햇빛이 올리브색처럼 느껴질 만큼 녹음 짙은 경치를 한껏 감상하면서 현지인들이 아침으로 즐긴다는 따끈한 치즈 빵으로 배를 채우니 살짝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갑자기 사방이 시원해진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을 배경으로 남빛 바다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360도 파노라마 뷰’ 정도의 단출한 수식어로는 표현해낼 수 없는 탁 트인 개방감을 품은 바다의 위엄이란! 이곳에서 바라보는 에게해의 자태는 (결국 남쪽으로는 연결되는) 지중해와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지중해는 끝도 없는 수평선을 품고 상대적으로 좀 더 온유한 파장을 멀리 멀리 보내는 망망한 ‘물의 대지’ 같다면, 에게해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닌 채 인간의 온갖 사연을 ‘정중동’의 차분한 기상으로 달래는 ‘신비롭고 거대한 연못’ 같다고나 할까, 특히 산과 절벽이 많은 그리스의 특성상 바다를 ‘굽어보는’ 기백 어린 전망은, 해사한 다정함이 밴 듯한 올리브나무 숲과는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조미다. 저도 모르게 연신 탄성을 내뱉자, 유쾌한 성격의 기사는 “사실 우리 그리스 사람들한텐 이게 흔한 풍경이긴 해요”라며 자랑 섞인 표정으로 싱긋 웃는다. 아름다운 풍광과 보석 같은 섬들, 분노를 유발하는 정치 등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윽고 아만조에가 2012년부터 단단히 터를 잡고 있는 아르골리스만의 포르토 헬리(Port Heli)에 당도했다. 맑은 푸른 해안을 밑에 두고, 경사를 타고 올라가면서 살짝 군도형 건축처럼 독채들이 흩어져 있고, 오르막 꼭대기에 레스토랑, 상점, 스파 등의 주요 시설이 자리한, 그 자체로 작은 ‘리조트 마을’이라고 칭해야 어울리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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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의 웅장한 세련미와 자연의 정기를 품은 ‘신성한 고요’
‘신들의 언덕’이라 불리는, 그리스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원래 고유명사가 아니다.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 도시마다 내부 요새 같은 역할을 했다. 당연히 방어막 역할을 하는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면 도시가 훤히 보인다. 비탈길 위에 자리한 아만조에는 이를 은근히 닮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건축가 에드 터틀(Ed Tuttle)이 설계한 이 고아한 리조트의 정상부는 ‘올리브 그린’으로 물든 자연과 끝없이 열려 있는 에게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파노라믹 뷰’를 뽐낸다. 일렬로 세운 둥근 곡선의 긴 돌기둥들이 여기저기에 정연한 배열을 이루고, 시원한 회랑이 고전적인 조화를 자아내는 건축적 풍경을 대하니, 어째서 아만조에를 묘사할 때 ‘아크로폴리스’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붙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기둥들 사이로 분수가 흐르고, 리셉션 공간, 부티크 건물, 스파와 요가 파빌리온, 레스토랑 등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으며, 그 중심에는 녹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25m 길이의 아름다운 풀이 있는데, 바다를 은은하게 감싸다 사라져버리는 일몰의 낭만을 벗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전부 독채로 이뤄져 있는 아만조에의 객실은 크게 파빌리온(38채)과 빌라(12채), 비치 카바나(4채)로 나뉜다. 숙소가 아래쪽에 위치할수록 해변과 가까워지고, 경사를 타고 올라갈수록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제각각 다른 전망을 갖추게 된다. 소담스러운 정원과 전용 풀을 갖춘 파빌리온이나 빌라의 디자인은 안정감 있으면서도 내·외부의 경계가 물 흐르듯 유연하고 열린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언뜻 봐도 위용이 대단한, 9개의 객실을 지닌 빌라도 있지만 세계 곳곳에 있는 36개 아만 리조트 중에서 아만조에만이 내세우는 독특한 경험은 ‘제임스 터렐 빌라’로 알려진 No. 31 빌라에서만 누릴 수 있다. ‘빛의 연금술사’로 일컬어지는 터렐이 선사하는 몰입적 체험 작품으로, 2017년 여름 No. 31 빌라의 부지 내에 별도로 마련된 6×6m 정육면체 공간에 영구 설치된 작업인 ‘스카이 플레인(Sky Plain)’이다. 뚫려 있는 천장의 사다리꼴 프레임은 캔버스처럼 펠레폰네소스반도의 하늘을 담아내지만 일몰과 일출 시간대에는 다채로운 색의 조합을 변화무쌍하게 펼쳐낸다. 사다리꼴과 그 테두리 바깥의 색 배합이 청록-보라, 파랑-다홍, 스카이 블루-핑크 등으로 시시각각 바뀌는 ‘빛의 앙상블’은 무심코 바라보노라면 천진난만한 동심을 이끌어내는, 참 단순하면서도 신비로운 작업이다. 이 빌라를 예약하면 당연히 이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음은 물론이지만 ‘공실’일 때는 다른 손님들도 다이닝과 곁들인 스카이 플레인 체험을 예약할 수 있다. 이미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던 시기에 아만조에를 찾은 필자는 새벽녘은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일몰 시간대에는 오롯이 1시간가량을 색 팔레트의 마법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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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삶’이란 뜻을 지닌 아만조에는 이렇듯 명상적인 터렐의 작업도 품고 있지만, ‘느슨한’ 웰니스 리트리트로서의 명성에 걸맞은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다. 소믈리에와 함께하는 와인 테이스팅, 그리스와 아시아의 전통적 노하우를 녹인 스파 프로그램, 천혜의 자연을 전망으로 삼은 신전 같은 파빌리온에서 하는 요가, 필라테스 세션, 그리고 테니스(아만의 글로벌 웰니스 앰배서더인 ‘테니스 전설’ 마리아 샤라포바가 프로그램을 이끈 적도 있다)도 즐길 수 있다. 다양한 수상 스포츠와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비치 클럽’도 포진하고 있는데, 정상부에서 클럽에 있는 해변까지의 오르막-내리막길을 ‘버기’로 이동하는 데 10분 정도 소요된다. 상당수 고객은 해변 인근에 있는 작은 섬(거의 도보로만 다니는 ‘힐링’ 그 자체인 작은 섬마을도 있다)이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을 방문하기도 한다. 이미 포르투 헬리까지의 머나먼 여정 속에서 많은 에너지를 써버린 필자는 나만의 작은 머그를 만들어보는 ‘세라믹 스튜디오’ 세션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닌 도자 스페셜리스트와 함께했는데, 손재주가 영 없음에도 말랑말랑한 흙의 촉감을 느끼면서 진행하는 조형 작업은 의외의 힐링을 선사했다. 아마도 무더운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러 그리스의 추억이 옅어질 무렵이면, 흙이 제대로 마르고 (선생님의 손길로 더해진) 윤을 살짝 머금은 ‘아만조에 머그’를 곱게 싼 소포가 도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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