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kohama triennal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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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 2017

에디터 고성연

올해는 지구촌 곳곳에서 굵직한 현대미술 행사가 유난히 많이 열린 아트 생태계의 ‘빅 이어(big year)’다. 최근 약 15년의 세월에 걸쳐 3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 축제 ‘트리엔날레(triennale)’ 전성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일본에서는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관객 친화적인 콘텐츠는 무게감이 남다른 미술 담론이나 화려한 규모를 내세우는 블록버스터급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부담 없이 즐기면서 예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고 서로 연대를 다질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자본을 키우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나름 주목받을 만하다. 특히 21세기 들어 창조 도시로 새롭게 꽃피운 아름다운 항구도시 요코하마가 무대라는 점은 강점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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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의 아트 생태계에는 유독 ‘트리엔날레(triennale)’, 다시 말해 3년마다 열리는 현대미술 축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00년 니가타 현의 산골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모범 사례로 꼽히는 ‘에치고쓰마리(Echigo-Tsumari) 아트 트리엔날레’가 시작됐고, 이듬해인 2001년에는 도쿄 인근의 항구도시 요코하마를 무대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Yokohama Triennale)’가 막을 열었다. 그리고 2010년에는 혼슈 중부의 ‘아이치 트리엔날레(Aichi Triennale)’와 요즘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비롯해 가가와 현 세토내해(瀨戶內海)에 모여 있는 여러 섬을 아우르는 대규모 트리엔날레 ‘세토우치 국제예술제(Setouchi International Art Festival)’가 각각 생겨났다.
올해는 6회를 맞이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가 펼쳐지고 있다. 도쿄에서 지하철로 1시간 내에 갈 수 있는 요코하마는 2년 뒤면 개항 1백60주년을 맞이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 항만도시로, 지리적 이점을 살린 무역뿐만 아니라 공업도 발달해왔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는 문화, 예술, 관광의 DNA를 갖춘 ‘창조 도시’로도 거듭나고 있다. 그 창조적 행보에는 현대미술을 매개체로 지역 주민의 연대를 다지고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문화적 플랫폼 역할을 해온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지분도 분명 있다. 여름 기운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 8월 4일에 개막해 11월 5일에 석 달간의 여정을 갈무리하는 축제 현장을 직접 찾아가봤다.

‘크리에이티브 요코하마’ 프로젝트
고령화사회에서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로 황폐해진, 그래서 인적 뜸해진 시골 마을이 현대미술과 함께 생기를 되찾는 ‘재생의 미학’. 에치고쓰마리나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바로 이 같은 예술을 토대로 한 지역 재생이라는 맥락에서 꽤 빈번히 인용되는 사례다. 큰 틀에서 보면 일종의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맞지만, 요코하마의 경우에는 결이 좀 다르다. 최신식 고층 빌딩과 개항 당시의 서양식 건물 등 근대 건축물이 함께 어우러져 있고, 전시 컨벤션 사업을 통칭하는 이른바 ‘마이스(MICE)’ 산업이 꽤 발달한, 인구 3백70만 명이 넘는 꽤 크고 인기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다(요코하마는 맥주 브랜드 ‘기린’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변화와 활기를 갈구한다는 점은 같다. 요코하마는 도쿄의 위성도시에 머무르지 않고 공업 기지 이미지를 벗어나 미래 지향적인 항구도시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오랫동안 품고 있었다. 특히 21세기에 접어들면서는 문화, 예술, 과학기술 등 창의성이 강조되는 핵심 분야의 인재와 콘텐츠에 투자해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며 시민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자는 취지에서 당시 유럽 등지에서 이미 설득력을 얻고 있던 ‘창조 도시론’을 실천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2004년 요코하마 시 차원에서 밀어붙인 ‘크리에이티브 요코하마’ 정책이다. 슬럼처럼 낙후된 원도심의 일부 지역에 갤러리, 카페, 서점, 아티스트 스튜디오 등을 들여놓으면서 ‘환골탈태’시키고 역사성을 지닌 옛 건물이나 낡은 항만 시설을 문화적 거점으로 활용하며 창조적 영감을 공유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행사를 풍성하게 펼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쏟아부었고, 그 결과는 자못 성공적이었다. 물론 도심에 치우친 정책이었다는 점, 문화 예술을 도구로 이용하다 보니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는 역효과가 생겼다는 점 등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요코하마 재생 프로젝트의 성공작으로 여겨지는 도심은 유유자적 거닐면서 문화적 탐험을 하기에 흥미로운 곳임은 틀림없다. 아기자기한 레스토랑과 상점, 갤러리, 미술관 등이 넘쳐나는 데다 조금만 시야를 돌리면 넓고 푸른 바다가 넘실대는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역시 활기 넘치는 미나토미라이 역 근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올해 행사의 타이틀은 ‘섬과 별자리와 갈라파고스(Islands, Constellations & Galapagos)’. 연결성(connectivity)과 고립(isolation), 공존(co-existence), 다양성(diversity)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상반되는 가치관이 복잡다단하게 얽힌 작금의 세계를 고민해본다는 취지를 담았다고. 언뜻 좀 뻔하게 느껴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연결돼 있으면서도 정작 깨진 파편처럼 따로 노는 현시대의 모습을 곱씹어볼 수 있게 하는 주제다. 크게 요코하마 미술관(Yokohama Museum of Art), 요코하마 아카렌가 창고 1호관(Yokohama Red Brick Warehouse No.1) 두 군데가 주 전시장이고, 요코하마 개항기념회관(Yokohama Port Opening Memorial Hall)을 비롯해 다양한 공간에서 소규모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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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선 붉은 벽돌 소재의 창고 전시장
바닷가를 옆에 낀 아카렌가 창고는 요코하마 최고 명물 중 하나다. 바샤미치 역에 내려 바다 쪽을 바라보면서 잔디밭을 걷다 보면 인상적인 붉은 벽돌 건물이 한 채 나오고, 그 뒤에 똑 닮은 건물 한 채가 더 있는데, 이곳 2, 3층을 트리엔날레 전시장으로 사용한다. 원래 1913년에 지은 창고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만큼 다소 거칠고 어두침침한 공간에 현대미술이 빡빡하지 않게 펼쳐져 있는 느낌이 매력적이다. 특히 관객이 작품 의도를 직접 체험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미디어, 설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일례로, 아카렌가 창고 3층에서는 버려진 합판 등 재활용품과 전자 기타, 비디오 등이 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범상치 않은 음악과 영상을 빚어내는 광경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뭔가 우울하고 기계적인 감성을 자아내는데도 정작 지켜보는 어린아이들로 하여금 박수를 치면서 즐거워하게 만드는 ‘반전’의 힘이 있다. 개인이 어떻게 소비사회와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는 도쿄 출신의 작가 우지노(UJINO)의 ‘플라이우드 신치(Plywood Shinchi)’란 작품. 베를린을 무대로 활동하며 인간의 몸과 공공 조각의 관계를 파고드는 독특한 작업을 하는 작가 크리스천 얀코프스키(Chiritian Jankowski)의 작품 시리즈를 감상할 때는 실제로 마사지 침대에 누워서 바닥에 설치된 영상을 보면서 ‘기(氣)’를 느껴볼 수도 있다.
2층 전시장은 더 흥미롭다. 작품에 대한 선호는 개인의 취향이라지만, 많은 이들이 꼽은 백미는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 몇 겹의 커튼을 젖혀야 볼 수 있는 멀티 스크린 영상 작품 ‘The Visitors’. 아코디언을 켜면서 노래하는 젊은 여인, 욕조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남성, 커다란 피아노를 연주하는 두 남성…. 저마다 다른 공간과 연주자를 담은 9개 스크린에서 나오는 음악과 영상이 처음에는 각기 따로 노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한몸인 듯 폭발적인 연결성을 뿜어내는데, 마치 라이브 공연장에 온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퍼포먼스 아티스트 라그나르 캬르탄손(Ragnar Kjartansson)의 작품이다.
힘찬 붓질과 강렬한 색감으로 인간관계를 표현한 도시유키 고니시(Konishi Toshiyuki)의 회화 작품은 어릴 적 가족과 친구 사진을 바탕으로 했다는데, 햇살이 들어오는 넓은 창과 대비를 이루면서 외려 더 고독하고 슬퍼 보인다. ‘A Group of Solitude’라는 제목과 잘 어울리는 작품. 관객이 종이로 된 깡통 헬멧을 쓰고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 사고 현장의 최근 모습을 가상현실처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이곳 아카렌가 창고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2015년 12명의 다국적 아티스트와 큐레이터가 방사능 오염이 심한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면서 시작된 ‘Don’t Follow the Wind’라는 프로젝트를 영상으로 만나는 셈이다. 현장이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지속할 예정이라는 이 프로젝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요코하마 미술관을 수놓은 다채로운 무게
트리엔날레 기간에 미나토미라이 역의 커다란 쇼핑몰 건너편에 자리한 요코하마 미술관은 단번에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건물 외벽에 구명보트와 구명조끼를 설치함으로써 미술관 자체가 작품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멀리서도 시선을 절로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SNS상에서 화제를 몰고 왔던 중국 출신의 스타 작가 아이웨이웨이(Ai Wei Wei)의 작품 ‘Safe Passage’(2016)와 ‘Reframe’(2016). 전 세계 난민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메시지를 담았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설치 작품이다. 반체제 예술가로도 유명한 아이웨이웨이는 지난 2015년 베를린으로 주거지를 옮긴 뒤 난민 사태에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전시장(미술관)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공간 구석구석까지 현대미술 작품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알찬 풍경이 압도한다. 먼저 1층 로비에는 1천6백 개 대나무를 독자적인 기법으로 짠 존재감 넘치는 설치 작품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작가 조코 아비안토(Joko Avianto)의 ‘The Border Between Good and Evil is Terribly Frizzy’(2017)라는 작품. 또 많은 이들의 시선을 따라 벽 위쪽을 올려다보노라면, 한 남성(작가의 도플갱어)이 벽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미술계 블랙 코미디언으로 통하는 이탈리아 아티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무제(Untitled)’. 죽음과 고독을 다룬 작품인데, 그 밑에서 방긋방긋 웃으며 사진 찍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위층으로 올라가 전시실을 둘러보노라면 가짓수로는 볼거리가 꽤 많지만 강력한 한 방보다는 아기자기한 구성에 더 신경 쓴 듯 보인다. 무엇보다 공간에 좀 더 숨통을 터놓았으면 한결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느껴진다. 그래도 흥미로운 작가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을 또 다른 공간에서 마주하는 재미는 있다. 인공지능(AI)이 지배하는 먼 미래에 일본의 시바견이 폐허가 된 도시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담은 시뮬레이션 작품 ‘Emissary Forks at Perfection’(2015~16)을 내놓은,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작가 이언 쳉(Ian Cheng), 시공간을 초월한 ‘다른 공간’을 상상하게끔 하는 작품 ‘터널(Tunnel)’(2016)의 필리핀 작가 마크 후스티니아니(Mark Justiniani), 고독한 인간의 영혼을 강렬하게 포착한 듯한 그림들이 인상적인 일본 작가 스스무 기노시타(Kinoshita Susumu) 등의 이름이 기억에 남을 듯했다. 또 아랍 세계의 관점에서 십자군 전쟁을 유럽 전통 인형극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이집트 작가 와엘 샤키(Wael Shawky)의 영상 작품(‘Cabaret’), 난민 문제를 다룬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작품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굵직한 행사에서 선보인 ‘Green Light’(2016) 등 다채로운 작가들의 최근 화제작을 멀리 극동 아시아에서 다시금 마주하는 반가움, 이런 게 바로 국제 미술전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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