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wave korean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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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1, 2011

글 고성연 기자

유럽 무대를 발판으로 도약하고 있는 한국의 빛나는 젊은 디자이너들. 지난가을 잇따라 개최된 파리와 런던의 세계적인 디자인 박람회에서는 이들의 활약이 그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해마다 2만4000명 규모의 디자인 인력이 배출되고 있지만 아직은 ‘코리아’라는 브랜드가 디자인 세계의 변방으로 여겨지고 있는 데다 국력에 비해서는 존재감마저 미미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낸 흐뭇한 결실이 아닐 수 없다. 단지 미래의 기대주로 촉망받는 수준에서 벗어나 현재 진행형으로 알차게 여물어가고 있는 창조적 영혼들의 패기 넘치는 도전이 아름답고 유쾌하다.


  

 

      

 


“한국 부스에 가봤어요? 젊은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고 재치가 번뜩이는 작품이 많아서 정말 흥미롭던데요.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회 최고의 부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지난 9월 초 프랑스 파리의 노르 빌팽트(Nord Villepinte) 전시관에서 열린 홈 인테리어 박람회 메종 오브제(Maison & Objet)에 참가한 네덜란드 디자인 업체 레이지 잭(Lazy Jack)의 대표 바네사 반 켐펜은 서울 출신인 필자와 만나자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메종 오브제에서 다양한 최신 트렌드를 접할 수 있는 7홀 ‘나우! 디자인 아 비브르(Now! Design Vivre)’에 자리 잡은 ‘서울 디자이너스 파빌리온(Seoul Designers Pavilion)’.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의 지원으로 파리에 온 디자이너와 디자인 업체 18개 팀이 정성스럽게 꾸민 부스는 실제로 많은 관람객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인기 장소였고, 세계 각국 바이어들의 러브콜도 쏟아졌다. 이번 행사의 자문위원을 맡았던 김동욱 폴리엔터프라이즈 대표는 “7홀 전체 부스 중 방문객 수 1위를 차지했다”며 “한국 디자인엔 위트가 있고, 다채로우며, 기술적인 완성도도 높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파리의 한류 열풍을 이어갈까, 서울발 디자인 웨이브

전시회 첫날에 이미 판매 계약을 성사시킨 쾌거의 주인공은 2명의 여성 디자이너. 우선 우아한 장신의 외모부터 확연히 눈에 띄는 김빈 디자이너가 선보인 ‘메이드 오브 체어(Made of Chair)’는 한우의 여물용 볏짚으로만 만든 안락의자로 지나가는 이들로 하여금 서울시의 파빌리온에 자연스럽게 눈길을 돌리도록 유도하는 디자인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자연 소재가 주는 정겹고 편안한 느낌과 심미적 안정감이 이뤄낸 조화로움은 마치 한 편의 예술 작품 같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보기에만 좋을 것 같지만 압축한 볏짚의 단단함과 볏짚 다발 특유의 탄성 덕분에 안락감을 제공한다. 지식경제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후원하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차세대 디자인 리더’로 두 차례 선발된 경력이 있는 김씨는 독일의 유기농 레스토랑 등에서 주문이 밀려들어오고 있다면서 “좋은 품질의 볏짚을 찾아 구해야 하고 제작 시간도 꽤나 소요되지만 어떻게든 해봐야죠”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에 못지않게 인기를 모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은 동그란 통이 달린 커다란 클립을 책상이나 선반에 집게 핀처럼 간단히 부착할 수 있는 방식의 컵 받침대 ‘드링클립(Drinklip)’. 메종 오브제가 끝난 뒤 런던으로 건너가 100% 디자인 전시회에도 참가한 김씨는 이 제품으로 2만5000개의 쏠쏠한 판매고를 올렸다. ‘어나더 세라믹(Another Ceramic)’이라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김하윤 디자이너의 활약도 눈부셨다. 포크, 나이프, 스푼 등 식기를 거꾸로 매달아 조명으로 활용한 ‘커틀러리 샹들리에(Cutlery Chandelier)’, 엎질러진 우유를 시각적으로 응용해 접시-주전자 세트와 머그-잔 받침 세트인 ‘스필 밀크(Spill Milk)’ 시리즈를 디자인하는 등 재미난 발상으로 주목받은 그는 프랑스의 유명 편집 숍인 메르시(Merci)와 계약을 맺었고 이탈리아 업체와도 라이선스 계약을 진행하고 있다. 펠트 소재로 캐비닛과 의자를 만들고 옷처럼 벨트와 단추로 장식한 디자이너 그룹 캄캄의 ‘드레스트 업 스툴(Dressed up Stool)’과 ‘참(Charm) 벤치’는 마레 지구의 갤러리 보스켈(Voskel)의 전시회에 초청되기도 했다.

소품에 강한 디자인 코리아

한국 디자이너들은 소품 디자인에 강하다. 예컨대 가격 대비 질을 따져볼 때 해외의 웬만한 문구용품은 눈에 안 찰 정도다. 요새 국내외 디자인 업계의 스타 브랜드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알리프(Alife)도 소품 디자인 업체다. 그리고 알리프를 설립한 엄세영 대표는 7여 년 전 파리의 메종 오브제에서 해외 진출 기회를 성공적으로 얻어낸 ‘디자이너 1호’다. “제가 2004년에 이곳에 처음 왔을 땐 정말 막막했죠. 전시 노하우가 전무했던 터라 원자재를 짊어지고 와 현지에서 조립하는 등 엄청 고생했거든요.” 올해도 당당하게 단독 부스를 차리고 메종 오브제에 참가한 엄 대표는 이렇게 회상했다. ‘제2의 엄세영’이 될지도 모르는 후배 디자이너들의 행보도 눈길을 끈다.
남상수 씨가 이끄는 어프리(Appree)는 사무 공간에서 자연을 느끼도록 나뭇잎 모양으로 만든 포스트잇 ‘리프-잇(Leaf-it)’ 등을 내세워 메종 오브제를 찾았다. 앞서 소개한 서울 파빌리온을 통해서도 소품 디자인의 경쟁력이 입증됐다. 귀여운 유령이 연상되는 반투명한 기름종이 포스트잇 ‘고스트-잇(Ghost-it)’과 LED 클립을 출품한 이성호 씨, 생김새는 물론 향까지 과자를 닮은 메모지와 껌 포장지 모양의 냉장고 자석 등 발랄한 아이디어로 웃음을 선사한 페코 마트(Peco Mart)가 인기였다. 페코 마트는 스페인 구겐하임미술관 아트 숍에 입점한 데 이어 프랑스 편집 숍의 원조로 불리는 콜레트(Colette)와도 계약을 체결했다. 요즘 추세를 반영하듯 스마트폰 액세서리도 시선을 모았다. 한국에서도 이미 ‘대박’을 터뜨린 곽미나 씨의 토끼 귀를 닮은 아이폰 케이스 ‘라비또(Rabito)’는 파리에서도 인기 행진을 계속했으며, 인체에 무해한 플래티넘 LSR 소재를 사용했다는 스튜디오 오오 팩토리의 스마트폰 거치대 ‘모바일 테일(Mobile Tail)’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밖에 평면에 세워놓을 수 있는 입체적 구조의 가위 ‘크로코(Croco)’, 점자를 배우지 않은 시각 장애 아동들이 사물의 색을 연상하며 인지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고안한 필기구 ‘필러(Feelor)’도 흥미로웠다.

런던에서도 이어진 창조적 영혼들의 눈부신 활약

메종 오브제가 화려한 막을 내린 지 열흘쯤 지난 9월 22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된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의 핵심 행사 100% 디자인 런던(100% Design London). 각국이 저마다 명예를 내걸고 자웅을 겨루는 ‘국가관’을 특히 눈여겨보게 되는 전시회다. 올해 한국관은 2008년부터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지원으로 매년 꾸준히 100% 디자인 런던에 참가해온 이래 가장 두드러지게 빛나는 모습을 보였다. 우수 디자인 기업 20개와 차세대 디자인 리더 5명이 자리를 함께한 한국관은 100% 디자인 런던에 참가하는 ‘블루프린트 어워즈(Blueprint Awards)’의 최고 부스 후보에 올랐으며 특별 추천상을 받았다. 한국관을 통해 전시회에 참가한 디자이너들의 성과도 뛰어나다. 올해 영국 왕립예술학교(RCA)를 졸업한 김기현 디자이너는 ‘1.3체어’라는 경량 의자로 블루프린트의 ‘최우수 소재상(Best Use of Materials)’을 한국인 최초로 거머쥐었다. 무게가 1.28kg에 불과한 이 의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빨랐던 영국산 폭격기 ‘DH.98 모스키토’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이 폭격기의 기체에는 발사나무와 합판을 사용했다고 한다. 연한 색상, 따뜻한 질감, 부드러운 촉감을 지닌 발사나무는 6~7년 만에 21m 가까이 자라고 직경 6m에 이를 정도로 성장이 빠르다. 이런 점에 매료된 김씨는 무르다는 단점을 압축 성형으로 보완해 생산성 높은 친환경 목재의 해법을 제시했다.

범지구적 고민을 담은, 그리고 참신한 해결책까지 제시한 디자인

한국관에서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심미성이나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보다는 환경과 사회문제를 생각하는 고민과 배려의 흔적이 엿보이면서도 디자인 측면에선 군더더기 없이 승화된 작품들이었다. 차세대 디자인 리더 박지원은 일상에서 기부를 실천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1/2 저금통’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반원형의 이 저금통은 검정과 하양으로 색의 대비를 이루는 두 칸으로 균등하게 나눠져 있는데 하나는 ‘나를 위한 저금’, 다른 하나는 ‘타인(어려운 이웃)을 위한 저금’을 뜻한다. 2개가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시소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도록 고안됐기 때문에, 이 저금통을 예쁘게 바로 세우려면 나를 위해 저축한 만큼 남에게도 베풀어야 한다.
벌목한 재료를 쓰지 않고 자연재해로 쓰러진 고사목이나 제재소에 버려진 나무를 재활용해 만든 권재민 씨의 조명 ‘크랙 볼 펜던트 램프(Crack Bowl Pendant Lamp)’도 디자인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좋은 예다. 환경을 생각한 소재의 사용과 더불어 나무의 변형으로 생기는 틈을 빛이 새어 나오는 ‘자연스러운 갈라짐’을 보여주는 조명의 미학적 요소로 승화시킨 발상의 전환이 매력적이다. 아크릴 막대 4개의 길이를 달리해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무드 조명 ‘엠버(Ember)’를 내놓은 성정기 디자이너의 ‘긍정 시리즈’는 환경을 생각하는 작품이란 점에서는 같지만 실제로는 사용자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일례로 ‘불편한 수도꼭지’라는 작품은 물이 나오는 꼭지가 흔히 그렇듯 아래쪽이 아니라 사용자를 향하고 있어 세게 틀면 옷이 젖을 수도 있다. 낭비를 막자는 메시지다.

디자인을 통한 문화적 격상, 과연 가능할까?

이처럼 다채로운 창조성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의 선전은 고무적이다. 그것도 삼성이 일본 브랜드인지, 한국 브랜드인지 헷갈려 하는 이들이 아직도 꽤 많은 유럽에서 말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장기간 지속돼온 정부의 지원이 이제야 빛을 발하기 시작한 느낌이다. 단지 상을 타고 계약을 성사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적인 미’나 ‘글로벌한 정체성’과 같은 구호를 의식하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소양과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몰두하는 ‘쿨하고 의연한’ 젊은 인재가 점점 많이 배출되고 있다는 점이 참 다행스럽다. 저마다 스스로에게 집중할 때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유발하는 공해가 줄어들고 창조적 다양성의 토대를 탄탄히 다질 수 있기 때문. 물론 정부 차원의 지원이 반드시 약으로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분별한 혜택은 세금 낭비이며 오히려 디자이너의 자립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문화적 파워는 20세기 후반에 이뤄진 정부 차원의 지원에 크게 힘입은 것이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건 현지 시장에 대한 보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대상 인력에 대한 검증 작업, 그리고 기술과 디자인, 비즈니스의 삼박자를 아우르는 체계적인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원이다. 메종 오브제에는 한 국가의 대표급 크리에이터들이 신진 디자이너들을 추천해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창구 역할을 해주는 ‘레 탈랑 아 라 카르트(Les Talents a la Carte)’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올가을의 주인공은 일본이었다. 어느 날 한국에 이러한 기회가 주어질 때, 씁쓸한 미소 대신 함박 웃음을 지을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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