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aller, Greener, Wi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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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 2014

에디터 고성연

속도에 대한 욕망, 신분에 대한 과시를 반영하는 자동차. 독일의 카를 벤츠가 가솔린 자동차를 완성하며 이 기계 미학의 결정체를 발명했지만, 실제로 양산을 실현한 건 미국 디트로이트의 랜섬 E. 올즈였고, 대량생산의 시대를 연 건 헨리 포드였다. 언젠가부터 친환경과 콤팩트라는 키워드를 달고 다니는 자동차는 이제 엔진 대신 모터, 가솔린 대신 전기를 새로운 근간으로 삼아 일각의 주장처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21세기 도시 인프라의 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될 것인가? 프리미엄 자동차들의 진화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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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명저를 남긴 영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 존 버거의 말처럼 옷과 음식, 자동차, 화장품, 목욕, 그리고 햇빛은 그 자체로서 즐겨야 할 ‘실질적인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분류에 해당되는 ‘의식주형 물건’과 그 물건을 소비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자본주의의 조작에 이끌리는 ‘럭셔리’를 구별했다. 하지만 옷은 패션이라는 범주로, 화장품은 스킨케어와 웰빙이라는 범주로 실질적인 필요성의 경계를 넘어서도 얼마든지 ‘과잉의 지름신’을 불러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물질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소유물을 실제로 사용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기꺼이 자본주의의 조작에 항복할 만큼 사물의 유혹은 치명적이니까. 이 점에서 자동차라는 물건은 좀 다르긴 한 것 같다. 일상에 필요한 물건이면서도 호사나 이미지를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이기도 한 이중적인 면모는 분명 갖추고 있지만 옷처럼 수집하듯 사들이기는 쉽지 않은 물건이다. 아마도 가격 자체도 만만치 않지만 그보다는(자동차 한 대 값의 럭셔리 백이나 옷이 흔한 걸 보면) 첨단 기계 미학이 뒷받침하는 정체성이 주는 육중한 존재감과 물리적인 공간의 부담감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 아닐까.
속도에 대한 욕망을 반영한 기계, 최소의 에너지로 합리적인 이동을 가능케 하는 도시 인프라로
그런데 요즘 자동차를 향한 시선에도 살짝 변화가 감지되는 것 같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동경이 수그러든 건 아니지만 ‘일상의 도구’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자동차를 보다 현명한 필수재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일본 디자인계의 구루인 하라 켄야는 그의 최근 저서 <내일의 디자인>에서 “차량은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도구가 됐다. 따라서 차량에 요구되는 것은 기능과 효율, 그리고 이 양자를 부족함 없이 담아내는 디자인”이라며 유럽과 일본을 필두로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차량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그 변화의 배경으로 이동, 통신을 포함한 거대한 도시 시스템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자동차의 근간이 엔진에서 모터로, 가솔린에서 전기로 바뀌고 있는 데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차량이 단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원활한 교통 체계를 좌지우지하며 얼마든지 시스템 차원에서 제어할 수 있는 ‘혈류의 요소’가 되어가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환경 인프라의 미래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사람들이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를 압축적인 문장으로 표현했다. “엔진을 제어한다는 ‘드라이빙의 미학’을 억제하는 대신,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매끄러운 이동’을 최소의 에너지로 실현하고 싶다는 냉정한 의지를 뒷받침하는 ‘모바일 장비’ 계열로 향하고 있다.” 물론 속도와 힘의 미학을 사랑하는 스포츠카 애호가와 엔진 마니아들이 사라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들은 오래도록 남을 테지만 업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회전축은 ‘드라이빙 머신’에서 ‘모바일-커뮤니케이션의 도구’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논리다. 그리고 이처럼 이동을 위한 ‘모바일 장비’는 공기처럼 일상과 함께하는 존재이므로 필수재이지만 인간의 강한 소유욕이나 동경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매력은 덜하다는 것이다. 국내 시장은 “이제 자동차는 사회적 신분이나 스타일을 드러내는 소재가 아니다”라는 하라 켄야의 다소 극단적인 주장을 수용할 만큼 변화의 급물살이 일어날 곳으로 꼽힐 최적의 후보는 아닐지도 모른다. 자동차 업계에서 ‘프리미엄 콤팩트’와 ‘친환경’이라는 키워드가 부각되고 있는 데는 경기 침체나 다양한 가격대의 차종이 등장한 것도 한몫을 했겠지만 이러한 시선의 변화가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리미엄 수입 차들이 계속 각광받는 배경에도 단지 브랜드와 스타일에 대한 선호도만 버티고 있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의 기준인 ‘가성비’, 즉 가격 대비 품질과 도시 생활에 맞는 실용성이 상당한 작용을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프리미엄 콤팩트 카의 전성시대 오나
현격하게 새로운 흐름은 아니지만 국내외 자동차 시장에서 ‘프리미엄 콤팩트(premium compact)’라는 키워드는 올해도 여전히 뜨거운 이슈다. 지난해 ‘골프 제너레이션’이라는 용어가 퍼질 정도로 ‘골프 7세대’ 등으로 인기를 끌었던 폭스바겐의 열풍이 휩쓴 가운데 메르세데스-벤츠가 작년 하반기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젊은 메르세데스’를 강조하며 A-클래스를 들여온 데 이어 올 초 프리미엄 콤팩트 4-도어 쿠페 모델인 ‘더 뉴 CLA-클래스(The New CLA-Class)’, 그리고 최근에는 프리미엄 콤팩트 SUV인 ‘더 뉴 GLA-클래스(The New GLA-Class)’를 내놓았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2012년에 첫선을 보인 B-클래스, 그리고 작년 가을에 나온 A-클래스는 지난해 총 1천5백66대가 판매됐다”며 “이는 전년 대비 150% 성장한 수치”라고 말했다. 벤츠는 콤팩트를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고객을 대상으로 ‘소모성 부품 교환 서비스 항목’을 따로 분리한 ‘콤팩트 패키지’까지 별도의 상품으로 내놓는 등 이 시장에 대한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BMW는 기존의 뉴 1 시리즈에 이어 최근 프리미엄 소형 쿠페의 계보를 새롭게 잇는다는 BMW 뉴 2 시리즈 쿠페를 선보였다. 동급에서는 유일하게 후륜 구동 방식을 채택했다는 이 쿠페 중 국내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모델은 ‘뉴 220d 쿠페 M 스포츠 에디션’이다. BMW그룹에서 독보적인 마니아층을 거느린 소형차 브랜드 미니(Mini)도 성장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6천 대 이상의 판매고로 6.3%의 상승세를 기록했다는 미니는 지난 4월 초 3세대 모델인 ‘더 뉴 미니’를 선보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세대 미니보다 98mm 길고 전폭은 44m, 전고는 7mm 더 높아진 미니 3세대는 이처럼 커진 차체 덕분에 커브의 기민성과 승차감이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탑승자 사용 공간과 트렁크 용량이 211L로 더 넓어졌다고. 아우디 코리아가 국내 프리미엄 소형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야심작인 ‘뉴 아우디 A3’ 세단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초 국내 시장에 선보인 A3는 현재까지 누적 계약 대수 3백 대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됐다. A3 세단은 3천만원대 소형차임에도 복합 연비가 16.7km/L에 달해 국내 완성 차 업체의 대표 디젤 세단보다 연비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우디 코리아는 최근 콤팩트 스포츠카의 전설인 아우디 TT의 누적 생산 50만 대 돌파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TTS 컴피티션(TTS Competition)’ 모델을 한정판으로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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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청정한 환경을 향한 의지의 실현
‘친환경’은 단지 화제어만으로 남기에는 그 막중한 책임감의 무게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모두의 ‘사명’일 것이다.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자동차 브랜드 홍보에서 ‘친환경 요소’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 데다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은 듯 보이는 재해가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탄소 배출량 감축 등 환경문제를 둘러싼 과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대의명분으로 부각되고 있다. 경영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최신호에 따르면 <포천>이 선정한 세계 200대 기업 가운데 4분의 1 이상이 탄소 배출이나 에너지 절감 목표를 세웠다고 하며 자동차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포드는 엔진 성능을 개선하고 새로운 연료를 개발하며 하이브리드와 전기 자동차를 개발하는 과제를 2000년대 중반부터 수행해왔다. 최근 국내 시장에 공개한 하이브리드 2종은 바로 그러한 의지의 소산이다. 우선 링컨 브랜드의 최신 중형 세단인 ‘올-뉴 링컨 MKZ 하이브리드’는 대부분의 동급 하이브리드 경쟁 모델을 크게 앞지른다는 연비를 자랑하는데, 도심/고속도로 기준 18.0km/L(미국 공인 연비 기준)다. 또 차세대 포드의 대표 모델을 표방하는 중형 세단 ‘퓨젼’ 역시 동급 최강의 연비(19.4km/L-복합, 신연비 기준)를 내세운다. 기존 토요타 캠리와 현대 소나타의 16.4km/L와 기아 K5의 16.8km/L를 뛰어넘는 연비라고. 하이브리드 차량에 남다른 정성을 쏟아온 토요타의 최신 프리미엄 콤팩트 해치백 ‘The New CT200h’도 눈에 띈다. 전 모델에 동급 최대라는 10개의 스피커를 장착한 이 하이브리브 카는 자연음에 가까운 음질 구현을 위해 렉서스 최초로 대나무 섬유와 대나무 숯을 재료로 한 진동판을 적용했다고. 메르세데스-벤츠도 도시화와 네트워킹의 진화가 가속도를 더해갈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복잡한 교통 환경에 부합하는 친환경 차량 개발에 힘쓰고 있다. 올해 최초로 B-클래스의 전기 차 모델을 미국에서 내놓을 계획이며 수소연료 전지 차(F-Cell) 기술에도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 차가 본격적인 상용화 국면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내연 엔진이 주류로 자리매김할 것이란 전망에 발맞춰 가솔린 직분사 엔진 ‘블루다이렉트(BlueDIRECT)’ 기술을 내년부터 적용되는 ‘유로6(유럽의 배기가스 규제)’ 기준을 이미 만족시키는 수준으로 향상시켰다. 최근 선보인 BMW의 뉴 2 시리즈 쿠페도 이미 유로6를 충족시키는 뛰어난 친환경성을 갖추었음을 내세우고 있다.
미래의 초점은 무엇일까?
헨리 포드가 20세기 초 현대적인 생산 라인을 구축해 이룬 혁신으로 ‘모델 T’가 등장한 이래 한 세기가 흐르면서 자동차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된 상태다. 그런데도 더 효율적이고 더 빠르고 더 똑똑한 신제품들이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온다. 영국 디자인계의 지성인 데얀 수직이 현재 카 디자이너들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재규어나 미니, 골프를 만들면서도 휠 아치부터 문손잡이까지 모든 혈통적 특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듯이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혁신을 거듭해나간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 MWC에서는 미래형 자동차 신기술도 선보였는데, 현재의 발전 속도대로라면 스마트폰과 ‘일체형’처럼 연결돼 엄청나게 편리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음성 인식을 자유자재로 하며 자동 평행 주차뿐만 아니라 직각 주차도 자동으로 척척 이뤄질 수 있는 시대를 그려볼 수 있게 했다는 후문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기술의 상향 평준화 경향이 심화되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정보 수단으로서 개개인과의 ‘인터랙션’이 강화되면서 오락성, 심지어는 거주성(주택이나 회사 대신 차량에서 업무를 처리하게 된다는 뜻)까지 갖추는 것은 물론 도시 차원의 시스템과 ‘대화’하며 개인의 차량을 하나의 컴퓨터 칩처럼 거대한 네트워크망의 한 요소로서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자동차가 일상에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지능적인 도구로 진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 엔진의 힘을 추구하는 드라이빙이 위험을 달고 다니는 취미적 성향을 강하게 반영하는 행위로 간주될 확률도 높다. 풍부한 현금을 보유한 애플이 겨냥하는 다음 영역이 ‘스마트 자동차’라는 소문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은가. 애플이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기업으로 꼽히는 전기 차 업체 테슬라를 매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걸 보면 자동차는 컨버전스 시대를 형성하는 중심축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누구나 ‘도시의 이동하는 세포’ 역할을 하는 1인용 차량을 신분증처럼 가지고 다니는 미래의 어느 날이 도래한다면, 우리에게는 하라 켄야의 상상대로 실수투성이 인간에게 운전의 전부를 맡기는 일이 매우 위험한 행위로 여겨지고, 엔진 차량으로 드라이브하자는 말에 서슴없이 동승하는 호의가 낭만적인 사건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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