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ricia Urqui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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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 2019

글 고성연

패션이든 인테리어든 산업디자인이든 ‘디자인’을 둘러싼 생태계에서 밀라노라는 도시의 상징성은 대단하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창조 도시 밀라노에서 ‘여왕’ 대접을 받는 이방인 크리에이터가 있다.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태어났지만 20대 초반인 1980년대 중반부터 줄곧 ‘디자인의 메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생동감 넘치는 삶과 커리어를 꾸려온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Patricia Urquiola). 런던에서 우연히 그녀의 디자인을 마주하고 한눈에 반한 지 10여 년 만에 마침내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기회를 낚아챘다. 해마다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그녀의 도시를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밀라노 디자인 주간에 빼곡한 스케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이룬 소중한 만남. 예상치 않은 ‘반전’ 캐릭터라 어쩌면 더 즐거웠던 인터뷰였다.

The Women Who Inspire Us_ interview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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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늘 일상 속에 있지만 삶의 어느 지점에서 그 단어가 눈에 쏙 들어오거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는 계기를 갖게 되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산업디자인을 둘러싼 생태계를 취재하다가 관심을 품었고, 그 호기심의 싹이 동력으로 작용해 런던에서 유학하던 시절 꽤 많은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터를 만나게 됐다. 산업, 인테리어, 가구, 패션, 건축 등 딱히 영역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취재차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의 새로운 쇼룸을 찾은 적이 있는데, 그 공간을 디자인한 크리에이터에 단번에 끌렸다. 우아한 옷차림으로 커다란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40대의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Patricia Urquiola)였다. 당시 행사장은 파티 분위기로 떠들썩했던지라 다음번에 밀라노를 찾으면 인터뷰를 해보자는 얘기를 그녀의 매니저와 주고받았지만,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몇 차례 스치거나 먼 발치에서 본 적도 있지만, 진중한 인터뷰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올봄의 밀라노는 그런 의미에서 축복이었다.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를 ‘제대로’ 만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의 스튜디오 운영과 별도로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카시나(Cassina)의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기도 한 그녀가 새 콘셉트로 꾸민 쇼룸으로 찾아갔다. ‘Cassina Perspective’라는 글귀가 쓰인 커다란 유리창 안으로 온통 짙은 푸른색을 띤 벽이 보이고, 그 벽의 아래쪽 절반과 바닥을 수놓은 격자무늬가 시선을 잡아끈다. 내부로 들어가면 한쪽 벽면에는 영상이 흐르는 스크린이 달려 있고, 그림과 가구, 조명 등이 어우러진 여러 유형의 세부 공간이 펼쳐지는데, 연극 무대나 아트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노라니 ‘그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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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그녀, 유쾌함과 놀라움을 안겨준 반전 면모

주말이라 그런지 편한 옷차림을 한 파트리시아. 씩씩한 걸음걸이에서 호방함이 느껴진다. 내 쪽에서는 수첩을 펼쳐놓을 수 있는 제법 높다란 테이블과 의자가 필요했고, 그녀는 덥다면서 조명의 온기를 못 견뎌 했기에 이리저리 옮기다가 마침내 적당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10년 전 런던에서의 스침을 인연으로 밀라노에서 만날 기회가 매니저의 실수(?)로 날아간 걸 비롯해 이상하게 인터뷰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슬쩍 ‘팬심’을 드러내자 그녀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제 이렇게 만나지 않았느냐”면서. 그렇게 마주한 지 10여 분 만에 그동안 품고 있던 선입견이 많이 날아갔다. 사실 ‘느슨한’ 상상과 꽤 거리를 둔 몇 차례의 스침으로 필자가 지니게 된 그녀에 대한 인상은 밝고 부드럽고 우아하지만 속은 단단한, ‘외유내강’형에 가까웠다. ‘스페인’+‘여성’+‘사랑스러운 디자인’ 같은 요소가 섞이면서 형성된 이미지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녀는 밝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 출신다운 면모가 뚝뚝 묻어난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더 거침없고, 솔직하며, 카리스마와 에너지가 넘친다.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지만 똑부러진 데다 심지가 있다. 말할 때의 속도와 기개에 눌려 자칫 정신을 빼앗길 수도 있지만, 잽싸게 파고들어 질문을 던지면 순발력 있게 다 받아친다(안 그런 듯하지만 나름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예스, 노’가 아주 분명한 편이지만 위압감을 주지 않고, 유머러스한 면 덕분에 대화를 하다 보면 긴장감이 풀어진다. 유쾌한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

타고난 열정, 그리고 거물급 멘토들에게 배운 ‘삶의 자세’와 작업의 미학

활달하고 주눅 들지 않는 성격과 열정 어린 자신감은 커리어 전반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음이 틀림없다. ‘인복’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따라왔을까. 스승들을 아주 잘 뒀다. 1961년 스페인 오비에도에서 태어난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는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대학에 다니면서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거장인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를 은사(지도교수)로 모셨고, 그의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 그를 만나려고 밀라노에 왔느냐고 묻자 그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창조적인 성장을 하려면 익숙하고 편한 ‘안전 구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일찍부터 알고 있는 유형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마드리드에 갔다가 밀라노로 옮겼는데, 국경이 달라지니 정말 많은 게 바뀌더라고요. 큰 변화였죠. (새 토양에서) 뿌리를 새롭게 내려야 하니까요. 쉽지 않았지만 제게는 자양분이 된 거죠. 그렇게 밀라노는 ‘나의 도시’가 되었고요.” 그다음에는 당시 밀라노에서 활약하던 또 다른 거장 비코 마지스트레티(Vico Magistretti)가 그녀의 인생에 등장했다. 아니, 파트리시아의 설명에 따르면 그와 일하고 싶어서 먼저 나섰다고 한다.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비코와 함께 그녀는 유명 브랜드 데파도바(DePadova)의 신제품 개발을 맡아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비코는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1990년대에 밀라노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 유일한 분이었어요.” 커리어 여정에서 만난 2명의 걸출한 여성 귀인도 있었다. 첫 번째는 초기의 고용주라고 할 수 있는 데파도바의 공동 창립자이자 경영자 마달레나 데파도바. 지금은 고인에 된 데파도바 여사를 회상하면서 파트리시아는 ‘환상적(fantastic)’이라는 표현을 아낌없이 쓰면서 비코, 마달레나와 함께 일하면서 일과 삶의 방식과 품격에 대해 정말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이탈리아 가구 디자인계의 또 다른 여성 파워 파트리치아 모로소(Patrizia Moroso). 필자가 런던에서 파트리시아의 디자인을 제대로 마주쳤을 때 그녀가 쇼룸 디자인을 맡았던 브랜드가 바로 모로소이기도 했다. 1952년 설립된 모로소의 경영진 2세대인 파트리치아 모로소는 브랜드의 아트 디렉터로 꾸준히 명성을 떨쳐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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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건 스튜디오와 유서 깊은 이탈리아 브랜드를 동시에 이끈다는 것

“파트리치아 모로소는 제가 디자이너로서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저의 잠재력을 믿어준 분이에요.” 파트리시아는 1998년 모로소와 ‘스텝(Step)’이라는 소파 시스템을 처음 내놓았고, 200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를 연 이래 본격적으로 왕성한 협업을 전개해나갔다. 세련된 곡선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피오르(Fjord, 2002)’ 암체어라든지 매혹적으로 피어나는 한송이 꽃을 연상시키는 ‘안티보디(Antibodi, 2006)’라든지, 사다리꼴 프레임 위에 편안한 드레스 같은 쿠션이 얹힌 ‘볼란트(Volant, 2007)’ 체어, 누비천이 주는 정다운 질감과 거위 털을 넣은 쿠션이 사랑스러운 ‘젠트리(Gentry, 2011)’ 소파 등 많은 히트작이 있다. 또 파트리치아 모로소와의 우정을 바탕으로 우디네(Udine)에 있는 그녀의 자택 인테리어를 도맡기도 했다. 물론 일부 브랜드에 한정된 활동은 아니었다.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는 B&B 이탈리아, 몰테니(Molteni), 카르텔(Kartell) 같은 가구 브랜드는 물론 프랑스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Baccarat), 덴마트 패브릭 브랜드 크바드랏(Kvadrat), 대리석 브랜드 부르디(Burdi) 등 폭넓은 스펙트럼의 협업을 펼쳤다. 또 호텔 디자인으로도 영역을 넓혔다. 만다린 오리엔탈 바르셀로나 호텔, 밀라노의 부티크 호텔 룸메이트 줄리아, 베를린의 다스 스튜에(Das Stue), 밀라노 인근 코모에 자리한 일 세레노(Il Sereno) 등이 그 예다. 그러다가 2015년 가을, 파트리시아의 인생 여정에 커다란 방점을 찍은 사건이 벌어진다. 2년 전 창립 90주년을 맞이한 이탈리아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를 ‘겸’하게 된 것. 본인 스튜디오만 꾸리기에도 바쁜 와중에 어찌 그런 결정을 하게 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에요. 그들이 날 선택하는 거지.” 그녀는 이렇게 나지막이 속삭이면서 카시나 같은 회사가 ‘혁신’을 해보자는 자신에게 제안의 손길을 내민 건 ‘큰 영예(big honor)’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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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토너의 끈기, 플라멩코 댄서의 열정, 그리고 카멜레온 같은 유연함

최근 수년 새 카시나는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와 여러모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꾸려나가고 있다. 부룰레크(Bouroullec) 형제, 로돌포 도르도니(Rodolfo Dordoni) 등 글로벌 현역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을 이끄는 일부터 밀라노 플래그십 매장을 새로 단장하는 일, 풍부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같은 전설적인 크리에이터들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그들의 아카이브 작업을 심도 있게 전개하는 일 등 바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오는 가을에 파리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서 열리는 샤를로트 페리앙 대규모 회고전을 위한 협업도 진행 중이다(마침, 우리가 앉아 있던 의자가 샤를로트 페리앙의 뉴 버전이기도 했다).
파트리시아의 강점으로 스스로 만든 경계에 함몰되지 않고 프로젝트에 따라 유연하게 변신하는 카멜레온 같은 면모가 꼽히기는 하지만 이토록 다채로운 일들을 소화해내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난관이나 투쟁 따위는 내 사전에 없다!’ 뭐, 이런 자세인 걸까? 하지만 그녀는 “난관은 당연히 있었고, 지금도 겪고 있어요. 난 보통 사람이니까”라고 한다. 하지만 “끈질긴 데가 있기는 하다’고 강조한다. “저는 재능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요. 여러 재능 중에 좋아하는 걸 끈기를 갖고 해나가는 게 중요한데,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만 끈질지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축약하자면 ‘사랑과 열정(love and passion)’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왕관의 무게’ 같은 건 별로 엿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에 대한 책의 서문을 쓴 디자인 전문가는 그녀를 가리켜 자신이 만난 이들 중 ‘가장 행복한 디자이너’라고 하면서 일과 사랑,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기에 행복하고 긍정적인 느낌이 디자인에도 묻어나는 게 아닐까 분석했다. 그녀를 만나봐야만 그 매력적인 디자인 세계를 온전히 체감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었다. 글 고성연(밀라노 현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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