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Watchmakers

조회수: 3661
5월 22, 2015

에디터 배미진

기계식 시계가 놀라운 발전을 이룬 것은 한평생을 오직 무브먼트 개발에 바친 시계 천재, 전설적인 워치메이커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3인의 전설적 워치메이커를 소개한다.


Abraham Louis Breguet, 1747~1823
시계의 아버지,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최고의 타임피스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위대한 워치메이커이자 발명가로, 현존하는 고급 워치의 표준을 마련한 타임피스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가 확립한 고급 워치의 기준은 현재까지 이어지며, 시계 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위스 뇌샤텔 출신인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1775년 파리에 첫 공방을 설립하고 최초의 오토매틱 시계, 즉 태엽과 진자가 2개인 셀프 와인딩 퍼페추얼 워치(self winding pe´rpetuelle watch)를 선보이면서 혁신적인 시계 생산자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며 두각을 드러냈고, 많은 연구 성과를 냈다. 1783년에는 미닛 리피터 시계의 핵심인 차임을 울려주는 공 스프링(gong spring)을 무브먼트 외곽으로 감싸는 형태를 고안하고, 1786년에는 다이얼을 기요셰 문양으로 장식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선보였다. 1790년에는 충격 방지 장치 파라슈트(pare-shute)를 개발하는 등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자신의 진보된 아이디어를 워치메이킹에 적용했다. 놀라운 혁명은 1801년 투르비용(tourbillon)을 특허출원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회오리바람’을 뜻하는 투르비용은 수공으로 제작한 정밀 무브먼트로, 기계식 시계를 중력의 영향에서 해방시켜, 시계 산업에 한 획을 긋는 대혁명을 일으켰다. 당시 유럽 최고의 명사들은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브레게의 타임피스에 매혹되었는데, 발자크, 푸시킨, 빅토르 위고 같은 위대한 작가들에게 사랑받았다. 유럽 왕실과 상류층에서도 큰 환영을 받았으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의 타임피스에 매혹되어 소유하고자 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 브레게는 이를 기념해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플룸 컬렉션을 올해 바젤월드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1783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아름다운 시계를 제작해달라는 요청으로 완성한 마리 앙투아네트 워치를 2008년 복원한 브레게 회중시계.
George Daniels 1926~ 2011
현대적 이스케이프먼트 발명가, 조지 다니엘스
명실상부한 오메가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코-액시얼 무브먼트를 개발한 조지 다니엘스. 201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현대적인 워치메이커로, 혁신적이고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60년 이상 워치메이커로 헌신한 그는 시계제조자상인연합(Clockmaker’s Company) 금메달, 영국시계학회(British Horological Institute) 금메달, 런던 시 길드(City of London Guild) 금메달, 그리고 스톡홀름 시계 제조자 길드 쿨베르그(Kullberg) 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또 워치메이킹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MBE(대영제국훈장)를 받았을 정도로 시계업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그가 개발한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는 지난 5백 년간 시계 제조자를 난감하게 했던 윤활유 문제의 새로운 해결책이었다. 기계식 시계가 탄생한 이후 수백 년 동안 많은 시계 제작 장인들은 개선을 위한 온갖 과제에 도전해왔다. 윤활제의 점성 문제와 마찰에 따른 윤활유의 필요성 역시 수백 년간 시계 제작자들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문제였다. 1969년, 그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를 개발한 조지 다니엘스는 진정한 시계 장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오메가는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의 대규모 연속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입증했고, 이는 오메가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당시 오메가는 업계의 비판과 회의적 시선에도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를 도입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는데, 초반에는 오메가의 여러 기술자들과 여러 차례 집중적인 토의를 벌일 정도로 조지 다니엘스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현존하는 시계 제작자였기에 생산에 필요한 부품의 사양을 정하기 위해 수년 동안 협력할 수 있었고, 코-액시얼 무브먼트는 오메가의 노력으로 꾸준히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조지 다니엘스의 코-액시얼 이스케이프먼트는 첫선을 보였을 당시 시계업계에서 환영받지 못했으나 오메가와의 협업을 통해 최고의 무브먼트로 거듭났다.
Constant Girard, 1825~1903
유니크 타임피스의 아이콘, 콘스탄트 지라드

2백25년의 유구한 역사를 보유한 스위스 하이엔드 워치 매뉴팩처 지라드 페리고를 대표하는 워치메이커 콘스탄트 지라드는 유년 시절부터 워치메이킹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1852년 그는 자신의 고향 라 쇼드퐁에 지라드 & 시에(Girard & Cie)라는 이름의 회사를 창립했다. 1856년에는 르 로클 지방 워치메이커 가문의 마리 페리고와 결혼하면서 회사 이름에 아내의 성을 넣어 브랜드의 현재의 명칭인 ‘지라드 페리고’로 변경, 라 쇼드퐁에 매뉴팩처를 설립했다. 이후 지라드 페리고는 독특하게 미국에 진출한 스위스 워치의 선구자로서 이름을 알렸고, 당시 북미와 남미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도시에 지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콘스탄트 지라드는 투르비용 이스케이프먼트 분야에서 다양한 무브먼트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데 헌신했고, 그 결과는 높은 명성으로 이어졌다. 그는 기술력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수많은 상을 거머쥐었으며, 만국 박람회를 비롯한 국제적인 전시회 등에서 최고의 영예를 얻기도 했다. 1889년에는 3개의 골드 브리지로 독창성을 발휘한 투르비용 워치 ‘라 에스메랄다(La Esmeralda)’ 회중시계로 만국 박람회의 골드 메달을 획득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지라드 페리고의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남아 있다. 1880년에는 독일 황제 빌헬름 1세의 의뢰를 받아 독일 해군 장교들을 위한 손목시계를 개발했는데, 이는 당시 2천여 개의 시계를 제작해 세계 최초로 손목시계를 대량생산한 사례로 남았다. 아울러 시계의 전면 다이얼을 보호할 수 있도록 격자 형태의 틀을 부착한 독특한 콘셉트의 시계로 호평을 얻기도 했다. 콘스탄트 지라드는 이처럼 차별화된 워치메이킹 업적을 인정받아 수많은 훈장을 받았고, 워치메이킹 역사에 크게 공헌한 위대한 시계 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까지도 지라드 페리고의 시그너처로 인정받고 있는 3개의 골드 브리지를 적용한 라 에스메랄다 워치. 1889년 만국 박람회에서 골드 메달을 획득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