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협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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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 2011

글 김정남(IT 전문 멀티 라이터, http://itthreekingdoms.com)

IT 기업 간의 경쟁은 결국 누가 소비자 마음에 드는 위대한 상품을 만드느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IT 세상을 지배하는 기업을 잘 살펴보면 결정적인 순간에 펼쳐진 협상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 드라마틱한 협상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가가 승패를 좌우한다

구글이 야후를 제칠 수 있었던 데는 AOL과 벌인 협상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구글 이 전에 검색 광고의 최강자는 오버추어였다. 오버추어는 빌 그로스가 창업한 회사였는데 검색 광고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적자에 허덕이던 오버추어가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은 3백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한 AOL과 맺은 계약 덕분이었다. AOL 사이트에서 오버추어의 검색 광고를 채택하는 계약을 맺은 덕분에 오버추어는 사상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 오버추어가 성공하자 구글은 이를 흉내 낸 애드워즈 서비스를 내놓는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오버추어에 타격을 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오버추어의 주요 고객 중 하나였던 AOL이 야후와의 거래를 끊고 라이벌 기업인 구글과 제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2002년에 3천4백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AOL은 인터넷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AOL을 잡아야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구글의 래리 페이지는 은행 잔고가 1천만달러밖에 없는 상황에서 광고 수입의 85%에 최소 금액 1억5천만달러 수입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는다. 오버추어에서는 더 많은 돈을 제시했지만 구글 측에서는 검색 엔진의 우수성과 광고주에게 접근하는 방식, 그리고 더 높은 최소 수입액을 보장해줌으로써 오버추어를 제치고 AOL과 검색 광고 제휴를 맺었다. 이 소식으로 오버추어의 주가는 3분의 1이나 떨어지고, 구글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 이는 오버추어의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는 사건이 되었다. 대량의 방문자를 확보한 자체적인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에 오버추어는 AOL, 야후, MSN 같은 포털에 셋방살이를 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오버추어는 결국 2003년 순이익의 20%를 의존하던 야후에 인수되었다. 그런데 2004년 오버추어를 인수한 야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AOL 유럽의 전속 광고권을 구글에 빼앗긴 것. 협상이 처음 진행될 때만 해도 야후의 완승이었다. 야후는 구글보다 더 좋은 조건과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AOL 유럽과 계약에 합의했다. 이 소식을 들은 구글의 창업자들은 다른 곳을 향하던 비행기를 돌려 런던으로 직접 날아가 담당자를 만날 약속을 한다. 이미 AOL은 야후에 계약이 합의에 이르렀음을 알린 상태였기 때문에 구글 창업자들이 더 많은 금액을 보장 한다고 해도 야후와 정식 계약을 맺으려 했다. 하지만 AOL 관계자는 계약을 맺기 위해 열정 적인 태도도 임하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결국 AOL 유럽은 이미 묵시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음에도 야후와의 관계를 끊고 구글을 새로운 파트너로 받 아들였다. 이 계약은 바로 효과를 발휘했다. AOL과 계약을 체결한 후 단 6일 만에 구글의 시가총액이 5백8억달러를 돌파하면서 4백78억달러의 야후를 추월했기 때문이다.

협상의 달인, 손정의

손정의는 협상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정의의 성공에는 항상 협상력이 큰 역할을 했다. 사라몬테 하이스쿨에 다닐 때 멋대로 학년을 올려달라고 할때 교장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손정의의 설득에 넘어가게 된다. 검정고시를 볼 때 역시 손정의는 자신이 외국인이니 사전을 마음껏 사용하고 시험 시간도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담당자는 황당해했지만 손정의는 그를 금세 납득시켰다. 모더 교수 역시 손정의가 망상증 환자라고 생각했지만 동양에서 온 학생에 불과한 손정의의 이야기에 설득되었고, 함께 음성 인식 번역기를 만들기로 한다. 손정의의 협상술은 음성 인식 번역기를 판매할 때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처음 손정의가 일본에 음성 인식 번역기를 판매하기 위해 기업과 접촉할때는 아무런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했다. 손정의는 회사의 고위급 인사를 만나 직접 담판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고위급 인사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생각 끝에 손정의는 샤프전자와 일을 가장 많이 한 변리사 사무실을 알아내 그쪽에 전화를 걸어 함께 일하자고 제의했다. 그러고는 샤프전자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사사키 전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손정의는 사사키 전무와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고, 이미 그와 함께 일하기로 한 변리사 사무실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사키 전무를 소개했다. 사사키 전무는 손정의를 보자마자 매료되어 음성 인식 번역기 개발을 돕기로 했을 뿐만 아니라 평생의 후원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손정의가 세계적인 인터넷 재벌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야후와 함께 일하게 된 데에도 손정의의 뛰어난 협상력이 한몫을 했다. 야후의 주식을 5% 정도 가지고 있던 손정의는 야후의 성공을 확신하고 주식 보유량을 35%로 늘리려고 했다. 그러자 야후의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이 반발했다. 이때 손정의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회사인 지프데이비스와 컴덱스를 이용해 야후에 힘이 되어주겠다고 말했다. 또 야후가 일본에서 넘버원이 되도록 할 것이며 야후 유럽에도 참가해 야후가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과 야후는 한 배를 타고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관계자들에게 신임을 얻었고, 5시간 동안의 협상 끝에 원하는 대로 야후의 주식을 획득할 수 있었다. 손정의는 야후 주식이 공개되기 일주일 전에 1백억엔을 투자해 35%의 지분을 획득했는데, 주식이 공개된 후에 손정의가 투자한 1백억엔은 하룻밤 사이에 3배로 불어났다.

뛰어난 판단력을 바탕으로 한 협상만이 살길이다

순간의 협상이 기업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은 빌 게이츠의 성공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가 누구인지 판단하고 그들과 어떻게 거래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간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은 소프트웨어 업체에 불과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제일의 IT 기업으로 거듭난 것은 IBM과 벌인 협상에서 그가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애플이 승승장구하면서 PC 시장을 장악해가자 대형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IBM은 이에 자극을 받아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운다. IBM은 가능한 한 빨리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마련한다. PC 개발의 대부분을 자체 개발하지 않고 외부에 맡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IBM 관계자들은 PC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을 돌아다니면서 제휴 관계를 맺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도 PC 환경에서 각종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제작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방문할 계획이었다. IBM 관계자의 전화를 받은 빌 게이츠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예감하고, 다른 약속을 취소한 뒤 IBM 관계자를 직접 만났다. IBM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이 방문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IBM이 PC를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극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했다. IBM 관계자들은 빌 게이츠의 태도에 호의를 느끼고 IBM-PC를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해달라고 제안했고, 빌 게이츠는 흔쾌히 IBM의 부탁을 수락했다. 그 후 IBM 측은 IBM?PC를 위해 운영 체제를 만들어줄 회사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빌 게이츠가 추천한 것은 디지털 리서치사의 CP/M이었다. CP/M은 인텔 CPU를 사용한 컴퓨터뿐만 아니라 애플 2에도 설치할 수 있어 사람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는 운영 체제였다. 운영 체제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CP/M을 개발한 게리 킬달은 취미로 자가용 비행기를 몰면서 여유로운 삶을 사는 백만장자가 되어 있었다. IBM 관계자들을 대하는 게리 킬달의 태도는 빌 게이츠와는 완전히 달랐다. 빌 게이츠는 최대한 공손하게 IBM 관계자들을 대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게리 킬달은 깐깐한 자세로 IBM 관계자들을 대했는데, 어디에서든 환대받던 IBM 관 계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고 IBM 관계자들은 빌 게이츠가 중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시 찾았다. 이때 빌 게이츠의 협상력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빌 게이츠의 중요한 협상 기술 중 하나는 당장 아무것도 없으면서 상대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만들어주겠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사실은 아무런 제품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IB 운영 체제 문제로 고민하자 빌 게이츠는 관련 기술이나 경험이 하나도 없음에도 자신들이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IBM 역시 이에 동의했고, 빌 게이츠는 부랴부랴 운영 체제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과 접촉했다. 다행히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시애틀 컴퓨터사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빌 게이츠를 살렸다. 시애틀 컴퓨터사는 인텔 CPU에서 작동하는 운영 체제인 QDOS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QDOS의 개발자 팀 패터슨은 마이크로소프트에 전화해 QDOS에 맞게 베이식을 수정할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로 문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QDOS를 수정하면 IBM이 원하는 운영 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 컴퓨터사와 협상을 해서 단돈 2만5천달러에 QDOS의 비독점 사용권을 구입하게 된다. 빌 게이츠는 시애틀 컴퓨터사에 IBM과 계약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매우 싼값에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낸다. 이와 관련해 빌 게이츠를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이는 칭찬할 일이지 비판할 일이 아니다. 빌 게이츠의 협상력은 IBM과 맺은 운영 체제 공급 계약에서 크게 활약했다. 빌 게이츠와 IBM의 계약은 마이크로소프트에 1천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져다준 계약이다. 빌 게이츠는 IBM에 비독점적인 사용권을 넘기려고 했다. IBM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 체제를 마음대로 쓰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가 판매권을 갖는다는 계약은 당시 관행으로 보면 파격적인 요구였다. 빌 게이츠가 과거 다른 업체에 베이식을 공급할 때만 해도 판매에 대한 독점권까지 넘겨주어야 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IBM에 사용권만을 허락하는 계약을 이루어냈다. 8만달러라는 헐값에 운영 체제 사용권을 넘기고 대신 독점 판매권을 획득한 것이다.

뛰어난 협상이 완성한 애플의 성공

빌 게이츠의 영원한 라이벌 스티브 잡스 역시 뛰어난 협상력의 소유자다. 애플의 시작은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상점을 운영하는 폴 테럴에게 50대를 주문하도록 설득한 덕분에 이루어졌다. 스티브 워즈니악을 설득해 함께 애플을 창업했고, 광고 전문가인 레지스 메키너나 투자자인 마이크 마큘라를 애플에 합류시키는 데도 스티브 잡스의 협상술이 있었다. 조지 루카스에게서 픽사를 단돈 5백만달러에 구입할 때 역시 스티브 잡스는 계약을 고의적으로 지연시킴으로써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했다.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협상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는 아이튠스 서비스를 위해 음반사들을 설득한 것이다. 세계 5대메이저 음반사와 판권 계약을 맺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시절이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가 처음 음반사에 접근했을 때 바로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시간을 가지고 음반사들과 꾸준히 접촉했다. 특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관계자들과 친밀감을 쌓아가는 동시에 음반사들이 시도하는 인터넷 서비스가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음반사들이 각자 준비했던 서비스가 실패를 거두자 음반사들은 하나둘씩 애플을 찾기 시작한다. 애플은 불법 복제라는 공공의 적을 상정하고 자신들이 불법 복제로부터 음반사를 구해 줄 수 있는 구세주임을 집중 부각했다. 그리고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는 매킨토시 이용자들에게만 서비스되는데, 매킨토시 점유율은 매우 낮기 때문에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가 실패해도 음반사는 별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려 18개월에 걸친 꾸준한 접촉과 신뢰 쌓기, 그리고 대안 제시를 통해 스티브 잡스는 5대 음반사와 판권 계약을 하는 기념비적인 협상을 완수할 수 있었다. 이 협상은 애플이 음반사에 손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알린 것이 주효했다. 휴대폰의 역사를 바꾸고 있는 아이폰을 발매할 때 역시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협상력이 발휘되었다. 이동통신사와 휴대폰업계는 농노 관계로 표현될 정도로 이동통신사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스티브 잡스는 기존의 관행을 깨고 이동통신사를 배제한 채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폰을 서비스하려고 했다. 2005년 초 스티브 잡스는 싱귤러의 CEO인 스탄 시그맨(Stan Sigman)에게 자신의 입장을 세 가지로 분명하게 전달했다. 첫째, 애플은 다른 업체들보다 몇 년은 앞선 혁명적인 제품을 만들 기술을 가지고 있다. 둘째, 애플은 협상을 통해 독점 판매권을 줄 수 있다. 셋째, 애플은 직접 이동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는 협상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의 첫 번째 메시지는 협상 상대에게 내가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확실히 강조했고, 두 번째 메시지는 상대에게 특혜를 줄 수 있으니 나와 같이 함께 일하자는 것이고, 세 번째 메시지는 당신이 나와 손을 잡지 않아도 나는 얼마든지 다른 대안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는 효과가 있었고, 싱귤러는 즉시 애플과 손을 잡기로 결정했다. 스티브 잡스의 협상술이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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