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tablished & sons alasdhair wi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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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01, 2010

글 고성연 기자(영국 런던)

2005년, 가장 ‘영국적인’ 색깔을 지닌 세계적인 컨템퍼러리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비전 아래 설립된 이스태블리시드&선즈(Established & Sons)는 5년이 지난 현재, 영국 전역을 비롯, 40개국에 진출해 세계적인 입지와 명성을 얻고 있다. 런던에서 알아주는 멋쟁이이자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남편인 동시에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인 앨러스데어 윌리스(Alasdhair Willis)는 디자인 업계의 성공한 사업가를 넘어서 영국적인 디자인을 계승할 수 있는 차세대 디자이너 양성의 꿈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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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옐로 라이트, 핑크 라이트, 화이트 라이트’, 숄텐 & 바이징스.

2 ‘암스테르담 아무와’, 숄텐 & 바이징스.

3 ‘테이블, 벤치, 체어’,   샘 헥트(인더스트리얼 퍼실리티).

4 ‘드리프트(Drift)’ 벤치, 아만다 레베트(퓨처시스템스).

5 ‘롱 우즈(Wrong Woods)’, 리처드 우즈 & 세바스천 롱.

6 ‘폰트 클락(Font Clock)’, 세바스천 롱.

7 ‘스핀(Spin)’, Estd 컬렉션(디자이너 명이 드러나지 않는 생활용품 위주의 컬렉션).

8 ‘튜더 캐비닛(Tudor Cabinet)’, 하이메 아욘.

9 폰트 클락(Font Clock)’, 세바스천 롱.

10 ‘빔 라이츠(Beam Lights)’, 샘 헥트(인더스트리얼 퍼실리티). 8 ‘오드리 라이트(Audrey Light)’, 마이클 이든.

11 ‘점퍼(Jumper)’, 베르티얀 포트.

12 ‘스택(Stack)’, 2010년 버전, 샤이 알칼라이(로 에지스).



매년 4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주간이 되면 시내 곳곳에서 낮뿐 아니라 밤을 무대로도 각양각색의 디자인 관련  행사가 펼쳐진다. 그중 가장 열망하는 ‘초대장’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이탈리아 디자인 브랜드가 아닌 영국의 ‘이스태블리시드 앤드 선즈(Established & Sons)’가 주최하는 파티를 언급한다. 언제나 가장 ‘쿨하다’는 손님들로 가득한 인기만점 행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에도 밀라노 시내의 비아 팔레르모 근처에 있는 이 회사 전시장 입구에는 초대장을 갖고도 기다리는 이들의 긴 행렬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러한 현상은 해마다 9월에 개최되는 런던 디자인페스티벌에도 이어진다. 이 같은 인기의 배경엔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앨러스데어 윌리스(Alasdhair Willis, 40세)가 있다. 런던에서도 알아주는 멋쟁이로 소문난 앨러스데어의 손길이 닿는 행사가 식상할 리 없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다. 그리고 그의 파티엔 자신보다 더 유명한 그의 부인 스텔라 매카트니가 거의 빠짐없이 동석해 화젯거리가 되곤 한다.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의 딸이자 그 자신도 젊은 나이에 패션 디자이너로 일가를 이룬 바로 그 스텔라다. 이들 부부는 각각 영국의 디자인 업계와 패션 업계의 ‘젊은 피’를 대표하며 부러운 시선을 받는 ‘한 쌍’이다.요즘은 ‘다산 가정’의 모범으로도 꼽힌다(이들은 넷째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첫째 아들은 밥 먹고 학교 갈 때 빼곤 그림만 그릴 정도로 미술에 빠져 있고 둘째인 딸은 패션에 관심이 많아요. 막내 녀석은 축구를 좋아하고요.” 런던 시내 그린파크 인근에 위치한 이스태블리시드 앤드 선즈의 쇼룸에서 만난 앨러스데어는 외모로는 ‘젊은 오빠’에 가깝지만 아이들 얘기가 나오면 절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는 확실한 ‘아빠’였다. 느긋한 자세와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주제가 디자인으로 바뀌면 가느다란 녹색 눈을 빛내며 누구 못지않게 열변을 토한다.

 

이탈리아에 뒤지지 않는 영국만의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포부
사실 2005년 그가 ‘영국적인’ 색깔을 지닌 세계적인 컨템퍼러리 디자인 브랜드를 내놓겠다는 비전을 갖고 이스태블리시드 앤드 선즈를 설립했을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는 이들이 꽤 많았다. 영국은 창의 산업이 강세인 데다 수많은 스타 디자이너를 배출한 나라지만 모로소, 카펠리니, 비트라 등 ‘브랜드 강국’인 이탈리아에 대적할 만한 영국적인 가구 브랜드는 시도된 적도 별로 없고, 실제로 무게 있는 존재감을 지닐 만큼 성공한 경우도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설립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이스태블리시드 앤드 선즈는 영국 전역을 비롯, 40개국에 진출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도 입지를 다지고 있다. 건축·디자인계의 ‘여제’로 불리는 콧대 높은 자하 하디드와 ‘아쿠아 테이블’을 내놓고 영국적인 미니멀리즘의 상징인 재스퍼 모리슨 등 내로라하는 영국 출신의 저명한 디자이너들과 작업을 했다. 지금은 로낭 & 에르완 부훌렉 형제(프랑스), 콘스탄틴 그리치치(독일)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도 손잡고 있다. ‘성공’을 운운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대공황 이래 최악이라는 경기 침체기를 견뎌내며 꾸준히 성장을 일궈내고 있는 것. “사실 영국에는 RCA(왕립예술학교) 등 명문대를 거친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들이 차고 넘치죠. 엄청난 숫자의 걸출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해온 ‘재능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영국 혈통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터키든 한국이든 국적에 상관없이 영국에서 자라거나 교육을 받은, 다시 말해 영국의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들을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영국적인 정서를 대표할 만한 디자인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었죠.”

영국적이라는 것은?

잉글랜드 중산층 출신의 ‘자수성가형’ 사업가인 그에게 ‘영국다움’이란 어떤 의미일까? “제가 생각하는 ‘영국적인’ 속성으로는 특유의 유머와 기지, 절충주의, 괴짜스러움 등 여러 가지입니다. 그리고 문화적인 다채로움을 결코 빼놓을 수 없죠. 영국, 특히 런던이라는 도시는 세계 어느 곳보다 다문화적인 특성을 자랑합니다. 우린 무역국으로서 바깥세상과 교류하고 소통해야 하는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다문화 사회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브랜드는 다양함을 포용하면서도 고유의 색깔을 지녀야만 하는 법이다. 저마다 개성이 유별나게 강한 디자이너들을 두고 어떻게 그러한 일관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하, 자하 하디드와 재스퍼 모리슨처럼 스타일이 전혀 다른 디자이너들과 어떻게 동시에 일하냐는 질문을 꽤 여러 번 받았죠. 그래서 저나 제 동료인 세바스천 롱과 같은 디자인 디렉터의 역할이 필요한 거겠지요. 우린 본질적으로 일정 수준의 영국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을 꾸준히 내놓았다고 자부합니다.”

현재는 ‘다국적 디자이너진’을 꾸리고 있는 만큼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일 텐데, 어떠냐고 물었다. “맞아요. 이젠 영국 기반의 디자이너들만 고집하지 않는데, 그건 그만큼 우리가 브랜드로 성장했다는 뜻도 되겠죠. 이스태블리시드 앤드 선즈라는 브랜드의 존재 자체로 영국적인 상징성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우리 브랜드와 ‘궁합’이 잘 맞는지 신중하게 고민한 뒤에야 디자이너를 선택한다는 점이죠. 부훌렉 형제가 좋은 예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일할 때는 우리만을 위한 디자인을 해요. 고객 브랜드에 따라 저마다 다른 성격의 디자인을 선보이는, 전략적인 협력의 표본이죠.”

그림만 알던 순수 미술학도, 비즈니스 세계로 뛰어들다

지금은 겉보기에는 남부럽지 않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앨러스데어의 어릴 적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프리미어 리그 팀으로 잘 알려진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윈체스터 아트 스쿨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했으며 이어 UCL(런던대학) 계열의 슬레이드 스쿨 오브 파인 아트(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앨러스데어는 실제로 졸업한 뒤 자신의 화실에서 열심히 붓과 씨름하면서 꿈을 향해 나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화가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어요. 하지만 재능에 대한 회의 때문은 아니었어요. 저도 예술가 특유의 오만함을 어느 정도 갖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는 조바심이 났었죠. ‘성공하려면 빨리 해야 한다’는 그릇된 강박관념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화가로서 입지를 다지려면 시간이나 금전적인 측면에서 투자가 많이 필요한데 그런 식으로 5년이고, 10년이고 스튜디오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고 재정적 상황도 여의치 않았죠. 인생의 행보에 속도를 내고 싶었으니까요. 게다가 당시는 제가 미디어나 비즈니스 세계에 매료되기 시작하던 때였어요.”그리하여 그가 커리어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 분야는 출판 업계. 1995년 그는 한때 폐간되는 불운을 겪은 <모던 리뷰(Modern Review)>라는 문학 잡지의 재창간 사업에 가담했다. 이때부터 사업가로서의 남다른 기질과 재능이 돋보였는지, 그는 어느 날 자신의 평판을 전해 들은 한 저널리스트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새로운 출판 사업을 구상하고 있던 타일러 브륄레(Tyler Brule)라는 캐나다 출신의 저널리스트가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손을 내민 것이다.  앨러스데어의 경우엔 <월페이퍼*>에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또 다른 세계에도 눈을 뜨게 됐다. “미술에만 관심을 쏟고 살다가 점점 가구 디자인, 패션, 여행 등 다방면에 지식과 안목을 늘려가게 된 거죠. 그리고 디자인을 둘러싼 비즈니스 세계에 대해서도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영국적인 디자인 브랜드를 구축하는 일의 가능성을 처음 본 것이죠. 망설임은 별로 없었어요. 전 10년 계획을 짜는 부류도 아니고 ‘아, 이거다’ 싶으면 바로 행동에 옮기는 편이거든요.” 

 

차세대 디자이너 양성의 꿈
디자인 세계에서는 이름값깨나 하는 디자이너들, 다시 말해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정평이 난(established)’ 스타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가 의도하는 진정한 노림수는 영국적인 디자인을 계승할 수 있는 후예를 발굴하고 키우는 데 있다. 그게 바로 ‘sons’란 단어가 브랜드에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솔직히 새로운 재능을 키운다는 게 쉽지는 않죠. 잠깐 반짝이고 끝날지 어떨지 알 수도 없고 스타 디자이너들과 달리 마케팅, 홍보 등에도 많은 공을 들여야 하니까요.”하지만 새로운 재능의 발굴이야말로 그가 이 사업을 하는 중요한 동기이자 그의 눈을 반짝이게 하는 동력이다. “<월페이퍼*>에서 일할 때 출중한 디자이너들을 많이 접했는데 그들 최고의 꿈은 이탈리아의 메이저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었죠. 영국 디자이너 에드워드 바버와 제이 오스거비 ‘콤비’가 카펠리니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 같이 기뻐해준 기억이 나요. 그렇지만 ‘어째서 그런 재능을 소화해줄 우리의 플랫폼은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들었죠.” 요즘 디자인 업계에서 촉망받는 이스라엘 출신의 샤이 알칼라이(Shay Alkalay)는 차세대 양성의 대표적인 예다. 앨러스데어는 RCA 졸업 전시회에서 샤이의 작품에 단번에 반했다고 한다. 그렇게 히트작이 된 ‘스택(Stack, 2008년)’은 서랍 문이 한 방향으로 열린다는 고정관념을 깬 재미난 서랍장이다. “샤이가 최근 한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게 연락을 받았을 때가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말했을 때 기분 정말 좋았죠. 카펠리니의 전화를 받고 ‘꿈이 이뤄졌다’고 환호하던 바버와 오스거비 듀오를 바라보던 기억이 교차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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