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tive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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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7, 2017

글 고성연

Interview with_ Abdelmonem Alserkal
두바이 ‘문화 예술 특구’ 알세르칼 애비뉴의 창시자


‘아랍의 문’으로 불리는 두바이에서 현대미술을 비롯해 디자인, 공연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교류가 이뤄지는 ‘창구’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있다. 지나다니다 보면 ‘언제 다시 올래(When Will You Return)?’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새겨진 창고 같은 건물이 눈에 띄는 알세르칼 애비뉴(Alserkal Avenue)가 그곳이다. 10년 전, ‘두바이라고 안 될 게 뭔가’라는 생각으로 폐공장과 창고로 뒤덮인 공단이던 곳을 ‘다시 오고’ 싶도록 매력적인 장소로 탈바꿈한 주인공을 현지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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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알 쿠오즈(Al Quoz) 공업 지구의 입구. 골목 안으로 진입하자 연회색빛 네모난 건물들이 다소 건조한 느낌으로 여기저기 서 있는 흔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여기가 어째서 아트 허브라는 건지’라는 생각과 함께 물음표가 떠오를법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뭇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각각의 건물은 저마다의 개성을 내세운 갤러리, 작가 아틀리에, 극장, 카페, 커뮤니티 공간 등 다분히 ‘문화’라는 공통분모를 둔 쓰임새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세련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 덕에 소위 ‘아트+디자인 피플’만이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이곳은 지금은 ‘알세르칼 애비뉴(Alserkal Avenue)’라고 불리는 일종의 ‘갤러리촌’이지만 원래는 창고, 공장 등이 모여 있던 삭막한 공업 단지였다. 폐공장 등 버려지다시피 한 공간을 철거하는 대신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문화적인 영감을 불어넣어 ‘환골탈태’시키는 재생 건축의 성공 사례인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07년, 낡은 공단을 ‘재생’하기로 결단을 내린 주인공은 두바이 출신의 사업가 아브델모넴 알세르칼(Abdelmonem Alserkal). 알세르칼 애비뉴는 바로 그의 성을 딴 이름이다.
‘Why not Dubai?’,
한 부호의 각성으로 탄생한 문화 예술 특구
“제 부친도 이슬람 미술이나 캘리그래피를 수집하는 아트 컬렉터였어요.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 현대미술을 접하기는 힘들었죠. 그런데 ‘두바이라고 안 될 게 뭔가(Why not Dubai)?’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가문 소유의 공업 단지를 현대미술의 허브로 탈바꿈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알세르칼 애비뉴에서 직접 만난 아브델모넴 알세르칼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다. 지금은 두바이가 미술과 디자인, 미식 등 다양한 영역에서 플랫폼 역할을 하며 이 지역의 크리에이티브 허브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상황이 좀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두바이는 척박한 사막을 일궈 사회,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메트로폴리스다. 인공미 돋보이는 화려한 도시 경관 때문인지 일부 아랍 국가들처럼 석유가 철철 넘쳐나는 비옥하기 그지없는 땅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오랜 세월 막대한 부를 누려온 산유국이 아니다. 오히려 19세기만 해도 영국의 보호령에 속해 있었고, 진주조개잡이를 하는 어부와 사막의 유목인이 근근이 연명하던 볼품없는 나라였다.
그러다가 1966년에 처음 석유가 발견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고, 1971년 UAE가 영국의 보호령에서 벗어나면서 두바이는 일종의 경제 수도이자 국제 무역항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관광과 상업의 중심지가 됐다. 하지만 이웃 토후국인 아부다비에 비하면 원유 생산량이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으며 그나마 수십 년 안에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기에 상대적으로는 부유하지 않다. 두바이의 지도자 가문은 석유 없이도 경쟁력 있는 ‘랜드마크 도시’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으로 투자를 해왔고, 그 결과 세계적인 마천루 ‘부르즈 할리파’, 7성급에 준하는 슈퍼 럭셔리 호텔 ‘부르즈 알 아랍’, 인공 섬 ‘팜 아일랜드’ 등 휘황찬란한 건축 자산을 거느리게 된다. 하지만 ‘창조 도시’로서의 면면을 갖추려면 ‘소프트 콘텐츠’도 차올라야 하는 법이기에 국가 차원에서 또 다른 도약을 꾀하고 있다. 지역의 문화를 흡수하면서도 글로벌한 문화 플랫폼을 키운다는 알세르칼의 비전 어린 전략과도 맥을 같이하는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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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과 동시대 예술 융성,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다
사실 다분히 상업적인 프로젝트로 출발하기는 했다. 아브델모넴 알세르칼도 애초에 ‘상업적인 문화 지구(commercial art district)’로 기획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단지 사업가로서의 ‘촉’만으로 통 큰 투자를 결심한 건 아니었다. 두바이 출신인 만큼 그에게는 자신의 고향 땅이 문화적으로도 풍성해지기를, 그래서 현지인들이 그 혜택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때마침 수요도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는 판단이 섰다. 두바이 최초의 아트 페어인 아트 두바이(Art Dubai)도 바로 2007년에 탄생했다. “뭔가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느껴진 거겠죠. 아트 신이 막 형체를 갖추려고 하는 바로 그 시점이었어요.”
처음인 만큼 비약적인 성장세를 타지는 못했다. 게다가 2008년에는 세계적으로 외환 위기가 찾아오면서 두바이 역시 위기의 물결에 휩쓸린 적이 있다. 그래도 차츰 성장해나갔다. 2008년 두바이에 기반을 둔 아얌 갤러리(Ayyam Gallery, 이번 호에 소개되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추상회화 거장 사미아 할라비가 소속된 갤러리이기도 하다)의 입주를 시작으로 그린 아트 갤러리(Green Art Gallery), 카본 12(Carbon 12), 로리 샤비비(Lawrie Shabibi) 등이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사립 미술관 살사리 프라이빗 뮤지엄(Salsali Private Museum, SPM), 디자인 갤러리 라 갤러리 나쇼날(La Galerie Nationale) 등도 합류했다.
가능성의 윤곽이 확실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아브델모넴은 망설이지 않고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2012년 그는 25만ft2(약 2만3,225m2)의 공간을 더 만들어 기존 규모의 2배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를 위해 1천4백만달러(미화 기준, 약 1백57억원)의 투자금을 집행했다. 현지 문화 예술인들이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커뮤니티 공간, 공연장, 각종 문화 단체 등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이 같은 행보에 호응이 따랐다. 뉴욕에 기반을 둔 세계적인 레일라 헬러(Leila Heller) 갤러리를 비롯해 1X1 갤러리, 엘마르사(Elmarsa) 갤러리, 서드 라인(Third Line) 갤러리 등이 속속 터를 잡았다. 초정밀 시계 메커니즘을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린 스위스 갤러리 M.B. & F MAD 갤러리도 2016년 초 입주한 알세르칼의 명소다. 이제는 입주를 위한 경쟁률이 꽤 높은 편이다.

창조 계급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문화 허브를 향한 한 차원 높은 꿈
보다 큰 차원의, 제3의 효과는 문화 생산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도시 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가 외쳐온 도시 경쟁력을 만드는 ‘창조 자본’의 핵심인 ‘창조 계급(creative class)’이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 갤러리는 물론 글로벌 갤러리들이 들어오면서 예술가, 디자이너, 작가, 건축가, 엔지니어 등 다양한 인재가 더 많이 생겨나고 다문화적인 풍토가 싹을 틔우게 된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초대국의 시대’는 지나고 바야흐로 ‘도시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에 창조 도시로 성장하려고 하는 두바이로서는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알세르칼은 일종의 메세나(mecenat) 기능을 하게 된 셈이다. “어떤 유형의 조직이든 문화 예술을 관장한다면 지역사회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봅니다. 더구나 두바이는 2020 월드 엑스포를 향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문화 예술 차원에서도 그런 속도에 보조를 맞춰야겠지요.”
이런 맥락에서 아브델모넴 알세르칼은 한 단계 더 진화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네덜란드 건축 거장 렘 콜하스가 이끄는 OMA에 설계를 맡긴 복합 공간 ‘콘크리트(Concrete)를 지은 것이다. ‘도시 재생’으로 유명한 렘 콜하스가 UAE에서 처음 내놓은 건축물인 콘크리트는 역시 창고 건물을 전시장, 콘서트홀 등 쓰임새가 다양한 현대적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재생 건축의 산물이다. “기존의 건물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상상력과 사고방식에서 우리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는 렘 콜하스를 선택한 이유를 밝히면서 신흥 도시들이 명성 높은 코즈모폴리턴 도시로 성장하려면 지역 문화와 역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는 진취적인 사고방식이 필수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두바이 아트 시즌인 지난 3월 중순 전격 공개한 콘크리트의 첫 전시로 시리아의 문화 예술을 후원해온 아타시 파운데이션(Atassi Foundation)의 소장전을 선택한 것도 그런 고민의 소산이었던 듯하다. 1924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리아 근현대 예술가들의 작품 60여 점을 소개한 <Syria: Into the Light>. 내전과 난민 문제로 고통받는 시리아에도 위대한 예술혼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전시는 지역성을 반영하면서도 글로벌 관점에서도 손색이 없었다.
10년에 걸친 변화를 주도하면서 하나의 작은 브랜드가 된 알세르칼 애비뉴는 이제 다양한 인재를 폭넓게 수용하고 다문화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글로벌 문화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다양한 아티스트를 후원하는 ‘알세르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창조 계급을 포용하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우리의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끊임없이 흥미로운 곳으로 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다채로운 사고와 아이디어가 융화되어야 하겠죠.” 아무리 ‘아랍의 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두바이지만 사실 이슬람 문화권은 아직은 많은 이들이 생소하게 느끼고, 두렵게 여기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문화적 혼종’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알세르칼 애비뉴 같은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 사례가 반갑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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