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dle of fine Watchm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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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7, 2018

에디터 배미진(스위스 현지 취재)

가장 오랜된 워치 브랜드 블랑팡(Blancpain)은 스와치 그룹에서도 명망 있고 가치 높은 시계를 만드는 클래식한 브랜드다. 과시하지 않는 디자인의 블랑팡 워치를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시계의 진정한 품격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유서 깊고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어내는, 스위스 쥐라 산맥에 위치한 르 브라쉬의 블랑팡 공방을 <스타일 조선일보>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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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팡의 고향, 르 브라쉬(Le Brassus)
시계 브랜드로서 가장 오랜 스토리를 지닌 블랑팡이 위치한 르 브라쉬. 1984년 블랑팡은 시계를 만들고 조립하기 위해 르 브라쉬에 집을 마련했고, 현재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요람인 이곳에 7백여 명의 워치메이커와 장인을 두고 있다. 그리고 2010년 생산 설비를 르 상티에(Le Sentier)에 둔 프레데릭 피게(Fre´de´ric Piguet)를 인수했고, 지금은 르 브라쉬와 르 상티에 워크숍에서 워치메이킹 예술의 정수를 구현하고 있다. 그중 <스타일 조선일보>가 찾은 곳은 르 브라쉬다. 제네바에서 출발해 이미 이곳에 다다르는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워치메이킹의 성지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19세기 말 스위스 산악 지대의 중심인 발레 드 주는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하기 위해 산업화를 이루었고, 그 중심에 워치메이킹이 있었다. 고립된 지형의 험난함을 장점으로 삼아 워치메이킹 경험을 갖춘 농부들의 경력에 이끌려 많은 브랜드가 그곳에 정착했고, 그 후로도 계속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 지역은 이후에도 계속 발전해왔다. 바람 속에 쉬지 않고 날리는 눈발,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경 사이로 이어지는 워치메이킹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여러 개의 창문이 난, 그림 속에서 본 오두막들. 이번 투어에서 안내를 해준 블랑팡의 본사 홍보 담당자는 형태와 구조만으로도 그 집에서 시계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과거 워치메이킹 하우스로 활용하던 집들이 르 브라쉬 곳곳에 자리한다. 최초의 시계 브랜드인 블랑팡은 스위스 쥐라(Jura) 지역에서 예한-자크 블랑팡(Jehan-Jacques Blancpain)이 1735년 설립했고, 혹독하고 긴 겨울 동안 고립된 이 지역에서 농장의 수익을 보존하기 위해 오두막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일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역사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곳에 사는 이들의 이름도 피게, 보쉐 등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계 브랜드와 관련된 이름이 많은데, 오래 전부터 시계 조립 공장에서 일했거나 지금까지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프랑스와 접경 지대여서 스위스의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국경을 넘어 매일 출근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과거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고급 시계를 수출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스위스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세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사실이 스위스를 더 특별한 곳으로 만든 이유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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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브라쉬, 하이엔드 워치메이킹의 요람

블랑팡 르 브라쉬 매뉴팩처에서 이어진 시계 공방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도 진지했다. 완전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기에, 굳이 예쁘게 가꾸거나 치장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은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눈발이 날리는 아름다운 산속 마을에서 시계를 만드는 장인들은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인다. 작고 정교한 도구가 가득한 공방에서 매일을 보내는 이들은 오직 시계만 생각한다. 이곳의 주인공은 시계지만, 이를 만드는 과정이 더욱 인상적이다. 르 브라쉬에서 블랑팡은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을 생산한다. 목가적 분위기를 풍기는 이곳에서 블랑팡의 워치메이커와 예술 장인은 역사 속 선조가 개발해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기술과 테크닉을 구현하고 있다. 한 지붕 아래에 인그레이빙, 에나멜 페인팅, 다마스쿠스 워크숍을 함께 두어 르 브라쉬를 예술적 워치메이킹의 중심지로 만들어준다. 현대적인 생산 라인보다 핸드메이드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블랑팡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브먼트를 조립하는 워치메이커를 둔 몇 안 되는 시계 브랜드 중 하나다. 2백 80여 년 전 그랬던 것처럼 이 시계들 역시 워치메이커 개인이 완성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각각의 블랑팡 타임피스가 완성되기까지 손으로 직접 해내야 하는 수많은 공정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시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는 마스터 워치메이커는 워치메이킹 예술의 모든 측면을 완전히 통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심도 깊은 정밀 기계 엔지니어링을 이해해야 한다. 세계 최초로 전통 중국 태음력을 탑재한 손목시계 혹은 최초의 까루셀 미닛 리피터 등의 혁신적인 성과물은 모두 이들의 작품이다. 또 하나의 범주인 시계 데커레이션에 능한 장인들은 돌, 파일, 연마기, 사포를 사용해 전통적인 피니싱 기법을 뽐내고, 심지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부분에까지 이를 적용한다. 워치메이킹과 관련한 다른 작업과 동일하게 피니싱 작업 역시 손맛, 노하우, 그리고 엄청난 인내심을 요한다. 블랑팡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범주의 핸드 피니싱과 데커레이션 기법은 오랜 세월에 거쳐 계승되어온 워치메이킹 유산을 반영한다. 미적 아름다움과 기술적 정확성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에나멜 페인팅이다. 르 브라쉬의 에나멜링 워크숍에서 블랑팡의 예술적인 측면을 이끌어내고 있는 마스터 인그레이버는 충실하게 그들의 전통적인 노하우와 창의성을 발휘한다. 그들은 작은 끌과 현미경을 이용해 손으로 직접 새기며 스케치를 완성한다. 모티브 윤곽 주변은 비워두어 입체감을 부여하는데, 덕분에 고귀한 금속 위에서 디자인이 생명력을 얻는다. 그 후 꼼꼼한 폴리싱이 빛 효과를 만들어내며 장인의 특별한 재능을 담아낸다. 그들 주변에는 항상 특별 주문품을 위한 스케치와 채색이 된 다이얼, 조금은 비밀스러운 완성품이 자리한다. 물론 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공방을 방문한 몇몇 소수에게만 제공되는 특권이다.
이렇듯 블랑팡의 공방을 안내한 담당자가 보여준, 매뉴팩처의 보물이라 불리는 것은 시계를 만들기 위해 구입한 수십억원대의 값비싼 장비가 아닌, 대를 이어 유지해온 블랑팡 공방에서 직접 시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소도구와 소형 기계다. 그리고 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기계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평균 근속 연수가 10여 년이 넘는 장인들은 블랑팡의 진정한 보물이다. 프레젠테이션 룸에서 보여준, 약 20년 전 블랑팡 공장을 알리기 위해 찍은 동영상에 등장한 젊은 워치메이커들이 오랜 노하우를 지닌 장인의 얼굴을 하고 공방 곳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매일을 살아내며 블랑팡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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