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rn to be Leg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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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4, 2015

에디터 고성연

반클리프 아펠은 프랑스 보석 가문 자제들의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가 결혼으로 이어지면서 탄생한 브랜드로 유명하다. 그런데 ‘사랑의 전설을 예술로 승화했다’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작품성에 한결 더 주목해야 할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소재의 창의성과 극강의 장인 정신으로 빚어낸 완성도가 예술 작품을 방불케 하기 때문. 지난 2월 초 서울 신라 호텔에서 열린 ‘볼 드 레전드’ 행사는 그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낸 자리였다. 20세기 유럽의 전설적인 무도회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동명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어째서 파리지엔은 물론이고 뉴요커들이 이 브랜드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공감케 하는 환상적인 예술혼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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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베니스에서는 2월의 카니발 기간에 ‘일 발로 델 도제’라는 가면무도회가 열리는데, 해마다 딱 하룻밤 펼쳐지는 행사다. 그런데 1년이 아니라 평생에 단 한 번만 열리고 다시는 복제되지 않는 무도회, 그것도 제인 버킨이나 그레이스 켈리,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인물들이 고혹적인 차림새를 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어땠을까? 그처럼 꿈 같은 행사들이 유럽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는데, 춤과 음악, 미식의 궁극을 보여주는 장이었다. 당시 선택받은 무도회 게스트들이 의상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공들인 요소는 타인의 뇌리 속에 떨쳐내지 못할 존재감을 남길 만한 진귀한 보석이었다. 희소가치가 높은 하이 주얼리의 향연이 벌어진 것이다.  1세기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하이 주얼리·워치 메종인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은 바로 이처럼 매혹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볼 드 레전드(Bals de Le´gende)? 컬렉션을 탄생시켰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경이로웠다는 5대 가장무도회에서 영감을 받아 빚어낸 90여 점으로 이뤄진 컬렉션이다. 지난 2월 5일과 6일 양일에 걸쳐 서울 신라 호텔에서 열린 행사에서 이 아찔할 만큼 미려한 컬렉션의 일부가 공개됐는데, 반클리프 아펠 글로벌 CEO 니콜라 보스의 표현대로 ‘황홀하다(enchanting)’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세상에 하나씩만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작품들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2백여 명의 게스트에게서 때로는 설렘을, 때로는 감탄 어린 탄성을 자아냈을 만큼 예술적인 오라(aura)가 특별한 ‘무도회 컬렉션’을 공유한다.
베니스, 센추리 볼(The Century Ball, 1951년 9월 3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트 컬렉터 샤를 드 베스트기(Charles de Beistegui)가 베니스의 팔라초 라비아(Palazzo Labia)에서 개최한 가면무도회. 베니스국제영화제와 우연하게 시기가 일치해 20세기 사교계 행사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무도회로 알려져 있다. 이 무도회를 모티브로 한 대표작으로는 15.81캐럿 블루 사파이어 목걸이가 돋보이는 ‘시누아즈리 세트(The Chinoiserie Set)’가 꼽힌다.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유행한 중국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유럽 예술 운동인 시누아즈리에서 딴 이름이다. 중국의 전통 자기를 재현하려고 사파이어를 그러데이션 형식으로 표현한 목걸이가 눈에 띈다. 촘촘히 엮은 사보라이트 가넷이 눈길을 절로 잡아끄는 ‘루 데코 세트(The Loup Decor Set)’는 가면의 도시에 어울리는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베니스 건축물을 떠올리게 한다”며 니콜라 보스 CEO가 개인적으로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아르카타 세트(The Arcata Set)’ 역시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의 대조미가 근사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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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리엔탈 볼(The Oriental Ball, 1969년 12월 5일)
이 무도회 초대장을 받았다는 사실이 자랑거리였을 정도로 알레시스 드 르데(Alexis de Rede) 남작이 개최한 오리엔탈 볼은 화제였다. 무도회 장소는 파리 랑베르 호텔. 횃불을 든 아프리카 경비병 동상이 계단을 따라 층층마다 자리해 저마다 오리엔탈풍으로 단장하고 나타난 손님들을 무도회장으로 향하는 길로 이끄는 안내인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은막의 스타 브리지트 바르도, 초현실주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해 4백여 명의 게스트가 모여든 이날 밤 무도회의 주제는 ‘천일야화’. 사교계에서 우아한 스타일로 명성이 자자했다는 로스차일드 남작부인은 태국 전통 의상인 차크리를 입고 나타났는데, 자못 역동적인 디자인에 색상의 조화가 경쾌한 ‘팜므 오 드래곤 데코 클립(The Femme au Dragon Decor Clip)’은 바로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 중 하나다. 알알이 박힌 고운 사파이어로 단장한 여인을 감싸고 있는 용의 맵시가 레드 스피넬의 은근한 반짝거림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중국 황실을 연상케 하는 ‘오페라 치노아 이어링(The Ope´ra Chinois Earrings)’도 핑크, 주황, 보라 등이 어우러져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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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에르, 프루스트 볼(The Proust Ball, 1971년 12월 2일)
한국에서도 크게 사랑받는 프랑스 대문호 마르셀 프루스트의 탄생 1백 주년을 기념해 파리의 샤토 드 페리에르(Cha^teau de Ferrieres)에서 펼쳐진 성대한 무도회. 초대받은 귀빈들이 총 7권으로 구성된 프루스트의 역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와야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날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버킨, 세르주 갱스부르 같은 배우를 비롯해 8백 명의 유력 인사가 참석했지만 가장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 인물은 여배우 마리사 베렌슨이라는 회고담이 있다. ‘1970년대 최고의 미인’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한 그녀는 프루스트의 동시대 작가인 마르키즈 드 캐스티의 모습으로 꾸몄는데,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넘쳤다. 다이아몬드 네크리스와 이어링으로 구성된 ‘마리사 세트(The Marisa Set)’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격조 있는 그녀의 이미지를 닮은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목걸이 정중앙에 보이는 물방울 다이아몬드(10.32캐럿)는 ‘로즈 컷’인데 정말이지 강렬한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니콜라 보스 CEO의 애정 어린 자랑에 수긍하게 되는 건 제품 하나하나가 예술품에 가까워 보이도록 만드는 반클리프 아펠의 충만한 장인 정신과 세련된 스토리텔링 능력에 반하지 않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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