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Hued Inspi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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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3, 2016

에디터 고성연(인도 조드푸르 현지 취재)

아무리 경계가 허물어지는 글로벌 시대라도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우러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또 그렇기에 ‘융화’의 광경을 보고 느끼는 일은 꽤 짜릿하다. 프리미엄 위스키 브랜드 로얄 살루트는 문화 예술과 스포츠를 융화를 위한 노력의 창구로 삼았다. ‘블루 시티’로 불리는 인도의 아름다운 도시 조드푸르(Jodhpur)에서 열린 동서양의 문화적 융합을 시도한 프라이빗 행사 ‘브리티시 폴로 데이’의 현장. 2박 3일의 여정 속에 펼쳐진 순도 높은 문화 콘텐츠는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방불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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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어떤 양극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인도는 다문화적이고 다중심적인 콜라주다. 다양성의 바다다. 인도라는 바다는 시시각각 형형색색으로 변한다. 그 격랑의 너울 아래 수천 년의 시간이 축적된 ‘문화’라는 심해수가 흐른다._<여행의 사고> 中에서


인도를 가리켜 종종 ‘천의 얼굴’을 지닌 나라라고 부른다. 비록 빈곤 같은 문제도 안고 있기는 하지만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로 ‘심해수’에 비유될 정도로 문화적 깊이가 깊은 데다 다양한 인종, 종교, 언어 등이 공존하는 만큼 워낙 다면적인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나라에는 매혹적인 도시가 상당히 많은데, 그중에서 사진작가나 영상 전문가들의 애정도가 몹시 높은 곳이 있다. 문화 예술의 심장부로 일컬어지는 서북부 라자스탄 주의 타르 사막에 자리 잡은 조드푸르다. 구시가지로 가면 ‘인디고 블루’로 벽을 칠한 가옥이 많아 온 마을이 파도가 넘실대는 듯도 하고, 푸르스름한 이불을 덮은 듯 보이기도 하는지라 ‘블루 시티’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왜 ‘파랑’일까? 시바 신의 상징이자 브라만 계급을 나타나는 색이라 그랬다는 얘기도 있고, 더위를 조금이라도 식히고 벌레를 막아내기 위해서라는 얘기도 있다. 어쨌거나 사막 속 푸른 신기루 같은 이 도시는 압도적인 영상미를 뽐내는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과 <다크나이트 라이즈> 촬영지였고, 토종 영화로는 공유, 임수정 주연의 <김종욱 찾기>에 등장해 많은 이들의 눈을 황홀하게 했다. 또 인도를 80번 넘게 여행했다는 세계적인 포토 저널리스트 스티브 매커리가 무척이나 아낀다는 도시이기도 하다.
조드푸르가 자긍심을 품고 있는 볼거리가 두 군데 있는데, 125m 높이의 언덕에 서 있는 메헤랑가르 요새, 그리고 이 나라에서 건축된 마지막 궁전이라는 우마이드 바완 팰리스다. 이 명소들의 공통분모는 바로 마하라자(인도에서 지역을 통치하는 왕을 뜻하는 단어)다. 라자스탄 주는 마하라자들이 여전히 세를 떨치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인데, 조드푸르의 마하라자 가문이 대가뭄과 기근에 시달리던 시기에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메헤랑가르를 대체하는 왕족의 보금자리로 아르데코 스타일로 새로 지은 성이 우마이드 바완이기 때문이다. 현 마하라자(The Maharaja Gaj Singh II)는 건물 일부를 호텔로 쓰고 있는 우마이드 바완에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메헤랑가르 요새의 카리스마 넘치는 관리인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왕실 위스키’로 통하는 브랜드 로얄 살루트(Royal Salute)가 ‘왕의 스포츠’라 불리는 폴로 경기를 후원하기 위한 특별한 행사지로 공들여 물색해낸 곳답다. 지난해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로얄 살루트가 개최한 ‘브리티시 폴로 데이(British Polo Day India)’. 2박 3일의 일정을 예술과 문화 요소로 수놓은 이 행사는 단순한 폴로 대회가 아니라 ‘체험 경제’의 우아한 정수가 느껴지는 작은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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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_ Day 사막의 푸른 신기루, 금빛 위스키 향으로 물들다
첫째 날은 녹음 속에 붉은빛이 도드라지는 근사한 정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우마이드 바완 궁전의 아름다운 테라스에서 시작됐다. 다양한 연산의 몰트 원액을 선보이는 ‘후각 스튜디오’. 프랑스 출신의 명성 높은 조향사이자 로얄 살루트의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로 활약하고 있는 바르나베 피용(Barnabe´ Fillion)이 주도한 체험 프로그램이다. 브랜드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기 위해 로얄 살루트의 전문 마스터 블렌딩 팀과 함께 준비했다고. “위스키를 마실 때 여러분이 느끼는 95%의 맛은 후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코를 막으면 미각 경험이 얼마나 급격히 줄어드는지 알 수 있지요.” 다섯 종류의 원액에서 풍기는 스모키 향, 말린 꽃, 서양배 등의 다채로운 향을 음미하며 위스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게스트들에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식물학과 본초학을 공부했다는 피용은 향을 만들고 느낄 수 있는 참신한 방법을 연구하거나 새로운 영역에서 향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런 기조를 이어가는 차원에서 ‘시간’의 숭고한 가치를 토대로 혁신을 추구하는 브랜드인 로얄 살루트와의 섬세한 작업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고. “위스키 블렌딩은 아주 풍부하고 복잡한 예술이에요. 모든 캐스크에서 각각 다른 풍미와 향이 드러나잖아요. 특히 로얄 살루트처럼 최소 21년산 원액을 쓰는, 장인 정신이 깃든 프리미엄 위스키는 정말로 특별하죠.” 피용과 로얄 살루트의 만남은 머지않아 흥미로운 결실을 탄생시킬 듯하다. 그는 로얄 살루트의 마스터 블렌딩 팀과 자연, 철학,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실험적인 블렌딩 기술을 창의적으로 결합한 ‘야심작’을 개발하고 있다고도 귀띔했다. 그에게 후각의 희열을 주는 인도 여행이기에 특별히 뭔가 신선한 영감을 얻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날 밤 우마이드 바완 궁전에서 열린 독특한 만찬에서 얻을 수 있었다. 영국이 낳은 휴머니스트 E. M 포스터의 소설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찬드라포르의 새들(The Birds of Chandrapore)’을 주제로 한 밤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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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_ Night ‘인도로 가는 길’, 밤을 예술로 수놓다
찬드라포르는 <인도로 가는 길>에 나오는 가상의 인도 도시 이름이다. 로얄 살루트의 첫날 밤 만찬은 바로 영국의 식민 통치 시절 이 도시에 사는 영국인과 인도인의 불가피한 갈등을 휴머니스트의 시선으로 다루며 반성과 화해의 제스처를 담은 소설 마지막 장을 모티브로 삼았다. 로얄 살루트 글로벌 브랜드 디렉터인 바딤 그리고리안(Vadim Grigorian)이 기획에 참여했다는 이 만찬은 동서양의 음식을 한데 버무린 요리는 물론이고 밤을 빛낸 공연 역시 ‘문화적 조화’를 추구한다는 느낌이 물씬 묻어나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됐다. 일단 디너가 준비된 홀 가운데 놓인 화강암 테이블은 <인도로 가는 길>에 나온 마라바 동굴을 표현한 것이며, 메뉴조차 그리스어, 페르시아어, 힌두어 등 여러 언어의 시를 담아놓은 아름다운 소책자에 담겨 나왔다.  현대 시인 압하이 티와리, 미니어처 화가 마하비르 스와미 같은 인도의 저명한 아티스트와 장인이 직접 참여한 프로젝트답게 ‘오라’가 남달랐다. 디너는 바르나베 피용이 <인도로 가는 길>에 헌사하는 칵테일과 함께 시작됐고, 그리스, 페르시안, 영국, 그리고 힌두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네 가지 코스 요리가 서빙됐다. 마지막은 인도 전통 무용인 카타크(Kathak)의 독보적 존재인 마니샤 굴야니가 장식했다. “사실 저는 인도를 아마 15번은 넘게 왔을 거예요. 샌들우드, 재스민, 월하향 등 다채로운 향의 천국이라 조향사에게는 꿈의 장소죠. 그런데 이번 체험은 정말로 다채로운 문화의 향연이라는 점에서 색달랐고, 그래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아요.” 피용의 말처럼, 이날 밤의 파티는 그야말로 다문화의 매력이 묘하게 응집된 예술 작품이라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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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_ Day 정통성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한 브랜드와 스포츠의 만남
둘째 날 낮. 행사의 꽃인 폴로 경기가 조드푸르 폴로 & 승마학교에서 열렸다. 로얄 살루트는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왕실 스포츠인 폴로와는 찰떡궁합을 뽐내는 브랜드다. 1953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제조한 위스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여왕의 위스키’라고도 불리는 만큼 로얄 살루트와 폴로는 ‘정통성’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셈이다. 둘이 엮어내는 시너지가 남다른 이유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2009년부터 로얄 살루트가 인도, 아르헨티나, 호주, 영국, 중국, 한국(제주) 등 15개 나라에서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스포츠 마케팅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폴로라는 종목 자체도 동서양의 역사를 모두 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폴로는 흔히 서양 스포츠로 알려져 있지만 그 유래는 수 세기 전 페르시아와 중국에서 찾을 수 있으며, 19세기에야 영국에서 현대적으로 부활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조드푸르는 역사적으로 폴로가 강한 도시다. 1889년 인도에 처음 폴로가 정착했을 때부터 인기가 높았는데, 현 마하라자인 자이 싱 2세도 자신의 스포츠 재단을 통해 2000년에 폴로 그라운드를 새로 만들었을 정도로 열렬한 폴로 지지자다. 이날 브리티시 폴로 데이에는 조드푸르 폴로 팀과 자이푸르 문도타 포트 & 팰리스 팀이 로얄 살루트 트로피를 놓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다. 조드푸르의 땅에서 솟아나는 기운이 작용한 것일까. 막판 반격도 제법 거셌지만 결국 조드푸르 팀이 승리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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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_ Night 조드푸르의 자부심 메헤랑가르 요새에서 펼쳐진 향연
조드푸르의 마하라자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건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라자스탄은 이 지역을 지배했던 전사 집단인 ‘라지푸트들의 땅’이라는 뜻. 한때 인도 전역을 통일했던 막강한 무굴제국조차 라자스탄만큼은 무력으로 정복하지 못한 이유가 라지푸트족 때문이었다고 하니 그 용맹함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밤을 몽환적으로 수놓은 메헤랑가르 요새는 라지푸트족의 본부였던 만큼, 조드푸르인들의 긍지와도 같은 곳이다.  유럽을 성(城)의 역사로 풀어낼 수 있다지만 ‘요새’의 나라인 인도 역시 만만치 않다. ‘인도 3대 성’으로 불리는 메헤랑가르는 산스크리트어로 ‘태양의 성’이라는 뜻이다. 절벽 위에 늠름하게 솟은 이 위용 넘치는 요새에서 구시가지를 내려다볼 때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야말로 조드푸르가 ‘블루 시티’라고 불리게 된 이유를 설명해준다. 푸르스름한 야경을 배경 삼아 적색 사암에 둘러싸인 메헤랑가르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인도의 풍요로운 문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문화적 산책로’였다. ‘색(色)의 나라’답게 형형색색의 전통 의상을 입은 장병과 무희들이 때로는 엄숙하고, 때로는 현란한 몸짓으로 환영을 보내는가 하면, 미소를 가득 머금은 여인들이 발코니에서 탐스러운 붉은 꽃잎을 떨어뜨리며 ‘꽃비’를 내려주었다. 이곳을 찾은 다국적 손님들을 배려한 마하라자의 긍지 어린 ‘선물’이었다. 다양한 인도 요리가 나온 마지막 만찬이 열린 옥상에는 꽤 매서운 바람이 불었지만 여흥에 취한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위스키를 홀짝이며 늦은 밤의 향연을 즐겼다.  ‘여행이 무엇이든 그것은 꿈꾸고 기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라는 말이 있다. ‘천의 얼굴’이 지닌 단 몇 조각의 편린일지라도 조드푸르의 ‘낮과 밤’은 분명 그런 기회로 가슴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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