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Q+를 아우르는 한국 동시대 퀴어 미술의 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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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 2026

글 양혜연(객원 에디터)

Exhibition in Focus
아트선재센터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

한국 미술계에서 ‘퀴어’는 더 이상 낯선 주제가 아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비주류로 치부되었지만, 이강승·정은영·최하늘 작가 등 성 소수자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거나 퀴어적 요소를 작품에 은유적으로 녹여낸 이들이 약진하며 판도가 달라졌다. 이들의 작품이 대안 공간뿐 아니라 갤러리현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등 주류 전시 공간에 출품되는 것은 물론, 일부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진행하는 ‘올해의 작가상’에도 선정됐다. 혹자는 퀴어가 한국 미술계에서도 트렌드라고 할 정도로 이를 둘러싼 담론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지금, 아트선재센터에서 진행 중인 대규모 퀴어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Spectrosynthesis Seoul)〉(6월 28일까지)은 기존 흐름과 구분되는 분명한 좌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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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0일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 동시대 퀴어 미술 전시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Spectrosynthesis Seoul)〉이 개막했다. LGBTQ+ 커뮤니티를 지원하기 위해 2014년 홍콩에서 컬렉터 패트릭 선이 설립한 선프라이드재단이 주최한 〈스펙트로신테시스〉는 2017년 대만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2019년 태국 방콕 아트앤드컬처센터, 2022년 홍콩 타이쿤에서 열리기도 했다. 선프라이드재단과 아트선재센터의 협업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는 ‘서울’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재단의 소장품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국내외 작가 74명(팀)의 작업을 조망한다. 전시 공간은 지하 1층 아트홀부터 지상 3층에 이르는 전시실, 로비, 복도 등을 다양하게 활용했고, 주제는 크게 2개 파트로 나뉜다. 아트선재센터의 예술감독이자 이번 전시를 총괄한 김선정 감독은 첫 번째 파트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홍콩 중문대학교 교수이자 초청 큐레이터 이용우 교수는 두 번째 파트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을 기획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선정 감독은 김성환 작가를 초대해 그의 개인적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벽돌이 개이다’를 커미션해 도록에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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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파트인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에 걸쳐 소개된다. 차연서·조현진·쇼나 김·조이솝·윤희주·구자혜 작가 등의 작품을 소개하는 지하 1층에서는 트랜스라는 개념을 죽음을 중심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변화하는 신체 등을 주제로 한 작업들을 주로 소개한다. 좌석의 공중과 양옆, 복도 등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 아트홀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극대화한 점이 특히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구자혜 작가의 ‘퇴장하는 등장’이다. 이 작품은 퀴어 청소년의 존재를 다룬 작가가 쓴 희곡 ‘퇴장하는 등장 I’과 ‘퇴장하는 등장 II’의 스크립트 중 일부 텍스트를 화장실 곳곳에 적거나 캐비닛에 프로젝터로 투사한다.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채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로 혼란을 겪는 퀴어 청소년의 이야기로 퀴어 미술 안에서도 주변화된 담론을 내세웠다.


지상 1층은 밝은 조명, 높은 층고로 지하 1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양면의 조개껍데기’라는 하나의 파트로 묶이는 만큼 지하 1층의 작품들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이야기의 작업을 다룬다. 생명체가 태어나고 분화되는 방식과 그것이 역사에서 어떻게 서술되고 규범화되어왔는지 탐구하는 작가 캔디스 린의 여러 콜라주 작업, 몸이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서 어긋나는 순간 발생하는 불편함을 시사하는 전우진 작가의 ‘니트 400kg’ 등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파트의 후반부라고 할 수 있는 지상 2층은 선프라이드재단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컬렉션에 포함된 작가들의 다른 작품이나 신작을 함께 선보인다. 또 컬렉션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퀴어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작업이나 동시대 신작을 함께 배치해 퀴어 미술의 지형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지상 2층 전시 공간의 주요 작가이자 최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인전을 마친 마크 브래드포드는 전시 개최 전, 현장에 머물며 제작한 신작 ‘밑바닥(Nadir)’을 통해 짐 크로 법 체제 아래에서 흑인의 삶이 구조적으로 억압받던 시기와 20세기 후반 에이즈 위기의 시간을 환기한다. 전시장 바닥 위에 향 가루로 서울에 있는 퀴어 바와 모임의 이름을 쓴 오인환 작가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서울’은 누군가에게는 친숙한 장소를 떠올리게 만들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의미 없는 텍스트를 통해 언어의 불균등한 작동을 드러내며 금기시된 공동체의 언어가 시각적, 후각적, 신체적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3층 전시실에서는 두 번째 파트인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이 펼쳐지고 있다. 국내 작가 20인, 홍콩 작가 1인의 작업으로 구성된 이 공간은 다시 ‘기억’, ‘장소’, ‘형식’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익선동, 낙원동, 이태원동 등 퀴어적 장소성을 재해석해 한국 퀴어 미술의 현재를 조망한다. 그동안 퀴어의 역사가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을 반영해 아카이브 작품이 주를 이루는 기억 섹션을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배치하는 등 세심한 공간 구성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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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모두 관람한 뒤에 든 생각은 ‘다소 혼란스럽다’였다. 다양한 이야기를 함의한 수많은 작품이 미술관 전 층에 걸쳐 빼곡히 들어선 탓이다. 그러나 이내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최대한 많은 작가를 포용해 다양성을 확보’하기를 의도했다는 이용우 교수의 말을 상기했다. 이는 무지개색으로 분해되는 현상이자 다양성을 상징하는 ‘스펙트럼(spectrum)’과 서로 다른 요소가 합성되는 과정을 뜻하는 ‘신테시스(synthesis)’를 결합한 전시명에서도 드러나는 방향성이다. 성 소수자 커뮤니티와 퀴어 미술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가시화되기 쉬운 집단은 주류를 차지한다. 반면 젠더 규범을 세차게 흔드는 집단은 그 안에서조차 주변부를 맴돌게 된다. 이런 구도를 감안한다면, 과잉처럼 느껴질지라도 다양성을 품었다는 점만큼은 의미를 지닌다. 재단 소장품뿐만 아니라 컬렉션에 포함된 작가들의 다른 시기 작업, 신작 커미션 등을 아우르며 지역성과 더불어 독자성을 확보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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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은 퀴어를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하기보다, 서로 다른 결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상태 자체를 드러낸다. 다소 혼잡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복잡함은 지금의 퀴어 미술이 놓인 자리를 의미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명확한 답 대신 다양한 질문을 남기는 이 전시는 한국 동시대 퀴어 미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가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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