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Week in Dubai_ Emerging cultural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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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05, 2017

에디터 고성연(두바이 현지 취재)

아랍어로 ‘작은 메뚜기’라는 뜻을 지닌 두바이(Dubai).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성수기인 3월의 봄날, 마치 메뚜기처럼 팔짝팔짝 뛰어다니면서 봐도 모자랄 만큼 다채롭고 풍성한 예술 행사가 활발하게 벌어진 ‘두바이 아트 위크(Art Week)’ 현장을 찾았다. 2020년 월드 엑스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두바이는 이제 현대미술, 디자인 애호가들의 행사 캘린더에 따로 표시해둘 만큼 무럭무럭 성장해가고 있으니 아랍 문화권의 ‘크리에이티브 허브’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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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지역에 미술계 큰손이 많다는 건 ‘뉴스’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카타르 왕실의 셰이크 알마야사 공주가 꼽히는데, 폴 세잔, 폴 고갱 같은 19세기 대가의 작품을 수천억원대에 사들여 미술계를 놀라게 한 인물이다. 하지만 중동 자체가 ‘아트 허브’로 별다른 주목을 받아오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수 갤러리가 밀집해 있고 굵직굵직한 아트 페어와 경매 행사가 열리는 곳은 대개 뉴욕, 런던, 바젤 같은 구미 도시들이고, 아무래도 아랍 부호들의 발걸음도 자연스레 그리로 향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구도가 살짝 달라지기 시작한 듯싶다. 다국적 갤러리와 경매 회사가 속속 진출하고 있는 데다 각종 아트 페어가 꽃피고 있다. 그 중심에 2020년 월드 엑스포를 앞두고 진정한 ‘크리에이티브 허브(creative hub)’로의 도약을 꿈꾸는 두바이(Dubai)가 있다. 아부다비(Abu Dhabi), 샤르자(Sharjah) 등 인근에 있는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의 다른 토후국들, 그리고 카타르의 수도 도하(Doha)와 나란히 경쟁과 협력을 거듭하면서 ‘아라비안 문화’를 전파하고 융성시키기 위한 행보를 적극 펼치고 있다. 관광, 쇼핑, 식도락에 머무르지 않고 미술, 디자인, 문학, 캘리그래피 등 동시대 문화·예술인을 폭넓게 포용할 수 있는 창의적 콘텐츠 발굴과 개발에 힘쓰는 모습이 눈에 띈다. 특히 쟁쟁한 글로벌 아트 도시들과 겨룬다는 포부를 갖고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을 글로벌 맥락에서 풀어가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3월을 수놓은 ‘아트 두바이’, 중동의 ‘아트 바젤 홍콩’이 될까?
세계 최고층 건물, 최대 규모 쇼핑몰, 거대한 야자수 형태를 본뜬 인공 섬 같은 걸출한 관광 자산으로 유명한 두바이가 3월이면 ‘아트’ 열기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정부 차원에서 아예 ‘두바이 아트 시즌(Dubai Art Season)’이라고 명명한 일종의 축제가 두 달에 걸쳐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중 핵심은 올해 탄생 11주년을 맞이하면서 글로벌 아트 페어로 당당히 자리 잡아가고 있는 아트 페어 ‘아트 두바이(Art Dubai)’가 개최되는 ‘아트 위크’ 기간이다. 이 주간에 두바이 곳곳에서는 해외에서도 일부러 찾아와서 볼 만한 각종 전시와 행사가 줄지어 열린다. 올해 아트 두바이에는 나흘 동안(3월 15~18일) 전 세계 43개국에서 94개 갤러리가 참가했는데, 소위 MENAT(중동·북아프리카·터키) 지역의 내실 있는 갤러리는 물론 런던의 빅토리아 미로(Victoria Miro), 뉴욕과 파리에 지점이 있는 갤러리 르롱(Galerie Lelong), 도쿄와 싱가포르에 전시장을 두고 활동하는 오타 파인 아츠(Ota Fine Arts) 등 멀리서 찾아온 갤러리도 꽤 있었다. 한국 갤러리로는 ‘금박 큐브 작가’로 잘 알려진 채은미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 아트 사이드 갤러리 한 곳이 참가했다. 아직 ‘성장 중’인 아트 페어지만 올해 3만 명 가까운 관람객과 세계 곳곳의 미술관, 협회 등 98개 기관을 불러들였고, 매출 면에서도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전해진다. 알렉스 하틀리, 구사마 야요이, 이드리스 칸 등 쟁쟁한 작가를 내세운 빅토리아 미로의 영업 담당 디렉터 파비안 랭(Fabian Lang)은 “출품작 대부분을 판매했다”며 “지난 5년 동안 쏟아부은 노력의 결실을 제대로 맛본 듯하다”라고 말했다. 사실 2007년 처음 개최되었을 때만 해도 이 아트 페어가 이처럼 대견하게 성장하리라고는 대부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과연 아시아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아트 바젤 홍콩의 중동 버전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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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운 소식이 들끓었던 알세르칼 거리(Alserkal Avenue)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의 문화 행사를 보면 ‘장외’가 더 흥미로운 경우가 많다(모든 갤러리가 전시장에 부스를 차리는 형식으로 아트 페어에 참가하지는 않는다). 아니, 전시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장외 열전의 수준이야말로 경쟁력을 말해주는 지표일지도 모르겠다. 두바이에는 현대미술의 정수가 담긴 ‘갤러리촌’으로 통하는 알세르칼 거리(Alserkal Avenue)가 그 지표를 높여준 상징이다. 두바이 출신의 아브델모넴 알세르칼(Abdelmonem Alserkal)이라는 동명의 부호가 공장, 창고 등이 있던 산업 지대를 갤러리, 카페, 극장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매력적인 문화 예술 특구로 탈바꿈시켰다. 이곳에서 만난 알세르칼은 “‘두바이라고 안 될 게 뭔가(Why not Dubai)?’라는 생각으로 도전했다”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때가 아트 두바이가 출발했던 2007년. 10년이 넘게 지난 올해, 그는 두바이 아트 주간에서 가장 큰 관심이 쏠린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알세르칼 거리에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 거장 렘 콜하스가 이끄는 OMA에서 설계를 맡은 ‘콘크리트(Concrete)’라는 새로운 전시 공간을 공개한 것이다. ‘도시 재생’으로 유명한 렘 콜하스가 UAE에서 처음 내놓은 작품인데, 이 역시 기존 건물을 다목적 쓰임새를 지닌 현대적인 분위기의 공간으로 ‘환골탈태’시킨 프로젝트다.
지난 3월 16일 70대 중반의 노장인 렘 콜하스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던 콘크리트의 첫 전시는 <Syria: Into the Light>. 내전과 난민 문제으로 고통받는 시리아의 근현대미술을 후원해온 아타시(Atassi) 가문이 소장한 컬렉션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지라, ‘개관’이라는 타이틀에 무게를 더해줬다. 또 세계적인 영상 예술가 빌 비올라의 전시를 개최한 레일라 헬러(Leila Heller), 튀니지 출신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칼레드 벤 슬리마네를 소개한 엘마르사 갤러리(Elmarsa Gallery),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80대 거장 사미아 할라비의 전시를 연 아얌 갤러리(Ayyam Gallery) 등도 꼭 들러야 할 공간이다. 이 밖에 알세르칼 거리에 전시 공간을 마련한 비영리재단 아트 자밀(Art Jameel)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파트너십을 맺었다는 발표와 함께 내년 말 두바이에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을 열겠다는 계획으로 또 다른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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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두바이의 중심지 알 파히디와 금융가 속에서도 반짝이는 예술

꼭 아트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두바이 현대미술의 다면적인 면모를 접하고 싶다면 서로 대조적인 분위기를 띤 두 곳을 추천할 만하다. ‘올드 두바이(old Dubai)’의 정취가 남아 있는 문화 지구인 알 파히디(Al Fahidi District, 또는 바스타키야로 불린다), 그리고 세련된 건물들 사이로 말끔한 복장의 비즈니스맨들을 마주칠 수 있는 ‘금융 허브’인 DIFC(두바이 국제 금융 센터)다. 오래된 모래빛 건물들의 자태만으로도 매혹적인 알 파히디는 두바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갤러리 중 하나인 마즐리스(Majlis) 갤러리를 비롯해 아기자기한 갤러리와 여행객들에게 입소문이 난 갤러리 호텔 겸 카페 XVA 등이 모여 있는 동네다. 또 이 지역의 신진 작가들이 주로 참가하는 ‘시카 아트 페어(Sikka Art Fair)’도 매년 3월 열리는데, 아트,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콘텐츠를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행사다. DIFC에는 런던 금융가를 연상시키는 쾌적한 공간에 아트 스페이스(Art Space), 오페라(Opera), 아트 사와(Art Sawa), 아얌 같은 명성 높은 갤러리를 비롯해 예술 잡지의 본사, 경매 회사도 들어서 있다. 일찌감치(2006년) 두바이에 진출한 크리스티도 있고, 이번에 처음으로 두바이에 지사와 전시 공간을 마련한 소더비도 이곳에 있다. 한 지역 신문에 따르면 소더비는 지난 5년 동안 이 지역 고객 규모가 30%나 증가했다는 사실에 고무돼 직접 진출하기로 결정했는데, 보석, 현대미술, 인상파 작품, 피카소, 고흐 같은 거장의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DIFC에 간다면 주마(Zuma), 라 프티 메종(La Petite Maison),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에서 운영하는 브랜드 체험 공간이자 카페 인터섹트 바이 렉서스(Intersect by Lexus) 같은 갖가지 미식 공간도 눈여겨볼 만하다.

창조적 영감이 넘쳐나는 두바이 디자인 지구(D3)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트 퍼니처’에 관심이 있다면 두바이의 3월 아트 주간에 꼭 참석해야 할 행사가 있다. 중동과 남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유일한 글로벌 디자인 박람회라는 ‘디자인 데이즈 두바이(Design Days Dubai)’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한 이 박람회는 패션과 디자인 산업의 허브로 조성한 두바이 디자인 지구(D3)로 장소를 옮겼는데, 39개 국가를 대표하는 1백25명의 디자이너가 저마다 조명, 가구, 오브제, 설치 작품으로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유럽, 아시아 등 지구촌 곳곳에서 온 디자인 갤러리의 다채로운 작품도 그렇지만, 동양권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아라비안 색채’가 다분히 느껴지는 작품에 절로 눈길을 사로잡히고 종종 마음마저 빼앗기게 되는 행사다. 빈티지 작품부터 LED 조명은 물론 첨단 기술을 적용한 하이테크 가구까지 다채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해는 영국과 UAE의 창조적 협력을 다지는 해여서 특히 영국 디자인의 정수도 낚아챌 수 있는 기회였다. 또 파비오 노벰브레(Fabio Novembre), 마르코 브라조비치(Marco Brajovic), 세바스천 롱(Sebstian Wrong) 같은 디자인계 스타들의 강연과 워크숍도 묘미로 꼽혔다.
사실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으로는 발품을 열심히 팔아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감상 거리’가 풍부해진 두바이의 문화 풍경. 단지 아랍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들의 눈에 ‘달라 보여서’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 그리고 동시대의 생기 넘치는 영혼이 조화롭게 담겨 있기에 매력적으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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