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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기행으로 세간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자율주행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와 항공 우주 기업 스페이스 X를 운영하며 세상의 판도를 바꿔나가고 있는 일론 머스크의 남다른 행보를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상에 별도의 인터넷 선을 깔 필요 없이 지구 밖 인공위성으로 구축한 통신망을 이용해 지구상 모든 지역에 광대역 인터넷을 제공한다는 초국가적인 발상도 놀라운데, 이미 수천 개의 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려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니. 그런데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이처럼 담대한 스케일의 상상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다. 무려 1980년대에 ‘위성 오페라 3부작’이라는 지상 최대의 인공위성 중계 쇼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펼쳐낸 백남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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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월 1일 정오(EST)에 발표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은 미국과 프랑스 방송국의 조정실을 인공위성으로 연결해 양국에서 동시에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뉴욕(미국), 파리(프랑스), 서울(한국) 등 세계 여러 도시에 생중계한 전대미문의 쇼였다. 현대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케이지(John Cage)의 연주와 함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의 퍼포먼스,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탱고가 펼쳐졌고, 파리의 패션 그룹 스튜디오 베르코에서는 패션쇼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록 밴드 오잉고 보잉고(Oingo Boingo)가 공연을 선보이는 등 대중문화부터 전위예술에 이르는 당대의 유명 가수, 댄서, 예술가 등 30여 팀, 1백여 명이 출동했다. 무려 2천5백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한 이 ‘위성 오페라’는 매스미디어와 TV야말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소통이 가능케 하는 새로운 표현 수단임을 증명하며, 기술과 미디어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가 예견한 암울한 미래의 모습에 유쾌한 반론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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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년 뒤, 영국의 소설가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사망 50주기에 발표한 후속작 ‘바이 바이 키플링’(1986)에서 백남준은 다시 한번 “동양과 서양은 절대 어울릴 수 없다”는 키플링의 주장에 반기를 든다. 서양 음악가의 클래식 연주와 한국의 가야금 연주, 서양의 타악기 연주와 한국의 사물놀이 화면 등 동서양의 요소가 뒤범벅된 ‘바이 바이 키플링’은 한국, 일본, 미국에서 생중계되었다. 대망의 마지막 편은 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제작한 ‘세계와 손잡고’(1988)로, 세계 11개국을 연결하는 이 대규모 위성 프로젝트가 쏘아 올린 방송에는 같은 날 국립현대미술관의 중앙홀에서 가동을 시작한 ‘다다익선’의 모습이 처음 등장하기도 했다. ‘다다익선’ 앞에서 사물놀이가 벌어지는 동안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와 머스 커닝햄,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등이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펼쳤으며, 중국에서는 쿵푸, 브라질에서는 카니발 축제가 열렸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상용화되기 이전, 전 세계 시청자 5천만 명을 가상의 시공간에서 연대시키는 대범한 발상과 융합적 사고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ART + CULTURE ’22-23 Winter 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