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Art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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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 2015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한동안 무섭도록 타올랐다가 다소 풀이 죽은 듯 보였던 중국 미술이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있는 모양새다. 이제는 한결 성숙해진 모습의 다채로운 아트 피플들이 기성세대와는 성향과 기호가 다른 젊은 밀레니얼 컬렉터들과 함께 중국 미술의 미래를 밝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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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기가 무섭게 스타일에도 취향에도 상관없이 팔려나갔던 중국의 현대미술은 2007년 정점을 찍고는 이듬해인 2008년 말 미국발 금융 위기의 여파로 위기를 맞았다. 국내에서도 요즘 중국 미술 전시를 찾아보기 어렵고, 베이징으로 진출했던 한국 갤러리들이 대부분 퇴거했다. 그러나 섣부른 사망선고를 내릴 틈도 없이, 중국의 미술계는 다시 무섭게 성장세를 타고 있다. 지난 시기의 주역이 예술가였다면 작금의 구원투수는 컬렉터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대거 등장한 신흥 부호들의 자금이 점차로 미술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덕분이다.
색다른 중국 신흥 컬렉터들, 나이트클럽도 아트 스폿으로 만든다
중국 본토의 신흥 컬렉터들은 대개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격변기에 큰돈을 번 이들로 굳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지도(?) 않는다. 외제차, 큰 집, 화려한 보석과 시계를 사고 세계 여행을 떠나면서 견문을 넓히다 그들이 종착한 지점이 바로 미술 시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상하이 최대 나이트클럽 오너인 차오즈빙(Qiao Zhibing)을 꼽을 수 있다. 올라푸르 엘리아손, 데이미언 허스트, 장언리, 양푸동, 리우웨이, 쉬젠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그의 나이트클럽은 해외의 컬렉터 그룹이나 미술학도들이 꼭 들르는 일종의 ‘아트 스폿’이 됐다. 그러고 보면 아트 바젤 홍콩의 VIP 오프닝에 미술이라고는 전혀 관심도 없을 것 같은 빡빡머리의 아저씨들이 점퍼를 입고 유명하다는 갤러리마다 포진하고 있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들은 실제로 나이트클럽 사장님, 자동차 딜러, 부동산 거부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격변기에 좋은 기회를 포착하는 운과 두뇌를 지녔고, 현대미술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변화에도 열려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결코 평범치 않은 사람들이다. 특히나 차오즈빙이 한 말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미술품을 사게 된 것은 나이트클럽을 크게 넓히면서 빈 벽을 채우기 위해서였지만, 덕분에 세계에 대해서 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됐고 마음이 밝아지고 비젼이 넓어졌다”라면서 그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전달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준비하고 있는 ‘나눔’의 선물이 2017년 개관을 앞둔 미술관이다.
미술관 붐도 화끈, 자고 일어나면 하나씩 생긴다

차오즈빙의 미술관이 들어설 지역은 이미 부유한 중국 컬렉터들이 미술관을 앞다퉈 세우고 있는 웨스트번드(Westbund) 지역. 지난 9월 제2회 웨스트번드 아트 페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아트 페어 전시장 바로 옆에 아트 스페이스를 열어두고 미술관 개관을 환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인도네시아 화교 부디 텍(Budi Tek)이 2014년 문을 연 유즈 미술관(Yuz Museum)도 있다. 그가 2000년 고향 자카르타에 건립한 미술관이 1980년대 중국 미술 컬렉션을 주로 선보이는 곳이라면, 상하이에 세운 이 두 번째 미술관은 서양미술 중심의 컬렉션을 선보인다. 올가을에는 뉴욕 모마 미술관에서 인기를 끌었던 ‘레인룸’과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스타 작가 양푸동의 비디오 아트를 소개한 바 있다.
2014년에는 중국 현대미술 컬렉터로 유명한 리우이치안(Liu Yiqian)이 지은 롱 미술관(Long Museum)도 유즈 미술관 근처에 생겼다. 중학교 중퇴라는 보잘것없는 학력에 가방 공장에서부터 택시 운전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거치면서 자수성가한 인물이지만, 주식으로 이룬 그의 총 자산액은 무려 한화 6천4백억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롱 미술관은 가끔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지나치게 웅장하고 층고가 높은 건축 설계 탓인지 작품이 외려 초라해 보일뿐더러 관객에게도 위압감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리우이치안이 소더비 경매를 통해 구입한 고가의 찻잔에 차를 마시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집중적인 질타를 받았다. 4백50억원대라는 ‘어마무시한’ 가격도 그렇지만 단 10점밖에 남지 않은 귀한 명나라 시대의 국보급 유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자정의 목소리를 내는 컬렉터도 있다. 바로 중국 내 최대의 수입차 딜러로 큰 부를 축적하고 미술품 컬렉터이자 갤러리스트로 나선 양빈(Yang Bin)이다. 그는 중국에서는 미술관이라고 하면 크고 멋진 빌딩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고 하면서, 미술관이라는 콘텐츠를 구성할 인적, 지적 준비가 덜 돼 있음을 지적한다. 그도 한때는 중국의 한 대학에 미술관 건립을 제안했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착수를 앞두고도 있었지만, 미술관이 설립되면 공산당 시절의 서예 작품들을 그곳에 전시하겠다는 총장의 발언에 모든 계획을 백지로 되돌렸다고 한다. 자신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나름의 방향성을 지닌 미술관을 생각했던 양빈과, 예술로 보일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모아놓은 곳이 미술관이라고 생각한 대학 총장 사이의 인식의 차이가 컸던 것이다. 그 역시 지금은 자신의 미술관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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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컬렉터의 전범을 따르는 중국의 아트 피플

양빈의 발언은 2013년 홍콩에서 다비도프사 주관으로 열린 중국 컬렉터들과의 대담 자리에서 불거진 내용이다. 이 날 사회는 베이징 UCCA 미술관의 관장 필립 티나리가 맡았는데, 이 미술관은 중국에 사립 미술관 붐을 일으킨 근원지이기도 하다. UCCA라는 이름은 일찍부터 중국 미술에 눈을 뜬 벨기에의 컬렉터 부부 울렌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지은 울렌스 현대미술 센터(Ullens Center for Contemporary Art)의 약자로, 올가을 양혜규의 첫 중국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UCCA는 명성이 대단하지만 운영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미술관의 초대 관장으로 영입했던 프랑스인 제롬 상스(Jerome Sans)가 중국인 큐레이터와 마찰을 일으켜 전 직원이 6개월 만에 사표를 내며 인적 구성이 모두 바뀌는 등 인사 문제에 의한 마찰이 심했고, 울렌스 자신도 소더비 경매를 통해 작품을 대거 판매하고 지금은 미술관을 떠난 상태다. 한편 울렌스에 비견되는 중국 미술 전문 컬렉터 울리 지그(Uli Sigg)가 다수의 작품을 기증한 것으로 알려진 M+ 미술관은 아시아 전문 미술관을 표방하며 2016년 홍콩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일찍부터 중국 미술 작품을 수집하고 미술관을 지은 이들은 모두 서구의 컬렉터들이었고, 그 중심지는 단연 베이징이었다. 이제 중국 본토의 컬렉터들이 이들을 모범 삼아 법적, 행정적 규제가 덜한 상하이를 중심으로 ‘뮤지엄 짓기 붐’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베이징에도 미술관은 여전히 솟아나고 있다. 한 컬렉터가 지은 레드 브릭 미술관이 새로 개관했고, 여러 예술가들이 본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미술관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많은 이들은 중국 땅에 아름다운 미술관을 짓는 일이 커다란 꿈이자 희망이기는 하지만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예술을 통해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사회적 명성을 얻으며, 개인의 행복과 만족감이 고취되는지를, 반면 얼마나 많은 고생과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고민은 아직 가시화되기에 이르다. 앞서 소개한 홍콩 대담을 위해 모인 이들처럼 괄목할 만한 소장품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영어 구사가 가능하고, 라운드 테이블에서 대화를 이끌 만큼 자기 의견을 말하는 데 무리가 없는 중국의 컬렉터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인물들의 얘기를 들어볼 기회조차 찾기 쉽지 않다. 따라서 미술 콘텐츠를 공유하고자 중국의 컬렉터를 소개하는 각종 칼럼이 활발하게 나오도록 하고 있다. 또 그들 자신도 여러 아트 클래스에 참여함으로써 지적 갈증을 해소하고자 노력한다. 다비도프처럼 VIP 마케팅에 능한 명품 브랜드, 세계적인 경매업체 크리스티처럼 예술 교육 이력이 풍부한 사교육업체뿐만 아니라, 각종 유명 대학들이 나서 진행하는 다양한 미술사 클래스가 유행이다. 공부를 해나가면서 체계적으로 작품을 수집하고 현명한 투자를 하고 싶어 하는 컬렉터들이 점점 증가하면서 ‘수혜’를 받는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자우키와 같은 20세기 초기의 현대 고전 미술가의 작품들이 1백억에 넘는 고가로 뛰어오른 것도 하나의 현상이다. 중국 미술시장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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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컬렉터들의 부상, 뉴 제너레이션이 주도하는 중국 미술의  미래는?

그런데 그러한 중국 아트 피플의 자녀 세대는 어떨까? 리우이치안의 롱 뮤지엄은 그의 아내 왕웨이(Wang Wei)가 관장을 맡고 있다. 홍콩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린 VIP 파티에서 왕웨이가 제프 쿤스와 함께 찍은 사진에는 이들 부부의 딸도 함께 등장한다. 뉴욕에서 아트 매니지먼트를 전공한다는 그녀는 훗날 왕웨이의 뒤를 이어 롱 뮤지엄을 운영할 후임자로 점쳐진다. 중국에서 만난 많은 예술가 중에서는 자녀가 미국에서 미술사나 아트 매니지먼트를 공부한다고 하면서, 유창한 영어로 통역해준 사례가 많았다. 소위 ‘밀레니얼 컬렉터’라 불리는 세대다.
그 선두에 선 사례가 바로 35세의 억만장자이자 아트 컬렉터인 K11 파운데이션의 에이드리언 청(Adrian Cheng)이다. 홍콩 굴지 기업 뉴 월드(New World)의 3대 경영진인 그는 이미 조부모 시절부터 막대한 부를 축적한 가문의 후예다. 남다른 환경에서 자란 그에게 예술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었다. 마치 UCCA의 건립자 울렌스가 벨기에의 공작 집안으로 선조 시대부터 외교관으로서 중국을 오가며 교류한 덕분에 일찍부터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것과도 비슷하다. 현재 청은 홍콩, 중국뿐 아니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런던 테이트 모던, 파리 팔레 드 도쿄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 이사회 위원을 맡으며 국제적으로 자신의 예술적 네트워킹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처럼 중국에서는 부모 세대의 막대한 자산과 컬렉터라는 이름으로 확보한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뉴 패트런(patron)들이 중국 미술의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다. 미래의 청사진은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는 듯하다. 우선 세계 곳곳의 주요 미술계 인사와 전시가 앞다퉈 중국을 찾아오고 있다. 지난 9월에 열린 상하이 아트 위크 주간에는 화이트 큐브, 제임스 코언, 하우저 & 워스, 페이스 갤러리 등 소수의 세계적인 갤러리들만 참여한 아트 페어가 성공적으로 열렸고, 저렴한 가격을 내세운 포토 상하이 페어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북적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의 몇몇 갤러리들도 상하이에 분점을 내며 다시금 중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상하이 로크번드 미술관은 휴고 보스 미술상의 아시아 파트너로 해마다 구겐하임 미술관과 함께해온 미술상 시상과 전시를 ‘아시아 버전’으로 개최한다. 이제 멀리 유럽이나 미주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우리 입장에서는 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아트 신(art scene)의 변화가 외부 동력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힘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함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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