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허브를 꿈꾸는 두바이, 사진으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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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 2016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이화여대 겸임교수)

2020년 월드 엑스포 개최지로 지정되며 다시 한 번 도약을 꿈꾸고 있는 두바이. 연간 2천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비전 2020을 가동하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기회의 땅’이다. 바로 이곳에서 전 세계 23개국이 참여한 미니 비엔날레급 <두바이 포토전(Dubai Photo Exhibition)>이 각종 예술 행사들이 개최되는 ‘아트 시즌(art week)’이 한창인 지난 3월 16일부터 19일까지 열렸다. 문화 콘텐츠의 허브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지닌 두바이가 ‘사진의 제국’임을 천명하고 나선 국제적 행사 현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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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가 2020 월드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된 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지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의 828m 꼭대기에 올라 아랍에미리트 국기를 흔든 인물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두바이의 왕세자 셰이크 함단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이다. 이 장면은 각종 인터넷과 SNS를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통치자 가문의 초상을 곳곳에 전시하는 두바이의 정치적 전통 덕분에 그의 얼굴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데다가 그 스스로도 사진작가이자 시인, 최첨단 트렌드 리더로서 자신의 모습을 다양한 SNS로 적극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명 ‘fazza’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어 수백만을 거느리고 있다. 패션모델 뺨 치는 준수한 외모에 ‘여러분과 사진 속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면서 대중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열린 태도 역시 왕세자의 인기에 한몫을 담당한다. 이처럼 문화 수장 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두바이의 통치자인 아버지와 함께 모국을 세계적인 창조 허브로 발돋움시키겠다는 국가 발전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2016년 새롭게 시작된 <두바이 포토전(Dubai Photo Exhibition)> 역시 사진에 대한 그의 사랑과 후원의 연장선상에서 개최됐다.

HIPA 어워드에서 두바이 포토전으로 이어진 ‘사진 예술 DNA’
그 출발점은 이미 5년 전 시작된 ‘히파(HIPA)’ 어워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목의 이니셜로 쓰인 ‘H’가 바로 셰이크 함단 왕세자를 뜻한다. 2011년 첫해 4천 명을 접수한 HIPA는 2015년 전 세계에서 사진작가 3만2천여 명의 작품 8만여 점의 응모작을 받은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적 사진상으로 거듭났다. 대대적으로 인정받는 사진작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간단하게 응모할 수 있고, 대상자에게는 12만달러(약 1억3천만원)라는 막대한 상금이 주어진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인터넷 접수창에는 흥미롭게도 응모자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계정을 공개할 수 있는 항목도 있다. ‘정보화 시대의 사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고 이미지로 상호 소통하는 시대를 위해, 사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사진 전문가들의 주도 아래 이끈다는 것이 바로 히파 어워드가 스스로 짊어진 사명이다. 히파 어워드가 아마추어 사진가를 대우하고 사진의 대중화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두바이 포토는 세계사진기구(World Photography Organization)와 파트너십을 맺고 전 세계 다양한 사진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수준 높은 전시회를 개최하려는 시도다. 그야말로 두바이를 ‘사진 예술의 메카’로 각인시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내세운 것이다. 사진이 발명되고 보급된 지 어느덧 1백 년도 넘은 지금, 누가 원조인지 가리려는 건 아니다. 다만, 두바이 하면 ‘석유’가 아닌 ‘문화’의 터전을 떠올리도록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를 재구축하려는 하나의 의미 있는 행보다. 행사지는 디자이너, 예술가, 창조적 작업자가 모여 문화 산업의 발전을 꾀하는 전초기지로 조성한 두바이 디자인 디스트릭트(d3). 약 9,250m2(2천8백 평)의 넉넉한 부지를 자랑하는 이곳은 두바이에서 블록버스터급 사진전을 개최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고층 건물 사이에 지은 전시장은 중앙의 카페를 중심으로 정방형으로 4개의 날개를 펼쳐 마치 팔랑개비처럼 훨훨 날아오를 듯 전시의 확장성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구조가 시선을 절로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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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급 전시의 서막을 열다, 한국 작가들의 존재감도 한몫
공간 디자인만이 아니라 규모도 감탄할 만했다. 호주, 벨기에, 네덜란드, 브라질, 중국, 모로코, 이집트, 프랑스, 독일, 헝가리, 체코, 인도, 일본, 한국,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페인, 포르투갈, 아랍에미리트, 영국,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등 총 23개국에서 7백여 점의 작품을 출품했는데, 이를 위해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18명의 큐레이터를 선정했다. ‘미니 비엔날레’를 방불케 하는 규모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사진 전문 큐레이터 젤다 치틀(Zelda Cheatle) 총감독을 필두로 한국에서는 김선희 전 대구미술관 관장이 큐레이팅을 맡아 한성필, 이명호, 원성원, 임창민 네 작가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로 확장하는 다양한 사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화려한 색감과 회화 작품을 연상케 하는 한국 작가들의 서정적인 작품들은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고, 특히 공간 사옥을 담은 한성필의 작품은 메인 이미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국가별로 자신의 정체성과 시대적 맥락에 맞는 다양한 사진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 발명국인 프랑스는 나다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클로드 카훈 등 전설적인 대가들의 초상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를 선보였다. 셀피가 보편화된 오늘날, 1840년에 촬영한 세계 최초의 셀피라 할 만한 전설적인 예술 사진들을 소개함으로써 생각할 거리와 재미를 동시에 던져줬다. 헝가리는 앙드레 케르테츠가 1914년부터 1925년 사이 헝가리에서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와 초현실주의 사진으로 대거 전시를 구성했다. 앙드레 케르테츠, 로베르트 카파, 마틴 문카치, 브라사이, 라슬로 모홀리 나기 등 20세기 초 사진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전문가들을 배출한 국가지만 정치적 이슈로 그들 대부분이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활동을 이어나가야 했고, 오늘날에는 그들이 헝가리 출신의 작가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맥락을 겨눈 것이다.
휴머니즘을 주제로 한 미국·캐나다관은 도로시아 랭, 다우드 베이 등의 다큐멘터리 사진을 통해 개인의 삶에 투영된 사회의 변화를 보여줬다.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 사건 당시의 유물을 사진으로 재현한 일본 최초의 여성 사진가 이시우치 미야코의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많은 초상 사진들이 직간접적으로 그 나라의 역사와 특수성을 드러내고 있다”라는 총감독 젤다 치틀의 말처럼, 23개국에서 참여한 다양한 전시회를 보는 것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세계 여행을 하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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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에 사진과 함께 성장하는 두바이
특히 주목할 만한 전시는 단연 아랍에미리트 전시관이었다. 두바이의 ‘꽃미남’ 왕세자 셰이크 함단의 개인 소장품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자리였기 때문. 소장품 자체가 가치를 지녔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6개 토후국의 수장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사인을 하는 장면을 포함해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창설과 관련된 역사적인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대거 선보였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촬영한 작가이자, 올해 히파 사진 연구 특별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오스카 미트리(Oscar Mitri)도 전시회 오프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키가 150cm도 될까 말까 한 작은 노인이 되어버린 미트리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그가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촬영한 사진 사이를 오가며 40여 년이 넘게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횡단하며 역사를 기록해온 자신의 소회를 담담히 드러냈다. 단순한 무명 기자의 ‘보도사진’으로 치부하지 않고 역사를 기록했던 주인공을 대우하는 문화도 무척이나 감동스러웠거니와, 그 자리에 함께 모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언론사, 사진 전문 기관의 수장, 예술가, 기자, 컬렉터, 예술 애호가가 그 순간을 함께하면서 사진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이처럼 다채롭고 내실 있는 콘텐츠에 대한 호응 덕분에 <두바이 포토전>은 첫 회부터 상당한 성공을 거둔 모양새다. 두바이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사진 전시회를 보기 위해 방문한 수많은 관람객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아트 두바이’ 국제 아트 페어, 히파 어워드 수상자 발표회, 두바이 디자인 페스티벌에 <두바이 포토전>이 당당히 가세하면서 두바이의 3월이 문화 시즌으로 더욱 풍요롭게 거듭난 것도 또 다른 수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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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토의 선점을 위한 인상적인 행보
항시 역사는 새로운 영역을 선점하는 자에게 행운의 미소를 안겨줬다. 해상무역이 한때 스페인의 것이었다가 영국으로 넘어가며 세계 국력의 판도를 바꿨듯이, 미술이 한때 파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다가 뉴욕으로, 다시 런던으로 그 중심지를 바꾸며 경제적 회복마저 주도했듯이, 그리고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로 중국 대륙을 휩쓰는 신흥 대기업들이 생겨났듯이 말이다. 우리는 문화 영토를 먼저 점령하는 자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세계를 지배할 핵심적인 변수는 더 이상 자본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문화라고 하지 않는가. 앨빈 토플러가 이미 1980년대에 내놓은 저작물 <제3의 물결>에서 예측한 바와 같이 세계는 지금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들이 접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과의 소통과 정보 전달은 SNS 네트워크 속 개개인이 찍은 ‘사진’ 이미지를 통해 언어와 국경을 넘어 강력한 전파력을 발휘한다. 자연스럽게 사진은 이제 언어를 넘어선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됐다. 사진은 더 이상 프랑스의 전유물도, 일부 전문가의 특권도 아니다. 누구나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하는 오늘날, 세계 곳곳의 사진 예술 전문가들이 해마다 두바이에 모여 막강한 콘텐츠를 선보인다면, 그것이 불러일으킬 파급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 어쩌면 ‘사진’이라고 하면 ‘두바이’를 연상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막 위에 지은 스키장, 바다 위에 만들어낸 인공 섬, 마치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나라처럼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세계 만방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두바이에서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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