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for the N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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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7, 2014

에디터 권유진(파리 현지 취재)

1933년생 백발의 디자이너가 지금 최전방의 패션 트렌드를 이끄는 것은 물론, 모든 셀러브리티가 참석하고 싶어 하는 최고의 클럽 파티 주최자이자 자신만의 디지털 언어를 만든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 칼 라거펠트라면 가능하다. 칼 라거펠트가 진두지휘한 파리의 향수 론칭 행사에서 그의 진면목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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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 있는 상표다”, 패션의 전설 칼 라거펠트

전 세계 여성들이 선망하는 명품 브랜드 샤넬, 펜디 뒤에는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가 있다. 펜디의 FF(Fun Fur) 로고와 여성들의 로망인 샤넬의 백까지, 매 시즌 우리가 열광하며 기꺼이 지갑을 열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손을 거친 것이다. 이 페이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살펴보자. 타이트한 스키니 진에 빳빳한 화이트 칼라의 셔츠, 로큰롤 무드가 느껴지는 실버 주얼리, 스타일로만 봐서는 20대 청년 같지만 백발을 하나로 묶은 헤어스타일을 한 이 노장은 바로 1933년생 칼 라거펠트다. 그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모르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미 샤넬, 펜디,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레이블인 칼 라거펠트까지 3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수십 년간 메이저에서 활동해온 그가 디자인하고 탄생시킨 스타일은 패스트 패션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사든 그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칼 라거펠트는 말한다. “나는 패션계에 오랫동안 몸담았다. 제아무리 선사시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감히 필적하지 못할 만큼 오랜 시간 동안.”

베일에 쌓인 향수, #karlparfums

칼 라거펠트가 그의 이름을 건 향수를 론칭한다는 소식에, 새로운 향수에 대한 궁금증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재미난 사실은 이 소식이 한 열혈 팬이 향수 로고(#KARLPARFUMS)를 소셜 네트워크에 유출하면서 알려졌다는 것이다. 당황한 칼 라거펠트 측은 어떤 향수인지, 여성 향수인지 남성 향수인지도 알려주지 않은 채 칼 라거펠트가 디지털 언어로 표현한 향수 라인의 이모티콘만 공개하며 조만간 향수를 론칭할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답변만 남겼다. 과연 어떤 콘셉트의 향수일까, 그가 만든 향수라면 어떤 모습일까. 칼 라거펠트가 만든 향수라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고가의 유니크한 니치 향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향을 탄생시키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면서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보라고는 오직 4백 명이 넘는 프레스와 패션 관계자가 참석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론칭 이벤트라는 것,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스타일 조선일보>가 취재한다는 것, 그리고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할 이벤트를 칼 라거펠트가 직접 진두지휘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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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거펠트의 사적인 취향을 탐하다

파리는 개인적으로 잘 알고 너무나도 좋아하는 도시임에 분명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칼 라거펠트가 선호하는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주요 일정일 정도로 사적인 취향으로 짜인 파리 투어는 오로지 칼 라거펠트의 시선으로 본 예술적인 파리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칼 라거펠트가 가장 사랑하는 파리의 생제르맹(Saint-Germain)에는 그가 즐겨 가는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와  최신 트렌드를 경험할 수 있는 ‘칼 라거펠트 부티크’, 수많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이 이뤄지는 그의 스튜디오, 그가 직접 운영하는 서점 ‘7L’이 모두 모여 있다. 생텍쥐페리, 파블로 피카소 등 수많은 문인들이 드나들었던 카페 드 플로르에 갔을 땐 칼 라거펠트의 철학적인 면모를 엿보았고, 릴 스트리트 7번지에 위치해 7L이라고 이름 지은 칼 라거펠트의 서점에선 질서 정연하게 놓인 인테리어, 사진, 패션,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통해 최근 그의 관심사를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책벌레라고 칭할 만큼 책은 칼 라거펠트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이 사실은 서점 안쪽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더욱 명확해진다. 족히 3층 건물 높이 정도는 되어 보이는 천장 높은 스튜디오엔 수만 권은 될 듯한 책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천장까지 가득 쌓인 책들을 정말로 다 읽었을까 싶지만, 그가 그동안 펼친 활동만 보아도 충분히 읽고 남았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책을 살 때 총 3권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권은 읽기 위해, 다른 한 권은 분책하기 위해, 나머지 한 권은 소장하기 위해서다. 생제르맹의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칼 라거펠트의 부티크는 그를 대변하는 컬러인 블랙 & 화이트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매장 쇼윈도의 대형 네온사인에는 우리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 칼 라거펠트의 명언이 담겨 있다. ‘I only wear the latest thing(나는 오직 최신의 것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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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는 후각을 위한 패션이다”

지난 3월 파리의 숨겨진 명소인 팔레 브롱니아르(Palais Brongniart)에서 개최된 파티의 호스트는 바로 이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 칼 라거펠트였다. 다시 상기시키자면 칼 라거펠트는 1933년생, 우리 나이로 82세다. 디스코 볼로 화려하게 장식한 조명, 수백 잔의 칵테일, 일레트로닉 음악. 그리고 이곳의 화룡정점은 생생한 현장을 사진으로 기념할 수 있는 포토 부스와 칼 라거펠트의 디지털 언어인 이모티칼(Emotikarl) 애플리케이터였다. 파티에 참석한 수백 명의 기자, VIP, 패션 관계자는 서로 사진을 교환하고 이모티칼을 보내며 순간을 즐겼다. 그러던 중 모두가 그렇게 궁금해하던 향수가 베일을 벗었다. 관능적이고 섹시한 광고 컷과 함께 등장한 새로운 향수는 하나가 아닌 2개였다. 칼은 모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을 재확인시키듯 여성용과 남성용, 한 쌍의 향수를 론칭한 것. 향기를 맡는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상상외로 대중적인 향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유니크한 향을 예상했던 건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대중과 소통하길 원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패션을 만들기를 원했기에 이런 대중적인 향수를 출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칼의 향수는 직접 몸에 뿌렸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첫 향에서 느껴지는 산뜻함,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지는 관능적이고 섹시한 잔향에서 그의 완벽한 성격이 묻어난다. 핑크 보틀의 여성 향수는 싱그럽고 우아한 그린 플로럴 향을 품고 있는데, 칼 라거펠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상큼한 레몬 향과 로즈 부케, 그리고 머스크와 앰버 우드의 조우는 현대적이고 모던하다. 라벤더와 만다린 제스트의 향에 아삭한 사과와 바이올렛 잎, 스파이시한 샌달우드를 더한 투명한 블랙 보틀의 남성용 향수는 세련됨과 동시에 우아하고 섹시하다. 칼 라거펠트는 자신의 패션을 하나의 룩, 태도, 관습으로 만든 패션 아이콘이다. 그가 창조한 두 향수는 우아함과 클래식함을 모던하게 트위스트하며 그의 스타일을 반영한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 모두의 이목을 끄는 향, 품질 높은 재료만 사용하는 고집, 우아한 디자인과 메탈의 모던함까지, 이 모든 것에서 칼 라거펠트만의 시그너처를 찾을 수 있다.

드디어 칼 라거펠트와 마주하다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 그를 인터뷰하고 나온 각국의 유명 매체 기자들은 마치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스타를 만난 듯 한껏 흥분된 목소리로 “꿈만 같다”, “너무나도 행복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마지막 순서로 인터뷰장에 들어갔을 때 시야에 들어온 칼 라거펠트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2시간에 걸쳐 이어진 인터뷰로 지쳤을 법도 한데 테이블에 한쪽 팔을 기댄 채 스태프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그의 모습에선 지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칼 라거펠트는 악수를 건네며 형식적인 인사 대신 본인이 디자인한 에디터의 펜디 드레스를 칭찬했다. “Oh, I like your dress(오, 나는 당신의 드레스가 좋아요)!” 파티에 참석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한 옷을 입었음에도 그가 자신이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은 한국의 기자를 칭찬했다는 것은, 그가 형식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 아닌 오직 자신 앞에 마주한 한 사람에게 집중한다는 의미다. 바로 이런 그의 진심 어린 애티튜드에서 감동과 반전을 느낄 수 있었다. 종이나 미디어의 벽을 깨고 실제로 직면한 그는 진정으로 대중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디자이너였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이번 신제품 향수의 콘셉트와 일맥상통한다. 칼 라거펠트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향, 뿌리면 기분이 좋아지는 향을 만들고자 했다. 이런 그에게 향수는 어떤 존재일까. “나는 향수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 없다. 여성 향수건 남성 향수건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향수는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자 후각을 위한 패션이다. 오늘날 패션은 단순히 옷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가방이나 선글라스, 그리고 향수까지도 패션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한다. 이것이 향수가 브랜드의 라벨을 갖게 된 중요한 이유다. 향수는 옷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마 피부로 느끼게 될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향은 무엇일까. “아이리스 향을 가장 좋아한다. 가죽이나 탠저린 향, 심지어 담배 향도 좋다. 반면 매우 베이식하고 클래식한 향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향수는 충분히 많다. 나는 모던하고 새로운 향을 선호한다.” 끊임없이 샘솟는 영감의 원천이 궁금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내가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고 나 자신의 취향에 머무르는 것이 두렵다.” 칼 라거펠트는 에디터가 그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자개 명패를 선물 받고 감격하며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샤넬과의 작업을 통해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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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지나 현재, 미래까지 바라보는 통찰력

럭셔리 마켓의 중심에 서 있는 칼 라거펠트가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향수를 내놓았다는 것은 단지 그를 선망하는 이들을 위한 팬 서비스가 아니다. 그가 한국에서 온 에디터를 진심으로 대했듯이 패션을 사랑하는 대중에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전달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테이스트를 강요하지 않는다. 향수를 포함한 패션은 소수만이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본인도 좋아하고, 남들도 좋아할 만한 향수로 대중에게 다가선 것이다. 특히 젊은 이들과 소통하기를 즐기는 그는 디지털 세계에 푹 빠져 있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세상에 대한 놀라운 관점과 열린 사상을 지닌 칼은 진작부터 패션계에 모바일 테크놀로지가 접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칼 라거펠트의 고객들은 아이패드로 룩북을 넘겨보며 그의 옷을 구매하고, SNS로 서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을 공유할 수 있다. 향수를 론칭할 때 소개한, 이모티콘에서 영감을 받은 ‘이모티칼’ 애플리케이션 역시 그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는 오랜 패션 역사와 함께 과거를 지나왔고, 현재를 살고 있다. 그리고 대중과의 소통, 디지털 세계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며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이런 시도는 이번에 선보인 그의 새로운 향수를 통해 여실히 증명했고, 성공을 이뤘다. 이제 그가 탄생시킨 이 크리에이티브한 작업들을 즐길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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