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3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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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03, 2024

글 심은록 (미술비평가, AI 영화감독)

아그네스 마틴, 정상화, 리처드 마이어

해풍에 솔 향이 담겨 있는 곳 강릉, 그중에서도 ‘소나무가 많은 고을(솔올)’을 찾았다.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5. 4~8. 25)과 (5. 4~8. 25) 전시를 각각 관람하다 보면 2중주를 듣는 것 같다. 그런데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 솔올미술관 설계)가 합류해 3중주가 되었다. 어쩌면 미술관이 시야에 들어오면서부터 마이어의 전주가 시작되었으나, 자연의 소리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전시와 미술관이 조화를 이루면서 작품은 확장되어 3D 공간이 되고, 공간은 거대한 심포니가 되어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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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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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의 작품 앞에 서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알 수 없는 ‘울컥함’이 올라왔다. 찡해진 코를 달래며, 혹여 감정이 들켰을까 곁눈질로 슬쩍 주변을 살핀다. ‘데자뷔’ 현상이다. 이런 경험이 많지 않기에 바로 기억이 난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후기 작품을 봤을 때였다. 이러한 감동에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할까?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고전적 용어인 ‘카타르시스’라고 칭해본다. 그런데 두 작가의 작품을 ‘카타르시스’적이라고 표현한다고 해도, 그 차이는 모차르트와 바그너만큼이나 다르다. 아그네스 마틴의 경우에는 ‘교향곡 41번(K. 551 주피터)’처럼 고전적인 조형성이 있으면서도 풍부하고 자유로운 선율로 방해물 없이 바로 신(神)에게 직진한다. 마크 로스코의 경우에는 ‘탄호이저’처럼 강렬한 열정으로 세상의 모든 규정을 물리치나 결국 운명적인 비극에 의한 정화로 귀결된다.
현시대에 시선을 끌기 위한 의도를 품은 자극적이며 독특한 작품은 많지만, 카타르시스와 숭고함을 선사하는 작업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아그네스 마틴의 삶이 작업처럼 밝고 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의 작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생애 마지막 30여 년 동안 ‘세상을 등지고(나의 세상으로 돌아가, With My Back to the World)’ 오로지 작업에 몰두했다. 그녀는 선불교의 명상을 캔버스 위에 실천하며 직관적인 세계를 펼쳐나갔다. 대부분의 작품은 캔버스 위에 연필로 그려진 선들과 부드러운 색조로 구성된다. 시각적 단순성에 정밀함이 더해져 더욱 순수하게 느껴진다. 얇고 균일한 선들은 캔버스 전체에 걸쳐 격자무늬나 평행선 형태로 배열된다. 그러고 나서 아크릴로 여러 겹 얇게 덧칠되고, 레이어가 쌓이면 쌓일수록 깊이감과 투명성이 더해지며 신비를 자아낸다. 여기서부터 명상적인 품격이 배어 나온다. 하얀색 톤, 회색 톤 혹은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사용이 절제되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자아낸다. 주변의 모든 소음을 잠재우고, 외부 세계의 혼란으로부터 안식처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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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주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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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올미술관은 아스네스 마틴과 함께 대화할 작가로 정상화를 초대했다. 그는 한국의 단색조 추상회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두 작가의 작품은 흰색 톤에 명상을 불러일으키며, 반복된 격자 구조 등 비슷한 인상을 준다. 마틴은 ‘자연의 뒤(잎의 뒷면 / 그늘이라 시원하다/ 숭고하게 잠잠하다/ 순수의 미소_아스네스 마틴)’를, 정상화는 ‘평면(캔버스)의 뒤’를 추적한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나 비존재를 예상했으나, 또 다른 ‘뒤’가 이어지며 무한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비슷한 인상에도 이들의 차이는 마치 ‘플루트’와 ‘대금’만큼이나 다르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선’과 ‘주름(皴)’이다. 동서양 미술사에서 ‘점’과 ‘선’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지만, 서로 다른 미학적 접근을 했다. 서양은 ‘선’에, 동양은 ‘준(皴, 주름)’에 근거했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선(線)이란 폭이 없는 길이다.” – 유클리드기하학

준법(皴法, 주름皴)이란 산, 바위, 물 등 질감과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한 동양화 기법을 일컫는다.


아그네스 마틴의 ‘선’은 유클리드기하학의 정의처럼 폭이 없기에 개념적이고 관념적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서양미술이 발전되어왔고, 마틴의 작업도 이 선상에 놓여있다. 마틴의 ‘어느 맑은 날’(1973) 연작을 보았을 때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패턴은 잠시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알베르티의 베일(오브제를 측정하기 위한 격자창)’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작업을 상세히 살펴보면 미묘한 변화와 차이, 선의 간격, 색의 농도, 캔버스의 크기 등의 변형에서 독특한 개성이 나타난다. 어느새 격자무늬의 기하학적 패턴이나 선들은 ‘알베르티의 베일’처럼 측정하고 계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각적인 명상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완벽한 균일성과 정밀하고 엄격한 작업 방식은 오랫동안 잊혔던 ‘명상’적인 품격과 경건한 품성을 상기시킨다.
정상화의 ‘주름’을 살펴보자. 그는 일본 고베 시절(1969~1976)에 격자형 단색조 회화를 시작했고, 파리 기간(1979~1992) 동안에 독특한 ‘뜯어내기와 메우기’ 기법의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그는 캔버스에 3∼5mm 두께로 고령토를 펼쳐 바른다. 고령토가 굳으면 직접 만든 뾰족한 칼을 사용해 네모꼴로 뜯어내고, 그 자리를 유채나 아크릴물감으로 메운다. 무한히 반복되는 지독한 노동 집약적 방식이다. 작업 방식은 같지만, 뜯어내는 네모꼴의 모양이나 크기, 바탕 안료의 두께 등에 따라 각각의 작업은 다른 표정과 톤을 보여준다. 그에게 ‘뜯어내고 메우는 것은 붓으로 지우고 그리는 행위’와 같다. 일정한 격자는 정간보(井間譜)를 떠올리게 한다. 시간이 지워버리는 율명을 쓰고 또 겹쳐 쓰지만 결국 지워지고(시간에 의한 ‘뜯어내기’와 인간의 ‘메우기’), 희미한 장식음 부호의 흔적만 남은 것 같다. 이렇게 드러나는 그의 격자무늬는 ‘선’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잊힌 가락이 담긴 ‘주름’이다. 준법의 ‘준’은 ‘살이 터져 주름질 준, 살갗에 낀 때, 손가락 얼어 터질 준, 주름 잡힐 준’ 등으로 신체성, 물체성이 기본이다. 개념적이고 이성적인 ‘주름’이 아니라, 기후나 환경 같은 외부가 신체 내부로 말려 들어오는 체험적, 물리적 감각적 ‘주름’이다. 질 들뢰즈(프랑스 철학자)가 말한 대로 ‘신체의 주름’이다. 이는 살아 있고 존재하기 때문에 외부(태양, 추위, 바람 등)와 부딪혀 발생한다. 주름은 감성과 체험에서 나온다. 좀 더 넓게는 물체나 인체에 접혀 있는 신체의 주름, 사회적 갈등인 ‘힘 관계의 주름’, 지식이나 진실의 주름, 삶과 죽음의 한계에 관한 주름(Gilles Deleuze, , E′ditions de minuit)까지 확장된다. 정상화는 “내 숨결을 그렸다. 나의 삶과 작품을 만든 계절, 그날의 날씨와 공기가 섞여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작가의 신체성과 얽힌 시공간, 기억 등 모든 것이 집적되어 만들어지면서 정상화만의 독특한 ‘준법’이 형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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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던 시절에는 전시를 꾸릴 때 여백의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 공간 자체가 귀하다 보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내용물(작품)이 그릇의 용량에 넘치게 꾹꾹 누르듯 전시를 했다. 이제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많아진 덕분인지, 작품 배치에도 여백의 미를 적용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미술관 중에는 그릇이 지나치게 화려한 나머지 오히려 그 안의 내용물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솔올미술관이라는 하얗고 정갈한 도자기 그릇에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적당히 내용물이 담겼다. 현재의 많은 전시나 작품이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으로 구성되는데, 아그네스 마틴과 정상화의 ‘다이얼로그 전시’는 전혀 그렇지 않고 담백했다. 그런데 그 여운은 오래 남아 잊히지 않고, 잊고 싶지 않은 잔잔한 여운을 준다. 솔올의 두 전시와 더불어 미술관(건축)의 3중주는 전시 제목 그대로 ‘완벽의 순간’과의 ‘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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