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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07, 2024

글 박명희(미국 채터누가 현지 취재) | 사진 문철주, 헌터 뮤지엄 제공

한 도시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기억되는 데는 최고의 맛집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도시의 역사와 멋진 건축미를 담은 뮤지엄 하나쯤은 있어야 도시의 이미지가 각인되지 않을까.
서울에 국립 현대미술관이 있다면, 채터누가(Chattanooga)에는 헌터 뮤지엄(Hunter Museum of Arts)이 있다.
미국 남부의 소도시 채터누가에서 어떻게 예술의 공간이 탄생하고 자리 잡아가는지 추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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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하고 싶은 욕구는 곧 소통하고 싶다는 의미다. 누구는 말로, 누구는 춤으로, 누구는 그림으로 소통한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고 한 피카소의 유명한 말을 빌리자면,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는 모두 표현하고 싶은 창작 욕구를 느낀다. 그래서 인간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디에 살든, 어디에 가든 예술적 표현에 끌린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고, 문화적 동물이며,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그는 왜 인간을 지칭할 때 동물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성경 창세기에서 길게 이어진 흉년에 먹을 게 없어 자식을 잡아먹었다는 기록을 보면 왜 그가 동물이라 말했는지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종이도 연필도 없던 BC 1500년경 스페인 고대인이 알타미라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린 것을 보면 그나마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임에 안도하게 된다. 그렇다. 인간은 매일 밥만 먹고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마을이 형성되는 곳에는 반드시 도서관이 들어서고, 미술관이 생겨난다. 생활인은 매일 반복되는 노동에 집중하다, 주말에는 노동과 다른 그 무엇을 하고 싶어 한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보며 내재된 감성을 자극받고, 조각 공원을 산책하며 파란 하늘, 초록 나무와 어우러진 창작품에 힐링을 얻는다. 우리 인간이 동물에 머물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느끼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갈망의 존재이며, 이를 향유하고자 하는 문화적 욕망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헌터 뮤지엄(Hunter Museum of Arts)은 예술이 전무했던 1950년 초, 미국 남부의 중소 도시 채터누가(Chattanooga)는 지역민과 소통하고픈 욕구와 갈망을 느끼던 예술가들을 통해 서서히 지역 예술의 집결지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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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오른 바위, 채터누가의 상징
채터누가의 미술가협회에서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언어에서 유래한 ‘솟아오른 바위’라는 의미의 지명에 어울리는 미술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테네시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서 있는 팩슨 헌터(Faxon Hunter) 맨션을 미술관으로 개조하면 상징적인 공간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 협회는 이 맨션의 소유주인 벤우드 재단(Benwood Foundation)을 찾아가 맨션을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다.
1850년대 중반, 절벽 위에는 제철 공장이 있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후 부유한 보험 중개인 로스 팩슨(Ross Faxon)이 가족을 위해 대저택을 지었고, 그들은 여러 해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1920년, 이 집은 최초의 코카콜라(Coca Cola Bottling)사 창립자 중 한 명인 벤저민 F. 토머스(Benjamin F. Thomas)의 미망인 앤 테일러 토머스(Anne Taylor Thomas)에게 매각되었다.
조지 토머스 헌터(George Thomas Hunter)는 삼촌 벤저민 토머스의 회사 일을 돕기 위해 17세의 어린 나이에 채터누가에 왔다. 사무원으로 시작한 그는 30대 중반에 삼촌의 회사를 물려받아 경영인이 되었고, 1944년 민간 자선 신탁인 벤우드 재단을 설립했다. 조지 토머스 헌터는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채 1950년 사망했고, 미술협회는 그가 남긴 벤우드 재단을 통해 팩슨 헌터 맨션을 기부받았던 것.
벤우드 재단은 뮤지엄을 통해 비즈니스를 확대하려기보다 평소 지역사회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조지 토머스 헌터의 뜻을 살려 기부를 결정했다. 그런 이유로 1952년 7월 개관한 헌터 뮤지엄의 첫 이름은 ‘조지 토머스 헌터 갤러리(George Thomas Hunter Gallery of Art)’였다. 지역사회에 존재하지 않던 공간이 탄생하는 순간에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미술협회 화가들과 뜻을 같이한 벤우드 재단이 여러 의견을 종합해 결정적인 순간에 판단하고 밀어붙였기에 ‘유’에서 ‘무’를 창조해냈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지금 우리가 이 문화 공간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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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 윙, 웨스트 윙으로 날개를 단 헌터
헌터 갤러리는 코언(Cohen) 컬렉션의 미술사적 회화 및 3천 점에 달하는 작품을 확보하며 미국 근대미술의 역사적 갤러리로 성장했다. 19세기 장르화, 미국 인상주의, 애시캔 스쿨(Ashcan School, 20세기 초엽 미국 예술운동의 하나로, 뉴욕의 빈민 지역을 주로 그렸다), 초기 모더니즘, 지역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75년 9월, 건물 증축과 개조를 거쳐 드디어 ‘헌터 뮤지엄’이라는 새 이름으로 시민들 앞에 섰다. ‘이스트 윙(East Wing)’이라 불리는 두 번째 건물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유행한 브루탈리즘(Brutalism)이라는 건축양식을 반영해 견고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완성했고, 모던하면서도 웅장한 설계로 권위 있는 건축상을 다수 수상했다. 2005년, 채터누가시는 테네시강이 흐르는 다운타운을 살리기 위한 ‘21세기 워터프런트 계획’의 일환으로 헌터 뮤지엄의 ‘웨스트 윙(West Wing)’ 건물을 증축했다.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웨스트 윙 건축가 윌리엄 스타우트(William Stout)는 두 기존 건물을 모두 존중하고 싶어 했고, 박물관 서쪽 건물이 동쪽 건물과 균형을 이루어 현장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남을 수 있도록 했다.

시민과 함께 성장하는 뮤지엄

큐레이터 로렌은 사람들이 헌터 뮤지엄을 사랑하는 것은 예술에 대한 동경과 창의적인 출구를 갈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감정을 표현하고, 복잡한 아이디어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과 연결하고,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싶어 합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예술 작품을 보고 창작하는 것은 뇌파와 신경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기분을 좋게 하는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합니다. 이러한 창의성은 박물관이나 갤러리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생겨날 수 있습니다. 저는 창의성을 삶에 접목하는 것이 우리를 더욱 다재다능하고 공감 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믿습니다. 예술은 디자인, 디지털 미디어뿐 아니라 기능적인 사물을 통해서도 매일 우리 주변에 존재합니다. 예술가의 작품이 없었다면 세상은 아주 삭막해졌을 것입니다.”
헌터는 지역주민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영구 컬렉션과 단기 전시회를 통해 지역사회에 다양한 예술 작품을 선보이고, 지역 어린이 수천 명을 대상으로 예술 작품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아트 캠프를 1년 내내 운영한다. 테네시의 많은 학교가 미술 시간을 이용해 헌터 뮤지엄을 방문하고, 해설 봉사자들이 작품에 대한 해설뿐 아니라 예술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10년 전 방학마다 아트 캠프에 참여했던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봉사를 하고, 엄마가 되어 자신의 아이를 데려온다. 헌터 뮤지엄에는 많은 기부자가 있지만 자생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벤트 장소로 뮤지엄을 공개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채터누가를 찾는 최고의 클래식 공연이 개최되거나 연말연시 행사도 열리며, 강가 풍경과 뮤지엄의 모던한 건물이 어우러진 공간은 결혼하는 커플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다. 장애인 커뮤니티와도 지속적으로 연락해 관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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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칠 수 없는 경험, 올해의 전시
지금 헌터 뮤지엄을 찾는면 근대 아메리칸 미술의 역사를 담은 상설 전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버밍엄 출신 작가 에이미 플레전트(Amy Pleasant)의 ‘패싱 스루(Passing Through)’가 2024년 7월 28일까지 전시된다. 에이미는 미국 초상화의 전통을 인간 정체성과 행동이라는 현대적 주제와 연결해 비유적으로 풀어낸다. 그녀의 대규모 캔버스와 그래픽은 헌터 뮤지엄의 유서 깊은 맨션 계단 참 벽을 덮고 있다. <네트워크드 네이처(Networked Nature)>라는 기획 전시는 디지털 및 뉴미디어 작품, 인공지능, 기계 학습, 실시간 소프트웨어, 맞춤형 알고리즘, 가상 환경에 대한 예술가의 선구적 접근 방식과 이러한 접근 방식에 인간과 자연환경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소개한다. 이 전시는 칼 & 매릴린 토마 재단(Carl & Marilynn Thoma Foundation)이 주최한다. 1월 26일부터 5월 5일까지.
헌터 뮤지엄의 여름 전시에서는 데이비드 후흐트하우젠(David Huchthausen)의 컬렉션을 소개한다. 스튜디오 글라스 무브먼트(Studio Glass Movement, 절단 톱질, 라미네이팅 및 광학 연마 같은 가공 제작 기술을 활용해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의 최초 예술가 중 한 명인 그는 수정처럼 투명한 유리 형태에 오목렌즈, 복잡한 컬러 패널을 통합해 다양한 패턴과 컬러를 빚어낸다. 그의 조각적인 내러티브는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신비로움을 품고 있어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5월 24일부터 9월 2일까지.
독일 남부 지방 뮌헨 근교에 위치한 노이슈반슈타인 성(Neuschwanstein Castle)은 디즈니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성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바이에른왕국의 왕 루트비히 2세는 이 성을 짓느라 국고를 탕진해 사치스러운 왕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런데 지금 이곳은 로맨틱한 캐슬의 상징으로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바이에른주의 재정을 불려주는 주요 관광 수입원이 되었다. 문화의 힘이 이런 것이 아닐까? 헌터 뮤지엄은 누군가의 기부가 씨앗이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채터누가의 문화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다면 채터누가 문화 역사의 한 부분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채터누가 가는 법
서울에서 채터누가까지 운항하는 직항편은 없다.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이기 때문이다. 대도시 공항에서 채터누가행 국내선으로 갈아타면 된다.
또는 애틀랜타 공항에서 자동차를 타면 2시간 30분 소요되고, 내시빌 공항에서는 자동차로 2시간 20여 분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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