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Biennal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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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1, 2020

글 고성연

현대미술을 둘러싼 다양한 면모와 우리를 즐겁게, 때로는 우울하게 ‘각성’하도록 하는 축제, 비엔날레. 각각의 색깔도 역사도 현주소도 다르기에 여러 도시의 비엔날레를 보는 여행은 꽤 재미나고 알찬 여정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누군가는 “싱가포르에서도 비엔날레가 열려?”라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지는 않았지만 동남아시아 지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축제로, 개항 2백 주년을 맞이해 더 뜻깊기도 한 2019 싱가포르 비엔날레(SB 2019)가 지난해 11월 막을 올려 오는 3월까지 이어진다.
주제는 ‘Every Step in the Right Direction’. 필리핀의 저명한 학자이자 기획자인 패트릭 D. 플로레스(Patrick D. Flores)의 짜임새 있는 구성이 돋보이는 6회 싱가포르 비엔날레의 현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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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년제’라는 뜻을 지닌 이탈리아어에서 따온 ‘비엔날레(biennale)’는 어느새 현대인의 일상에서 제법 익숙해진 단어다.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가장 길고 권위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잘 모르더라도 오는 가을에 개최되는 광주 비엔날레를 비롯해 세계 여러 도시에서 현대미술 축제인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기 때문. ‘비엔날레 과잉’이라는 비판이 자주 나오고, 꽤 일리도 있는 지적이지만 지역성을 충분히 살리되 글로벌 맥락을 읽을 줄 아는, 잘 꾸린 비엔날레는 분명 의미가 있다. 대개 다국적 예술가들이 참여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해당 지역의 관점과 상황에서 ‘현대미술’로 풀어낼 기회가 좀 더 많아지므로 관람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아트 축제인 동시에, 외부인에게는 낯선 지역이나 도시에 대해 ‘발견’을 하거나 제대로 곱씹어보거나 하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이번에 6회를 맞이한 싱가포르 비엔날레(Singapore Biennale 2019)는 ‘젊은’ 비엔날레인 편이고 규모도 방대하지 않지만 동남아시아라는 한 지역을 대표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존재감이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막을 올린 뒤 4개월간의 대장정을 펼치고 있는데, 주제는 ‘Every Step in the Right Direction’. 기후변화와 다방면(사회, 경제, 정치, 문화)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요동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내려야 하는 결단, 그리고 실천적 과제를 뜻하는 문구. 동남아 지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참여한 77명의 아티스트가 더 나은 세상을 일궈내기 위한 인류의 노력 속에서 우리가 내리는 여러 상황과 각 단계의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짚어보는 ‘통찰의 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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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Step in the Right Direction

‘사자의 도시(Singapura)’라는 뜻을 지닌 동남아시아의 섬나라. 부산보다 면적이 작고, 인구는 6백만이 되지 않는 이 도시국가는 편리한 인프라와 깨끗한 환경, 양호한 치안 등으로 관광지로는 이미 인기가 많은 ‘강소국’이다. 문화 예술적으로도 제법 다양한 시설을 갖추었는데, 이번 싱가포르 비엔날레를 펼쳐내는 전시장으로 도시 곳곳에 있는 11개 장소가 동원됐다. 싱가포르의 도심 자체가 그리 넓지 않기에 복잡하지 않은 동선이 오히려 나름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국립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NGS), 옛 군대 병영을 활용한 ‘아트 허브’ 길먼 배럭스(Gillman Barracks), 아시아 문명 박물관 등을 무대로 활용했고, 1백5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재단장’을 위한 공사를 진행 중인 현대미술 플랫폼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SAM)에는 임시 가림막을 활용한 공간이 마련됐다). 주 무대 중 하나인 내셔널 갤러리는 구(舊) 대법원 건물과 시청 건물을 연결해 만든 독특하고 넓은 공간에서 아티스트 36명이 펼친 다양한 전시와 작품이 단연 눈길을 끌었다. 건물 안을 거닐다 보면 여러 위치에서 보이는 대형 설치 작품이 있는데, 흰색, 녹색, 하늘색, 청색, 빨강 등으로 이루어진 13개의 배너가 어우러져 있는 패브릭 작품이다. 이번 비엔날레를 위한 커미션 작품으로 샤론 친(Sharon Chin)의 ‘In the Skin of a Tiger: Monument to What We Want(Tugu Kita)’. 이 패브릭 작품 밑에 보이는 에스컬레이터의 경사를 타고 설치된 작품도 ‘검은 재단’인지, ‘나무집’인지 모를 모양새를 띤 채 은근히 눈길을 끄는데, 역시 비엔날레 커미션 작품인 ‘Black-Hut, Black-Hut’(2019)이다. 인도네시아 화교 출신으로 싱가포르에서 주로 활동하는 보에디 위자야(Boedi Widjaja)의 작품으로 공적인 역사와 사적인 추억이 깃든 집, 가정, 모국 같은 개념의 연관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이렇듯 전시장 곳곳을 수놓은 다채로운 설치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지만, 다양한 결을 지닌 영상 작품도 상당히 알차다. ‘Funeral’(2018), ‘Monologue’ (2015) 등 세 작품을 하나의 전시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캄보디아 작가 반디 라타나(Vandy Rattana), 영화음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 같은 인물도 만날 수 있고, 미술관의 전신인 시청의 역사와 더불어 싱가포르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미디어 아트 영상관도 흥미롭다. 또 지역의 사회·문화적 발달사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특별전 <Suddenly Turning Visible>도 주목할 만하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을 특장점으로 내세우는 행사답게 1960년대 말에서 1980년대 말에 걸친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3국의 현대미술과 건축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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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 않은 규모지만 알차고, 조화로운 콘텐츠의 향연

휘황찬란한 랜드마크는 아니지만 ‘아트 피플’에게는 잘 알려진 명소인 길먼 배럭스는 역시 이번에도 근사한 플랫폼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식민지 시절 싱가포르의 영국군 막사를 정부 주도로 묘한 분위기의 갤러리 지구로 탈바꿈시킨 이곳에서는 20명이 넘는 아티스트와 그룹이 작품을 전시 중인데, 옛 병영답게 ‘블록 07’, ‘블록 09’ 같은 표지판을 세워놓은 각각의 건물을 돌아다니면서 저마다 다른 개성의 작품 세계를 감상하는 일이 일종의 ‘산책’처럼 느껴질 수 있다. 늘 날카로운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는 카롤리나 브레굴라(Karolina Bregula)의 작품으로 ‘평화로운 대만의 한 마을에서 불거지는 미스터리 같은 사건’이라는 이야기 소재를 바탕으로 한 ‘Square’(2018), 소수민족과 그룹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제어했던 네덜란드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발언의 자유’를 다룬 ‘No False Echoes’(2008) 같은 작품이 있는 ‘블록 07’을 비롯해 태국 북부 치앙라이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자신이 속한 ‘Akha’라는 유목민들의 문화를 강렬하게 표현해낸 작품 ‘Ayaw Jaw Bah’(2019), ‘자이언트 아프리칸 랜드스네일(Giant African Landsnail)’이라는 달팽이가 대만인들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여정을 보여주는 ‘Snail Paradise’(2019), 생태계 파괴로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종과 역사 등을 엮은 ‘Reincarnations’(2019) 등 다국적 배경을 지닌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예술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건물 외관부터 범상치 않은 라살 예술대학(LASALLE College of the Arts)도 비엔날레의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길먼 배럭스에도 ‘Social Organism’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하피즈 란차잘레(Hafiz Ranchjale)가 ‘책’을 소재로 만든 흥미진진한 작품 ‘Buku’(2003)를 비롯해 이번 비엔날레 커미션 중 하나인 ‘The Mamitua Saber Project’(2019) 등을 접할 수 있다. 한 지역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개인의 역사와 갈등, 감수성과 ‘관계’하는 단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이소영 작가의 경우 이곳에서 7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해 서울 미디어시티 비엔날레에서 전시했던 영상 작품으로 서울, 상하이, 싱가포르 등 ‘정부 주도로 급성장한’ 아시아 도시에서 촬영한 ‘Gooseberry’를 비롯해 이와 연결되는 영상, 그리고 드로잉 작품으로 구성했다. 아시아 문명 박물관(Asian Civilisations Museum)에서는 3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다. ‘다인종 사회에서의 언어’를 소재로 세대 간의 소통 등을 재치 있게 다룬 말레이시아 작가 오쿠이 랄라(Okui Lala)의 ‘National Language Class: Our Language Proficiency’(2019), 뉴욕에서 활약 중인 젠리우(Jen Liu)의 ‘Pink Slime Caesar Shift: Gold Edition’(2015~19), 로런스 렉(Lawrence Lek)의 세계와 현실에 존재하는 건축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디어 작품 ‘2065’(Singapore Centennial Edition, 2019)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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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색다른 흥미를 선사하는 장외열전

미술이든 디자인이든 공예든 규모 큰 문화 예술 축제가 열리는 도시에 가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장외’가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주 무대의 전시가 뒤떨어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러한 콘텐츠가 품은 색다른 면모, 그리고 종종 장소가 주는 매력 덕분에 참신한 감흥을 느끼게 된다. 싱가포르에서는 도시의 랜드마크이기도 한 마리나 베이 샌즈에 있는 아트사이언스 뮤지엄(ArtScience Museum)이 바로 그런 장소로 꼽힌다. 피어나는 연꽃을 연상시키는 외관부터 단번에 시선을 잡아끄는 이 미술관이 이번 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시작한 <2219: Futures Imagined>는 특유의 미래 지향적인 ‘디지털 센스’를 담은 전시로 2백 년 뒤의 세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제목으로 차용했다. 연극의 1~5막처럼 다른 소주제의 공간을 따라 ‘체험’하는 여정의 짜임새가 흥미롭고, 어맨다 헹(Amanda Heng), 슈퍼플럭스(Superflux),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 박리사, 허산 등이 참여했다. 이 밖에 SMU 드 수안티오 갤러리(SMU de Suantio Gallery)에서는 지난해 그래미 어워드를 받은 전천후 아티스트인 로리 앤더슨과 신치엔후앙(Hsin-Chien Huang)의 가상현실(VR) 작품 ‘The Chalkroom’(2017), 럭셔리 유통업체 아워 글래스(The Hour Glass)의 플래그십 매장 말메종(Malmaison)에서는 마크 뉴슨, 넨도, 대니얼 아샴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의 한정판 협업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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