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quintessence of British Lux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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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1, 2017

글 고성연(런던 현지 취재)

철학자이자 사회 사상가 질 리포베츠키는 “럭셔리란 사람의 재능을 통해 사물이 완벽해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의 재능은 자본과 미학의 절묘한 배합으로 실현할 수 있고, 여기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더해지면서 사물은 럭셔리의 꼴을 갖춰가는 것일 터다. 전통의 정서가 유달리 강한 영국에서 럭셔리는 특히 시간의 가치가 무게 있게 반영되는 존재지만, 현대적인 재해석을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뒷받침되고 있다. 전통을 중시하되 엄격하고 신중하게 변화를 꾀하는 영국적인 혁신과 닮았다. 브리티시 럭셔리의 상징과도 같은 폴로와 위스키가 만나는 흔치 않은 체험의 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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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luxury)는 전통이라는 개념에 많이 의지하는 개념이다. 극도로 섬세한 솜씨를 반영한 정성스러운 손길이 오랜 시간에 걸쳐 깃든 이미지를 내세우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럭셔리의 홍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런 이미지에 기댄 물건과 브랜드가 넘쳐난다. 물론 다 통할 리는 없다. 어떤 전통 브랜드는 그저 고루하게만 다가오는데, 어떤 전통 브랜드는 ‘우아한 진짜배기’로 느껴지니까. 아마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영국 문화 예술계 지성인 데얀 수직(Deyan Sudjic)은 “럭셔리가 살아남으려면 그것이 의지하는 전통이 결코 같은 상태로 유지되지 않고 계속 쇄신되어야만 한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물론 이 발언이 성립되려면 두 가지 전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말로 의미 있는 전통을 품고 있는가? 그 정수를 유지하면서도 쇄신을 거듭하고 있는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중 하나로 꼽히는 폴로(Polo)와 프리미엄 스카치위스키 로얄 살루트(Royal Salute)의 만남은 철저하게 확고한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재와 소통하는 것을 지향하는 ‘브리티시 럭셔리(British Luxury)’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조합의 시너지를 가장 잘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는 무엇보다 매혹적인 ‘체험’일 것이다.


브리티시 럭셔리의 정수를 담은 체험의 장, 로얄 살루트 코로네이션컵
런던의 명소 윈저 성에 부속된 개인 사냥터였다는 윈저 그레이트(Winsdor Great) 공원. 엄청난 키를 뽐내는 나무들이 끝을 모를 만큼 길게 일렬로 펼쳐진 모습이 사뭇 장관인데, 무려 5,000에이커 면적을 자랑하는 이 넓디넓은 공원의 부지에는 수려한 자태의 폴로 경기장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영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폴로 대회인 ‘코로네이션컵(Coronation Cup)’이 열리는 ‘가즈 폴로 클럽(Guards’ Polo Club)’이다. 로얄 살루트는 1911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Elisabeth II)의 조부인 킹 조지 5세(King George V)의 대관식을 기리기 위해 처음 개최됐던 이 대회와 2015년부터 타이틀 스폰서로 인연을 쌓아오고 있다. 로얄 살루트가 1953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을 위해 헌정한 위스키라는 점에서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최소 21년의 포트폴리오를 갖춘 로얄 살루트는 브랜드 자체도 대관식 당시 쏘아 올린 ‘21발의 예포(gun salute)’에서 영감을 받아 작명한 위스키다.
올해 가드 폴로 클럽은 꽃으로 세운 포토월, 꽃 장식을 단 챙 넓은 모자 등 ‘꽃 작품’으로 단장해 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플로리스트 토비 로버츠(Toby Roberts)가 여왕의 웨딩 부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작품이다. 꽃향기만이 전부일 리는 없다. 한쪽에 마련된 로얄 살루트 바(bar)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결혼 70주년을 기념해 그녀가 좋아하는 얼그레이 티를 활용해 만들었다는 풍부한 향미의 칵테일 ‘로얄 서머 컵(Royal Summer Cup)’을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 로얄 살루트의 크리에이티브 고문인 스타 조향사 바나베 피용(Barnabe´ Fillion)과 세계적인 바텐더 롭 맥하디(Rob McHardy)의 협업이 빚어낸 현대적인 창조물이다. 루트 비트 샐러드, 트러플을 가미한 무슬린 소스를 곁들인 뿔닭 요리, 애프터눈 티 세트 등으로 구성된 영국식 런치도 이날의 미각 향연에 합류했다. 코로네이션컵 관중은 경기 관람 전에 실제로 폴로라는 스포츠를 경험해볼 수 있는 ‘폴로 클리닉(Polo Clinic)’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잉글랜드가 낳은 폴로 스타로 로얄 살루트의 폴로 앰배서더이기도 한 말콤 보윅(Malcolm Borwick)이 직접 잔디밭에서 말렛 (mallet, 긴 막대 끝에 붙어 있는 망치 모양의 타구봉)으로 공을 쳐내고, 말 위에서 말렛으로 공을 치는 등의 기초 훈련을 지도해준 만큼 호응이 뜨거웠다.


‘장군멍군’의 묘미를 보여준 승부, 역동성과 기품을 동시에!
‘2017년 로얄 살루트 코로네이션컵’은 지난해 1골 차이로 아쉬운 패배를 한 잉글랜드 팀의 공격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경기였다. 1년을 기다린 승부였던 만큼 초반부터 엄청난 공세를 퍼부은 잉글랜드 팀이 작년에 트로피를 가져간 커먼웰스 팀을 7대 1로 물리친 것. 연두색 잔디밭을 무대로 탄탄한 근육과 유연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말을 탄 채 말렛을 휘두르면서 기품 있으면서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폴로 선수들의 모습은 혹여 이 스포츠의 규칙을 잘 모르더라도 절로 눈길이 사로잡히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폴로는 축구나 야구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하지만 수천 년 역사를 지닌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다. 그도 그럴 것이 폴로는 영국이 종주국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원류를 따지자면 중앙아시아에서 국왕의 직속 기마대를 비롯한 정예부대의 훈련용 경기였다고 한다(실제로는 19세기 영국에서 현대적으로 부활한 종목이라고 볼 수 있다). 강인한 체력과 담력이 필요한 만큼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용맹을 증명할 수 있는 상징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시속 60km로 달리면서 골대로 공을 몰아가는 선수들의 힘차고 날쌘 질주는 승패 여부를 떠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올해는 헐링햄 폴로협회(HPA)의 수장 스티븐 허친슨(Stephen Hutchinson), 로얄 살루트 브랜드 앰배서더 등과 함께 한국인 최초로 배우 한고은이 시상자로 나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정통성을 간직한 채 은근한 쇄신을 꾀하다
시간과 정통성이라는 가치를 공통분모로 지닌 스포츠와 위스키의 시너지를 몸소 보고 느낀 한고은의 체험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로얄 살루트의 핵심 몰트를 생산하는 스코틀랜드 소재의 유서 깊은 스트라스아일라(Strathisla) 증류소를 방문해 위스키 원액을 시음하고 영국적인 감성과 최신 트렌드의 조화를 만끽할 수 있는 런던의 유명 바를 체험하는 등의 일정이 포함되면서 브리티시 럭셔리의 정수를 폭넓게 아우르는 기회를 가진 것.
영국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을 대표하는 13대 아가일 공작(Duke of Argyll)인 토크힐 이언 캠벨(Torquhil Ian Campbell)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스코틀랜드의 로크 파인(Loch Fyne) 기슭에 자리한 인버라레이 성(Inveraray Castle)에서 열린 위스키 디너였다. 이 성은 대중에 개방되는데, 캠벨 공작의 설명에 따르면 “가문이 지닌 오랜 전통의 유산을 개인 소유가 아닌 현세대와 공통의 문화 가치로 공유하기 위한 의도에서 내린 결단이었다”고. 전통의 가치를 이어가며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특별함을 유지하되, 그 틀 안에서 여러모로 진화해나가려는 브리티시 럭셔리의 면모라는 것이다.
런던 홀본에 있는 로즈우드 호텔(Rosewood Hotel London)의 스카프 바(Scarfes Bar)도 ‘전통을 바탕으로 한 쇄신’이라는 어구가 잘 들어맞는 곳이다. 캐리커처 아티스트인 제럴드 스카프(Gerald Scarfe)의 작품으로 채운 이 세련된 바는 클래식 감성과 모던한 요소가 조화롭게 섞여 있어 런던에서도 가장 앞서간다는 트렌드세터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곳에서 꽤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음료인 ‘스타트미업(Start Me up)은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롤링스톤스 노래인 ‘Start Me up’에서 따온 트렌디 칵테일인데, 로얄 살루트 21년을 베이스로 견과 맛이 나는 양귀비 씨, 캄파리, 피치 와인(peach wine) 등을 주재료로 한다. 시간의 가치를 꿋꿋하게 지키면서도 신중하게 의미 있는 변신을 꾀해온 로얄 살루트와 궤를 같이하는 상큼한 변주의 작은 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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