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 2018
크루그 가문의 6대 계승자 올리비에 크루그(Olivier Krug). 공식 직함은 하우스 디렉터(House Director)지만, 크루그 얘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열변을 토하는 진정한 브랜드 홍보대사다. 사실 태어나자마자 입술 위를 몇 방울의 샴페인으로 적시는 흔치 않은 세리모니를 경험하고 포도밭에 둘러싸여 자란 그만큼 크루그의 정수를 알리기에 적격인 인물도 별로 없을 듯하다. 지난여름 크루그와 미식, 음악이 어우러지는 조화의 묘미를 알린 ‘크루그와의 조우’ 행사에 참석하러 서울을 찾은 올리비에 크루그를 만났다. 마침 자신의 조국 프랑스가 20년 만에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다시 들어 올려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그와의 일문일답.
Q 어릴 때부터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왔을 텐데, 크루그 가문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빼어난 디테일에 대한 감각과 쉽게 품질에 만족하지 않는 태도, 직업에 대한 단단한 가치관, 장인 정신 등을 항상 강조하셨다. 사실 우리는 조셉 크루그가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크루그 고유의 가치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가 크루그를 시작했던 이유를 알게 되면서 발견한 것인데, 그건 바로 ‘관대함(generosity)’이다.
Q (특이하게도) 크루그는 브랜드 고유의 가치로 관대함이라는 단어를 자주 강조하는 것 같다.
그는 해마다 좋은 재료로 최고의 샴페인을 만들어 최상의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꿈을 지닌 관대한 사람이었고, 그것이 크루그의 정신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뭔가 ‘더(more)’ 주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우리 가문에 중요한 가치다. 뮤직 페어링도, 푸드 페어링도 다 같은 맥락이다.
Q 경영과 경제 분야를 공부하고 바로 크루그에 합류했다. 집안의 장남(다섯 형제자매 중)으로 유일하게 가업에 참여했다. 원래부터 샴페인 사업에 뛰어들 생각이었는지?
집안에는 사촌들도 있었고,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졸업하고 막 커리어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차에 아버지의 제안을 받았다. 첫 임무는 일본 시장 개척이었다. 당시 샴페인 시장이 발아기였고, 크루그라는 브랜드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홍보하기 위해 고생도 많이 했다. 어느 날 교토의 유명한 레스토랑 소믈리에가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에 갔더니 훌륭한 소믈리에들이 크루그의 브랜드 스토리는 ‘진짜’라 했다고. 그리고 12병을 주문했는데, 내가 우선 6병만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그가 조만간 다시 주문하리란 걸 알았고, 실제로 그랬다. 그렇게 브랜드를 구축해온 지 25년이 훌쩍 넘었다.
Q 한국에서도 샴페인 애호가들이 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소위 ‘크루기스트(Krugiste)’라 불리는 열혈 팬도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 그런데 크루기스트보다는 그냥 크루그 러버(lover)라고 부르는 걸 선호한다(어렵게 느껴지기를 원치 않는다). 크루그 한 병이 팔릴 때 그게 하나의 경험으로 다가가기를 원한다. 크루그 러버들은 기술적인 면모보다는 그냥 크루그여서 택하는 것이다. 크루그만의 특별함이 있다. 음악이 있고, 스토리가 있다. 실제로 “제가 크루그를 처음 맛보게 된 얘기를 해드리고 싶은데”라든지 “누가 제가 크루그를 처음 소개해줬냐면요” 하는 식으로 자신의 크루그 스토리를 즐겁게 말하는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KRUG SPECIAL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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