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CA 덕수궁, 박수근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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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1, 2021

글 고성연

눈 앞에는 겨울이, 나목(裸木)에겐 ‘봄에의 믿음’이…

돌담길 사이로 고운 주단처럼 알록달록 깔려 있기도 하고, 요리조리 굴러다니기도 하는 은행잎과 단풍잎의 늦가을 세레나데도 막을 내렸다. 자연과의 조우를 즐기고자 도심 속 고궁 나들이에 나선다면 싸늘한 겨울바람이 불어오기 전 부지런을 떠는 게 인지상정일 터다. 그렇지만 아마도 벌거벗은 나무들로 하여금 바들바들 떨게 하는 추위가 와도 주말을 틈타 ‘미술 산책’을 나오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인파만큼은 여전히 붐비지 않을까 싶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개관 이래 처음으로 열린 ‘국민 화가’ 박수근의 대규모 개인전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인 ‘박수근’이라는 예술가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전시는 ‘봄을 기다리는 나목(裸木)’이라는 부제처럼, 보다 희망찬 내년 봄을 기다리면서 겨우내 이어질 예정이다. 오는 3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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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하게 큰 중년의 사나이가 겸연쩍은 듯이 웃고 있었다. 염색한 군복을 비좁은 듯이 입고 있는 그의 얼굴은 일종의 선량함, 어리석지 않은 선량함으로 의젓해 보였다.”
_박완서의 소설 <나목> 중에서


올해는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난 지 꼬박 10년이 된 해다. 역대급 팬데믹의 장기화로 여전히 어지럽지만,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한국인들이 사랑해마지않는 작가 박완서에게 등단의 초석이 된 ‘국민 화가’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는 건 아주 반가운 소식이다. 나이 마흔에 늦깎이 데뷔를 한 박완서의 첫 소설 <나목>(1970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50년대 초반 미 8군 PX에서 초상화가로 잠시 일했던 박수근과의 인연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다. 박수근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에 발표한 이 소설에서 1인칭 시점으로 회상하는 젊은 여성(주인공) 이경은 PX 초상화부에서 만난 생계형 화가 ‘옥희도’를 ‘어리석지 않은 선량함’을 품은 인물로 기억한다. 소설 말미에는 이 책의 제목이 왜 ‘나목(裸木)’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지난달,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옥희도가 죽음을 맞이한 뒤 그의 유작전을 보러 간 이경이 한 작품을 뚫어지게 보고 이렇듯 읊조린다. 잎사귀 없는 가지를 드리운 커다란 나무 양옆에 두 여인을 담은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그림이다. 본디 ‘나목’은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를 뜻하지만 박완서의 시선은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바람에 떨지만 ‘봄에의 향기’, ‘봄에의 믿음’이 애달프게 느껴지는 나목의 의연함을 포착했다.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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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를 동경한 강원도 양구 소년, 독학으로 화가가 되다
시대의 아픔을 담백하게 보듬은 작업을 각자 글로, 그림으로 펼쳐냈던 두 예술인. 둘은 2021년 늦가을, 국립현대미술관(MMCA) 덕수궁에서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이라는 전시로 다시 만났다. 한국인이라면 대다수가 익히 아는 이름이지만 의외로 MMCA 개관 이래 처음 열린 박수근의 개인전인데, 일단 전시 장소부터 더할 나위 없다. 소설 <나목>에서 주인공 이경이 옥희도의 유작전을 보고 난 직후 망연하고 아린 가슴을 달래려 향한 곳이 바로 덕수궁 안 은행나무 벤치였다. 굳이 이 사실을 모르더라도 고즈넉한 정취를 품은 덕수궁관만큼 적소가 또 있을까 싶다. 내용 면에서도 MMCA에서 ‘다시 보기 힘든 전시’라 강조할 만큼 어렵게 모은 풍성함을 자랑한다. 현재 조사된 박수근 작품은 5백 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 전시에 작가의 10대부터 말년을 아우르는 유화, 수채화, 드로잉, 삽화 등 총 1백74점과 다양한 자료를 선보이고 있다. 이 중 유화 7점, 삽화 12점은 그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작품이다. 올해 MMCA에 근현대미술 작품을 다수 기증한 이건희컬렉션까지 포함되어 콘텐츠가 더욱 풍부해졌다.
전시는 MMCA 덕수궁관 1, 2층에 걸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밀레를 사랑한 소년’, 2부 ‘미군과 전람회’, 3부 ‘창신동 사람들’, 4부 ‘봄을 기다리는 나목’ 순이다. 연대기적 구성이라기보다는 ‘독학’, ‘전후(戰後) 화단’, ‘서민’, ‘한국미’, 네 가지 키워드를 내세워 전개하는 방식이다. 사실 박수근은 우리가 접하는 작품 수나 존재감에 비해 ‘전해진 이력’이 길지 않은 작가다. 강원도 양구 출생(1914년생)으로 부유한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열두 살 무렵 밀레의 ‘만종’을 접하고는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독학으로 그림을 익혀야 했다. 이후 26세에 결혼하면서 평양으로 이주해 평안남도 도청 사회과 서기로 일하기도 했는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다시 남쪽으로 향한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 부대 PX의 초상화가로 일하다 생계형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가 남한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겨우 13년 남짓이다. 피란민 신세로 전쟁 뒤 폐허가 된 서울에서 그림으로 먹고사는 건 당연히 힘들었지만, 묵묵히 그림을 그리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우리가 다는 몰랐던 박수근, 동서양을 품었던 거목
박수근은 자신이 동경했던 밀레가 그랬듯 주변의 소박한 풍경(초기엔 농촌, 전후엔 서울의 거리), 서민의 일상을 소재로 한 그림을 즐겨 그렸다. 같은 대상일지라도 여러 차례 반복하며 가장 진실한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한다. ‘20세기 한국판 밀레’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서민적’, ‘토속적’이라는 수식어에 갇혀 그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미술 전문가들은 말한다. 향토적이고 전통적인 경향에 매몰된 게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고 현대 추상화 등을 탐구해 소화한 서양화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MMCA 덕수궁 전시에는 박수근이 수집하고 접한 화집과 서적 등 각종 자료는 물론이고 피카소 등 당시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모사한 습작 등도 볼 수 있다. 여인과 나무, 일상 풍경 등 즐겨 다루는 소재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해방 이후, 특히 전업 작가로서 몰두한 1950년대 이후에 그의 작업은 점차 독자적인 양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모노톤에 가까운 황갈색, 거친 질감으로 덮인 화면, 간결한 윤곽선으로 정의된 형태 등 우리가 아는 ‘박수근 스타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캔버스나 판지 바탕에 여러 겹(때로는 수십 겹까지)의 물감층을 쌓아 만든, 그를 일찍이 알아본 미국인 컬렉터 마리아 핸더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 도자기를 연상시키는’ 그 아름다운 스타일 말이다.
이제 박수근만의 미학과 동시대인을 이해하고 사랑했던 고매한 애린(愛鄰) 정신은 동서양의 접점을 품은 ‘거목’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고 했던 박완서의 글귀처럼 추위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앙상하지만 의연한 나무가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박수근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고, 보다 심도 있는 평가 작업이 필요하다. 물론 생전에 별로 인정받지 못했던 박수근 작품의 경매가는 이제 그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지만, 김환기 같은 미술가들의 명성을 감안하면 세계 무대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밋밋하고 투박하며 토속적인 화풍의 작가로, 궁핍하게 살다 간 불운한 작가로 인식되어온 측면도 많다. 생계형 소품 작업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가 마음먹고 미술전에 출품하려고 작업한 대작은 엄연히 달랐고, 당시 귀했던 유화물감을 나름 풍족하게 쓴 경우도 많았다는 게 학예사들의 해석이다. 그리고 언뜻 ‘단색조’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초록, 분홍 등 원색이 곱게 숨겨진 작품도 꽤 있다. ‘박제되어 있는’ 작가로 보면 매력이 없는 법이니, (세계에 알리기 전 밑작업으로) 우리 스스로가 다시 보고 잘 알아야 한다는 일침을 새겨들을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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