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 Sa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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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01, 2013

에디터 고성연(잉글랜드 현지 취재)

번잡한 도심에서 유용한 폴딩(접이식) 바이크 시리즈로 자전거의 역사에 이름을 각인한 마크 샌더스. 대학원 시절 고안한 미니 폴딩 바이크 스트라이다(Strida)를 비롯해 혁신적인 제품을 세상에 내놓고 최근에는 체인 없는 e바이크 만도 풋루스(Mando Footloose)의 디자인까지 성공적으로 이끈 그에게는 엔지니어도, 디자이너도 아닌 ‘발명가’라는 호칭이 가장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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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접이식 자전거 브랜드 ‘스트라이다’를 탄생시킨 대학원생의 논문
2010년 ‘issuu.com’이라는 웹사이트에는 작성한 지 무려 25년이나 된 한 석사 논문이 공개돼 소위 ‘테키(techie, 기술 애호가)’들과 자전거 애호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985년 영국 최고 명문인 왕립예술학교(RCA)와 공대로 명성 높은 임페리얼 칼리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엔지니어링(IDE) 과정을 밟고 있는 한 대학원생의 75페이지짜리 졸업 논문이었다. 제목은 ‘The Design of a New Folding Bicycle.’ 미니 벨로(Mini-Velo, 휴대 가능한 작은 자전거)의 세계에서 브롬튼(Bromton)과 더불어 접이식 자전거(Folding Bike) 분야의 스타 브랜드인 스트라이다(Strida)의 발명 초안이었기에 화젯거리가 된 것이다. 발명가가 실시한 시장조사 결과, 일일이 풀어낸 공학적 계산식, 초기 프로토타입의 일러스트레이션까지 들어 있는 발상의 보고였다. 놀라운 점은 여기에 공개된 초기 모델이 스트라이다의 최신 버전과 비교해도 70%가량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디자인 학교에서 개념 자체의 질보다 시각적인 커뮤니케이션 효과, 능숙한 프레젠테이션 기술에 더 치중하고 있다. 인체 공학, 마케팅, 엔지니어링 같은 부분, 그리고 ‘정말로 새로운 것’을 시장의 상품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다른 요소들에 대해 충분히 역점을 두고 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스트라이다를 보유하고 있다는 에릭(Eric)이라는 디자이너는 댓글에서 이렇게 지적하며 이 논문에 포함된 참신한 발상이야말로 ‘진정한 디자인’이라는 감탄을 쏟아냈다. 자전거 왕국 네덜란드에 산다고 밝힌 이반(Ivan)이라는 인물은 “스트라이다는 지금껏 나온 폴딩 바이크 디자인의 최고봉이며 자전거 전체를 통틀어서도 톱 10에 든다고 본다”고 했다. 이토록 강도 높은 찬사를 받은 주인공은 마크 샌더스. 국내에서도 스트라이다 동호회에 소속된 열혈 팬들의 지지를 받아온 그는 최근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와 함께 세계 최초의 체인 없는 전기 자전거 ‘만도 풋루스(Mando Footloose)’를 선보여 한층 더 폭넓은 대중의 사랑과 인지도를 누리게 됐다.
바닷가 마을에서 ‘1인 기업’의 삶을 즐기는 진정한 크리에이티브 클래스
이제는 50대의 관록을 보여주는 마크 샌더스는 단순한 산업 디자이너라기보다 ‘발명가’라는 칭호가 더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아니, 단지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본인의 이기적인 ‘창조 욕구’를 채우는 게 아니라 잠재 수요에 뿌리를 둔, 진정 쓸모가 있을 만한 아이디어를 탐색하고, 개발하고,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어내는 ‘발명하는 사업가’라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이겠다. 마크 샌더스는 수많은 ‘아이디어맨’들이 보여온 흔한 행보처럼 크고 작은 기업이나 스튜디오를 세우거나, 자신을 보호해줄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는 것과는 달리 개념을 잡는 일에서부터 연구, 테스트를 통한 개발까지 거의 모든 걸 혼자 꾸려나가는 ‘1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규모를 추구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조직에 휘둘리지 않고 일을 하고 싶었어요. 설계부터 부품을 다루는 일, 디자인까지 전부 다 아우르며 기계와 씨름하는 소소한 재미와 도전을 진심으로 즐기거든요.”
잉글랜드 남부 도셋 지방의 고요한 바닷가를 끼고 있는 한적한 마을 풀(Poole)에 자리를 잡고 MAS 디자인 프로덕트라는 스튜디오를 혼자 꾸려나가고 있는 샌더스. 기차역까지 몸소 마중 나온 그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시내를 거쳐 스튜디오로 안내하며 동네 자랑하기에 바빴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거나 조깅을 하기에 더없이 이상적인 환경. 아름다운 풍광이긴 해도 왠지 모르게 적적할 듯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란다. “프리랜스 약사인 아내가 도와주기는 하지만 거의 혼자서 일을 다 처리하자면 엄청 바쁘지요. 게다가 이곳저곳 출장을 다니고요.” 부부만 단란하게 살고 있는 아담하고 소박한 2층집은 바다를 앞뜰처럼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1층 안쪽에 들어선 작업실 책상에 앉아 은은한 푸른빛 바다를 향해 뚫린 정면의 유리 없는 작은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부러 벽에 구멍을 냈어요. 현관 벽에도 큰 창이 있어 바다가 보이거든요. CAD 작업을 하다가 한 번씩 풍경을 내다보면 기막힌 휴식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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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필요한 건 내가 만든다, 발명 전문가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
이러한 전천후 1인 사업가로서의 소양과 성향은 부분적으로는 RCA-임페리얼 시절부터 깨닫고 습득한 노하우 덕분인 듯하다. 물론 그도 처음엔 대기업에 몸담으면서 전도양양한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교사 부모를 둔 집안의 장남이었던 그는 버크셔 주 셰필드의 철강업체 수석 엔지니어였던 조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기계류에 관심이 무척이나 많았다. 과학에 매료된 소년이었지만 예술도 몹시 사랑했다는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기계공학을 택했다. 명문 임페리얼 공대를 졸업한 그는 롤스롤이스 계열의 엔지니어링 기업이었던 앨런스(Allens)에서 일하다가 대형 식품업체인 마스(Mars)로 옮겨 벤딩 머신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디자인 컨설턴트들을 접하다가 속으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마침 앨런스 시절 동료의 부친이 다용도 목공 작업대와 명차로 꼽히는 로터스 엘란 등을 선보인 론 힉맨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동시에 다루는 ‘발명 전문가’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과 열망을 품던 시기였다. “직업의 세계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게 된 것이죠.” 새 꿈이 생긴 마크 샌더스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좋은 직장을 나와 RCA 진학을 감행했다. 게다가 당시 그는 최고의 디자인 컨설팅업체인 IDEO의 전신 ID TWO에 몸담을 기회도 잡았다고 했다. “고민하고 있던 저는 IDEO 창업자인 빌 모그리지를 만나고 결심을 굳히게 됐죠. 그는 제 얘기를 자세히 듣더니 학교에 가는 게 좋겠다고 진솔한 조언을 해주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시작한 RCA의 IDE 과정은 삼각형의 꼭짓점을 잇듯이 디자인과 기술, 비즈니스의 조화로운 혁신을 추구했기에 그에게 엄청난 자산이 됐다. 접이식 자전거 프로젝트는 기술적, 미학적 욕구를 모두 채울 수 있는 프로젝트를 원했던 그에게 ‘하늘의 계시’와도 같았다. 하지만 우연한 영감이 아니라 25마일(약 40km)이나 되는 통학 거리가 골치였던 그의 절실한 필요를 바탕에 깐 직관이었다. 버스는 느렸고, 모터사이클은 위험했으며, 사이클링은 체력 소모가 너무 컸다. 기차는 편했지만 2마일을 걸어야 했다. 접어서 기차에 실을 수 있는 폴딩 바이크가 좋을 듯했지만 가볍고, 편안히 탈 수 있고, 가격도 적당한 상품을 찾을 수 없었다. 직장 경력이 있었던 만큼 그는 시장성도 갖춘 프로젝트를 원했기에, ‘이보다 안성맞춤은 없다’고 판단했다.
폭넓게 진행되는 ‘발명 스펙트럼’, 그 공통분모는 디자인과 기술의 우아함
스트라이다 프로젝트에 열정을 불사르게 된 또 다른 동인은 당시에 모터사이클 사고를 당한 남동생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위험한 모터사이클링보다는 일상에서 손쉽게 애용할 수 있는 접이식 자전거의 발명이 그에게 운명과도 같은 과제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의 전임 교수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1세기도 전에 나온 자전거에 얼마나 혁신을 덧댈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수의 지적을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의 접이식 자전거가 실제로 확실한 특장점을 갖추도록 하는 데 더욱더 열중했다. 당시에 나와 있던 폴딩 바이크는 몸집이 꽤 육중한 데다 사실상은 ‘반만 접히는’ 못생긴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수없이 많은 스케치와 실험을 통해 그는 마침내 스트라이다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우아하게 삼각형으로 접히는 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무게 9.97kg의 매끈한 폴딩 바이크는 1년 반 뒤, 시장에 내놓자마자 호응을 끌어냈다. 이처럼 디자인과 기술,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멋진 하모니를 이룬 히트작을 선보였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큰 부를 얻지는 못했다. 20대 초반의 청년에게는 제조업에 뛰어들 만한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다(지금 스트라이다에 대한 모든 지적재산권은 대만 업체인 밍 사이클에 귀속돼 있다). 그렇지만 각종 디자인상을 휩쓴 스트라이다의 성공은 최소한 직업적인 발명가로서의 행보에 물꼬를 터주었다. 마크 샌더스는 RCA-임페리얼 시절에 체득한 ‘디자인과 기술의 우아함(elegance)’이라는 신조를 이어가며 다른 영역에도 도전했다.
그중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작품은 ‘접이식 도마(No-Spill Chopping Board)’. 양쪽 날갯죽지를 안으로 접으면 식재료가 쏟아지지 않게 잘 모아주는 이 도마는 인기를 끈 것은 물론이고 디자인의 참신성을 인정받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는 영예를 안았다. 현재 이 도마의 후속 버전인 ‘찹2팟(Chop2Pot)’은 국내에서도 접할 수 있는 주방용품 브랜드 조셉조셉(JosephJoseph)의 베스트셀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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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탈것’ 디자인이 제일 좋아, 만도 풋루스로 한국과도 인연
어떤 프로젝트에 임하든 그의 지향점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제품을 빚어내는 것’이다. “아무래도 제 자신이 사이클링을 즐기는 사용자니까요. 대중의 다양한 수요에 맞춘, 아니 보다 폭넓은 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더 나은 자전거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또 그럴 거고요.” 마크 샌더스는 2008년 대만 업체와 손잡고 ‘IF모드’라는 또 다른 폴딩 바이크를 내놓았다. 무려 5년간의 시간이 소요됐다는 그의 역작으로 덩치가 작은 스트라이다와 달리 바퀴가 큰 보통 자전거도 간편하게 접을 수 있는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이 자전거는 유로바이크, iF 등 각종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그는 착착 접어서 여행 가방이나 유모차처럼 바퀴를 굴려 이동시키는 이 제품이 자전거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랐다. ‘자전거를 타려면 라이크라 소재의 옷을 착용해야 한다’, ‘폴딩 바이크는 바퀴가 작아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자전거는 열혈 바이크족이나 차를 살 형편이 안 되는 이들을 위한 대체 수단이다’. 사이클링을 사랑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이러한 편견들이 못내 싫었다는 것이다.
그가 지난해 한라그룹 계열 자동차 부품업체 마이스터의 요청으로 디자인을 담당한 ‘만도 풋루스’는 아마도 이 같은 고정관념을 뒤집는 데 더욱 근본적인 공을 세울 수 있는 ‘탈것’이 될지도 모르겠다.마크 샌더스의 손길이 닿아 물 흐르듯 유연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이 전기 자전거(e바이크)는 만도(한라그룹)의 자동차 분야 내공을 바탕으로 최초로 페달과 바퀴를 연결하는 체인을 없앤 ‘시리즈 하이브리드 시스템(Series Hybrid System)’이라는 기술을 성공적으로 적용한 작품이다. 몸체에 내장된 배터리를 통해 전자 모터에 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을 쓰는 만도 풋루스는 3~4시간 충전하면 최대 40km를 주행할 수 있다. 자동차의 심장으로 여겨지는 전자제어유닛(ECU)을 비롯해 이중권선모터, 얼터네이터 등 정밀하고 견고한 내부 시스템 덕분에 제어가 간편하다. 땀에 흠뻑 젖거나 기름 때를 묻히지 않고서도 유유자적 돌아다닐 수 있게 한다는 맥락에서 ‘움직임을 자유롭게 한다’는 뜻의 ‘풋루스’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다. 전자 단말로 무게감의 조절도 가능한 페달을 편안하게 밟으면 충전을 꾀함과 동시에 근육을 쓰는 운동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는 게 ‘참행복’
첨단 기술과 디자인, 발상의 참신성 등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 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만도 풋루스에 대한 반응은 일단 고무적이다. 런던올림픽 기간에 해러즈백화점에서 최초로 공개된 만도 풋루스는 세계 최대 자전거 박람회인 2012년 유로바이크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데 이어,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2013년 본상을 거머쥐었다. 또 올봄에는 영국 디자인업계에서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브릿 인슈어런스 올해의 디자인상’ 후보에 올라 경쟁을 펼치고 있다. 디자인 영역만을 담당했지만, 만도 풋루스는 마크 샌더스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주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만도의 프로젝트팀과 2011년 유로바이크 전시회에서 만나 체인 없는 e바이크에 대한 계획을 처음 소상히 들었다면서, 불과 1년여 만에 상품으로 구현한 불굴의 추진력에 감탄사를 쏟아냈다. “사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해 이런 물건을 상용화한다는 게 정말로 만만치 않거든요. 컴퓨터로 제어할 정도로 정교함을 갖추는 것도 그렇지만 실제로 안락한 승차감을 갖추도록 하는 게 어려워요.” 그는 만도 프로젝트팀과 일하기 위해 한국에 체류할 때, 자신을 이른 아침에 픽업해 온종일 작업을 하고, 저녁 식사를 맛나게 한 뒤(그는 배를 얹은 육회 팬이다) 다시 자정까지 일하는 일과를 반복하는 팀원들을 보고는 그저 ‘일벌레’라는 생각이 든 게 아니었다고 했다. “솔직히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저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이들을 정말로 좋아해요.” 이러한 일종의 ‘동지 의식’이 발동한 것은 ‘그저 좋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물건’들을 밤새도록 구슬땀 흘리며 만들어내는 발명가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온 마크 샌더스 자신의 경험담과 자못 닮은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집 앞 뜰에 있는 창고에 스트라이다와 IF모드, 그리고 만도 풋루스 등을 ‘애장품’처럼 간직해둔 그는 갑자기 사이클리스트의 본능이 솟구쳤는지, 자전거에 사뿐히 올라타더니 해맑게 웃으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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