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journey beyond lim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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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02, 2022

글 고성연

하종현 개인전


단색화 거장 하종현(1935~)의 60년 화업을 관통하는 작업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개인전이 국제갤러리 서울점에서 지난 2월 15일 막을 올렸다. 오늘날의 하종현을 알린 작가의 시그너처와 같은 기존 ‘접합(Conjunction)’ 연작과 여기서 비롯된 다채색의 ‘접합’ 연작, 그리고 최근 부쩍 매진하고 있는 ‘이후 접합(Post-Conjunction)’ 연작 등 39점을 전관(K1, K2, K3)에 걸쳐 선보이고 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현지에서 개최될 예정인 그의 개인전에 앞서 열리는 ‘작은 회고전’ 같은 전시지만, 코로나19로 얼룩진 시기에 작업한 신작까지 공개해 구순을 앞둔 노장의 예술 여정이 여전히 활기 있는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오는 3월 13일까지.



“내 소원은 미술관…. (후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작품을 한데 모아놓은 자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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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를 수식하는 흔한 표현, ‘지칠 줄 모르는 실험 정신’이라는 관용 어구는 자칫 영혼 없이 읊조리는 클리셰로 들릴 수 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혹은 유행 주기가 점점 빨라지는 시대적 속도의 강박 속에 이뤄지는 새로움의 공허한 추구가 난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예술가도 나약한 개인이기에 이 압박에서 늘 냉정하게 벗어나 있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되도록 순수한 창작의 자유라는 테두리 안에서 차이의 미학을 발견하고자 부단히 애쓰면서 자신만의 스타일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거듭 빚어내는 태도. 어느덧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기 혁신을 꾀하는 화백 하종현의 쉼 없는 예술 여정을 보면 “화가의 창조력만 있다면 회화라고 하는 이 오래된 예술에는 끝이 없을 것”이라는 어떤 문필가의 말을 흔쾌히 수긍하게 된다. 지난 2월 15일 국제갤러리 서울점에서 막을 연 하종현 개인전은 작가가 60년 화업을 거치며 일궈낸 의미 있는 변화의 여정을 보여주는 작업 세계의 축소판 같은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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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이어지는 한, 도전도 계속된다

“내 나이까지 붓을 드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국제갤러리 전시 개막일, 기자 간담회에 모습을 드러낸 노화백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감돈다. 2019년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소규모 개인전이 열리기는 했지만 서울 소격동 본점에서는 7년 만의 전시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취재진을 보고는 반가움을 아낌없이 내비친 그는 “평생 그림을 쉬지 못했다”면서도 아직까지 작업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세월이 무색하게도, 약 2년간 팬데믹 사태가 안겨준 고독의 시간을 예술과의 씨름으로 보냈음을 말해주는 신작까지 들고 나왔다. 하종현은 하얀 캔버스가 아니라 올 굵고 구멍 숭숭 뚫린 마포를 사용해 독특한 제작 방식으로 작업하는 작가다. 마포 뒷면에 물감을 두껍게 바르고 뒤에서 천 앞면으로 밀어 넣는 ‘배압법’은 그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한국전쟁 직후 미술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탄생한 묘수였다. 그렇게 마포에서 꽃피운 그의 상징적인 ‘접합(Conjunction)’ 연작을 가리켜 평론가들은 마치 도자기 장인이 물레를 회전시켜 진흙 덩어리를 작품으로 변화시키는 방식이 연상된다고 한다(H. G. 마스터스).
1974년 첫 ‘접합’ 작품을 내놓은 하종현은 물성과 색채에 대한 탐구를 부단히 이어오면서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주로 기왓장이나 백자를 떠올리게 하는 한국적인 색상을 기존 ‘접합’ 연작에 썼다면, 2015년께부터 다홍색 등 눈에 띄는 채색을 반영한 ‘다채색 접합’ 시리즈를 선보였다. 또 먹이나 물감을 칠한 캔버스 천에 나무 조각을 배치해 그 사이로 물감을 밀어내는 ‘이후 접합(Post-Conjunction)’은 ‘접합’의 범주를 확장시킨 방법론인데,리듬감을 살린 색색의 미려한 조합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국제갤러리 전시에서는 신작 6점을 포함한 15점의 ‘이후 접합’ 연작, 그리고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업한 하종현의 ‘접합’ 시리즈를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과 맞물려 현지에서 열릴 회고전을 앞둔 작가의 소원은 자신의 흔적이 담긴 작품을 한데 모아놓은 미술관이 생겼으면 하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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