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ation By Craft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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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 2012

에디터 고성연(스위스 바젤 현지 취재)

2012 디자인 마이애미·바젤과 펜디의 창조적 교감

섬세한 장인 정신을 현대적 감각과 혁신적인 방식으로 계승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남다른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펜디(Fendi). 지난 2008년부터 세계적인 디자인 행사인 디자인 마이애미(Design Miami)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다져온 펜디가 올해는 스위스 북부 도시 바젤을 찾았다. 6월 하늘을 창조적 영감으로 가득 채운 2012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의 현장에서 전통과 실험 정신의 조화를 바탕으로 도전을 모색하는 펜디의 의미 있는 프로젝트 ‘크래프티카(Craftica)’를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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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정신과 전통미를 품은 이탈리아 듀오의 디자인 세계, 펜디 철학과 닮은꼴

투명한 유리 갓을 은은한 색조의 가죽 끈으로 묶어 천장에 매단 앙증맞은 조명, 마치 워싱 과정을 거친 듯 흐드러진 가 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선 껍질로 제작했다는 독특한 느낌의 의자와 탁자, 커다란 조개껍질이 달린 국자 모양의 도구, 불투명한 얇은 고무풍선처럼 보이는 소재로 된 주머 니와 꽃병, 활처럼 비스듬히 휜 나무를 활용한 운치 있는 옷 걸이, 양피지 위에 민속화를 연상케 하는 소소한 일상의 귀 여운 그림들을 입힌 액자…. 지난 6월 11일, 스위스 바젤 시 내에서 개막된 디자인 마이애미·바젤 포럼에서 행사장 2층에 자리한 펜디 부스에 전시되어 있는 ‘사물들’은 현대와 과거의 시공간이 어우러진 듯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흰 색과 회색으로 이뤄진 무채색 공간을 바탕으로 가죽과 대리 석, 유리, 해면, 조개 등 자연 소재들이 엮어내는, 전형적이 지 않은 매력이 돋보인다. 마치 중세의 숙련된 장인들을 타 임머신으로 특별히 초빙해 현재의 디자이너들과 손잡고 거 실을 꾸미게 해 탄생한 듯한 독특한 결과물이라고 할까. 이 부스에는 비록 과거에서 날아오진 않았지만 젊은 펜디의 장 인이 실제로 자리 잡고 앉아 디자이너들의 스케치를 토대로 이 공간에 어울릴 만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폐기 된 가죽과 음식 쓰레기에서 나온 생선 껍질 그리고 벌레들의 배설물을 섞은 재료 등을 사용한단다. 현대판 길드를 연상 케 하는 흥미진진한 디자인 워크숍이었다.

이처럼 ‘컨템퍼러리 리빙’의 맥락에서 장인의 정수가 담긴 가죽 수공예의 미학을 근사하게 펼쳐 보인 주인공은 안드 레아 트리마르키(Andrea Trimarchi)와 시모네 파레신 (Simone Farresin)이라는 이탈리아 출신 젊은이들로 구성된 스튜디오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 이탈리아어로 ‘유령의 형태’라는 뜻을 지닌 이 재미난 이름을 자신들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붙인 이들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펜디의 제작 공정에서 남은 재료를 이용해 수공예 정신을 담은 2 독창적인 창조물을 만들어가는 작업 과정을 지원하는 ‘디자 3 인 퍼포먼스(Design Performance)’ 프로그램에서 올해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재기 발랄한 2인조다. 펜디의 후원으로 이 프로그램이 벌써 5차례에 걸쳐 진행됐다는 배경을 놓고 볼 때 이 듀오가 최초의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라는 사실이 다소 놀랍다. 더욱더 흥미로운 건 현재 이들의 본거지가 모 국이 아니라 네덜란드 남부 도시인 에인트호번이라는 점이 다. 알고 보니 이들은 10대 시절 피렌체에서 만났지만 밀라 노가구박람회에서 개념 디자인(Conceptual Design)의 요 체를 간직하고 있는 에인트호번 디자인 아카데미에서 건너 온, 주관이 뚜렷한 자유로운 작품 세계를 보고는 한눈에 반 해 네덜란드로 향했다고.“유령의 형태라는 뜻의 스튜디오 이름에는 우리의 디자인 작 업이 형식적인 연구 조사가 아니라 개념적 접근 방식에 의 해 주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형 태라는 건 거기에 담긴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적으로 변 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지요.” 올해 29세인 안드 레아 트리마르키는 이렇게 조목조목 설명했다. 개념 디자인의 정수를 흡수한 학도 출신다운 발언이다.

이들이 크게 영 향을 받은 네덜란드의 디자인 그룹으로는 사물과 인간의 관 계를 고민해 재정의함으로써 탈조형적이고 실험적인 동시 에 실용적이고 친자연적인 제품을 선보여 1990년대 혁신 세력으로 각광받은 드로흐 디자인(Droog Design)이 있다. 이들 듀오는 이 같은 배경 아래 세운 개념적인 토대 위에 이 탈리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을 버무린 자신들만의 디자인 언어를 창출해냈다. 10세기 아랍의 침략으로 이슬 람 문화의 자취가 남아 있는 시칠리아의 수공예 기법을 적극 반영한 항아리 시리즈를 2009년 졸업 작품으로 선보여 호 평을 받은 것. 곤충의 배설물을 활용한 독특한 바이오 신소 재를 사용할 정도로 도전적인 신세대이지만 전통 공예의 쇠 락이나 이민자, 빈곤 등을 작품으로 표현할 만큼 사회·정 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디자인 세계는 미래 지향 적인 실험 정신과 전통의 미학을 조화롭게 다루는 방식의 혁 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펜디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과 닮 았다. 세련되면서도 정감이 가는 따뜻한 색채를 다루는 솜 씨도 뛰어나다. 펜디가 디자인 마이애미와 손잡고 펼친 올 해의 디자인 퍼포먼스 프로젝트인 ‘크래프티카’를 맡을 ‘젊은 피’로 충분히 낙점을 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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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과 장인 정신이 깃든 수공예 미학이 어우러진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의 펜디 전시회 크래프티카(Craftica). 2 수년간 디자인 마이애미와 끈끈한 파트너십을 유지해온 펜디는 가죽을 비롯한 자연 소재를 수공예 기술로 다루는 디자이너들과 장인의 협업이 이뤄지는 과정을 관람객들에게 직접 보여줬다. 펜디 장인(왼쪽)과 새로운 작업을 진행 중인 이탈리아의 젊은 디자이너 듀오 안드레아 트리마르키(가운데), 시모네 파레신(오른쪽).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스튜디오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를 운영하며 환상의 궁합을 뽐내고 있는 2인조다. 3 대리석 기둥을 양쪽에 매달고 가죽을 씌운 테이블과 유기적인 느낌의 형태와 질감을 자아내는 오브제들. 4 와인 잔을 연상케 하는 투명한 유리 갓들을 각각 펜디의 셀러리아 가죽 끈으로 연결해 만든 조명. 5 마치 민속화처럼 일상의 소소한 장면을 양피지 위에 스케치로 담은 그림을 넣은 액자들. 6, 7 크래프티카 전시회에서는 폐기된 가죽과 음식 쓰레기에서 나온 생선 껍질, 벌레의 배설물을 섞은 재료 등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한 수공예 작품을 선보였다. 이러한 작품들이 대리석, 유리, 해면, 조개 등 다양한 소재와 다시 조화를 이루면서 혁신적인 미를 창출해냈다. 8, 9 연어, 베도라치 등 생선 껍질을 활용해 만든 앙증맞은 스툴(st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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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 아 마노’ 정신을 구현하는 디자인
퍼포먼스 프로그램

이들이 단 한 번도 가죽을 소재로 한 작품을 시도해본 적이 없다는 이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펜디의 액세서리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실비아 펜디가 강조해왔듯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수공예의 아름다움을 조명하는 ‘파토 아 마노(Fatto a mano, 이탈리아어로 ‘핸드메이드’라는 뜻)’ 정신을 전제로 하지만 디자인에 있어서는 ‘어떠한 경계 없이 젊고 참신한 재능을 찾는다’라는 방침을 고수해오고 있기 때 문.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젤을 방문한 게 처음이라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밝힌 실비아 펜디는 <스타일 조선일보>와 나 눈 인터뷰에서 “디자인 퍼포먼스 프로젝트를 맡을 디자이너 를 선정할 때 눈여겨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혁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포르마판타스마의 작품처럼 수공으로 섬세 하게 제작해 고풍스러우면서도 컨템퍼러리 정신이 번뜩이 는 색다른 작품을 보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입니다.” 이 프 로젝트에 선발된 디자이너들은 준비 과정에서 펜디로부터 재료를 제공받을 뿐 아니라 필요하면 조언도 구할 수 있지만 디자인에 있어서는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고 한다.

펜디는 2008년 디자인 마이애미의 유명 인사 초청 대담 프 로그램인 ‘디자인 토크’ 시리즈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펜디 가문의 딸인 실비아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국적을 가리지 않 고 선발한 재능 있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통해 수공예 장인 정신을 알리고 고양하는 디자인 퍼포먼스 프로그램을 발족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 밀라노가구박람회에서 ‘크 래프트 펑크(Craft Punk)’로 그 첫 단추를 끼웠다. 그로부 터 밀라노와 마이애미를 오가며 다섯 번에 걸쳐 행사를 진행하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고, 바젤을 찾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은 해마다 6월이면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을 스위스로 몰려 들게 하는 대형 미술 장터인 ‘아트 바젤’ 과 나란히 열리는 글로벌 포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세계 각국에서 35개의 주요 디 자인 갤러리 그리고 펜디, 스와로브스 키와 같은 유명 디 자인·패션 브랜 드가 참가해 안목 높 은 수집가들을 매료 시킬만한수준의다 채로운 작품을 앞다퉈

내놓았다. 실비아 펜디는 이처럼 장소의 범위를 넓히면서 폭과 깊이를 더해가는 디자인 퍼포먼스의 추이에 대해 “바젤 뿐 아니라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생기면 지원할 의사가 있다” 며 장인 정신을 수호하는 데 대한 사명감과 열정을 내비쳤 다. 또 “펜디와 인연을 맺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커나가는 걸 보면 정말 흐뭇하다”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2009년 밀라노 에서 열린 ‘크래프트 펑크’ 행사에서 등받이가 없는 가죽 의 자를 출품한 사이먼 하산이 훌쩍 성장한 모습으로 작품 전시 를 위해 이번 행사장을 찾았는데, 펜디의 상징인 ‘셀러리아’ 라인의 한정판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녀는 “사이먼의 가죽 의자는 저희 집에도 있어요. 제가 최초의 수집가일 걸요”라 며 생긋 웃었다. 또 올해의 크래프티카 프로젝트에 대해서 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원시적인 미와 현대적인 감각을 동시에 지닌 이탈리아 청년들의 작품이 제게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함께 과제를 수행한 펜디의 장인들도 창조적 영감을 듬뿍 받았을 것입니다.”

현대의 기술과 감각에 힘입어 진화하는 장인 정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별도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듀오는 펜디와의 협업에 대해 “풍부한 영감을 준 작업”이었다며 긍 정적 단어들을 쏟아냈다. “오늘날에는 ‘공예’라는 단어가 마 케팅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 펜디는 그런 점에서 매우 특별한 파트너였어요.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 한 수공 예가 그들이 하는 일의 요체거든요.” 피렌체에 둥지를 튼 펜 디의 생산 기지에 내려가 직접 가죽을 다루는 공정에 참여 하면서 장인들과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안드레 아와 시모네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지만 정말 얻은 게 많 다”며 입을 모았다. “특히 처음 접한 가죽이라는 소재는 작 업을 하기에 굉장히 매력이 있는 소재였는데, 가죽 공예에 임할 때는 적절히 손질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칫하 면 고유의 질감과 자연스러운 색을 잃어버리기 십상이거든 요.” 이들이 환경에 상당한 관심을 표명해온 배경을 알기에, 비록 펜디의 패션 하우스 제작 공정에서 남은 재료를 사용하 기는 했지만 혹시라도 가죽이라는 소재에 대한 거부감을 가 지진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가죽은 사실 가장 오랜 가공 역 사를 지닌 재료잖아요. 신체를 보호하고 먹고살기 위해 수 렵을 하던 원시시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죠. 다른 어떤 재 료보다도 인간과 자연의 복잡한 상호 관계를 잘 나타내는 게 가죽인 것 같아요.” 역시나 문제의 본질은 자연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어온 인간의 생존 구도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반칙을 하고 범법 행위까지 일삼는 인간 의 잘못된 방식에 있는 것이라는 데 이들은 동의한다. 신기한 점은 ‘크래프티카’에 선보인 이들의 작품이 모양새나 질감, 배합이 독특해 이색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만, 실 제로 사용한 재료들은 대부분 일상에서 흔히 보고 얻을 수 있는 ‘서민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펜디에서 쓰고 남은 가 죽뿐만 아니라 연어, 송어, 농어, 돼지, 조개껍질 등 먹다 남은 식자재와 유리, 나무, 해면 등 우리에게 친숙한 재료들 을 엮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비싼 가죽이 더 귀하고 아 름답다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죠. 우리는 그러한 편견을 깨 고 싶었습니다. 귀하지 않은 재료로 만든 저희 작품들이 나 름 독특하고 ‘있어 보이지’ 않나요? 사실 저희는 연구를 많이 합니다. 저희가 자주 쓰는 곤충의 배설물과 레진을 섞어 만 드는 독특한 재료는 18세기에 사용하던 방식에서 차용한 건 데, 치과 의사의 블로그에서 힌트를 얻었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나 ‘있어’ 보인다. 섬세함과 도전 의식 을 동시에 갖춘 중세의 장인 정신을 추구하며 태고부터 친숙 한 재료를 현대의 감각과 기술로 풀어낸 포르마판타스마의 두 청춘. 이들이 펜디의 ‘크래프티카’ 프로젝트에서 일궈낸 결실은 단순히 외형적인 디자인이나 기술의 진일보가 아니 라 장인 정신의 현대적 진화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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