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 CULTURE] 평화로운 전사 키키 스미스의 자유낙하가 닿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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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04, 2023

글 김수진(프리랜스 에디터·디블렌트 CD)

늑대의 배를 뚫고 당당히 걸어 나오는 여성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하거나 젠더와 정체성을 둘러싼 이슈를 다루며 몸을 해부학적으로 다루었던 키키 스미스는 이미 위대한 여성 미술가 중 한 사람이다. 여전히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자유낙하’를 즐기는 키키 스미스의 지난 40여 년 세월에 걸친 여정을 돌아보는 대규모 전시 <키키 스미스 – 자유낙하>가 국내 최초로 서울시립미술관(서소문 본관)에서 열리고 있다. 자기 자신과 작업에 대한 믿음으로, 그것이 어디로 자신을 데려가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켜 그녀는 ‘자유낙하’라고 이름 붙였는데, 자신도 그렇게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68세의 평화로운 전사는 말한다. 코로나에 세 번이나 걸렸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아 기쁠 따름이라고 밝힌 키키의 현재 세계는 여성과 동물과 취약하고 연약한 것들, 비천하고 낮은 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재평가하면서 생명의 폭력성과 취약성을 따뜻하게 품고 있는 것 같다. 전시는 오는 3월 12일까지.


결국 작가들은 ‘수행자’와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수행적 태도로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생명을 향해 귀 기울이게 되니 말이다. 인생의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줌 인터뷰로 만난 키키 스미스(Kiki Smith)도 치열한 전사 역할을 어느 정도 내려둔 홀가분한 모습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은 사실 모든 것을 다 엉망으로,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해방의 가능성을 꿈꾼다고도 생각해요. 그리고 이러한 면모는 어쩌면 복잡할 수도 있는 다양한 모습을 띠고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이에요.” 손가락마다 블루빛 타투를 한 채, 은색의 긴 머리를 풀어헤친 키키 스미스는 여전히 보헤미안 같았지만, 그녀의 답변처럼 어떤 경지에 닿아본 사람만이 품고 있는 아름답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다.
키키 스미스는 1980년대 미국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며 가정 폭력, 임신중절, 에이즈 등을 소재로 인체 내 장기를 묘사한 작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1990년대에는 배설, 생리 등 파격적인 모습의 인물 전신상을 제작하기도 하는 등 의도적으로 신체와 관계된 불쾌한 생체 기능을 다루는 ‘애브젝트(abject)’ 미학으로 설명되는 작가였다. 그녀의 예술은 유한하면서도 유리처럼 취약한 ‘몸’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파편화된 몸과 내장 기관 등을 작품으로 다루며 그녀는 서구 문화 속에서 여성을 둘러싼 기성 담론에 반발하는 페미니즘 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나의 많은 작품이 공적 공간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치욕에 관한 것이다. 우리 젠더에는 엄청난 치욕이 첨부돼 있다. 문화의 아무것도 우리의 경험을 논하지 않기 때문이다. … 공적 공간에서 그것을 견뎌낼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내게는 ‘여자-아이’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문화 안에서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키키 스미스, 자유낙하>(열화당) 중 발췌) 그녀는 당시 이 같은 발언을 수없이 했을 만큼 급진적인 여성 작가였다.
2000년대 들어 키키 스미스의 작품은 다양한 배경의 종교, 신화, 문학을 모티브로 인간을 넘어 동물과 자연, 우주 등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소재로 삼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오고 있다. 몸, 자연, 살아 있는 물질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생의 고통과 사의 폭력을 인정하고 포용한다고 신해경 평론가가 <키키 스미스, 자유낙하>에서 표현했듯, 이제 그녀는 개인적 경험에서 벗어나 민화, 설화, 고대 역사 등 다양한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모든 걸 겪고 난 뒤에야 비로소 세계를 배회할 수 있는 산책자처럼 말이다. 그녀 스스로도 본인의 작품 활동에 대해 ‘정원을 거니는 것과 같다’고 표현하며 같은 공간을 반복적으로 맴도는 방랑자의 걸음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의 지난 40년간 작가 여정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 서울시립미술관에 펼쳐져 있다. 키키 스미스는 기자 간담회 중 진행한 줌 인터뷰에서 “저는 그저 집에서 40~50년간 작업을 해왔을 뿐”이라고 답했지만, 그녀의 긴 서사는 섬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아름다운 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가 줌 인터뷰에서 인생이라는 것이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작업이 변한다고 대답한 것처럼, 그리고 예술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머리가 짙은 색이었지만, 지금은 백발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전시장에는 사람과 동물, 우주와 식물 등이 어우러진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도 걸려 있는데, 모든 것들과 화합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 어린 ‘기도’처럼 명상적으로 느껴진다. “사실 매일 밤 여성주의 작가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68세인데, 제 주변을 둘러보면 80대에 접어들어 갑자기 여성주의 작가로 찬사 받고 커뮤니티에 여성 작가로 추앙받는 동료 작가들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지난 60년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서 자기 작업을 해온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예술이라는 것은 사실 스스로 선언하는 것이고요. 말하자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작가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스스로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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